녹색신앙 이야기

나무의 이야기를 위해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케빈 홉스, 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티보 에렘 그림, 김효정 옮김, 한즈미디어, 2020년) 사람이 있기 전에 나무가 있었다. 성서의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땅에 풀과 나무를 내게 하신 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약 30억 년 전 조류, 균류 등의 모습으로 식물이 지구에 처음 등장했고 4억 3천만 년 전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이르러 현재의 외형을 가진 나무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후로 나무는 곤충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상호의존적인 공생의 관계를 형성하며 지구 생태계의 중추 역할을 감당해왔다. 지금 지구의 나무들은 모든 생물종의 1/4에 해당하는 100,000여 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지역 식생에 적응한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열대우림지역에서는 심심찮게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의 나무가 발견되고 있으니, 성서의 아담처럼 아직 불러줄 이름이 없는 생명에 멋진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면 식물학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아무튼 나무는 창조세계의 오랜 존재로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이다. 우리는 나무를 더욱 존중해야하며 더욱 깊이 이해해야한다. 나무를 가까이 하는 일은 창조세계의 신비를 만나는 일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탄소중립이니 ESG니 호들갑을 떨지만, 결국 우리가 거룩한 나무를 본받아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내려주시는 한 줌 햇볕에 만족하며 살지 못하는 한 구원, 생존의 가능성보다 종말, 멸종의 가능성으로 다가설 뿐이다. ‘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오랜 시간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나무에 대한 책은 수도 없지 많지만 특별히 이 책은 그림 작가가 식물도감에 수록된 나무의 사진이 나무 전체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큰 아쉬움이 있었는지, 우리가 흔히 보지 못하는 나무 전체의 멋진 자태를 펜으로 정성스럽게 그려낸 것이 참 돋보인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이 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마치 그리스 아테네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의 신상들을 하나씩 만나는 느낌이었다. 아,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크고 깊고 넓고 오랜 세계가 이렇게 존재하는구나. 내가 이 세계에 잠시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거구나. 황망한 무기력이 아니라 평온한 귀속감이었다. 일단 나에게는 그랬다. 몇 년 동안...
2021.12.31
한 여인이 있었다. 단풍나무 씨앗처럼 가을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 세상의 구멍에서 떨어진 '하늘 여인'이었다. 기러기들이 날아올라 그를 받아 주었고, 그는 거북의 등딱지에 내려앉았다. 그를 위한 보금자리(땅)이 필요하다고 여긴 동물들은 방안을 의논했다. 그가 머물 땅을 만들 만한 진흙이 깊은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물속 깊은 곳의 수압과 어둠은 수달·비버·철갑상어처럼 물속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동물들에게도 버거웠다. 진흙을 가지러 떠났던 동물 중 되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모여 있던 동물 가운데 가장 꼬마였던 사향뒤쥐가 헤엄을 쳐서 깊은 물속의 진흙을 입에 물어 가져왔다. 자신의 일을 마친 사향뒤쥐는 숨을 거뒀지만, 그가 가져온 한 줌의 진흙은 거북의 등에 발라져 점점 넓어지더니 대지(아메리카대륙)로 변했다. '하늘 여인'은 하늘의 씨앗 꾸러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새로운 대지에 뿌려 정성스럽게 돌보며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게 했다. 아메리카 토착민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의 책 <향모를 땋으며>(에이도스)의 첫머리에 나오는 하늘 여인에 대한 토착민 설화다. 이 이야기는 아메리카 토착민들이 모든 생물은 상호의존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했고, 서로를 위한 헌신과 사랑이 그러한 상호의존관계를 가능하게 했다는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을 알려 준다. 세상엔 과학적 사실보다 중요한 믿음이 있다. 믿음이 세상을 바꾸고 새롭게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니 말이다. 실낙원 성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낙원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생명의 동산, 애쓰거나 땀 흘려 경작하지 않아도 먹을거리 걱정할 필요 없는 곳, 서로를 잡아먹지 않아도 나무 열매만으로 충분히 배불렀던 시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성서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동산 에덴을 그려 낸 목적은 과학적 사실을 알려 주는 데 있지 않다. 성서의 창조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를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게 창조하셨다는 고백과 더불어, 우리가 낙원을 잃어버린 이유가 바로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고백과 믿음은 우리를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는 지금까지 이미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겪은 곡절 많은 별이다. 때로는 인류의 생존 역시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류는 이곳에서 이른바 '문명'을 발전시킬 만큼 풍족한 삶을 누렸다. 그 기반은 친절하디 친절한 지구 생태계 그 자체였고, 그것을 지탱하던 힘은 생명력 넘치는 대지와 온화한 기후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2021.12.23
