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개신교인의 신앙관과 생태위기에 관한 인식 - 우리는 우리의 현재 삶을 변경하지 않는 한에서 생태환경의 변화를 걱정한다 신익상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성공회대학교 조교수,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1. 생태위기에 관한 설문통계조사의 개요 한국 개신교인의 생태위기에 관한 설문은 총 11문항으로 환경 문제 및 기후 변화에 관한 인식(4문항), 정보 습득의 경로(1문항), 에너지 전환에 대한 인식(1문항), 환경 및 기후 운동의 참여에 관한 인식(비개신교와 개신교 공통 3문항, 개신교 대상 2문항)을 묻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지난 2018년 10월 송도에서 개최된 IPCC 총회가 “1.5℃ 특별보고서”(이하, ‘특별보고서’)를 발표한 이래 기후 ‘변화’ 논의는 기후의 ‘위기’ 내지 ‘재난’ 논의로 빠르게 옮겨가는 추세다. 하지만 문제는, 기후와 환경에 관한 운동권 내에서의 이러한 위기의식이 지구적 사회 체계(system) 및 체제(regime)를 그야말로 긴박하고도 발 빠르게 대안적 체계 및 체제로 전환하려는 지구적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특별보고서는 기후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지구의 모든 인류가, 특히 책임 있는 국가와 기업이 한마음으로 일치하여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탈성장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탈성장은 시장 중심의 지구적 경제체제가 다른 체제로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함을 뜻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시장사회체제에 익숙한 개인의 삶도 시장을 중심으로 한 방식이 아닌 다른 낯선 방식의 삶으로 전환해야 함을 의미한다. 본 설문 연구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시민들이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이러한 인식의 내외적인 출처는 무엇인지, 이에 따라 한국의 시민들은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길 원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환경과 기후 문제에 있어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포함한다. 더하여, 환경 및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교회의 활동 방식에 관한 문제도 확인하고자 했다. 2. 생태위기에 관한 설문통계조사의 중요 결과 두 가지 환경 및 기후 변화 분야에 대한 1차 통계분석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중요한 결과 중 두 가지를 요약해서 제시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인 대부분이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이러한 인식은 생존의 절박함에 기초하지 않고 삶의 질이 나빠질 것이라는 걱정이나 공동체적 세계관에 기초한 신념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개신교인들에게서만 확인할 수 있는 문제인데,...
2019.12.20
기후위기와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어디에 계세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갈 때 많이 하는 물음입니다. 우리들은 이 물음에 “서울에 있습니다.”, “강남에 있어요.”, “아파트에 삽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우리 사회에서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은 지역, 공간에 대한 물음이기도하지만, 사실은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유를 알아보기 위한 물음입니다. “아, 이 사람이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살 정도는 되는 사람이구나.” 상대방이 어떤 계층, 어떤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것을 알면, 해야 할 말, 하지 않아야 할 말이 대충 정리가 되면서 여러 가지로 대화가 수월해지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성경에서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은 어떤 의미일까요? 창세기 3장에는 창조동산의 첫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서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나무 사이로 숨어버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이 바로 “네가 어디 있느냐?”입니다. 이 때 아담은 어떤 대답을 했나요?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좀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으니 예를 들어 “저는 에덴동산 중앙에서 남쪽으로 100m 떨어진 떡갈나무 뒤에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야하지 않나요? 창조동산의 첫 사람들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이 ‘공간’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어떤 상태로 어떻게 살고 있는 지를 물으시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었다는 것을요. 만일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들은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요? 지금 우리가 우리의 존재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대답이 달라질 테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창조세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지구’라고 이야기합니다. 과학적인 용어로 ‘지구 생태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지구를 굳이 ‘창조세계’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비롯되었고, 하나님의 창조 안에 머물고 있다는 우리의 존재를 고백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창조세계에 주어진, 창조세계에 적합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창조동산의 첫 사람들이 하나님의 “네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두려움을 가졌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따먹는, 창조동산에서 허용되지 않는 삶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들은 그들과 달리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적합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IPCC라는 단체가...
2019.11.26
하나님과 이웃 - 제주 제 2공항 건설은 백지화되어야 한다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누가복음 10:25-37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하나님과 이웃 저에게 오늘 말씀은 ‘강도를 만나 쓰러진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에 대한 율법교사의 시험에 관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율법교사는 영생에 대해 율법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는 예수의 물음에 거침이 없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는 신명기의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라는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한 멋진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친김에 예수님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해서,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님으로부터...
