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의 오늘 우리에게 예수의 탄생은 어떤 의미인가? <첫 번째 크리스마스> (마커스 보그, 존 도미닉 크로산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1년)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곧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의 모습도 ‘예전’ 같지 않다. 거리에 캐롤이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크리스마스 씰이 붙은 성탄 축하 카드도, 거리를 메우는 인파도, 자선냄비 종소리도, 화려한 성탄장식 조명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익숙해지고 있다. 여전히 TV에서는 ‘나 홀로 집에’나 ‘다이 하드’ 시리즈가 방영되기는 하지만, 크리스마스 연휴는 미처 보지 못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을 몰아서 보기에 더 좋은 시간이다. 뭐 그렇다고 아쉬워할 것은 없다. 어차피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별 상관이 없는 날이니까. 마커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이천년 전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과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천년 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책이다. 마커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암시와 반전이 이어지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는 듯, 한 장 한 장이 흥미진진한 역사, 문화, 종교적 자료들로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준다. 예를 들어,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아폴로 신의 아들로써 기적적으로 출생하였고, 천년이 넘는 족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상의 평화’를 약속한 황제의 ‘복음’을 선포한 존재로, ‘신의 아들’, ‘주님’, ‘구세주’로 숭배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그와 크로산은 복음서가 이러한 로마 황제의 ‘제국 신학’에 맞서 나사렛 예수의 동정녀의 탄생과 다윗의 족보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책이 아니다. 보그와 크로산은 계속해서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들은 공허한 꿈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드러나 우리가 본 것이 바로 그 길, 즉 다른 종류의 인생과 다른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개인적이며 정치적인 변화 모두, 재탄생의 종말론과 새로운 세상의 종말론 모두가 우리의 참여를 요청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여가 없이는 우리 개인을 변화사키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여가 없이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신다.” (314쪽, ‘미래의 크리스마스’) 오늘날은 기후위기의 시대. 전 세계적인, 그리고 생태적인 불평등과...
2021.12.04
기후위기의 절망을 넘어 생태 회복의 희망으로 - 절망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멈추지 않을 용기 이현아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슬픔에 직면하기 우리는 지금 수십만의 생물종과 이별하는 중이다. 2019년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UN IPBES)' 7차 총회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⅛에 해당하는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고, 이들 중 50만 종은 생존할 수 있는 서식 공간이 없다. 동식물의 서식처인 숲과 삼림이 2000년 이후 매년 650만 헥타르(㏊)씩 사라지고 있다. 인간 활동의 급격한 증가로 1970년대 이래 지표면의 75%가 현저히 변형됐고, 해양 지역의 66%가 치명적인 상태에 있으며, 85% 이상의 습지가 사라졌다. 인간의 지나친 활동은 동식물의 멸종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에 기반을 둔 인간 문명은 지구 온도를 높여 기후 위기를 초래했고, 삶의 기반도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폭염, 한파, 태풍, 홍수, 산불 등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기상 현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피해와 희생이 매년 국내외 뉴스를 장식한다. 아프리카·아시아 많은 지역의 일상적 물 부족과 사막화 확산은 지역 농업 시스템을 교란했으며, 식량 부족으로 앙상하게 마른 아이들의 덩그런 눈망울은 잘사는 나라 사람들의 두꺼운 양심을 두드린다. 해마다 발생하는 2500만 명의 기후 난민을 어떻게 분산·수용할 것인지가 국제정치·사회의 주요한 쟁점이 됐고,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외교부장관은 물에 잠긴 국토 위에서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연설을 한다. 인식하지 못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지금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날보다 더 안정적인 시기일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8월 9일 발표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이대로 가면 불과 10여 년 후 세계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올라 생태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래전 예견된 재앙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13일 막을 내린 COP26 회의에서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기후 위기 대응에 힘써야 할 이 짧은 유예기간을 다시 한번 미루고,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우리가 파괴하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비통함, 그 안에서 스러져 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통함, 우리 스스로 만들어...