기후위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 한국 정부 탄소중립정책의 문제점 지난 9월 30일,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있는 새문안로 콘코디언 빌딩 앞 거리에서 탄소중립위원회 국민참여분과에 참여한 4대 종단의 종교위원들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4대종단의 종교위원들은 탄소중립위원회 회의에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이 참여하지도 않았고, 2030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폭을 2℃에 맞춘 2018년 대비 35% 온실가스감축안이 정부안으로 제출되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부처의 안일함과 직무유기를 비판하며, “우리들 때문에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는 가난한 국가와 사회적 약자, 청소년들과 미래세대가 희생당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들과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볼 책임이 있음을 의식하고 정부와 기업의 즉각적이고 합당한 변화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탄소중립위원회 종교위원 사퇴문을 발표했다. 종교위원들은 “산업의 구조를 빠르고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에 필요한 법과 정책을 국회와 정부가 만들고 시행하도록 탄소중립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추동”할 것을 요청하며, “종교계에서 앞으로도 탄소중립을 위해 더욱 체계적인 교육을 시행하고 실천과 연대에 힘을 더할 것이다.”는 문장으로 사퇴문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탄소중립위원회에 참여한 종교위원들은 사퇴문과는 별도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탄소중립위원회에 큰 기대를 가지고 참여했지만, 이미 정부는 사전에 온실가스감축안의 한계치를 정해두고 위원들을 설득하려했을 뿐이고, 종교위원들의 온실가스감축목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그럼 어디서 어떻게 더 감축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했다며, 고심 끝에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위원회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인 10월 4일에는 세계 주요 종교들을 대표하는 40명에 달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과학자들과 함께 바티칸에 모여 국제 사회가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 앞서 ‘획기적인 기후위기 대응 계획을 세우고 기후행동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공동호소문‘을 COP26 의장인 혼 알로크 샤르마에게 전달하였다. 이 호소문에서 세계 종교지도자들은 COP26이 “부유한 국가들부터 앞장서서 자신의 탄소배출을 감축해야 하고, 빈곤한 국가들의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가능한 한 빨리 넷제로를 성취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놓고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경제, 생태적이고 환경을 착취하지 않는 돌봄의 경제, 생명을 지원하는 경제, 과잉의 사악함을 비판하는 경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새로운 종류의 경제’를 채택하는” 원대한 뜻을 세워야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세계 종교지도자들의 호소문도 메아리 없는 허공을 향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지난 11월 13일에 막을 내린...
2021.12.19
우리는 지금 파국을 성장시키고 있다 이현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지구온난화는 지금 우리가 성장을 위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기에 발생하고 있는, 인류사상 전례가 없는 전 지구적인 파국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가난을 성장시키고 있다.” -프란츠 알트(Franz Alt), 단 하나뿐인 우리의 집 우리 모두는 오늘도 바쁘다. 도시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지하철과 버스, 도로 위 자동차들은 오늘도 수백만의 시민을 어디론가 실어나른다. 하루 활동의 대부분이 경제 활동과 소비에 연결된 삶, 그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 더 많이 쌓아 올렸다는 기억을 가지고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오늘 하루 우리가 쌓아 올린 것이 무엇이었나에 대한 성찰은 매우 드물다. 인간의 삶이 풍요해질수록 지구 생태계는 가난해졌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지구 생태계의 고통도 성장했다. 산과 바다의 무수한 생물종이 사라졌으며, 탄소배출을 통한 지구온난화로 피폐해진 땅과 물이 늘어간다. 오늘도 우리가 열심히 살면서 쌓아 올린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점검해야 할 때이다. 최근 유엔이 주도한 기후환경에 대한 공동분석에 따르면, 현재 세계는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이라는 지구 온난화 안전 한계치를 넘어 2도 상승의 시나리오조차 상당히 초과하는 경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주요 해수면의 상승을 이끌어 해안가와 섬 지대의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극단적 기상현상의 발생과 강도를 증가시켜킴으로 세계 곳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임것을 의미한다. 이미 30년 전(1992년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부터 세계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공동대응을 약속했지만, 오늘날의 이런 결과로 평가하건대, 우리의 지난 약속은 구속력이 없었고, 우리의 지난 실천은 지나치게 미미했다. 국가와 개인의 경제성장, 소비, 풍요, 편리를 향한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 한, 어떤 과학도 어떤 정치도 이 파국을 향한 치달음을 막을 수 없다. ‘녹색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국 파국을 성장시키게 될 것이다. [이제는 개인이 나서야 할 때] 산업혁명 이후 약 150년간 우리는 무수한 탄소발자국을 남기며 살아왔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기후위기의 원인인 탄소를 거리낌없이 배출하며 살아왔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시공간과 활동 가운데서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의 풍요와 편리가 그저 인간을 향한 하늘의 축복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그런 종류의 순진한 생각으로는 지속가능한...