2019.11.01
누가 녹색 십자가를 지고 부름에 따를 것인가?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최근 언론은 ‘스웨덴의 소녀가 화장실도 없는 소형요트로 영국 플리머스에서 미국 뉴욕까지 북대서양을 횡단하는 2주간의 모험에 도전’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짧게 보도했다. 기사의 제목만 봐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다뤄질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 ‘소녀의 모험’은 21세기 인류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향한 대서사의 서막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기사의 주인공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2003년생, 그러니까 한국 나이로는 17살의 스웨덴 국적의 여성 청소년이다. 그는 프란체스코 교황과도 독대하는 저명인사이자, 노르웨이 의회에서 추천하는 강력한 노벨평화상 후보이다. 또한 수백만 명의 팔로워와 함께 국제 사회의 여론을 이끄는 가장 뜨거운 정치인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관심 분야, 활동 분야가 제한되어 같은 행동 양상을 반복하는 증세를 보이는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disorder)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그레타 툰베리는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고통 받는 동물의 모습을 보여준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 때부터 그녀는 지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지구를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의 해결책을 토론했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지금까지의 해결책으로는 기후변화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야기한 기후변화의 해결책은 책임 있는 행동이 빠진 공허한 이야기들뿐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학교에서 뭘 배우죠? 정치인들은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과학자들의 말도 듣지 않아요. 그런데 내가 왜 과학을 배워야 합니까?”라며 매주 금요일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스웨덴과 유럽의 정치인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기후시위’(#climatestrike), ‘기후를 위한 학교파업’(#schoolstrike4climate),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forfuture)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270여 개 도시로 퍼져나갔다. 작년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단상에 오른 그레타 툰베리는 “당신들은 아이들을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당신들은 아이들의 눈앞에 있는 미래를 훔쳐가고 있습니다.”며 세계의 정치 수반들을 향한 연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기후위기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인 척만 한 정치인들, 당신의 침묵은 죄악입니다.”라고 연설을 하기 전, 그의 말을 새겨들었어야 할 정치인들은 이미 회의장을 빠져나갔고 그녀를 지지하는 몇몇 사람들이만이 자리에 남아 그녀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오는 9월 뉴욕에서는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로 인한 파국을 막기 위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2019.08.22
세계교회협의회 ‘전 지구적 생물다양성 위기에 관한 긴급 성명서’ 채택 장 동 현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지난 5월 27일, 스위스 보세이 에큐메니칼 센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 실행위원회에서 ‘생물다양성 위기에 대한 긴급 성명서’가 채택되었다. 이 성명서는 하나님의 피조세계가 파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포함한 생물들이 ‘멸종’의 단계에 들어섰음을 경고하고 있다. 때문에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인류의 삶은 ‘구조적이고 변혁적인 변화’를 요청받고 있으며, 세계교회가 생물 멸종에 직면하여 신앙의 자리에서 예언자적인 선포와 삶의 실천에 나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번 WCC의 성명서는 지난 5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유엔 생물다양성 과학기구’ (Science-Policy Platform on Biodiversity and Ecosystem Services, 이하 UN IPBES) 7차 총회에서 발표된 '전 지구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 평가에 대한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보고서'에 기초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100만 종이 멸종위기에 처했고, 이들 중 50만 종은 생존할 수 있는 서식공간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식물의 서식처인 숲도 2000년 이후 해마다 우리나라 전체 숲 면적에 해당하는 650만ha씩 사라지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지금의 생물 멸종 속도는 공룡의 대멸종 속도와 맞먹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생물 멸종의 주요한 원인으로 ‘인간의 자연에 대한 변용과 파괴’와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생물 멸종에 큰 원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착취와 폭력에 기초한 생산 및 소비, 폐기의 인간 삶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생물 멸종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때문에 이번 WCC 성명서에서는 ‘구조적이고 변혁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는 희망의 길로 첫째, 지속적인 소비 증가를 거부하는 선한 삶에 대한 희망을 나눌 것. 둘째, 인구 증가와 실제적 소비를 고려해서 총 소비량과 쓰레기를 줄일 것. 셋째, 지속가능성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만드는 책임의 가치를 설정할 것. 넷째,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소득 및 성차별을 해소할 것. 다섯째, 자원 사용에 있어 공정하고 공평한 이익의 공유와 보전 결정에 있어 인권을 고수하는 포괄적인 의사결정을 보장할 것. 여섯째, 무역을 포함한 경제 활동에 생태적 가치하락을 계정할 것. 일곱째, 친환경적 기술 및 사회 혁신을 촉진할 것, 여덟째, 교육을...
