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20170802 바이블25 기고 쉼, 숨, 삶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나무는 몸 전체로 얘기해. 잎으로도 하고, 가지와 뿌리로도 한단다. 보고 싶니? 그럼 네 귀를 내 몸에 대어 봐. 그러면 내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한 여름의 뜨거움을 피해 잠시 동네 숲을 찾았습니다. 숲은 언제 찾아가도 반가이 맞이해줍니다. 동네 작은 숲일지라도 그 속에 들어가 나무를 만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집니다. 때로 신선한 바람과 맑은 햇살을 느끼며 나무에 몸을 기댄 채 한참을 서 있으면 마음 속 부정적 감정까지 씻기어지는 듯합니다. 때로 나무 앞에 마주 서서 한 손으로는 나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으면, 살며시 나를 당기면서 말합니다. “걱정할 것 없다. 우리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돼” 하고 이야기 합니다. 잠깐의 쉼이 잠시 잊고 지낸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더구나 비록 작지만 숲에 머물고 있는 나무가 건넨 말이어서인지 내면에 깊은 평화가 찾아듭니다. 숲에는 수많은 색과 소리, 다양한 생명들의 삶이 있어 마냥 즐겁습니다. 꽃들이 언제 피었다 지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묻지 않습니다.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않는 하늘 나는 새들을 올려다 볼 새 없이 살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숲에만 들면, 숲은 어김없이 튼튼한 가지를 흔들며 두 팔 벌려 반가이 안아줍니다. 신선한 바람과 맑은 공기까지 더하여 주면서 창조주 하나님 안에 머물다 가라고 품습니다. 에덴의 숲과 숲속 수많은 생명들을 지으시고, 지금도 하나로 이어주고 계신 주님 한 분만 믿으면 된다고 말입니다. 오늘 잠깐의 쉼이 내 숨을 일깨워 하나님의 숨을 쉬게 하는군요.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숨을 기억나게 하여 생기 있게 합니다. 내 숨이 다른 생명들에게 자연스레 생기를 전할 용기도 갖게 합니다. 역시 창조 안에 안식이 있고, 그 안에서의 쉼만이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 창조를 다 이루시고 쉬시면서 그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함께 묵상하며, 창조의 숲에 들어 함께 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렛날에...
2017.08.10
살림의 녹색 이야기 박상용 목사(살림교회) 몇 차례나 녹색교회로 전환하면 어떻겠느냐 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았다. 어렵게 입을 열었을 터인데 흔쾌히 답을 주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중 녹색교회 신청서가 메일로 전송되었고, 그 내용을 보는 순간 지금껏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반성과 또한 그렇게 잘 살아내기가 힘겨울 것이라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녹색교회로의 전환을 위해 고민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불현듯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잘 보존하길 원하시고 그런 일을 감당할 교회와 성도들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살림교회는 2001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살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그 때부터 지금껏 생명살림에 걸맞을 상징 색으로 녹색을 선택하여 사용해 오고 있다. 지난 5월 24일, 감사하게도 전국 녹색교회에 살림교회 이름이 올려졌다. 그동안 잘 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그렇게 살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으로 알고 받았다. 녹색교회 선정은 겉모양만 녹색으로 치장하고 있었던 것에서 내용까지도 충실하게 담아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었다. 유월 첫 주일, 처음 가져보게 된 환경주일과 녹색교회 현판식은 살림가족들에게 창조질서 지킴이로 살자는 선포의 장이 되어 기뻤다. 작은 옹달샘 물줄기가 강을 이루고, 나비의 날개 짓이 큰 바람을 일으키듯이 살림의 작은 몸짓이 지역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해 본다. 교회의 방향에 호흡을 함께 하는 살림가족들이 고맙고 또 자랑스럽다.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의식전환의 시작으로 목회자부터 환경보존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성도들 또한 자기 컵 갖기 운동, 일회용품 줄이거나 쓰지 않는 등 자발적 참여를 하고 있으며, 창조 세상 관리의 중요성을 전해들은 한 성도는 지구생태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그에 관한 서적을 직접 사서 읽어 보는가 하면, 자신의 근무지에서 일회용품 사용 자제를 제안했다는 성도까지 변화는 그렇게 서서히 시작 되었다. 물이 흘러야만 변질되지 않듯 창조질서 보존의 문제는 이론이 아닌 삶이어야 한다. 따라서 환경보존을 위한 몸부림은 운동이 되어 주변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움직임이 없는 변화란 있을 수 없다. 녹색교회로의 전환을 통해 살림은 변화의 한 가운데 서있다. 이제 우리는 생명 살림의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생명들에게 기운을 더하고자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살림교회는 그동안 자그마하게 해왔던 생명 살림의 일들을 수정 보완하며 활동의 확장성을 더하려 한다....
