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성서는 전쟁과 폭압의 시대를 마치고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이들에게 다음을 요구한다.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사 40:3-4) 새로운 길을 내는 일은 높은 곳을 깎고 파인 곳을 메우며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는 일, 즉 바닥을 고르는 일에서 시작된다. 평화의 길 역시 마찬가지다. 불의와 불평등의 현실 위에 고스란히 쌓을 수 있는 평화란 없다. 기후위기 시대, 평화공존을 위한 고민에 앞서 이 위기를 둘러싼 불평등의 문제, 정의의 문제가 먼저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기후불평등과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위기는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차별적 위기이다. 전세계가 기후변화와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 위기를 초래한 원인과 결과는 매우 불평등하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지구 위 온실가스의 약 70%가 세계 인구의 20% 이하인 선진산업국들에 의해 배출된 것이지만, 배출된 온실가스에 의한 피해는 온실가스의 약 3%만을 배출하는 저위도 개발도상국이 겪고 있다. 고도의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이 내뿜었던 탄소가 가난한 나라에서 사막화와 물부족, 가뭄과 홍수, 태풍 등을 유발하며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은 국가간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구 생태계의 다양한 관계들 간의 갈등과 분쟁의 요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의 과도한 에너지 사용이 가난한 이들의 지하 단칸방을 위협하고, 경제적 성장과 풍요를 이루었다는 기성세대의 자부심은 생존가능한 환경을 걱정하는 미래세대의 불안과 충돌한다. 국경을 넘어온 각종 식재료로 차려진 도시인의 화려한 식탁은 식생의 변화, 수확량 감소로 인한 농어민의 고충을 외면하며, 화석연료로 부를 축적해왔던 기업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체제의 전환 요구 앞에서 노동자의 새로운 기술 습득과 일자리 이전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후위기를 초래한 책임의 크기와 상관없이, 재난 상황에 대처할 힘과 자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들, 각종 사회, 정치, 경제적 불평등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이 겪을 위협이 훨씬 크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위기의 본질이다. 기후불평등을 고려하여 유엔기후변화협약이 기후위기 극복 방안의 원칙으로 삼은 것은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누적 및 1인당 배출량, 경제발전 수준 등 서로 다른 국가...
2022.09.13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를 넘어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사이토고헤이, 김영현, 다다서재, 2021 얼마 전 유럽에서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라는 것을 만들었다. 핵발전과 가스발전을 포함시키느냐의 문제가 시끄럽기도 했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분류체계가 왜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막대한 자금을 투여해 이른바 ‘녹색산업’을 육성하여 기존 탄소배출이 심각한 산업들을 대체하겠다는 구상이고, 이를 통해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그린딜’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기준점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미국에선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상원을 통과했다. 기업의 법인세를 올려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 부문 지원, 전기차 전환을 위한 지원을 한다는 구상이다. 한국 역시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형 뉴딜을 이야기하면서 디지털과 녹색산업을 이야기 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과제 앞에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내놓은 해법은 결국 ‘경제성장’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투자를 통해 기업들의 전환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이 모든 정책 방향은 결국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제성장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적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끝없는 성장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엔트로피의 법칙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쓰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구가 한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랜 기간동안 인류가 자연과 맺어오던 관계, 즉 자연의 순환 그대로를 지켜 살았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지구를 한계까지 착취했고, 그 결과는 기후위기라는 방식으로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성장’이라는 목표,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이 위기를 불러오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이라는 망령과 결별하지 못했고, ‘자본주의’라는 악령에게 사로잡혀 녹색산업의 성장을 통해 인플레이션도 극복하고, 기후위기도 넘어서보겠다고 앞다투어 경쟁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저자 사이토 고헤이는 기후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와 자본주의가 빚어낸 제국적 생활방식의 문제로 인식하고, 수탈과 부정의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첫머리를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인간 뿐 아니라 자연을 약탈하면서 ‘성장’해왔고, 이미 한계 이상으로 수탈하여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를 해결한답시고 내놓은 해법이란 것이 결국 토머스 프리드먼과 제러미 리프킨 등이 주장하는 ‘그린 뉴딜’이다. 저자는 그런 생각들을 일컬어 ‘기후 케인스주의’라고 명명한다. 그들은 기후변화 극복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를 대안처럼 말한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 그들의 이론은 ‘지구 한계’라는 것을...
