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지속가능 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라는 것이 있다. 유엔이 국제 사회에 제안한 2016년부터 2030년까지의 최대의 공동 목표다. 17가지 목표에는 인권과 정의, 평화와 생태 문제 같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앞선 2000년부터 2015년까지의 목표였던 ‘밀레니엄 개발목표’(MDGs) 다음으로 새롭게 제시된 개발 목표에 “지속가능”이라는 말이 포함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 이 시기가 지구의 한계나 지속불가능성을 직면해야 하는 시기임을 여실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근래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 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들 중에서도 ESG를 표방하는 곳들이 나타나고 있다. 본디 이 말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환경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 그리고 기업의 지배구조 측면이 얼마나 책임성 있고 건강한지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쉽게 말해 한 기업이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책임을 다하고,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자신의 지배구조를 얼마나 투명하게 유지하는가를 묻는 것이고, 이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환경과 사회와 기업을 만드는 일에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런 항목들이 지금껏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던 재무제표가 보여 주지 않는 측면을 살펴보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근래 투자의 측면에서도 ESG는 중요한 가치로 급부상하여 독일 도이체방크나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 블랙록(BlackRock) 같은 곳이 ESG 경영 지표를 바탕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관련 투자 금액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도 점점 ‘ESG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고, 기업들 중에서 ESG 경영을 표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상 재무제표를 우선에 두고 움직이던 기업들이 변화하는 것은 유엔이 발전 목표에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을 반영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이 생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고 심지어 스스로 오염과 환경파괴의 주체가 되었을 때, 사실상 지구 생태계의 붕괴를 비롯해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위기는 일부 사람들만의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위기로 이어지고 결국 기업의 재무제표에도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른바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이 상실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기업으로 하여금 스스로 책임적 경영을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사회적...
2022.02.28
생존이 걸린 문제 이미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행한 순간부터 인류는 알고 있었다. 과거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리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그 온화한 기후로 인해 고대 수메르를 비롯한 수많은 제국들의 발상지였으나 지금은 심각한 토양의 황폐화(숲을 비롯한 다양한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과거의 위상을 찾아보기 힘든 땅이 되었다. 인류가 문명을 꽃피운 곳마다 사실 토양의 황폐화가 수없이 발생했으나 산업화 이전까지는 여전히 지구 생태계가 전체가 위험에 처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인류가 생산하는 위험은 종류와 파괴력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다들 이미 체험하고 있는 문제를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위기의 양상이 전지구적이고, 심각하고, 막대한 피해를 낳고 있으며, 수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회복이 힘든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그런 전제로 이 현상을 바라본다면 이 문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2018년 겪었던 폭염이나 2020년 장마, 그리고 멀게는 몽골의 사막화와 시리아의 내전까지도 현상은 달랐으나 원인은 모두 기후위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당장 이 문제는 생존에 걸려있는 문제로 인식될 것이다. 위기는 항상 우리의 곁에 있었다 이 위기는 하루 이틀에 시작되거나 알려진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 문제는 꾸준히 우리의 입길에 오르내렸으나 수많은 이해관계에 맞물려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문제였다. 성장과 발전이 지상과제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성장과 발전은 산업과 경제에 국한되었다. 수많은 기업과 국가는 추후 일어날 기후위기의 심각함보다는 눈앞에 있는 경제적 이익에만 몰두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 그간 수많은 과학자들이 무시하지 못할 과학적 데이터들을 통해 엄청난 피해를 낳고, 회복 불가능한 위험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으나 그 결과는 구속력 없는 선언으로 이어졌을 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게다가 심지어 선언마저도 국가들의 이익에 따라 기준과 잣대가 옮겨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파리기후협약의 경우 탄소 감축의 기준이 될 산업화 이후 온도 상승치에 대해 1.5℃와 2℃가 팽팽히 맞섰고, 2℃로 유지하고 1.5℃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괴상망측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몇 년간 연구를 통해 1.5℃ 특별보고서가 발표되었고, 2℃로도 가능하리라는 기대는 무참히 깨어졌다. 1.5℃도 인류의 안전을 지켜줄 마지노선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2022.02.23