2017.08.04
170612기고_복음과 상황 7월호 강의 회복과 복음, 그리고 하나님 나라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 생명의 근원, 강 생명의 강. 생명을 살리는 강은 본디 흐르는 물입니다. 에덴에서 흘러나와 강으로 바다로 또 하늘로 다시 땅으로 흐르는 물입니다. 그렇게 흐르는 물이 맨 처음 에덴동산 시절부터 우리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 동산을, 그리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생수였습니다.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 줄기로 갈라져서 네 강을 이루었다.” (창2:9~10) 우리나라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고 불릴 만큼 강이 보기 좋게 흐르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4대강은 우리나라 전 국토의 젖줄이 되어 지역주민들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해주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4대강 사업 이후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 흐르지 않는 강, 강의 죽음 2009년부터 약 3년간 진행된 대규모 토목공사는 4대강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강, 하천의 생태계 보고였던 습지’, ‘뛰어난 경관을 자랑했던 곳’, ‘하천 수질 정화에 필수적인 모래톱’은 댐(보) 건설과 대규모 준설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최근 경향신문 미래기획팀이 실은 4대강 공사 전과 후의 모습을 대비한 사진을 보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사라진 것들이 무엇인지 알기에 충분합니다. 댐이 세워진 이후로 매년 강에 녹조가 창궐하고, 강은 썩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도 씨가 말라 어민들의 생계도 끊기게 되었습니다. 사업 전 잡히던 붕어와 메기, 정어 같은 토종 물고기들은 사라지고, 강준치와 블루길 등 오염된 강에 적응한 외래 어종만 잡히고 있습니다. ‘수질이 깨끗해지고 자연이 살아날 것이다’라고 했던 4대강 사업의 목적은 그 어디서도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물 속 상황은 더합니다. 최근 뉴스타파의 목격자 제작진에 따르면, 검은 오니로 범벅되어 전방이 한치 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강바닥에는 버려진 폐선과 건설자제가 어지럽게 방치돼 있을 뿐 아니라 악취 가득한 개흙이 두텁게 쌓여 더 이상 모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가라앉아 녹조를 모래가 흡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강은 더 이상 생수의 강이 아닙니다. 그냥 물을 마신다는 건 불가능해졌습니다. 독성을 내뿜는 녹조 때문인데,...
2017.07.29
토지강제수용 철폐를 위한 생명평화 기도회 선지자 나단은 다윗 왕을 찾아가 어떤 성읍의 양과 소를 아주 많이 거느린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단 한 마리뿐인 어린양을 빼앗았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 왕이 격분하면서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고, 손해를 네 배로 갚아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나단 선지자가 왕에게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것을 부자들에게 강제로 빼앗겨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야기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고 왕국이 만들어지면서 왕정 체제에 의한 강제적인 수탈이 가장 큰 문제가 됩니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왕과 부자들은 사치를 누리는 불의한 현실에 대해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여 공의를 외칩니다. 지난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 옆 그늘에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취소와 토지강제수용 철폐를 위한 생명평화 강원기도회’가 열렸습니다.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이었던 이 날, 기도회를 위해 20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모인 분들은 대부분 멀리 강원도에서 아침 일찍 내려오신 분들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강원도에서 기도회를 가지시는 데, 이 날은 특별히 ‘토지강제수용 철폐를 위한 청와대 앞 1인 시위’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취소 촉구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에 오셨다가 이곳에서 기도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골프장, 도로 등의 개발 사업에 오랫동안 살던 집과 대대로 농사짓던 땅을 강제로 수용 당했습니다. 여기저기 찾아갈 수 있는 모든 곳에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법이 그런 걸 어쩌겠냐고 이들의 하소연을 외면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매주 목요일마다 함께 모여 기도를 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기도회를 가진 것이 이제 323주, 무려 6년이 지났습니다. 광화문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세종문화회관 앞 길은 직장인,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 정부종합청사 공무원, 외국인 관광객들로 늘 북적이는 길입니다. 한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인데도 이 분들의 기도회에 잠시 눈길을 주시는 분들이 없습니다. 다들 뭐가 그리 급하신지 저마다 제 갈 길을 가기에 바쁩니다. 기도회에 참석하신 분들도 이러한 거리가 낯설지 않으신지 그냥 무덤덤한 표정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문을 낭독하십니다. 다윗 왕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2017.06.29