2021.11.29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는 12월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고백한다. 복음서는 그렇게 찾아온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고, 어떻게 부활했는지를 그린다. 그리고 그 사건을 약 2천 년 전 어느 중동 마을의 일이 아니라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진 이들에게만 구원은 현실이 된다. 그 과정에서 예수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일도 벌어지고, 예수께서 아버지라 부르신 분을 우리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를 하게 되는 일도 일어난다. 그렇기에 신앙이나 구원은 신비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신학자 보프는 생태학을 관계에 대한 학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어쩐지 ‘생태’라는 말에는 ‘공동체’라는 말이 어울리기도 한다. 우리가 따로 떨어져 혼자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라는 말은 위로가 된다. 사람들끼리도 ‘더불어’, ‘함께’가 힘든 세상이니 말이다. 생태학의 세계에선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끼지만 결국 물과 공기, 바람과 햇볕, 흙과 풀, 나무와 새, 벌레와 미생물, 동물들과 떨어져 살아갈 수 없다. 본적도 없고, 목소리도 들은 적 없는 이들과 우리는 이미 하나의 공동체로서 살아가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공동체로 살고 있다는 말은 인류가 초래한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우리(생태공동체)의 긴밀한 관계망을 깨뜨릴 때 그것이 공동체에 속한 모두의 위기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적자생존”, 강한 자가 살아남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통해 ‘적자생존’은 틀렸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가 영향을 깊이 주고받으며 진화해왔고, 그 과정은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먹고 먹히는 일이 있으나 가학과 피학의 관계는 아니다. 우리가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고백할 때 그 관계가 ‘적자생존’이 아니듯, 먹고 먹히는 관계도 결국 힘의 구조는 아니다. 성찬이 우리에게 보여주듯 우리는 서로의 먹이가 되고,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어줄 때 새로운 존재,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관계의 신비를 잃어버린 순간, 즉 힘의 관계로 모든 것을 설명할 때 위기가 시작되었다. 인류는 강자로 군림하면서 공동체의 다른 이들을 착취했다. 그리고 순환을 통해 유지되던 세계를 망가뜨렸다. 바울 사도는 자기를...
2021.11.26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삭개오입니다 임지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성서 곳곳에서는 이 땅에 정의를 일구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일깨운다. 이 시대의 정의는 결코 기후위기를 간과한 채로 선포될 수 없다. 기후위기는 이제 단지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니며, 오늘의 뉴스 헤드라인으로 찾아오고 있는,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심상치 않다. 세계 곳곳에서 폭우와 폭염, 초대형 산불 등의 기후재난들이 잇달아 일어나며, 이로 인해 피해를 입고 고통받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 유엔 인권 최고 대표 메리 로빈슨은 ‘기후변화는 21세기 인권에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 말했다. 성서는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시는(마태복음5:45) 분이라 증언한다. 성서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후란, 악인이냐 선인이냐, 의로운 자냐 불의한 자냐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위해 주신 은총이라 할 수 있다. 지구에 사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기후인 것이다. 이 기후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구 위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을 기대어 살아가도록 부여하신 토대를 빼앗는 것이며 지금까지는 없었던 무자비하고도, 잔혹한 폭력인 것이다. 한국교회여, 기후정의를 외쳐라 기후변화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이들이 수백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에 벌어질 일이 아닌 오늘의 고통이다. 국제난민감시센터(IDMC)에서는 전 세계 난민이 780만 명에 육박하며, 이 중 기후 난민이 분쟁 난민보다 약 3배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또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관련 사건으로 2050년 안에 최소 12억 명이 난민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문제는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이들이 기후변화의 발생에는 책임이 없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말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9월 25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는 ‘지금당장 기후정의’를 메인 구호로 삼고 집중기후행동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기후행동에 동참했으며,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도 기후위기 기독교 비상행동을 통해 기후정의를 외치는 일에 함께 행동했다. 기후정의란 국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기후위기를 야기했고,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과 피해 또한 불평등하게 돌아가며,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불평등이 가중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기후위기의...
