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ESG보다 민주주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작성일
2022-02-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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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라는 것이 있다. 유엔이 국제 사회에 제안한 2016년부터 2030년까지의 최대의 공동 목표다. 17가지 목표에는 인권과 정의, 평화와 생태 문제 같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앞선 2000년부터 2015년까지의 목표였던 ‘밀레니엄 개발목표’(MDGs) 다음으로 새롭게 제시된 개발 목표에 “지속가능”이라는 말이 포함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 이 시기가 지구의 한계나 지속불가능성을 직면해야 하는 시기임을 여실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근래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 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들 중에서도 ESG를 표방하는 곳들이 나타나고 있다. 본디 이 말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환경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 그리고 기업의 지배구조 측면이 얼마나 책임성 있고 건강한지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쉽게 말해 한 기업이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책임을 다하고,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자신의 지배구조를 얼마나 투명하게 유지하는가를 묻는 것이고, 이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환경과 사회와 기업을 만드는 일에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런 항목들이 지금껏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던 재무제표가 보여 주지 않는 측면을 살펴보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근래 투자의 측면에서도 ESG는 중요한 가치로 급부상하여 독일 도이체방크나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 블랙록(BlackRock) 같은 곳이 ESG 경영 지표를 바탕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관련 투자 금액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도 점점 ‘ESG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고, 기업들 중에서 ESG 경영을 표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상 재무제표를 우선에 두고 움직이던 기업들이 변화하는 것은 유엔이 발전 목표에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을 반영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이 생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고 심지어 스스로 오염과 환경파괴의 주체가 되었을 때, 사실상 지구 생태계의 붕괴를 비롯해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위기는 일부 사람들만의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위기로 이어지고 결국 기업의 재무제표에도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른바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이 상실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기업으로 하여금 스스로 책임적 경영을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 경영을 하려는 의도로 동참하고 있다. 일부는 투자가 끊길까 봐, 혹은 기업의 이미지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렇든 저렇든 결국 사회 전반에 좋은 일 아니겠는가?
물론 ESG 경영이 가진 맹점도 존재한다. 투자사별로 평가 지표가 있고, 각 기업 내부에도 개선 혹은 발전 목표들을 수립하여 평가 지표를 충족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전체 지구의 위험을 줄이는 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간 위험을 만들어 온 기업들이 충분히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어쩌면 그것이 기업들의 책임에 대한 면죄부가 되거나,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도 그들에게 스스로 책임을 다했다는 자기 위안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린워싱’(Greenwashing)1)이라는 말처럼, 기업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녹색 분칠’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예를 들어, 롯데가 플라스틱병에서 비닐 라벨을 제거한 것을 들어 ESG 경영의 사례로 설명하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삼성의 경우 ESG 경영을 이야기하며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줄였다는 것을 사례로 들고 있고, 대다수의 기업들은 기술 개발을 통해 그간 배출해 오던 탄소 배출을 조금 줄인다는 것 정도를 ESG 가운데 E(Environment: 환경)의 실천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제러미 리프킨이 그의 책 『글로벌 그린 뉴딜』(민음사 역간)에서 말하듯이,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인프라의 구축으로 이어져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인류는 기존의 삶을 많이 포기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기후 위기와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국가들이 이 상황을 넘어서는 일에서 기술 발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기술 발전을 통해 새로운 산업의 발전이나 성장 동력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탄소를 줄이고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한국형 뉴딜’ 가운데 ‘스마트’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런 기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기술만능주의를 용인할 만큼 녹녹하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올해 2월 28일, IPCC2)의 6차 보고서 2실무 그룹 보고서가 발표될 것이다. 기후 위기의 영향과 적응에 관한 보고서이다. 작년 1실무 그룹의 보고서가 이미 적잖은 충격을 줬고, 아마 2실무 그룹의 보고서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1실무 그룹의 보고서는 과학적 사실을 다뤘는데, 몇 년 전 발표된 “1.5℃ 특별보고서”의 전망보다도 약 10년 정도 빠르게 위기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제시했다. 이번엔 그 과학적 사실이 우리의 삶에 미칠 영향을 설명하는 보고서가 나오는 것이다. 