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아브라함은 ‘기후난민’이었다. UN난민기구는 가뭄, 홍수, 태풍, 폭설 등 기후적 요인으로 생존을 위협받아 본래 주거하던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기후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내려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여 이집트의 왕의 아내로 보내게 되는 참담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그 이유를 가나안 땅에 닥친 심각한 ‘기근’ 때문(창 12:10)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고기후학자들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아브라함이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해 지중해 서안에서부터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유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상당기간 강수량 감소가 지속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강수량 감소는 아브라함의 출생지였던 우르가 속해있던 수메르 문명 붕괴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이 지역의 대규모 인구이동을 발생시켰다. 이 때문에 창세기는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삭 - 창 26:1, 야곱 - 창 42:5) 역시 기근에 시달리다 이주를 하게 되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성경 속의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 역시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생존을 위협받은 전형적인 기후난민이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약속의 땅에서 기후재난을 겪었던 기후난민이었다는 성경의 증언은,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중요한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거대한 기후재난의 피폐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변치 않는 생명의 축복이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기후위기라는 절망의 현실을 넘어서는 희망의 믿음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 기후위기는 단순히 여름에 날씨가 조금 더 덥거나, 비가 더 많이 내리고,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하는 정도의 단순한 기상이변의 문제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10년 안에 기후위기는 우리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 국가 관계, 그리고 교회와 신앙의 근간을 뒤흔들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대응도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인데,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숱한 경제적 문제들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많은 기후학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할 재난은 코로나19로 인한 재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심각한 재난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해안 저지대의 도시가 침수되고, 수억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식량생산 감소로 식품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기존 경제 시스템은 붕괴될 것이며, 국가 간...
2022.01.26
향모는 선물이기에 팔 수 없다.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노승영, 에이도스, 2013 “우리가 향모를 팔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기에 남들에게도 그냥 줘야만 한다.”(50쪽) 향모는 선물이기에 팔 수 없다.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값을 매길 수는 없다. 정확한 보상과 적절한 대가가 미덕인 시대이지만 신성한 부족 제의에서 사용되는 향모에 값을 매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물생태학자인 로빈 월 키머러는 대학에서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말로 포장된 이주민들의 식물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 지식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삶 속에서 배워온, 자신의 포타와토미 네이션의 조상들이 알려주었던 자연과의 관계와 달랐다. 오대호 주변 토착민들이 믿는 세계에선 하늘에서 떨어진 한 여인이 가져온 여러 씨앗을 사향뒤쥐의 숭고한 희생으로 덕분에 거북이 등딱지에 옮겨 심었고, 이 씨앗들이 자라나 거북섬(아메리카 대륙)을 푸르게 뒤덮었다. 떨어지는 그녀를 받아주고, 그녀의 살 곳을 함께 고민해준 수 많은 동물들이 있었고, 기꺼이 자신의 등판을 내어준 거북이가 있었다. 이후로부터 이 섬의 모든 생명은 서로를 위한 선물과 배품, 심지어 노동과 희생까지도 무릅쓰며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존재로 살아왔다. 인간마저 예외가 될 순 없었다. 토착민들이 가진 삶의 태도는 결국 이 믿음 안에서 결정되어 있었다. 서구의 자랑인 이성과 합리성이 수많은 생명을 대상(관찰과 연구 혹은 판매와 거래)으로 취급할 때 ‘토박이 지식’은 생태적 순환 속에서 연결되어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이야기했다. 서구 전통은 인간을 지고무상의 존재로 여겼으나 토박이 지식은 인간을 곧잘 ‘창조의 동생’으로 일컫는다. 그러나 키머러는 결코 이성과 합리성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서구의 과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토박이 지식을 더 잘 설명할 도구로서 서구의 과학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려준다. 지독한 탐구의 정신이 향하는 방향이 달라진다면 얼마든지 우리는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키머러는 에세이 형식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토박이 지식이 가르쳐준 생태적 관계를 아름답게 그리고 과학적(합리적, 이성적으로) 설명한다. 옥수수와 콩, 호박을 함께 심을 때 일어나는 일 같이 말이다. 옥수수는 길게 대를 세워 자라나고, 그 줄기를 따라 콩 넝쿨이 자라나고, 호박이 바닥에 깔려 자라나는 과정에서 콩은 옥수수대를 따라 자란 덕에 바닥을 기어 다니는 동물들의 먹이로 전락할 위험이 줄어들었고, 호박은 바닥에 넓게 자리 잡아...