2022.09.08
인간 중심에서 벗어난 정의로운 전환   아마도 하늘 언저리까지 올라가 버린 집값 덕분일 테지요. 요즘 도시나 시골 가릴 것 없이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아파트 건설 현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포크레인이 땅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큰 트럭이 싣고 온 건설 자재를 타워크레인이 옮기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뚝딱 높은 아파트가 들어섭니다. 불과 몇 해 만에 산과 들, 논과 밭이었던 땅이 커다란 아파트 단지로 바뀐 놀라운 광경 앞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제 새집으로 이사를 와서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지만, 원래 이곳에서 살고 있었던 수많은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와 물고기와 동물들은 다들 어디로 이사 갔을까? 과연 누가 이곳에 살던 친구들에게 갑자기 “미안한데 너 좀 여기서 떠나줄 수 있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는 봤을까? 황당하다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너 좀 떠나줄 수 있냐고 물어보도록 법으로 규정된 생물이 있습니다. 맹꽁입니다. 양서류인 맹꽁이는 국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입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국가가 서식실태를 조사하고 서식지를 보호하도록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맹꽁이는 다행히도 멸종위기 야생생물답지 않게 우리나라 습지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종입니다. 지금 기후 변화로 가장 급격하게 개체가 감소하고 있는 종이 양서류인 것을 생각한다면 맹꽁이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지정은 생명 다양성의 위기에 대비한 현명한 판단입니다. 멸종위기종인 맹꽁이가 살지 못하는 곳이라면 다른 온도 변화와 강수량에 민감한 생물들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맹꽁이는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한반도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지표종인 셈이지요.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요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를 맹꽁이라고 이야기한답니다. 아파트 건설이 예정된 곳에서 맹꽁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다시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고, 맹꽁이 서식에 관한 실태조사를 해야 하고, 서식지 보존 혹은 이전 대책을 세우느라 설계 변경 비용과 공사 기간이 늘어나 큰 손해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못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은 아파트 건설 예정지에서 맹꽁이의 발견을 막기 위해서 미리 맹꽁이가 살고 있을 법한 습지를 흙으로 메워버리고, 심지어는 몰래 독한 화학 약품을 맹꽁이가 살고 있을 만한 곳에 뿌리기까지 한답니다. 가뜩이나 기후 변화로 고생하는 맹꽁이들에게 참 너무 심한 것...
2022.09.05
시민의 힘으로 이루는 에너지 민주주의 ‘쇠나우 마을 발전소’는 ‘시민이 이끈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소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남독일 슈바르츠발트라는 곳의 쇠나우라는 작은 시, 인구가 약 250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고장에 있는 쇠나우전력회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쇠나우전력회사는 핵발전 반대 운동을 통해 만들어졌고,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며, 협동조합 형태의 회사이다. 게다가 이 회사는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발전사라는 것 이외에도 탈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조합원을 모으고 전력을 생산하는 회사라는 특이한 점을 갖고 있다. 현재는 쇠나우라는 도시의 인구보다 많은 16만 250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100명의 사원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했다. 저자인 다구치 리호는 독일에서 살며 일본에 독일의 이야기를 기고하는 전직 신문기자 출신 언론인이자 독일어 통역가이다. 그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2012년에 일본에서 이 책을 발간했던 것으로 보아, 책에서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독일 사례를 통해 일본 시민사회의 변화를 바랐던 것이 아닌가 싶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이후 독일에서도 요오드131, 세슘134, 세슘137과 같은 방사성 물질들이 검출되었다고 하는데도 제대로 된 안전지침을 설명하지 못하는 정부, 독일의 핵발전소는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를 보면서 독일 시민들은 탈핵운동을 시작했다. 저자는 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일본 시민들에게 방사성 물질의 위험을 알리는 동시에 시민들의 힘으로 만드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였다. 체르노빌 핵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의 위험에 대한 공포로부터 시작된 독일 시민들의 동요는 이후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단초가 되었다. 전력 소비를 줄이는 운동에서부터 이런 운동을 촉진할 수 있는 보상을 만들어내는 일, 더불어 연극과 같은 문화활동을 통해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까지 다양한 방식의 활동들이 이뤄졌다. ‘핵발전을 반대하는 부모들’, 이후 ‘핵 없는 미래를 위한 부모들’로 이름이 바뀌어 활동을 시작한 작은 탈핵 단체는 지속적인 모임을 통해 공부도 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운동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이 모임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전력회사를 세우는 일까지 시작하게 된다. 이 단체는 남독일에 전력을 공급하며 주변 핵발전소에 투자하는 거대 전력회사인 라인펠덴전력회사와 맞서고, 주민투표를 거쳐 시민들의 헌신과 참여에 힘입어 10년 만에 전력공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쇠나우전력회사가 시작된 것이다. 에너지 절약을 권하는 특이한 재생에너지 공급 전력회사가 세상에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회사의 이름이 알려지자 먼 곳에서도 쇠나우전력회사의 전기를 쓰고 싶다는...