2021.11.12
지구 환경 위기와 한국 교회의 사명 - 기후위기 시대, 그린 엑소더스를 준비하는 한국교회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인류가 지구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오랜 시간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나 살고 있는 마을이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전부였고, 나라를 넘어서는 먼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무척 특별한 일이었다. 근대 이후 세계가 항해를 통해 일주가 가능한 공간이라는 상상이 실제로 입증된 이후에도 사람들이 지구에 대한 온전한 인식을 갖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현대에 들어서 과학적 사고가 보편화되고 우주에서 푸른 지구별을 내려다보게 된 순간, 비로써 지구에 대한 온전한 인식이 가능해졌다. 지구는 넓은 바다와 여섯 개의 대륙과 섬으로 구성된 지표면 위를 얇은 대기층이 감싸고 있는 태양계의 행성이었고, 인간이란 하나의 종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 종들이 살아있는 생태계 공간으로 거대한 우주 속에 홀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 이후 과학기술과 결합된 산업 활동은 숲과 강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키거나 특정 생물 종을 멸종시키는 등 지구 생태계에 국지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후 산업혁명을 통해 화석연료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의 산업 활동은 지구 전체의 대기, 해양, 토양, 하천을 오염시키고 수많은 생물 종을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지구 생태계의 일부인 사람들이 지구 생태계 전체의 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수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홀로세 기후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는 최근의 기후 변화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넘어 지구 생태계 붕괴의 가능성을 알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6도씨 이상이 올라 지구 생명체의 90% 이상이 멸종하는 대멸종의 상황이 아주 높은 확률로 예측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환경위기란 단어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의 인간중심적인 표현이다. 환경이란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를 주변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반영된 표현이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 종만 외따로 존재하는 것도, 더군다나 인간 종을 위해 지구 생태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 종은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지구 생태계의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 현대의 생태학적 사고이다. 하지만 인간 종은 다른 종들에 비해 지구 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킬 정도의 강한 힘을 가지고...
2021.11.03
참여와 행동으로 일구는 생명의 경제 “시장자본주의에서 경제민주화로”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다" (출애굽기 16장 18절, 고린도후서 9장 15절) 생명의 경제(Economy of Life)는 하나님의 살림살이(oikos)를 회복하는 것이다. 생명의 경제를 일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살림살이가 어떤 것인지 알고 구체적인 삶속에서 실천해야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1998년 하라레 총회(Harare, Zimbabwe)부터 2014년 부산총회 까지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위기를 연결하는 생명의 경제를 발표하고 세계교회의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세계교회의 오랜 주제이다. 세계교회는 시장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연결고리가 개발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이 패러다임은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여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게 만든다. 또한 산업화와 화석연료를 남용하게 만들어 기후위기를 일으킨다. 시장자본주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량폐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경제를 통해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하나님의 살림살이를 회복하기 위한 생명의 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시장자본주의에 맞서 인간과 지구를 살리려는 대안적 노력이다. 세계교회는 ‘아가페 프로세스’(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s and Earth)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주의에 맞서 생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아가페 사랑에 따르면 생명이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이 사랑은 시장자본주의에 맞서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거룩한 힘이다. 세계교회는 이러한 힘에 의지해 생명의 경제라는 대안적 패러다임을 선포하고 선교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생명의 경제라는 대안적 패러다임 속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생명의 경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8월 26일, ‘생명의 경제 아카데미 간담회’를 진행해 기후위기에 대응한 사회경제적 전환의 담론들을 토론했다. 이 아카데미는 한국교회에 생명의 경제를 소개하고 앞으로 행동그룹을 구성해 교육 및 실천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회경제학에서는 사회구조의 전환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는 탈성장 담론으로 대표된다. 지난 간담회 대표 발제를 맡은 홍덕화 교수(충북대)는 “지금의 기후위기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성장의 패러다임을 강조한 시장자본주의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또한 오늘 우리사회에 요청되는 분배적 절차적 기후정의운동의 필요성 대해 설명했다. 우상화된 경제성장을 멈추고 지속가능하고 회복가능한 대안적 경제체제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체제는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함께 돌보며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생명의 경제에 참여할 것인가? ‘사회적 기업과 생명의 경제’에...