2022.01.14
해마다 4월이 되면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문화위원회 실무자들은 “녹색교회”를 찾아 전국의 교회들을 방문한다.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에 관심을 갖고 생태적 목회를 잘 실현해 가고 있는 교회를 찾아 그해 5월에 있는 한국교회 환경주일 연합예배에서 그동안의 수고에 감사하며 ‘올해의 녹색교회’로 시상하기 위해서이다. 2021년에도 서울, 경기를 비롯하여 충남, 경북, 경남, 전북, 전남지역에 있는 10여개의 교회를 방문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을 찾아갈 때마다 길은 멀어도 큰 설레임이 있다. 지역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환경선교사역을 하는 교회를 만날 수 있는 경험은 필자에게도 큰 힘이 된다. 올해 녹색교회로 선정된 교회 중에 해남에 있는 한 감리교회(해남새롬교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교회는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교우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지역아동센터, 바자회, 푸드뱅크, 청소년 카페와 쉼터, 나눔 냉장고, 재활용 물품을 나누는 초록 가게 등.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많은 일의 시작이 ‘폐지 줍기’였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힘써왔던 청소년 쉼터 사역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자, 목사님 내외를 비롯한 교우들이 힘을 합해 지역에 버려진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회를 오다가도, 심방을 가다가도, 직장을 가다가도 거리에 폐지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그것을 주워 차에 실었다고 한다. 그렇게 약 12년을 모은 폐지는 상당한 양의 자금이 되었고, 교회의 무료급식 센터 운영, 청소년 지원 등 지역 선교를 위한 기틀이 되었다. 이후 교회는 다시 지역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일을 찾아냈다. 얼마든지 다시 사용이 가능한 물품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재활용하여 필요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교회에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초록가게’였다. 현재 교회는 지역 내 15개에 이르는 헌옷 수거함을 통해 옷 등의 물품을 수거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나누고 있다. 수익금은 다시금 지역 선교를 위한 비용으로 쓰고 있으며, 남는 물량은 이웃 저소득국가에 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자원순환뿐 아니라, 지역의 재활용 정책 마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남의 한 작은 교회가 하는 사역들을 보면서 든 생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초록 발자국’이었다. 폐지를 줍고 쓸만한 물품을 분류하여 나누고, 음식물이 버려지지 않도록 나눔 냉장고를 세우는 일 등은 어쩌면 도시의 깔끔한 교회들은 꺼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 많은 이들이 소비와 소유, 화려함과...
2022.01.11
나무의 이야기를 위해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케빈 홉스, 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티보 에렘 그림, 김효정 옮김, 한즈미디어, 2020년) 사람이 있기 전에 나무가 있었다. 성서의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땅에 풀과 나무를 내게 하신 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약 30억 년 전 조류, 균류 등의 모습으로 식물이 지구에 처음 등장했고 4억 3천만 년 전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이르러 현재의 외형을 가진 나무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후로 나무는 곤충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상호의존적인 공생의 관계를 형성하며 지구 생태계의 중추 역할을 감당해왔다. 지금 지구의 나무들은 모든 생물종의 1/4에 해당하는 100,000여 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지역 식생에 적응한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열대우림지역에서는 심심찮게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의 나무가 발견되고 있으니, 성서의 아담처럼 아직 불러줄 이름이 없는 생명에 멋진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면 식물학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아무튼 나무는 창조세계의 오랜 존재로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이다. 우리는 나무를 더욱 존중해야하며 더욱 깊이 이해해야한다. 나무를 가까이 하는 일은 창조세계의 신비를 만나는 일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탄소중립이니 ESG니 호들갑을 떨지만, 결국 우리가 거룩한 나무를 본받아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내려주시는 한 줌 햇볕에 만족하며 살지 못하는 한 구원, 생존의 가능성보다 종말, 멸종의 가능성으로 다가설 뿐이다. ‘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오랜 시간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나무에 대한 책은 수도 없지 많지만 특별히 이 책은 그림 작가가 식물도감에 수록된 나무의 사진이 나무 전체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큰 아쉬움이 있었는지, 우리가 흔히 보지 못하는 나무 전체의 멋진 자태를 펜으로 정성스럽게 그려낸 것이 참 돋보인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이 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마치 그리스 아테네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의 신상들을 하나씩 만나는 느낌이었다. 아,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크고 깊고 넓고 오랜 세계가 이렇게 존재하는구나. 내가 이 세계에 잠시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거구나. 황망한 무기력이 아니라 평온한 귀속감이었다. 일단 나에게는 그랬다. 몇 년 동안...