<자연이 보내는 손익 계산서>, 토니 주니퍼, 강미경, 갈라파고스, 2013 “지구 말고는 달리 갈 곳이 없다. 우리의 금융 체계가 아무리 영리하다고 해도, 우리의 경제성장 속도가 아무리 인상적이라고 해도, 우리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정교하다고 해도 지구가 더는 우리의 요구를 충족해주지도, 우리의 경제를 지탱해주지도 못할 만큼 훼손된다면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다.”(357-8쪽) 혹자는 경제성장을 위해서 일정 정도의 생태계 파괴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지금은 다들 그것이 얼마나 틀린 말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에 눈물 흘리고, 사막화가 확대되는 것에 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어 홀로 생존할 수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아주 작은 생명 하나까지도 우리의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역할을 만약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물론 돈으로 따져 물을 수 없는 엄청난 서비스들이 존재하고 인간은 그중에 아직 태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개중 밝혀진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우리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창출하는 수익을 훨씬 상회하는 가치를 지닌 생태계 서비스가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생태계 서비스’라는 표현조차 송구스러울 만큼 인간은 지구 생태계로부터 어마어마한 것을 받아 생존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엄청난 생태계 서비스를 인류가 경제적 가치를 부과할 때 사용하는 돈이라는 단위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인류의 먹거리 중 토양에서 생산되는 것이 90% 이상이고, 인류는 20세기 중반이후 여러 가지 모양으로 토양의 황폐화를 불러왔으며, 특히나 농업으로 인해 훼손된 토양은 전체 1/3에 해당된다. 그리고 잘못된 토양관리로 매년 추가로 배출되는 탄소배출량이 55억톤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토양이 탄소를 저장하는 성질이라는 사실과 그 자체로 미생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생태계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지구상의 70억 인구를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표토층의 유실과 그로인한 황폐화는 문명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토양 뿐 아니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광합성을 통해 생산하는 식물, 즉 태양에너지를 생명의 에너지로 바꾸는 존재로서의 식물은 지구상의 생태계에서 균형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존재였다. 인류는 해당 존재 자체의 생명력을 이해하기 보단 질소비료나 인을 통해 강제적으로 생산성을...
2022.02.14
기후위기 시대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아브라함은 ‘기후난민’이었다. UN난민기구는 가뭄, 홍수, 태풍, 폭설 등 기후적 요인으로 생존을 위협받아 본래 주거하던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기후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내려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여 이집트의 왕의 아내로 보내게 되는 참담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그 이유를 가나안 땅에 닥친 심각한 ‘기근’ 때문(창 12:10)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고기후학자들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아브라함이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해 지중해 서안에서부터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유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상당기간 강수량 감소가 지속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강수량 감소는 아브라함의 출생지였던 우르가 속해있던 수메르 문명 붕괴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이 지역의 대규모 인구이동을 발생시켰다. 이 때문에 창세기는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삭 - 창 26:1, 야곱 - 창 42:5) 역시 기근에 시달리다 이주를 하게 되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성경 속의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 역시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생존을 위협받은 전형적인 기후난민이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약속의 땅에서 기후재난을 겪었던 기후난민이었다는 성경의 증언은,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중요한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거대한 기후재난의 피폐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변치 않는 생명의 축복이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기후위기라는 절망의 현실을 넘어서는 희망의 믿음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 기후위기는 단순히 여름에 날씨가 조금 더 덥거나, 비가 더 많이 내리고,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하는 정도의 단순한 기상이변의 문제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10년 안에 기후위기는 우리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 국가 관계, 그리고 교회와 신앙의 근간을 뒤흔들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대응도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인데,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숱한 경제적 문제들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많은 기후학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할 재난은 코로나19로 인한 재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심각한 재난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해안 저지대의 도시가 침수되고, 수억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식량생산 감소로 식품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기존 경제 시스템은 붕괴될 것이며, 국가 간...