2021.10.29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 <디그로쓰 Degrowth> (요르고스 칼리스 외 지음, 우석영, 장석준 옮김, 산현재, 2021년)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어느 나라가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강대국이냐 약소국이냐를 이야기할 때, 조금 더 노골적으로 잘 사는 나라냐 못 사는 나라냐를 따질 때 흔히 일정 기간 동안 한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시장 가치를 합한 수치인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을 따져보게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내총생산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차이로. 하지만 최근 2위 중국이 경제성장을 통해 미국의 국내총생산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머지않아 경제성장이 더 가파른 중국이 미국의 국내총생산을 따라잡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총생산을 국민의 수로 나눈 1인당 국내총생산은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2017년 UN 통계에 의하면 당최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리히텐슈타인 공국이 모나코와 룩셈부르크를 제치고 1인당 국내총생산이 가장 높은 나라다. 미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으로는 간신히 9위, 중국은 중간 정도 되는 세계 75위이다. 대국들로서는 좀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기후위기고 나발이고 간에 오로지 경제성장뿐이다. 부탄은 국내총생산으로는 별 볼 일이 없는 126위의 나라이다. 하지만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에서는 항상 1위를 차지한다. 국민총행복지수는 평균행복(Average Happiness), 행복수명(Happy Life Years), 행복불평등(Inequality of Happiness), 불평등조정행복(Inequality-Adjusted Happiness)을 통해 각 국가의 국민들이 어느 정도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를 측정한 수치다. 부탄이 국민총행복지수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탄 사람들은 경제성장 대신 불교의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가 지구를 괴롭게 만든다는 이야기에는 선뜻 동의한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성장은 이로운 것이고 또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생물다양성감소, 기후위기. 사실 경제성장이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인데도 말이다. 또한 경제성장은 사회의 불안, 소득불평등, 공동체의 파괴, 배타주의와 능력주의,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단 하나의 원인이다. 때문의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경제성장의 망상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탈성장, 혹은 적정성장(Degrowth) 운동이 바로 그 방법이다. <디그로쓰>는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전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경제성장 없는 그린뉴딜, 보편 기본 소득, 보편 돌봄 소득, 보편 기본 서비스, 커먼스(Commons, 공공자산) 회복, 노동시간 단축,...
2021.10.29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추수감사주일을 11월 말로 보통 정하여 지키고 있다. 오래전부터 지켜온 것이라 그냥 지키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한반도에서는 추석이 전래의 추수감사의 의미를 담은 명절인데 굳이 11월 셋째 주 주일을 정하여 추수감사의 주일로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여 날짜를 바꾸는 교회들도 종종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른 절기들만큼 날짜가 중요한 날은 아니다. 한해의 수확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날로서 날짜보다는 지키려는 ‘의미’ 자체가 중요한 날인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결국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이 근간이고, 값없이 주어지는 ‘은총’에 대한 ‘감사’는 받는 이의 당연한 반응이다. 이를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생각해보면 역시 삶에 은총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추수감사주일에는 우리를 배불리는 오곡백과 역시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고백이 담겨있다. 안성진씨가 지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찬양이 있다. 다니엘의 세 친구라고 부르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과 활활 타는 화덕 앞에서 했다는 고백의 말이나 하박국 예언자의 노래가 떠오르는 가사다. 찬양은 ‘감사’가 상황과 환경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뜻을 믿고,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는 믿음의 태도 말이다. 당장 눈앞의 현실에 사로잡혀 좌절과 절망,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넋두리처럼 하는 것보단 더 큰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정부의 2050 탄소중립위원회 국민참여분과와 함께하는 간담회에 종교환경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한 적이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이 위원회는 2050년까지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흡수되는 온실가스를 같은 양으로 만들어 더 이상 온실가스의 농도를 늘리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서 사회시스템의 변화와 대전환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전제 아래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한 여러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하지만 산업계의 반발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내놓은 시나리오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어 수많은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기술분과의 위원장과 산업분과의 위원장이 차례로 나와 시나리오 안에 대해 설명하며 이들은 지금 당장의 상황으로는 이 시나리오 안도 사실상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고, 이쯤에서 만족하고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그러나 당장 처한 현실은 엄혹하고, 겪을 미래는 참혹한데 돈벌이가 중요할까? 당장 먹고 살 오곡백과를 심고 기를 땅이 해수에 잠길...