2021.12.31
한 여인이 있었다. 단풍나무 씨앗처럼 가을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 세상의 구멍에서 떨어진 '하늘 여인'이었다. 기러기들이 날아올라 그를 받아 주었고, 그는 거북의 등딱지에 내려앉았다. 그를 위한 보금자리(땅)이 필요하다고 여긴 동물들은 방안을 의논했다. 그가 머물 땅을 만들 만한 진흙이 깊은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물속 깊은 곳의 수압과 어둠은 수달·비버·철갑상어처럼 물속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동물들에게도 버거웠다. 진흙을 가지러 떠났던 동물 중 되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모여 있던 동물 가운데 가장 꼬마였던 사향뒤쥐가 헤엄을 쳐서 깊은 물속의 진흙을 입에 물어 가져왔다. 자신의 일을 마친 사향뒤쥐는 숨을 거뒀지만, 그가 가져온 한 줌의 진흙은 거북의 등에 발라져 점점 넓어지더니 대지(아메리카대륙)로 변했다. '하늘 여인'은 하늘의 씨앗 꾸러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새로운 대지에 뿌려 정성스럽게 돌보며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게 했다. 아메리카 토착민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의 책 <향모를 땋으며>(에이도스)의 첫머리에 나오는 하늘 여인에 대한 토착민 설화다. 이 이야기는 아메리카 토착민들이 모든 생물은 상호의존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했고, 서로를 위한 헌신과 사랑이 그러한 상호의존관계를 가능하게 했다는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을 알려 준다. 세상엔 과학적 사실보다 중요한 믿음이 있다. 믿음이 세상을 바꾸고 새롭게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니 말이다. 실낙원 성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낙원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생명의 동산, 애쓰거나 땀 흘려 경작하지 않아도 먹을거리 걱정할 필요 없는 곳, 서로를 잡아먹지 않아도 나무 열매만으로 충분히 배불렀던 시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성서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동산 에덴을 그려 낸 목적은 과학적 사실을 알려 주는 데 있지 않다. 성서의 창조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를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게 창조하셨다는 고백과 더불어, 우리가 낙원을 잃어버린 이유가 바로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고백과 믿음은 우리를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는 지금까지 이미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겪은 곡절 많은 별이다. 때로는 인류의 생존 역시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류는 이곳에서 이른바 '문명'을 발전시킬 만큼 풍족한 삶을 누렸다. 그 기반은 친절하디 친절한 지구 생태계 그 자체였고, 그것을 지탱하던 힘은 생명력 넘치는 대지와 온화한 기후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2021.12.23
기후위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 한국 정부 탄소중립정책의 문제점 지난 9월 30일,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있는 새문안로 콘코디언 빌딩 앞 거리에서 탄소중립위원회 국민참여분과에 참여한 4대 종단의 종교위원들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4대종단의 종교위원들은 탄소중립위원회 회의에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이 참여하지도 않았고, 2030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폭을 2℃에 맞춘 2018년 대비 35% 온실가스감축안이 정부안으로 제출되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부처의 안일함과 직무유기를 비판하며, “우리들 때문에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는 가난한 국가와 사회적 약자, 청소년들과 미래세대가 희생당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들과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볼 책임이 있음을 의식하고 정부와 기업의 즉각적이고 합당한 변화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탄소중립위원회 종교위원 사퇴문을 발표했다. 종교위원들은 “산업의 구조를 빠르고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에 필요한 법과 정책을 국회와 정부가 만들고 시행하도록 탄소중립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추동”할 것을 요청하며, “종교계에서 앞으로도 탄소중립을 위해 더욱 체계적인 교육을 시행하고 실천과 연대에 힘을 더할 것이다.”는 문장으로 사퇴문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탄소중립위원회에 참여한 종교위원들은 사퇴문과는 별도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탄소중립위원회에 큰 기대를 가지고 참여했지만, 이미 정부는 사전에 온실가스감축안의 한계치를 정해두고 위원들을 설득하려했을 뿐이고, 종교위원들의 온실가스감축목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그럼 어디서 어떻게 더 감축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했다며, 고심 끝에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위원회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인 10월 4일에는 세계 주요 종교들을 대표하는 40명에 달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과학자들과 함께 바티칸에 모여 국제 사회가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 앞서 ‘획기적인 기후위기 대응 계획을 세우고 기후행동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공동호소문‘을 COP26 의장인 혼 알로크 샤르마에게 전달하였다. 이 호소문에서 세계 종교지도자들은 COP26이 “부유한 국가들부터 앞장서서 자신의 탄소배출을 감축해야 하고, 빈곤한 국가들의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가능한 한 빨리 넷제로를 성취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놓고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경제, 생태적이고 환경을 착취하지 않는 돌봄의 경제, 생명을 지원하는 경제, 과잉의 사악함을 비판하는 경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새로운 종류의 경제’를 채택하는” 원대한 뜻을 세워야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세계 종교지도자들의 호소문도 메아리 없는 허공을 향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지난 11월 13일에 막을 내린...