2022.01.26
향모는 선물이기에 팔 수 없다.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노승영, 에이도스, 2013 “우리가 향모를 팔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기에 남들에게도 그냥 줘야만 한다.”(50쪽) 향모는 선물이기에 팔 수 없다.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값을 매길 수는 없다. 정확한 보상과 적절한 대가가 미덕인 시대이지만 신성한 부족 제의에서 사용되는 향모에 값을 매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물생태학자인 로빈 월 키머러는 대학에서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말로 포장된 이주민들의 식물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 지식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삶 속에서 배워온, 자신의 포타와토미 네이션의 조상들이 알려주었던 자연과의 관계와 달랐다. 오대호 주변 토착민들이 믿는 세계에선 하늘에서 떨어진 한 여인이 가져온 여러 씨앗을 사향뒤쥐의 숭고한 희생으로 덕분에 거북이 등딱지에 옮겨 심었고, 이 씨앗들이 자라나 거북섬(아메리카 대륙)을 푸르게 뒤덮었다. 떨어지는 그녀를 받아주고, 그녀의 살 곳을 함께 고민해준 수 많은 동물들이 있었고, 기꺼이 자신의 등판을 내어준 거북이가 있었다. 이후로부터 이 섬의 모든 생명은 서로를 위한 선물과 배품, 심지어 노동과 희생까지도 무릅쓰며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존재로 살아왔다. 인간마저 예외가 될 순 없었다. 토착민들이 가진 삶의 태도는 결국 이 믿음 안에서 결정되어 있었다. 서구의 자랑인 이성과 합리성이 수많은 생명을 대상(관찰과 연구 혹은 판매와 거래)으로 취급할 때 ‘토박이 지식’은 생태적 순환 속에서 연결되어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이야기했다. 서구 전통은 인간을 지고무상의 존재로 여겼으나 토박이 지식은 인간을 곧잘 ‘창조의 동생’으로 일컫는다. 그러나 키머러는 결코 이성과 합리성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서구의 과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토박이 지식을 더 잘 설명할 도구로서 서구의 과학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려준다. 지독한 탐구의 정신이 향하는 방향이 달라진다면 얼마든지 우리는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키머러는 에세이 형식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토박이 지식이 가르쳐준 생태적 관계를 아름답게 그리고 과학적(합리적, 이성적으로) 설명한다. 옥수수와 콩, 호박을 함께 심을 때 일어나는 일 같이 말이다. 옥수수는 길게 대를 세워 자라나고, 그 줄기를 따라 콩 넝쿨이 자라나고, 호박이 바닥에 깔려 자라나는 과정에서 콩은 옥수수대를 따라 자란 덕에 바닥을 기어 다니는 동물들의 먹이로 전락할 위험이 줄어들었고, 호박은 바닥에 넓게 자리 잡아...
2022.01.14
해마다 4월이 되면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문화위원회 실무자들은 “녹색교회”를 찾아 전국의 교회들을 방문한다.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에 관심을 갖고 생태적 목회를 잘 실현해 가고 있는 교회를 찾아 그해 5월에 있는 한국교회 환경주일 연합예배에서 그동안의 수고에 감사하며 ‘올해의 녹색교회’로 시상하기 위해서이다. 2021년에도 서울, 경기를 비롯하여 충남, 경북, 경남, 전북, 전남지역에 있는 10여개의 교회를 방문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을 찾아갈 때마다 길은 멀어도 큰 설레임이 있다. 지역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환경선교사역을 하는 교회를 만날 수 있는 경험은 필자에게도 큰 힘이 된다. 올해 녹색교회로 선정된 교회 중에 해남에 있는 한 감리교회(해남새롬교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교회는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교우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지역아동센터, 바자회, 푸드뱅크, 청소년 카페와 쉼터, 나눔 냉장고, 재활용 물품을 나누는 초록 가게 등.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많은 일의 시작이 ‘폐지 줍기’였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힘써왔던 청소년 쉼터 사역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자, 목사님 내외를 비롯한 교우들이 힘을 합해 지역에 버려진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회를 오다가도, 심방을 가다가도, 직장을 가다가도 거리에 폐지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그것을 주워 차에 실었다고 한다. 그렇게 약 12년을 모은 폐지는 상당한 양의 자금이 되었고, 교회의 무료급식 센터 운영, 청소년 지원 등 지역 선교를 위한 기틀이 되었다. 이후 교회는 다시 지역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일을 찾아냈다. 얼마든지 다시 사용이 가능한 물품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재활용하여 필요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교회에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초록가게’였다. 현재 교회는 지역 내 15개에 이르는 헌옷 수거함을 통해 옷 등의 물품을 수거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나누고 있다. 수익금은 다시금 지역 선교를 위한 비용으로 쓰고 있으며, 남는 물량은 이웃 저소득국가에 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자원순환뿐 아니라, 지역의 재활용 정책 마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남의 한 작은 교회가 하는 사역들을 보면서 든 생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초록 발자국’이었다. 폐지를 줍고 쓸만한 물품을 분류하여 나누고, 음식물이 버려지지 않도록 나눔 냉장고를 세우는 일 등은 어쩌면 도시의 깔끔한 교회들은 꺼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 많은 이들이 소비와 소유, 화려함과...