2021.12.15
기후위기의 오늘 우리에게 예수의 탄생은 어떤 의미인가? <첫 번째 크리스마스> (마커스 보그, 존 도미닉 크로산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1년)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곧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의 모습도 ‘예전’ 같지 않다. 거리에 캐롤이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크리스마스 씰이 붙은 성탄 축하 카드도, 거리를 메우는 인파도, 자선냄비 종소리도, 화려한 성탄장식 조명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익숙해지고 있다. 여전히 TV에서는 ‘나 홀로 집에’나 ‘다이 하드’ 시리즈가 방영되기는 하지만, 크리스마스 연휴는 미처 보지 못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을 몰아서 보기에 더 좋은 시간이다. 뭐 그렇다고 아쉬워할 것은 없다. 어차피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별 상관이 없는 날이니까. 마커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이천년 전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과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천년 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책이다. 마커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암시와 반전이 이어지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는 듯, 한 장 한 장이 흥미진진한 역사, 문화, 종교적 자료들로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준다. 예를 들어,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아폴로 신의 아들로써 기적적으로 출생하였고, 천년이 넘는 족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상의 평화’를 약속한 황제의 ‘복음’을 선포한 존재로, ‘신의 아들’, ‘주님’, ‘구세주’로 숭배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그와 크로산은 복음서가 이러한 로마 황제의 ‘제국 신학’에 맞서 나사렛 예수의 동정녀의 탄생과 다윗의 족보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책이 아니다. 보그와 크로산은 계속해서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들은 공허한 꿈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드러나 우리가 본 것이 바로 그 길, 즉 다른 종류의 인생과 다른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개인적이며 정치적인 변화 모두, 재탄생의 종말론과 새로운 세상의 종말론 모두가 우리의 참여를 요청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여가 없이는 우리 개인을 변화사키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여가 없이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신다.” (314쪽, ‘미래의 크리스마스’) 오늘날은 기후위기의 시대. 전 세계적인, 그리고 생태적인 불평등과...
2021.12.04
기후위기의 절망을 넘어 생태 회복의 희망으로 - 절망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멈추지 않을 용기 이현아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슬픔에 직면하기 우리는 지금 수십만의 생물종과 이별하는 중이다. 2019년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UN IPBES)' 7차 총회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⅛에 해당하는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고, 이들 중 50만 종은 생존할 수 있는 서식 공간이 없다. 동식물의 서식처인 숲과 삼림이 2000년 이후 매년 650만 헥타르(㏊)씩 사라지고 있다. 인간 활동의 급격한 증가로 1970년대 이래 지표면의 75%가 현저히 변형됐고, 해양 지역의 66%가 치명적인 상태에 있으며, 85% 이상의 습지가 사라졌다. 인간의 지나친 활동은 동식물의 멸종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에 기반을 둔 인간 문명은 지구 온도를 높여 기후 위기를 초래했고, 삶의 기반도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폭염, 한파, 태풍, 홍수, 산불 등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기상 현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피해와 희생이 매년 국내외 뉴스를 장식한다. 아프리카·아시아 많은 지역의 일상적 물 부족과 사막화 확산은 지역 농업 시스템을 교란했으며, 식량 부족으로 앙상하게 마른 아이들의 덩그런 눈망울은 잘사는 나라 사람들의 두꺼운 양심을 두드린다. 해마다 발생하는 2500만 명의 기후 난민을 어떻게 분산·수용할 것인지가 국제정치·사회의 주요한 쟁점이 됐고,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외교부장관은 물에 잠긴 국토 위에서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연설을 한다. 인식하지 못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지금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날보다 더 안정적인 시기일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8월 9일 발표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이대로 가면 불과 10여 년 후 세계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올라 생태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래전 예견된 재앙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13일 막을 내린 COP26 회의에서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기후 위기 대응에 힘써야 할 이 짧은 유예기간을 다시 한번 미루고,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우리가 파괴하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비통함, 그 안에서 스러져 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통함, 우리 스스로 만들어...