기독신문 170626기고 고리1호기 폐쇄, 탈핵과 에너지전환의 시작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2017년 6월 18일, 고리 1호기가 폐쇄된 날입니다. 첫 가동이후 40년 만의 영구 정지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두 번째 수명 연장 시도였고, 국내 원전 사고의 20%나 되는 잦은 사고가 나고 있었던 만큼 이번 결정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사실 고리 1호기가 생산하는 전력은 총 발전량의 0.85%밖에 되지 않습니다. 발전량으로 보면 2022년까지 수명을 연장한 월성 1호기(총 발전량의 0.57%)도 가동 중단했어도 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예비율은 26.3%고 전력수요가 더 관리하면 문제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폐쇄가 문제 해결의 끝은 아닙니다. 중단후에도 고리 1호기의 ‘원전 해체’와 ‘사용 후 핵연료 처리’를 발전단가에 계산되지 않았던 비용을 들여 운영기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해야 합니다. 그 기간 동안 고리 2·3·4호기를 비롯한 11기는 또 수명 종료를 맞게 될 것입니다(2022년). 혹자는 말합니다. 그래서 발전소 가동 전에 신규 원전들을 폐쇄해야 한다고. 신고리 5·6호기(공정률 28%)의 경우 고리 1호기보다 5배나 큰데, 고리 인근에 사는 380만 명의 주민들을 생각하면 가동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90% 공정율의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2호기도 98% 공정율에도 중단한 대만을 생각하면 생각해볼 일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고리 1호기 폐쇄로 ‘탈핵’ 곧 ‘핵 없는 세상’을 향한 중요한 전환점에 섰습니다. 이 길을 계속 걷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찬핵 진영의 거센 반발도 있지만, 전기요금 인상 등의 문제에 진솔히 대처해야 합니다. 원전 17기의 폐쇄를 결정하기까지 독일은 40년간 찬성 반대 진영 간의 공방이 있었습니다. 대안으로서의 ‘탈핵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대통령 직속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해 마련하고 구체적으로 실행해가야 합니다. 국가 차원만이 아니라 서울시의 원전하나줄이기를 비롯한 경기, 충남, 제주시의 지역에너지계획을 적극 지원하여 실행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발전용량이 조금은 넉넉한 형편이라니 기회도 좋습니다. 무리한 전력계획을 세우지 말고, 발전설비 증설 대신 수요관리로 동 하계 전력수요를 더 줄여볼 일입니다. 지금은 전기가 부족해 불편하다며 개미처럼 전력을 생산할 때가 아닙니다. 에너지탐욕으로 인한 지구의 미래를 염려해야 할 때입니다. 원전은 더 이상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안정적이지도 않습니다. 누군가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전기는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대기전력을 차단하고, 전기제품 사용시간을 줄이고, 실내 적정온도를 유지하고, LED로...
2017.06.29
지속 가능성 경계선 만들고 사람과 자연 잇기 유미호(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겔 47:9) 올해 한국교회가 함께 지키는 환경주일의 주제성구입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지난 6월 11일이 환경주일이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한국기독교장로회 등의 교단은 4일을 환경주일로 지켰습니다. 올 환경주일의 주제어는 ‘치유와 회복, 창조세계에 주시는 은총’입니다. 교회들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내린 생명의 물을 묵상하며 지구 곳곳에서 생명이 살아나도록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참 좋은’ 세상으로 회복을 위한 다짐의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지구라는 ‘하나님의 성소’에 흐르는 물을 통해 탐욕을 씻어내고 수많은 생명 앞에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설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우리 삶의 지속성을 위한 경계선을 찾는 일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경계선은 ‘우리가 지구에서부터 뽑아 쓸 수 있는 자원의 양의 한계이자 기후변화의 한계점’입니다. 우리는 그 경계 안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넘을 수 있다고 해도 넘어서는 안 될 한계선입니다. 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고 오만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구 생태계 용량을 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1980년에 포화됐고 2015년에 1.5배 초과했습니다. 2030년이면 2배에 달할 것입니다. 이제라도 경계선에 대한 신앙적 합의를 만들어 그 안에서만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강제할 수 없지만 합의를 통해 자발적 실천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피조물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하나님의 자녀로서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탐욕스럽게 누려온 것은 현재 고통 받고 있는 가난한 자들과 미래세대, 자연에게 진 빚입니다. 그 빚을 탕감 받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때로 우리가 경계선을 넘게 되면 타인을 질타하기보다 나부터 돌아보며 내 안의 수치심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위험이 일상화된 시대에 위험 자체를 느끼지 못하거나 위험을 느끼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무감각하게 살고 있습니다. 환경주일에 즈음해 신앙인의 삶을 깊이 성찰하며 지속가능한 삶과 지구를 위한 경계선을 지킬 수 있길 기도합시다. 창조 은총에 감사하며 삶의 경계를 세우는 일을 통해 머지않은 미래에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 되살아나길 희망합니다. [국민일보 2017. 6.06 기고]
2017.06.29