2021.10.28
신앙으로 일구는 생명의 경제 “탐욕의 경제를 넘어 생명의 은총으로”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누가복음 12장 15절) 오늘 우리를 지배하는 학문은 경제학이다. 경제학자 플로라 마이클스(Flora Michaels)는 그의 저서 “모노컬처(Monoculture)” 에서 어떻게 경제학이라는 한 가지 이야기가 세상 모든 것을 바꾸게 됐는지 설명한다. 경제학은 모든 공공정책의 모국어이고 생활의 언어이며, 사회를 형성하는 세계관과 사고방식이다. 단연코 21세기를 지배하는 것은 경제 이야기이다. 이는 거대한 경제학 담론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쉽게 우리 삶에서 공감하는 말이다. 경제적인 감각은 개인과 가정, 전체 사회의 행동방식을 결정 짖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 지금 이순간도 돈을 벌기위해 일하고 있고 매 순간 가장 효율적인 소비와 지출을 고민한다. 인생 노년까지 어떻게 경제적 생활을 할 것인지 재테크를 고민하고 주식과 부동산으로 관심을 집중한다.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효용(Utility)이다. 이 개념은 우리가 물건을 소비할 때 얻는 만족이나 행복을 뜻한다.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시장으로부터 얻을 때 값을 지불하는 효용을 계산해서 경제지표로 삼는다. 이 개념에 따르면 사람들은 소비가 증가할수록 만족하고 행복해진다. 따라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소득이 증가하면 삶의 만족과 행복도 증가한다. 경제학은 이 효용개념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그래프로 나타낸다. 매번 언론을 통해 접하는 GDP 성장곡선은 효용개념을 도식화 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GDP는 증가하고 경제는 발전한다.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면 사회는 더욱 발전하고 행복해진다는 결론에 이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진보를 동일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경제개발과 성장논리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사회적 생산과 재화가 늘어나면 행복해진다던 경제학의 함수와는 달리, 경제적 불평등은 커지고 기후위기는 심화되며 심지어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들은 멸종에 직면해 있다.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인 과학의 학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허황된 욕망을 부추기는 탐욕의 학문으로 비판을 받는다.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를 저술한 도넬라 메도우(Donella Meadow)는 “경제 성장은 인류가 찾아낸 가장 어리석은 목표”라고 비판했다. 기후위기의 사회구조적 토대는 시장경제체제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량폐기에 있다. 탈성장 담론은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사회학자 홍덕화는 “기후위기와 코로나는 경제성장과 성장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재 확산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탈성장의...
2021.10.14
생태적 무기력 넘어서기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20년) 독서 후기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후변화가 만든 생태적 위기로 세상은 대멸종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지난 1992년 리우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뒤로 줄곧 이야기된 사실이다. 그런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으니 내가 잘못된 건가? 예민해지고, 화가 가득차고, 의심하게 되고, 결국 무기력해진다. 마침내 일상생활의 소통과 관계에 장애가 발생한다. 증상은 분명하지만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기후 우울’(climate grief), 혹은 ‘생태 불안’(eco-anxiety)이라고들 한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이나 생태적 위기에 대해 이야기해도 변하지 않는 사회에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증상이다. 세상이 바른 방향으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완전한 치료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증상을 완화시키는 방법은 있다. 아직 감춰진 보석같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창조세계의 온전성’(integrity of creation)을 몸과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 대자연이 아니라도 좋다. 보는 눈과 듣는 귀만 있다면 책상 위의 작은 화분에서도 하나님의 기운을 입은 생명의 섭리는 여전하다. 그리고 그 오랜 야생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책 한 권. 당신은 고귀한 존재이며 당신의 시간은 다시 있지 않을 신비의 세계라고 속삭이는 책 한 권 역시 무기력에 빠진 나의 손을 잡아준다. 메리 올리버는 서른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낸 미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1935년에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메사추세츠 프로빈스타운에서 지내다 2019년에 플로리다에서 잡초가 우거진 모래언덕에 묻혔다. 그녀는 진정한 바닷가 습지 안내자였다. 그녀의 글에는 습지에서 살아가는 새와 물고기와 동물들과 나무와 풀에 대한 눅눅하고 포근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냥 저절로 아름다운 것들에 관한 그녀의 낮고 작은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상처의 위로를, 절망의 희망을 찾았다. 밤새 내 마음 불확실의 거친 땅 아무리 돌아다녀도, 밤이 아침을 만나 무릎 꿇으면, 빛은 깊어지고 바람은 누그러져 기다림의 자세가 되고, 나 또한 홍관조의 노래 기다리지(기다림 끝에 실망한 적이 있나?). (천개의 아침, 71쪽) 시인이 된다는 것은 깊은 영혼을 간직하기 위해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사가 매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맑은 언어를 빚어내는 일인 듯하다. 그래서 진즉에 시인이 되는 것은 포기했다. 그래서 늘 우왕좌왕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메리 올리버와 같은 이가 찾아낸 지구의 거룩한 이야기에 마음 한 자락 굳어버린...
2021.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