아직 내용을 보지 못해 단정할 순 없지만, 기후의 변화로 인해 빙하가 어떻게 되고, 숲과 들과 바다가 어떻게 변하고, 그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려 놓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묵시록에 가까운 보고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하고 있는 ESG 경영이 단지 ‘기술개발을 통해 우리 물건은 탄소를 덜 배출합니다’라고 선전하거나 ‘비닐 포장지를 제거했어요’ 등에 머문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말장난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10m의 쓰나미가 닥쳐오는데 1m의 제방을 쌓아 올리고는 ‘우리 이만큼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열린책들)에서 자본주의와 기후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전시켜 온 개발주의와 성장 담론이 기후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체제 경쟁을 위해 같은 길을 따랐으므로 기후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의 집약을 통한 기술의 발전이 기후 위기를 극복할 대안인 것처럼 홍보하는 말들은 대부분 거짓말에 가깝다. 예를 들어, ‘탄소포집저장기술’을 통해 대기 중의 탄소를 포집해 땅속에 저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전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기술이고 실효성 있는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도 수십 년이 걸린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이야기하는 ‘소형모듈 원전’ 역시 해결되지 않는 핵폐기물 문제와 가성비 문제 등을 안고 있으며 그나마도 상용화는 2050년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공학적 해결 방식이나 자본이 말하는 해결 방식이 눈앞에 닥친 위기에 대응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면, 개별 기업이 기술 개발을 통해 자신들이 배출하는 탄소를 줄이겠다는 약속만으로는 결코 다가올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은 ‘탈성장’(Degrowth)이라는 말이 등장한 배경이 되었다.3) 이른바 ‘녹색 성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경제 성장이나 기술의 발전이 탈동조화(Decoupling), 즉, 탄소 배출을 줄여 나가면서 산업 발전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시도는 그저 탄소 배출의 외주화로 이어졌을 뿐이다. 더럽고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산업이 가난하고 열악한 나라로 수출되었던 것이다. 기업들이 그런 일에 가장 앞장서 왔다. 재무제표를 위해 값싼 노동력과 값싼 토지, 환경적 비용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고, 오염 물질을 아무리 버려도 규제 따윈 없는 곳을 찾아 다녔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ESG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개발주의와 성장 담론에 따라 자본가와 자본에게 너무 많은 자율성을 허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9월,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는 주민 투표가 열렸다. 그리고 치솟은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어려워진 삶을 타개하기 위해, 대형 부동산 회사의 주택 24만 채를 몰수하여 공공임대로 전환하자는 결정을 내렸다.4) 이는 시민들의 지성이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시장의 폭주에 제동을 건 사례다. ESG 경영도 좋지만, 기업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먼저 반성하고 실효성 있는 수준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우리에겐 민주주의적 상상력이 오히려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1) 이미지만 친환경으로 바꾸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편집자 주).
2)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유엔 산하 세계 기상 기구(WMO)와 국제 연합 환경 계획(UNEP)에 의해 1988년 설립된 조직이며, 인간 활동이 기후 변화에 끼치는 위험을 평가한다(편집자 주).
3) <연합뉴스>, “탈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답이다”, 2021. 09. 29.
4) ,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베를린 ‘주택 몰수 주민투표’…가결 그 후”, 2021. 11. 06.
근래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 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들 중에서도 ESG를 표방하는 곳들이 나타나고 있다. 본디 이 말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환경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 그리고 기업의 지배구조 측면이 얼마나 책임성 있고 건강한지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쉽게 말해 한 기업이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책임을 다하고,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자신의 지배구조를 얼마나 투명하게 유지하는가를 묻는 것이고, 이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환경과 사회와 기업을 만드는 일에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런 항목들이 지금껏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던 재무제표가 보여 주지 않는 측면을 살펴보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근래 투자의 측면에서도 ESG는 중요한 가치로 급부상하여 독일 도이체방크나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 블랙록(BlackRock) 같은 곳이 ESG 경영 지표를 바탕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관련 투자 금액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도 점점 ‘ESG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고, 기업들 중에서 ESG 경영을 표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상 재무제표를 우선에 두고 움직이던 기업들이 변화하는 것은 유엔이 발전 목표에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을 반영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이 생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고 심지어 스스로 오염과 환경파괴의 주체가 되었을 때, 사실상 지구 생태계의 붕괴를 비롯해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위기는 일부 사람들만의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위기로 이어지고 결국 기업의 재무제표에도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른바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이 상실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기업으로 하여금 스스로 책임적 경영을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 경영을 하려는 의도로 동참하고 있다. 일부는 투자가 끊길까 봐, 혹은 기업의 이미지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렇든 저렇든 결국 사회 전반에 좋은 일 아니겠는가?