2022.01.11
나무의 이야기를 위해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케빈 홉스, 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티보 에렘 그림, 김효정 옮김, 한즈미디어, 2020년) 사람이 있기 전에 나무가 있었다. 성서의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땅에 풀과 나무를 내게 하신 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약 30억 년 전 조류, 균류 등의 모습으로 식물이 지구에 처음 등장했고 4억 3천만 년 전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이르러 현재의 외형을 가진 나무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후로 나무는 곤충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상호의존적인 공생의 관계를 형성하며 지구 생태계의 중추 역할을 감당해왔다. 지금 지구의 나무들은 모든 생물종의 1/4에 해당하는 100,000여 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지역 식생에 적응한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열대우림지역에서는 심심찮게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의 나무가 발견되고 있으니, 성서의 아담처럼 아직 불러줄 이름이 없는 생명에 멋진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면 식물학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아무튼 나무는 창조세계의 오랜 존재로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이다. 우리는 나무를 더욱 존중해야하며 더욱 깊이 이해해야한다. 나무를 가까이 하는 일은 창조세계의 신비를 만나는 일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탄소중립이니 ESG니 호들갑을 떨지만, 결국 우리가 거룩한 나무를 본받아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내려주시는 한 줌 햇볕에 만족하며 살지 못하는 한 구원, 생존의 가능성보다 종말, 멸종의 가능성으로 다가설 뿐이다. ‘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오랜 시간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나무에 대한 책은 수도 없지 많지만 특별히 이 책은 그림 작가가 식물도감에 수록된 나무의 사진이 나무 전체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큰 아쉬움이 있었는지, 우리가 흔히 보지 못하는 나무 전체의 멋진 자태를 펜으로 정성스럽게 그려낸 것이 참 돋보인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이 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마치 그리스 아테네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의 신상들을 하나씩 만나는 느낌이었다. 아,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크고 깊고 넓고 오랜 세계가 이렇게 존재하는구나. 내가 이 세계에 잠시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거구나. 황망한 무기력이 아니라 평온한 귀속감이었다. 일단 나에게는 그랬다. 몇 년 동안...
2021.12.31
한 여인이 있었다. 단풍나무 씨앗처럼 가을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 세상의 구멍에서 떨어진 '하늘 여인'이었다. 기러기들이 날아올라 그를 받아 주었고, 그는 거북의 등딱지에 내려앉았다. 그를 위한 보금자리(땅)이 필요하다고 여긴 동물들은 방안을 의논했다. 그가 머물 땅을 만들 만한 진흙이 깊은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물속 깊은 곳의 수압과 어둠은 수달·비버·철갑상어처럼 물속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동물들에게도 버거웠다. 진흙을 가지러 떠났던 동물 중 되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모여 있던 동물 가운데 가장 꼬마였던 사향뒤쥐가 헤엄을 쳐서 깊은 물속의 진흙을 입에 물어 가져왔다. 자신의 일을 마친 사향뒤쥐는 숨을 거뒀지만, 그가 가져온 한 줌의 진흙은 거북의 등에 발라져 점점 넓어지더니 대지(아메리카대륙)로 변했다. '하늘 여인'은 하늘의 씨앗 꾸러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새로운 대지에 뿌려 정성스럽게 돌보며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게 했다. 아메리카 토착민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의 책 <향모를 땋으며>(에이도스)의 첫머리에 나오는 하늘 여인에 대한 토착민 설화다. 이 이야기는 아메리카 토착민들이 모든 생물은 상호의존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했고, 서로를 위한 헌신과 사랑이 그러한 상호의존관계를 가능하게 했다는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을 알려 준다. 세상엔 과학적 사실보다 중요한 믿음이 있다. 믿음이 세상을 바꾸고 새롭게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니 말이다. 실낙원 성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낙원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생명의 동산, 애쓰거나 땀 흘려 경작하지 않아도 먹을거리 걱정할 필요 없는 곳, 서로를 잡아먹지 않아도 나무 열매만으로 충분히 배불렀던 시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성서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동산 에덴을 그려 낸 목적은 과학적 사실을 알려 주는 데 있지 않다. 성서의 창조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를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게 창조하셨다는 고백과 더불어, 우리가 낙원을 잃어버린 이유가 바로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고백과 믿음은 우리를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는 지금까지 이미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겪은 곡절 많은 별이다. 때로는 인류의 생존 역시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류는 이곳에서 이른바 '문명'을 발전시킬 만큼 풍족한 삶을 누렸다. 그 기반은 친절하디 친절한 지구 생태계 그 자체였고, 그것을 지탱하던 힘은 생명력 넘치는 대지와 온화한 기후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2021.12.23