2022.08.31
<도넛 경제학>, 케이트 레이워스 지음, 홍기빈 옮김, 학고재, 2020 IMF라고 불리는 외환위기 상황이 터지고 난 후 수많은 이들이 돈 문제로 죽고 사는 것을 보고 자랐다. 1997년 시작된 외환위기가 기업들을 줄도산 시키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사는 것이 힘들어진 많은 이들이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면서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돈’ 이라는게 참 어렵고도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경제학을 배우지 않아서 경제학에선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삶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경제는 결국 수많은 이들의 삶과 욕망, 행동의 동기와 결부되어 세계가 작동하게 하는 장치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제체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이 기계의 작동에 있어 중요한 에너지원이 아닌가 싶다. 돈으로 경제 시스템을 굴리고, 그것이 사회의 주요기능을 담당하기에 사실상 그 사회는 인간의 다른 다양한 가치들을 담아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물론 여전히 자본주의 바깥이 존재하고 인간은 선의와 협력, 희생을 통해 다양한 일들을 해내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자본주의가 강렬해질수록 자본주의의 외부는 점점 협소해지다 못해 사라지는 경우들이 생겨난다. 그런 문제를 지적한 이들은 이미 있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처럼 다른 방식의 경제체제를 구축해 자본주의가 인간 본연의 장점들을 소외시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도전들이 내부의 모순과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유지되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결국 국제관계나 질서에서도 자본주의는 큰 역할을 하게 된 모양이다. 이러한 경제시스템은 단순히 사람만을 소외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 즉 자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소외시켰다. GDP 중심의 ‘성장’이라는 것이 세계 거의 모든 국가의 지상과제가 되고, 그 외의 일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런 세계가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경제학 이론을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특히나 저자가 주목한 것은 인간성의 박탈을 경험하지 않으면서도 지구 한계를 직면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즉 지속가능한 경제상태를 유지하는 세상을 이루는 방식이었다. 이를 도넛의 형태에 비유하면서 도넛의 안쪽은 인간성 박탈의 상황, 도넛...
2022.08.09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으로 물부족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올해 심각한 가뭄을 겪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때입니다. 빗물은 소중한 자원입니다. 하지만 빗물의 대부분이 하수구와 하천으로 흘러가 버려집니다. 2019년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의 하루 평균 수돗물 사용량은 189리터에 달합니다. 수도꼭지를 열면 수돗물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수돗물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빗물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용할 수 있기에, 빗물을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통하여 ‘물’을 더욱 소중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빗물 저금통’을 들어보셨나요? 빗물을 모아 텃밭에 물을 주고, 청소용수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1장 1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신다”고 말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우리 교회와 교우들의 가정에 빗물 저장소를 만들어 빗물을 활용합시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값없이 내려주시는 은총에 감사하며 빗물을 가득히 받아 나눕시다! 한 줄 기도 : 삶과 생활 속에서 창조세계를 향한 애정어린 손길을 부단히 행하게 하소서. <이 글은 아이굿뉴스에 6월 24일 기고한 글입니다.>
2022.07.22