1705_ 기독교신문 등 기고 ‘사람과 자연 다시 잇기’ - 환경주일엔 '치유와 회복, 창조세계에 주신 은총'을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올해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의 주제는 ‘사람과 자연을 잇는다’는 의미인 'Connecting People to Nature'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잇는다'는 건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가 자연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제를 잡은 이유는 사람과 자연 간의 관계만 올바르게 정립되어도, 열병을 앓고 곳곳이 상처투성이인 지구가 치유되어 다시금 처음 창조 때처럼 수많은 생명들과 온전히 공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1984년 이 ‘세계 환경의 날’을 기념하면서 ‘환경 주일’을 제정하였습니다. 올해 ‘환경 주일’은 6월 4일입니다. 몇몇 교회들만 지켜오던 환경주일이 여러 교단에 의해 총회 차원에서 지켜지게 된 것은 1992년의 일이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윤리위원회와 회원교단들이 더불어 6월 첫 주일(감리교는 6월 둘째 주일)을 환경주일로 선포함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후로 교회들은 해마다 주제를 달리하며 창조보전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실천을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겔 47:9) 올해 한국교회가 나누는 주제는 ‘치유와 회복, 창조에 주시는 은총’입니다. 에스겔 47장 1~12절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내린 생명의 물을 묵상하며 지구 곳곳마다 생명들이 되살아나게 하는 기도를 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땅 모든 생명들이 고통 중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숨’을 되찾아 ‘참 좋은’ 세상으로 회복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선은 우리의 욕심과 무지함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가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음을 회개할 것입니다. 생명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하는 미세먼지, 골프장과 케이블카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산과, 댐에 준하는 16개의 대형 보로 인해 흐르지 못해 죽어가는 4대강, 해마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생매장 되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의 비명을 품는 땅. 그간 반환경적 개발의 논리로 진행해온 사업들과 사회 전체적으로 환경의식이 둔감해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로 인해 이 땅 지구가 크게 신음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기도와 실천이 절실합니다. 더구나 이 좁은 땅에...
2017.06.03
포스트휴먼시대, 창조주 하나님 앞에 다시 서기 - 장윤재교수의 ‘포스트휴먼신학’을 읽고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근대 문명이 수명을 다했습니다. 문명은 쇠퇴하고, 세상은 더 이상 좋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 곧 더 이상 성장으로 위험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 것입니다. 기적처럼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도 이제는 여러 ‘위험’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예외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된 것은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대적 인간은, 우리와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받은 생명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졌고, 우리는 지금 일상의 삶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참으로 ‘불편한 진실’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핵 발전으로 세상이 방사능에 오염되고, 석탄화력 발전으로 기후가 붕괴되고 미세먼지로 숨 쉬기 힘든 날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이 땅과 바다를 뒤덮고, 매년 가축들이 고통 중에 산 채로 매장되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영혼의 쉼터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어주는 산과 강이 케이블카와 댐 건설 등으로 파헤쳐져 수많은 생명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신앙적으로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책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지으신 지구의 소리에 ‘애정 어린’ 경청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이화여대 장윤재 교수가 쓴 ‘포스트휴먼신학’(신앙과 지성사). 책을 읽고 나누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4대강 사업과 핵발전 사고, 대규모 축산으로 고통 받고 있는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쓴 글이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교회환경연구소의 소장으로 계실 때 여러 신학자들과 함께 성찰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강, 물 그리고 생명의 하나님’은 물론, ‘동물과 육식’, ‘물과 그 위기’, ‘핵 없는 세상’, ‘기후변화와 신 기후체제’는 여러 신학자들과 함께 한 생태신학적 성찰의 주제였습니다. 장 교수는 책을 통해 우리도 성찰하고 반응하도록 초대합니다. “그 동안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의 절망적 상황은 인간 중심주의가 낳은 결과다. 이제 ‘포스트휴먼 신학’을 해야 한다”라며. 대개 ‘포스트휴먼’ 하면 현존하는 인류 다음에 나타날 신인류를 말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늙지 않으며 원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가진 인간(이에 대해서는 한국교회환경연구소가 전현식 소장을 중심으로 열두 명의 신학자들의 글을 담은 ‘포스트휴먼시대, 생명-신학-교회를 돌아보다’라는 책을 곧...