2021.12.19
우리는 지금 파국을 성장시키고 있다 이현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지구온난화는 지금 우리가 성장을 위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기에 발생하고 있는, 인류사상 전례가 없는 전 지구적인 파국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가난을 성장시키고 있다.” -프란츠 알트(Franz Alt), 단 하나뿐인 우리의 집 우리 모두는 오늘도 바쁘다. 도시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지하철과 버스, 도로 위 자동차들은 오늘도 수백만의 시민을 어디론가 실어나른다. 하루 활동의 대부분이 경제 활동과 소비에 연결된 삶, 그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 더 많이 쌓아 올렸다는 기억을 가지고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오늘 하루 우리가 쌓아 올린 것이 무엇이었나에 대한 성찰은 매우 드물다. 인간의 삶이 풍요해질수록 지구 생태계는 가난해졌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지구 생태계의 고통도 성장했다. 산과 바다의 무수한 생물종이 사라졌으며, 탄소배출을 통한 지구온난화로 피폐해진 땅과 물이 늘어간다. 오늘도 우리가 열심히 살면서 쌓아 올린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점검해야 할 때이다. 최근 유엔이 주도한 기후환경에 대한 공동분석에 따르면, 현재 세계는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이라는 지구 온난화 안전 한계치를 넘어 2도 상승의 시나리오조차 상당히 초과하는 경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주요 해수면의 상승을 이끌어 해안가와 섬 지대의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극단적 기상현상의 발생과 강도를 증가시켜킴으로 세계 곳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임것을 의미한다. 이미 30년 전(1992년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부터 세계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공동대응을 약속했지만, 오늘날의 이런 결과로 평가하건대, 우리의 지난 약속은 구속력이 없었고, 우리의 지난 실천은 지나치게 미미했다. 국가와 개인의 경제성장, 소비, 풍요, 편리를 향한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 한, 어떤 과학도 어떤 정치도 이 파국을 향한 치달음을 막을 수 없다. ‘녹색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국 파국을 성장시키게 될 것이다. [이제는 개인이 나서야 할 때] 산업혁명 이후 약 150년간 우리는 무수한 탄소발자국을 남기며 살아왔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기후위기의 원인인 탄소를 거리낌없이 배출하며 살아왔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시공간과 활동 가운데서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의 풍요와 편리가 그저 인간을 향한 하늘의 축복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그런 종류의 순진한 생각으로는 지속가능한...
2021.12.15
기후위기의 오늘 우리에게 예수의 탄생은 어떤 의미인가? <첫 번째 크리스마스> (마커스 보그, 존 도미닉 크로산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1년)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곧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의 모습도 ‘예전’ 같지 않다. 거리에 캐롤이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크리스마스 씰이 붙은 성탄 축하 카드도, 거리를 메우는 인파도, 자선냄비 종소리도, 화려한 성탄장식 조명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익숙해지고 있다. 여전히 TV에서는 ‘나 홀로 집에’나 ‘다이 하드’ 시리즈가 방영되기는 하지만, 크리스마스 연휴는 미처 보지 못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을 몰아서 보기에 더 좋은 시간이다. 뭐 그렇다고 아쉬워할 것은 없다. 어차피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별 상관이 없는 날이니까. 마커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이천년 전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과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천년 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책이다. 마커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암시와 반전이 이어지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는 듯, 한 장 한 장이 흥미진진한 역사, 문화, 종교적 자료들로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준다. 예를 들어,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아폴로 신의 아들로써 기적적으로 출생하였고, 천년이 넘는 족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상의 평화’를 약속한 황제의 ‘복음’을 선포한 존재로, ‘신의 아들’, ‘주님’, ‘구세주’로 숭배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그와 크로산은 복음서가 이러한 로마 황제의 ‘제국 신학’에 맞서 나사렛 예수의 동정녀의 탄생과 다윗의 족보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책이 아니다. 보그와 크로산은 계속해서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들은 공허한 꿈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드러나 우리가 본 것이 바로 그 길, 즉 다른 종류의 인생과 다른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개인적이며 정치적인 변화 모두, 재탄생의 종말론과 새로운 세상의 종말론 모두가 우리의 참여를 요청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여가 없이는 우리 개인을 변화사키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여가 없이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신다.” (314쪽, ‘미래의 크리스마스’) 오늘날은 기후위기의 시대. 전 세계적인, 그리고 생태적인 불평등과...