  [책 소개] 『원불교반핵운동사 1 _ 끝나지 않은 기록』 아마도 2017년이었던 것 같다. 처음 핵발전소를 실물로 본 날 말이다. 엄청나게 큰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서 있는데 기계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쇠 철문은 굳게 닫혀있고, 그 앞을 누군가 지키고 서 있었다. 군인들이었던 것 같다. 핵발전소를 코앞에 두고 무대를 설치하고, 자리를 깔아둔 채 집회를 하는 생경한 경험도 했던 것 같다. 너무 이른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한 탓에 수면 부족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잊은 것인지 아무튼 그날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다만 원불교가 이 순례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절박하게 지금도 이 싸움을 이어가야 할 이유를 이야기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원불교는 한국에서 유래한 종교이고, 특히나 영광은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고향이자 그가 구도하여 깨우침을 얻은 곳이기도 한, 원불교 사람들에게 가르침의 고향 같은 곳이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성지’라고 부르듯, 영광은 원불교 사람들의 ‘성지’인 것이다. 그래서 원불교인들에게 영광을 중심으로 한 탈핵 운동은 ‘성지수호’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원불교대학생연합회가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하고 원불교가 탈핵 운동을 시작한 것은 이런 맥락을 갖는다. 그리고 항상 모든 종교의 운동이 대부분 그렇듯, 될법하다고 하여 시작하고, 안될 것 같아 그만두는 일은 사실 가능하지 않다. 종교인들의 운동 동력은 보통 현실 너머에 있으니 말이다. “금수 초목도 연고 없이 꺾고 살생하지 말라”는 정전에 담긴 소태산 대종사의 글귀를 빌어 생태계와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핵을 반대하는 운동을 엄숙한 종교적 사명으로 선언한 김현 교무의 글은 종교가 가진 운동의 동력을 보여주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종교적 신념을 통해 일어난 운동이 영광핵발전소 1·2호기 건설 이후 촉발되고 있었던 지역의 반핵운동과 결합해 영광지역의 탈핵 운동이 더욱 탄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을 시작한 이들은 그저 지역의 문제로 이것을 인식하지 않았고, 다양한 이들을 초청해 배움의 시간을 가지며 종교적 가르침에 빗대어 이 문제를 재인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후 운동은 영광 3·4호기 핵연료 장전 저지 운동으로 이어지고, 5·6호기 건설 저지 운동으로 연결되게 된다. 그리고 핵발전소에 이어지는 핵폐기장 반대 운동까지 더하여 긴 세월의 싸움을 이...
2022.07.07
'원전마을'의 이야기를 듣다. 임준형 사무국장(기독교환경운동연대) 2017년 1월, 겨울이었다. 대한민국이 한창 대통령 탄핵으로 어수선하던 시절, 탈핵활동가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주로 향했다. 1박 2일 동안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하고, 밤이 늦도록 이야기도 나누고 다음 날 아침을 맞았다. 2일 차 마무리 때 경주의 활동가들이 무대에 섰다. 전날 강연을 듣는 와중 자신의 몸에서, 그리고 손자·손녀의 몸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는데 괜찮은 것이냐 물었던 한 여성, 황분희 씨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강사가 이미 피폭된 것이라고 말하자 울음을 터뜨렸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 무대에 선 그녀는 “오늘 제가 촛불집회에 발언자로 초청되어 서울에 올라가게 되었다”고, “제 발언을 한번 미리 들어주시겠느냐”고 말했다. 그녀는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로, 떨림 가득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와 그 목소리를 지난 5년간 그렇게 자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이번 책을 읽는데도 그녀의 목소리는 저자 김우창 씨의 인터뷰 인용문을 통해 생생히 재생되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원전 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사라진 옛 지명 ‘월성’으로 더 유명한 곳에 사회학자인 저자 김우창 씨가 8개월을 머물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그의 글은 친절하고 간명하며, 책을 집어 들면 단숨에 읽힐 만큼 흡입력이 있다. <원전 마을>은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는 말을 믿고 지금껏 걱정 없이 살아오던 이들이 이제는 매주 상여를 지고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나고 위조 부품 비리 사건이 연이어 밝혀지면서 한국에서 핵발전소 반대의 목소리가 가장 높아지던 시기, 핵발전소 최인근 지역인 월성에서도 주민들의 불안은 커져갔다. 핵발전소의 위험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그것도 심지어 중수로 특유의 감속재인 중수 때문에 다른 핵발전소에 비해 삼중수소라는 방사성 물질에 일상적으로 더 많이 노출되는 동네였다. 주민의 증언을 들으면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핵발전소는 ‘죽음과 동의어’였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상여를 끌었다. 주민들의 불안은 기우가 아니었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차치하고서라도 핵사고 이후 양남면 일대, 특히나 핵발전소가 훤히 보이는 나아리와 나산리는 집을 팔고 나가고 싶어도 거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되었다. 누구도 위험천만한 핵발전소 지역에 들어와 살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 72가구가 모여 시작된 주민대책위는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현재는 10여 가구만이 남아서 상여시위를...