2021.11.29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는 12월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고백한다. 복음서는 그렇게 찾아온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고, 어떻게 부활했는지를 그린다. 그리고 그 사건을 약 2천 년 전 어느 중동 마을의 일이 아니라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진 이들에게만 구원은 현실이 된다. 그 과정에서 예수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일도 벌어지고, 예수께서 아버지라 부르신 분을 우리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를 하게 되는 일도 일어난다. 그렇기에 신앙이나 구원은 신비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신학자 보프는 생태학을 관계에 대한 학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어쩐지 ‘생태’라는 말에는 ‘공동체’라는 말이 어울리기도 한다. 우리가 따로 떨어져 혼자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라는 말은 위로가 된다. 사람들끼리도 ‘더불어’, ‘함께’가 힘든 세상이니 말이다. 생태학의 세계에선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끼지만 결국 물과 공기, 바람과 햇볕, 흙과 풀, 나무와 새, 벌레와 미생물, 동물들과 떨어져 살아갈 수 없다. 본적도 없고, 목소리도 들은 적 없는 이들과 우리는 이미 하나의 공동체로서 살아가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공동체로 살고 있다는 말은 인류가 초래한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우리(생태공동체)의 긴밀한 관계망을 깨뜨릴 때 그것이 공동체에 속한 모두의 위기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적자생존”, 강한 자가 살아남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통해 ‘적자생존’은 틀렸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가 영향을 깊이 주고받으며 진화해왔고, 그 과정은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먹고 먹히는 일이 있으나 가학과 피학의 관계는 아니다. 우리가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고백할 때 그 관계가 ‘적자생존’이 아니듯, 먹고 먹히는 관계도 결국 힘의 구조는 아니다. 성찬이 우리에게 보여주듯 우리는 서로의 먹이가 되고,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어줄 때 새로운 존재,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관계의 신비를 잃어버린 순간, 즉 힘의 관계로 모든 것을 설명할 때 위기가 시작되었다. 인류는 강자로 군림하면서 공동체의 다른 이들을 착취했다. 그리고 순환을 통해 유지되던 세계를 망가뜨렸다. 바울 사도는 자기를...
2021.11.26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삭개오입니다 임지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성서 곳곳에서는 이 땅에 정의를 일구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일깨운다. 이 시대의 정의는 결코 기후위기를 간과한 채로 선포될 수 없다. 기후위기는 이제 단지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니며, 오늘의 뉴스 헤드라인으로 찾아오고 있는,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심상치 않다. 세계 곳곳에서 폭우와 폭염, 초대형 산불 등의 기후재난들이 잇달아 일어나며, 이로 인해 피해를 입고 고통받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 유엔 인권 최고 대표 메리 로빈슨은 ‘기후변화는 21세기 인권에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 말했다. 성서는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시는(마태복음5:45) 분이라 증언한다. 성서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후란, 악인이냐 선인이냐, 의로운 자냐 불의한 자냐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위해 주신 은총이라 할 수 있다. 지구에 사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기후인 것이다. 이 기후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구 위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을 기대어 살아가도록 부여하신 토대를 빼앗는 것이며 지금까지는 없었던 무자비하고도, 잔혹한 폭력인 것이다. 한국교회여, 기후정의를 외쳐라 기후변화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이들이 수백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에 벌어질 일이 아닌 오늘의 고통이다. 국제난민감시센터(IDMC)에서는 전 세계 난민이 780만 명에 육박하며, 이 중 기후 난민이 분쟁 난민보다 약 3배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또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관련 사건으로 2050년 안에 최소 12억 명이 난민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문제는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이들이 기후변화의 발생에는 책임이 없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말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9월 25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는 ‘지금당장 기후정의’를 메인 구호로 삼고 집중기후행동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기후행동에 동참했으며,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도 기후위기 기독교 비상행동을 통해 기후정의를 외치는 일에 함께 행동했다. 기후정의란 국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기후위기를 야기했고,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과 피해 또한 불평등하게 돌아가며,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불평등이 가중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기후위기의...