2021.12.04
기후위기의 절망을 넘어 생태 회복의 희망으로 - 절망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멈추지 않을 용기 이현아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슬픔에 직면하기 우리는 지금 수십만의 생물종과 이별하는 중이다. 2019년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UN IPBES)' 7차 총회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⅛에 해당하는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고, 이들 중 50만 종은 생존할 수 있는 서식 공간이 없다. 동식물의 서식처인 숲과 삼림이 2000년 이후 매년 650만 헥타르(㏊)씩 사라지고 있다. 인간 활동의 급격한 증가로 1970년대 이래 지표면의 75%가 현저히 변형됐고, 해양 지역의 66%가 치명적인 상태에 있으며, 85% 이상의 습지가 사라졌다. 인간의 지나친 활동은 동식물의 멸종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에 기반을 둔 인간 문명은 지구 온도를 높여 기후 위기를 초래했고, 삶의 기반도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폭염, 한파, 태풍, 홍수, 산불 등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기상 현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피해와 희생이 매년 국내외 뉴스를 장식한다. 아프리카·아시아 많은 지역의 일상적 물 부족과 사막화 확산은 지역 농업 시스템을 교란했으며, 식량 부족으로 앙상하게 마른 아이들의 덩그런 눈망울은 잘사는 나라 사람들의 두꺼운 양심을 두드린다. 해마다 발생하는 2500만 명의 기후 난민을 어떻게 분산·수용할 것인지가 국제정치·사회의 주요한 쟁점이 됐고,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외교부장관은 물에 잠긴 국토 위에서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연설을 한다. 인식하지 못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지금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날보다 더 안정적인 시기일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8월 9일 발표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이대로 가면 불과 10여 년 후 세계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올라 생태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래전 예견된 재앙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13일 막을 내린 COP26 회의에서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기후 위기 대응에 힘써야 할 이 짧은 유예기간을 다시 한번 미루고,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우리가 파괴하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비통함, 그 안에서 스러져 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통함, 우리 스스로 만들어...
2021.11.29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는 12월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고백한다. 복음서는 그렇게 찾아온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고, 어떻게 부활했는지를 그린다. 그리고 그 사건을 약 2천 년 전 어느 중동 마을의 일이 아니라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진 이들에게만 구원은 현실이 된다. 그 과정에서 예수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일도 벌어지고, 예수께서 아버지라 부르신 분을 우리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를 하게 되는 일도 일어난다. 그렇기에 신앙이나 구원은 신비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신학자 보프는 생태학을 관계에 대한 학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어쩐지 ‘생태’라는 말에는 ‘공동체’라는 말이 어울리기도 한다. 우리가 따로 떨어져 혼자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라는 말은 위로가 된다. 사람들끼리도 ‘더불어’, ‘함께’가 힘든 세상이니 말이다. 생태학의 세계에선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끼지만 결국 물과 공기, 바람과 햇볕, 흙과 풀, 나무와 새, 벌레와 미생물, 동물들과 떨어져 살아갈 수 없다. 본적도 없고, 목소리도 들은 적 없는 이들과 우리는 이미 하나의 공동체로서 살아가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공동체로 살고 있다는 말은 인류가 초래한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우리(생태공동체)의 긴밀한 관계망을 깨뜨릴 때 그것이 공동체에 속한 모두의 위기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적자생존”, 강한 자가 살아남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통해 ‘적자생존’은 틀렸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가 영향을 깊이 주고받으며 진화해왔고, 그 과정은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먹고 먹히는 일이 있으나 가학과 피학의 관계는 아니다. 우리가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고백할 때 그 관계가 ‘적자생존’이 아니듯, 먹고 먹히는 관계도 결국 힘의 구조는 아니다. 성찬이 우리에게 보여주듯 우리는 서로의 먹이가 되고,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어줄 때 새로운 존재,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관계의 신비를 잃어버린 순간, 즉 힘의 관계로 모든 것을 설명할 때 위기가 시작되었다. 인류는 강자로 군림하면서 공동체의 다른 이들을 착취했다. 그리고 순환을 통해 유지되던 세계를 망가뜨렸다. 바울 사도는 자기를...
2021.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