2022.07.07
<찬미받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5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수사의 <피조물의 노래>의 후렴구에 있는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제목으로 삼은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교황의 가르침은 여러 가지 차원으로 나뉘어 중요도에 따라 급이 정해지는데 교황 교서(Litterae Apostolicae), 교황 권고(Adhortatio Apostolica), 회칙(Encyclica)으로 주로 나뉘며, 그 중 가장 중요하고 권위있는 형태의 가르침이 회칙이라고 한다. 교회가 신자들의 영적 유익을 위한 활동과 세상과 관계 맺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일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을 통틀어 ‘사목’이라고 하는데 이 사목의 차원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서가 바로 회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회칙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그저 환경을 지키라는 정도의 가르침이었다면 아마도 권고나 교서 정도로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생태문제의 현실이 <찬미받으소서>라는 회칙을 발간해서 세계 가톨릭교회가 함께 지켜야 할 만큼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일뿐더러 이 문제가 신앙과 교리의 중요한 지점에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가톨릭 교회 안에 특히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있었다는 말이다. 그간 생태문제는 사회운동에서뿐 아니라 신앙에서도 어쩌면 곁가지의 운동 정도로 치부되고 있었던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간 수많은 생태 운동가들의 노력과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그리고 변해가는 기후와 그로 인해 가속화되는 불평등과 부정의의 문제들이 발생을 경험하면서 세상은 서서히 변해갔다. 우리는 그동안 기후위기가 어떻게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경험하고, 그것이 얼마나 큰 폭력을 불러오는지를 보았다. 그렇기에 교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성서적이고 신앙적인 가르침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수많은 학자들을 불러 모으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이 가진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점들, 그리고 과학적인 사실들을 통해 가톨릭교회 전체가 따라야 할 생태적인 지침들을 만들어내게 된 것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직면한 교회의 응답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지구와 지구 생태계에 ‘공동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공동의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책 제1장의 관심은 바로 생태계 위기를 초래한 원인인 오염과 그 결과로 발생한 피해들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생태계에 국한되어 나타나지 않고 심지어 사회와 세계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2장은 피조물에 관한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성서와 전통과 신학이 생태 문제에...
2022.07.07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새잎, 2019 한 부부의 이야기가 있다. 유명 HBO 드라마 체르노빌에도 등장했던 이야기, 체르노빌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방사선 피폭으로 순국한 바실리 이그나텐코와 아내 류드밀라 이그나텐코의 이야기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사고가 일어난 순간부터 사고의 해결 과정을 주로 담당했고, 핵사고의 진실을 드러냈던 한 핵물리학자 발레리 알렉세예비치 레가소프의 목소리를 주로 담고 있다. 그리고 소련 정부가 이 사고를 어떻게 덮고 무마하려고 했는지, 수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피폭을 강요했는지 폭로한다. 그리고 바실리와 류드밀라의 이야기는 중간중간 이 사건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드라마의 장치로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그러나 책은 그것보다는 좀 더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데 애를 썼다. 저자는 언제나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겪은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여 책을 쓴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책에는 바실리와 류드밀라 외에도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사건을 직접 겪었던 이들, 고향에서 쫓겨나고, 피폭당해 죽어간 이들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체르노빌은 핵사고가 발생한지 3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누구하나 들어가 살 수 없는 땅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던 침구며 대부분의 물건은 그곳에 남겨져 있다. 급히 떠나는 마당에, 그리고 얼마나 오염되었을지 모를 물건들을 가져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옷가지 몇 벌을 챙겨 떠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평생 다시 돌아가지 못하리란 생각을 했던 이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그곳에 남겨두고 오지 못했던 기억들이다. 물론 떠난 이후에도 이들은 여전히 참혹한 현실에 놓여야 했다. 체르노빌에서 생환했으나 자녀가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심각한 질병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체르노빌 출신이라는 말, ‘체르노빌레츠’라는 말은 심각한 차별을 낳는 말이 되기도 했다. 사고를 수습하던 이들이 있었다. 바실리와 같은 소방관들, 그리고 핵발전소의 꺼지지 않는 불을 끄기 위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발전소 가까운 곳으로 가야만했던 군인들, 그리고 핵연료가 녹아내려 땅속으로 파고들어 혹시나 지하수를 만나 주변으로 심각한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녹아내리는 핵연료 아래를 파고들어가 조치를 해야 했던 광부들 말이다. 지금 두꺼운 강철 덮개를 덮어 사람의 접근을 막아놓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전조치를 하기 위해...
2022.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