2017.05.28
한국선교신학회 주제발표문 : 기후변화로 본 개신교 개혁의 과제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종교개혁과 기후변화 500년 전,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새로운 개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종교의 타락과 무능함을 바로잡으려 했던, 훗날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운동은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류와 지구의 역사에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은 활판인쇄의 활용을 통해 정보전달 기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고, 이는 인류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전의 역사에서 벗어나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과학기술 진보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종교개혁은 부르주아라는 신흥 계급의 욕구과 맞물려 근대민족국가의 체제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고, 근대민족국가 체제의 경쟁적인 식민지 자원의 약탈은 산업화라는 지구적인 자원의 소비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산업 활동의 시대로 인류와 지구의 역사를 이끌었습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 인류의 과학기술을 통해 이루어진 산업화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지구 온난화라는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임이 밝혀졌습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사용된 화석연료가 대기 중에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고, 비와 비례해서 지구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기후변화는 사기극이다.”라고 애써 현실을 부정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뿐이지 기후변화는,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문명과 지구 생태계의 파국은 너무나도 분명한 현실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기후변화의 원인을 500년 전의 종교개혁의 탓으로 돌리려거나, 종교개혁의 의미를 희석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이 인류의 문명사만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도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오늘 또다시 500년 전의 종교개혁과 같은 개혁운동이 일어나 기후변화의 파국으로부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창조세계의 구원이 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인류와 지구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 순간에 종교는 5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타락과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잡이가 되어야 할 종교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앞두고서 혼수상태에 빠져 제 앞가림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교회를 향한 신뢰와 기대는 바닥을 치고 있는데, 교회 안의 소위 성직자들은 자신의 위치에 무척 만족하고 행복해합니다. 이제 종교가 눈을 뜨고 자기도취로부터 벗어나 위태로운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게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인류와 지구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6번째...
2017.04.24
2017년 4월호 _ 새가정 (생명에 공감하고 연대하기 - 생태계편) 생명의 기억으로 지구 공감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봄바람이 불더니, 겨우내 황량했던 대지 위에 연한 풀이 돋았습니다. 마른 가지엔 새싹이 움트는가 하더니 꽃이 만개하였습니다. 새로이 부활(?)하는 지구 동산에서, 우리는 환히 웃고 계신 주님의 얼굴을 뵙습니다. 참 좋고, 필요하고, 거룩한 지구동산 사실 지구 동산은 하나님께서 보시고 ‘참 좋다’시며 환히 웃으셨던 곳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거닐던 곳, 하나님을 가까이서 대할 수 있었던 친근한 곳이었습니다. 힘겨울 정도로 열심히 지내다가도 ‘주께서 쉬시면 함께 쉼으로 모두가 필요로 하는 먹을거리를 골고루 얻던(레25장)’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땅을 팔라’고 억지 부리는 백인들에게 시애틀 인디언 추장이 한 말입니다. ‘이 땅과 이 땅 모든 부분은 거룩한 것임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과연 땅을 산 이들은 얼마나 그 기억에 충실하였을까요?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지구는 우리에게 낯선 곳으로 있고, 또 심히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지구 동산은 아직 우리의 심신에 깊은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친 듯 바쁘게 살면서도 문득 찾아든 봄소식에 미소 짓고, 산천이 차려주는 봄나물 한무데기와 씨앗 하나 심을 땅 한 평을 찾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오랜 동안 매일 매일 밥 먹듯 지구에서 살아와, 몸속 깊숙이 새겨진 창조질서가 아직 남아있어서일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과 탐욕에 신음하는 지구동산 그런데 지금 그 지구가 회생되지 못할 마지막 숨을 쉬듯 헐떡입니다. 기후변화와 이상기후로 갈수록 커지는 지진과 태풍, 홍수와 가뭄, 폭염 등 자연재해로 지난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마다 재앙 수준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 앞에서, 우리는 그저 한없이 작아지기만 합니다. 특히 6년 전...
2017.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