기후위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 한국 정부 탄소중립정책의 문제점 지난 9월 30일,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있는 새문안로 콘코디언 빌딩 앞 거리에서 탄소중립위원회 국민참여분과에 참여한 4대 종단의 종교위원들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4대종단의 종교위원들은 탄소중립위원회 회의에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이 참여하지도 않았고, 2030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폭을 2℃에 맞춘 2018년 대비 35% 온실가스감축안이 정부안으로 제출되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부처의 안일함과 직무유기를 비판하며, “우리들 때문에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는 가난한 국가와 사회적 약자, 청소년들과 미래세대가 희생당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들과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볼 책임이 있음을 의식하고 정부와 기업의 즉각적이고 합당한 변화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탄소중립위원회 종교위원 사퇴문을 발표했다. 종교위원들은 “산업의 구조를 빠르고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에 필요한 법과 정책을 국회와 정부가 만들고 시행하도록 탄소중립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추동”할 것을 요청하며, “종교계에서 앞으로도 탄소중립을 위해 더욱 체계적인 교육을 시행하고 실천과 연대에 힘을 더할 것이다.”는 문장으로 사퇴문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탄소중립위원회에 참여한 종교위원들은 사퇴문과는 별도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탄소중립위원회에 큰 기대를 가지고 참여했지만, 이미 정부는 사전에 온실가스감축안의 한계치를 정해두고 위원들을 설득하려했을 뿐이고, 종교위원들의 온실가스감축목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그럼 어디서 어떻게 더 감축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했다며, 고심 끝에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위원회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인 10월 4일에는 세계 주요 종교들을 대표하는 40명에 달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과학자들과 함께 바티칸에 모여 국제 사회가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 앞서 ‘획기적인 기후위기 대응 계획을 세우고 기후행동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공동호소문‘을 COP26 의장인 혼 알로크 샤르마에게 전달하였다. 이 호소문에서 세계 종교지도자들은 COP26이 “부유한 국가들부터 앞장서서 자신의 탄소배출을 감축해야 하고, 빈곤한 국가들의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가능한 한 빨리 넷제로를 성취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놓고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경제, 생태적이고 환경을 착취하지 않는 돌봄의 경제, 생명을 지원하는 경제, 과잉의 사악함을 비판하는 경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새로운 종류의 경제’를 채택하는” 원대한 뜻을 세워야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세계 종교지도자들의 호소문도 메아리 없는 허공을 향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지난 11월 13일에 막을 내린...
2021.12.19
우리는 지금 파국을 성장시키고 있다 이현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지구온난화는 지금 우리가 성장을 위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기에 발생하고 있는, 인류사상 전례가 없는 전 지구적인 파국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가난을 성장시키고 있다.” -프란츠 알트(Franz Alt), 단 하나뿐인 우리의 집 우리 모두는 오늘도 바쁘다. 도시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지하철과 버스, 도로 위 자동차들은 오늘도 수백만의 시민을 어디론가 실어나른다. 하루 활동의 대부분이 경제 활동과 소비에 연결된 삶, 그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 더 많이 쌓아 올렸다는 기억을 가지고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오늘 하루 우리가 쌓아 올린 것이 무엇이었나에 대한 성찰은 매우 드물다. 인간의 삶이 풍요해질수록 지구 생태계는 가난해졌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지구 생태계의 고통도 성장했다. 산과 바다의 무수한 생물종이 사라졌으며, 탄소배출을 통한 지구온난화로 피폐해진 땅과 물이 늘어간다. 오늘도 우리가 열심히 살면서 쌓아 올린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점검해야 할 때이다. 최근 유엔이 주도한 기후환경에 대한 공동분석에 따르면, 현재 세계는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이라는 지구 온난화 안전 한계치를 넘어 2도 상승의 시나리오조차 상당히 초과하는 경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주요 해수면의 상승을 이끌어 해안가와 섬 지대의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극단적 기상현상의 발생과 강도를 증가시켜킴으로 세계 곳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임것을 의미한다. 이미 30년 전(1992년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부터 세계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공동대응을 약속했지만, 오늘날의 이런 결과로 평가하건대, 우리의 지난 약속은 구속력이 없었고, 우리의 지난 실천은 지나치게 미미했다. 국가와 개인의 경제성장, 소비, 풍요, 편리를 향한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 한, 어떤 과학도 어떤 정치도 이 파국을 향한 치달음을 막을 수 없다. ‘녹색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국 파국을 성장시키게 될 것이다. [이제는 개인이 나서야 할 때] 산업혁명 이후 약 150년간 우리는 무수한 탄소발자국을 남기며 살아왔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기후위기의 원인인 탄소를 거리낌없이 배출하며 살아왔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시공간과 활동 가운데서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의 풍요와 편리가 그저 인간을 향한 하늘의 축복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그런 종류의 순진한 생각으로는 지속가능한...
2021.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