물론 ESG 경영이 가진 맹점도 존재한다. 투자사별로 평가 지표가 있고, 각 기업 내부에도 개선 혹은 발전 목표들을 수립하여 평가 지표를 충족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전체 지구의 위험을 줄이는 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간 위험을 만들어 온 기업들이 충분히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어쩌면 그것이 기업들의 책임에 대한 면죄부가 되거나,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도 그들에게 스스로 책임을 다했다는 자기 위안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린워싱’(Greenwashing)1)이라는 말처럼, 기업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녹색 분칠’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예를 들어, 롯데가 플라스틱병에서 비닐 라벨을 제거한 것을 들어 ESG 경영의 사례로 설명하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삼성의 경우 ESG 경영을 이야기하며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줄였다는 것을 사례로 들고 있고, 대다수의 기업들은 기술 개발을 통해 그간 배출해 오던 탄소 배출을 조금 줄인다는 것 정도를 ESG 가운데 E(Environment: 환경)의 실천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제러미 리프킨이 그의 책 『글로벌 그린 뉴딜』(민음사 역간)에서 말하듯이,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인프라의 구축으로 이어져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인류는 기존의 삶을 많이 포기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기후 위기와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국가들이 이 상황을 넘어서는 일에서 기술 발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기술 발전을 통해 새로운 산업의 발전이나 성장 동력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탄소를 줄이고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한국형 뉴딜’ 가운데 ‘스마트’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런 기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기술만능주의를 용인할 만큼 녹녹하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올해 2월 28일, IPCC2)의 6차 보고서 2실무 그룹 보고서가 발표될 것이다. 기후 위기의 영향과 적응에 관한 보고서이다. 작년 1실무 그룹의 보고서가 이미 적잖은 충격을 줬고, 아마 2실무 그룹의 보고서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1실무 그룹의 보고서는 과학적 사실을 다뤘는데, 몇 년 전 발표된 “1.5℃ 특별보고서”의 전망보다도 약 10년 정도 빠르게 위기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제시했다. 이번엔 그 과학적 사실이 우리의 삶에 미칠 영향을 설명하는 보고서가 나오는 것이다. 아직 내용을 보지 못해 단정할 순 없지만, 기후의 변화로 인해 빙하가 어떻게 되고, 숲과 들과 바다가 어떻게 변하고, 그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려 놓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묵시록에 가까운 보고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하고 있는 ESG 경영이 단지 ‘기술개발을 통해 우리 물건은 탄소를 덜 배출합니다’라고 선전하거나 ‘비닐 포장지를 제거했어요’ 등에 머문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말장난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10m의 쓰나미가 닥쳐오는데 1m의 제방을 쌓아 올리고는 ‘우리 이만큼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열린책들)에서 자본주의와 기후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전시켜 온 개발주의와 성장 담론이 기후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체제 경쟁을 위해 같은 길을 따랐으므로 기후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의 집약을 통한 기술의 발전이 기후 위기를 극복할 대안인 것처럼 홍보하는 말들은 대부분 거짓말에 가깝다. 예를 들어, ‘탄소포집저장기술’을 통해 대기 중의 탄소를 포집해 땅속에 저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전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기술이고 실효성 있는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도 수십 년이 걸린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이야기하는 ‘소형모듈 원전’ 역시 해결되지 않는 핵폐기물 문제와 가성비 문제 등을 안고 있으며 그나마도 상용화는 2050년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공학적 해결 방식이나 자본이 말하는 해결 방식이 눈앞에 닥친 위기에 대응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면, 개별 기업이 기술 개발을 통해 자신들이 배출하는 탄소를 줄이겠다는 약속만으로는 결코 다가올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은 ‘탈성장’(Degrowth)이라는 말이 등장한 배경이 되었다.3) 이른바 ‘녹색 성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경제 성장이나 기술의 발전이 탈동조화(Decoupling), 즉, 탄소 배출을 줄여 나가면서 산업 발전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시도는 그저 탄소 배출의 외주화로 이어졌을 뿐이다. 더럽고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산업이 가난하고 열악한 나라로 수출되었던 것이다. 기업들이 그런 일에 가장 앞장서 왔다. 재무제표를 위해 값싼 노동력과 값싼 토지, 환경적 비용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고, 오염 물질을 아무리 버려도 규제 따윈 없는 곳을 찾아 다녔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ESG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개발주의와 성장 담론에 따라 자본가와 자본에게 너무 많은 자율성을 허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9월,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는 주민 투표가 열렸다. 그리고 치솟은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어려워진 삶을 타개하기 위해, 대형 부동산 회사의 주택 24만 채를 몰수하여 공공임대로 전환하자는 결정을 내렸다.4) 이는 시민들의 지성이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시장의 폭주에 제동을 건 사례다. ESG 경영도 좋지만, 기업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먼저 반성하고 실효성 있는 수준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우리에겐 민주주의적 상상력이 오히려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1) 이미지만 친환경으로 바꾸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편집자 주).
2)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유엔 산하 세계 기상 기구(WMO)와 국제 연합 환경 계획(UNEP)에 의해 1988년 설립된 조직이며, 인간 활동이 기후 변화에 끼치는 위험을 평가한다(편집자 주).
3) <연합뉴스>, “탈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답이다”, 2021. 09. 29.
4) ,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베를린 ‘주택 몰수 주민투표’…가결 그 후”, 2021. 11.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