2021.11.12
지구 환경 위기와 한국 교회의 사명 - 기후위기 시대, 그린 엑소더스를 준비하는 한국교회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인류가 지구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오랜 시간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나 살고 있는 마을이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전부였고, 나라를 넘어서는 먼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무척 특별한 일이었다. 근대 이후 세계가 항해를 통해 일주가 가능한 공간이라는 상상이 실제로 입증된 이후에도 사람들이 지구에 대한 온전한 인식을 갖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현대에 들어서 과학적 사고가 보편화되고 우주에서 푸른 지구별을 내려다보게 된 순간, 비로써 지구에 대한 온전한 인식이 가능해졌다. 지구는 넓은 바다와 여섯 개의 대륙과 섬으로 구성된 지표면 위를 얇은 대기층이 감싸고 있는 태양계의 행성이었고, 인간이란 하나의 종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 종들이 살아있는 생태계 공간으로 거대한 우주 속에 홀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 이후 과학기술과 결합된 산업 활동은 숲과 강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키거나 특정 생물 종을 멸종시키는 등 지구 생태계에 국지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후 산업혁명을 통해 화석연료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의 산업 활동은 지구 전체의 대기, 해양, 토양, 하천을 오염시키고 수많은 생물 종을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지구 생태계의 일부인 사람들이 지구 생태계 전체의 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수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홀로세 기후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는 최근의 기후 변화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넘어 지구 생태계 붕괴의 가능성을 알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6도씨 이상이 올라 지구 생명체의 90% 이상이 멸종하는 대멸종의 상황이 아주 높은 확률로 예측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환경위기란 단어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의 인간중심적인 표현이다. 환경이란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를 주변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반영된 표현이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 종만 외따로 존재하는 것도, 더군다나 인간 종을 위해 지구 생태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 종은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지구 생태계의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 현대의 생태학적 사고이다. 하지만 인간 종은 다른 종들에 비해 지구 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킬 정도의 강한 힘을 가지고...
2021.11.03
참여와 행동으로 일구는 생명의 경제 “시장자본주의에서 경제민주화로”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다" (출애굽기 16장 18절, 고린도후서 9장 15절) 생명의 경제(Economy of Life)는 하나님의 살림살이(oikos)를 회복하는 것이다. 생명의 경제를 일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살림살이가 어떤 것인지 알고 구체적인 삶속에서 실천해야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1998년 하라레 총회(Harare, Zimbabwe)부터 2014년 부산총회 까지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위기를 연결하는 생명의 경제를 발표하고 세계교회의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세계교회의 오랜 주제이다. 세계교회는 시장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연결고리가 개발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이 패러다임은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여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게 만든다. 또한 산업화와 화석연료를 남용하게 만들어 기후위기를 일으킨다. 시장자본주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량폐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경제를 통해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하나님의 살림살이를 회복하기 위한 생명의 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시장자본주의에 맞서 인간과 지구를 살리려는 대안적 노력이다. 세계교회는 ‘아가페 프로세스’(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s and Earth)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주의에 맞서 생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아가페 사랑에 따르면 생명이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이 사랑은 시장자본주의에 맞서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거룩한 힘이다. 세계교회는 이러한 힘에 의지해 생명의 경제라는 대안적 패러다임을 선포하고 선교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생명의 경제라는 대안적 패러다임 속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생명의 경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8월 26일, ‘생명의 경제 아카데미 간담회’를 진행해 기후위기에 대응한 사회경제적 전환의 담론들을 토론했다. 이 아카데미는 한국교회에 생명의 경제를 소개하고 앞으로 행동그룹을 구성해 교육 및 실천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회경제학에서는 사회구조의 전환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는 탈성장 담론으로 대표된다. 지난 간담회 대표 발제를 맡은 홍덕화 교수(충북대)는 “지금의 기후위기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성장의 패러다임을 강조한 시장자본주의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또한 오늘 우리사회에 요청되는 분배적 절차적 기후정의운동의 필요성 대해 설명했다. 우상화된 경제성장을 멈추고 지속가능하고 회복가능한 대안적 경제체제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체제는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함께 돌보며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생명의 경제에 참여할 것인가? ‘사회적 기업과 생명의 경제’에...
2021.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