2019.08.14
동물행동학과 동물신학 이 성 호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원 “당신은 동물을 좋아하시나요?”라고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1,200만 명이 되는 이 시대에 이러한 반응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넘어서 생태계의 모든 동물을 존중하고 그들의 생명과 삶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그들만의 권리를 지켜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동물권이 인권만큼 소중하고 중요한가?”라고 사람들에게 묻는 다면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인간문명의 확장을 위해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으며, 그 생태계의 구성원들인 수많은 생물 종들이 피해를 입고 멸종당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안전이라는 명목 아래 많은 동물들이 고통스러운 실험 현장으로 내몰린다. 공장식 축산업과 음식산업에서 동물들은 생산을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 인간의 유희를 위해 동물들은 서커스와 같은 오락 산업에서 학대받고, 동물원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갇혀 지낸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우리들에게 있을까? 이제 우리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한 모든 인간은 나치다”라는 동물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말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인간 아닌 동물들에게 있어서 비참한 현실이 형성된 배경에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오래된 인식과 믿음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고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과 믿음이다. 인간만이 이성적 존재이고, 사회를 형성한다. 인간만이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고 문화를 향유한다. 기독교 신학의 역사에서도 인간만이 영적 존재이고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반복되었다. 그러므로 “동물도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아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불편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십 년간 과학은 한편으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믿음에 도전을 해왔다. 예를 들어, 동물들의 마음에 대한 진화론적, 생태학적 연구를 하는 (인지)동물행동학은 동물들의 감정, 자의식, 사회성, 도덕성, 문화 등을 주로 연구한다. 폭넓은 학제적 연구들의 결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동물들이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자기를 인식할 수 있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도덕적 행위를 하며, 심지어 일종의 문화를 형성하기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들은 여타 동물보다 인간이 우월함을 보여주는 과거의 전제들을 무너뜨리며 근현대사회 밑바탕이 되는 인간 중심주의의 해체에 일조한다. 이는 최근 한국 인문학계의 키워드였던 포스트휴머니즘(인간의 확장으로서의 포스트휴머니즘이 아닌 탈인간중심주의적 포스트휴머니즘임을 밝힌다.)과 맥을 같이한다....
2019.08.14
개발, 그 오래된 거짓말 : 2019년 종교환경회의 종교인 대화마당 임 준 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나무 한그루가 베어지고, 마지막 강물이 오염되고, 최후까지 살아남은 마지막 물고기 한 마리가 그물에 걸리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그때야 비로소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크리족 인디언 시애틀 추장이 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은 개발과 돈벌이를 위해 자연을 마음대로 하는 지금의 인간 문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2019년 종교환경회의 종교인대화마당은 ‘개발, 생태계는 어떻게 붕괴되는가?’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의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종교환경회의는 각 종교 환경단체들이 환경현안에 대한 행동을 함께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도 시작부터 함께 해왔습니다. 종교환경회의는 지난 세월 새만금 사업, 4대강 사업,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등 개발 문제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이번 2019년 종교인대화마당의 주제발제는 제주 제 2공항과 제주 난개발 문제였습니다. ‘육지사는 제주사름’ 대표 박찬식 교수님을 모셔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찬식 교수님은 제주도는 관광을 위한 투자라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여러 개발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제주도의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관광단지와 리조트 호텔을 위해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은 30%가량 훼손되었고, 지하수 고갈현상과 오폐수로 인해 근해 어업이 힘들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으며, 관광객들로 인해 발생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문제에도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감귤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오르는 땅값으로 인해 덩달아 오르는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감귤농사를 포기하고, 개발업자들에게 땅을 팔아버리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런 악순환으로 제주 경제는 관광업에 종속이 되었습니다.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 즉 과잉관광 때문입니다. 하와이의 1/15면적인 제주도에 한 해에 하와이의 두 배 가까운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고, 관광객을 위한 과도한 시설로 인해 제주도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어서 함께 이야기 나눈 문제는 골프장 개발이었습니다. 개발의 현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문제가 바로 골프장입니다. 강원도를 중심으로 골프장 문제과 토지강제수용의 문제를 놓고 싸우고 계신 원주 녹색연합 대표 박성율 목사님은 골프장 사업이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와 같은 농약사용으로 땅을 오염시키고, 숲을 파괴하는 사례를 설명하며 골프장 개발사업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녹색연합 배재선 팀장은 이러한 개발과 파괴로 인해 병들어가는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리왕산의 사례를 통해...
2019.08.14
에너지 자립 교회를 준비하자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국내 굴지의 통신회사에서 미팅 요청이 왔다. 교회의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는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환경운동연대를 통해 시범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교회를 섭외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간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교회 에너지 절전소’ 사업을 진행해 온 것을 검색해보고 연락을 한 것이라 한다. 사업의 내용은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비용 지출을 절감하는 관리 시스템에 대한 것이어서, 과연 이 사업에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가 관여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이 된다. 하지만 그동안 기독교환경운연대가 한국 교회와 함께해온 에너지 절감 사업을 대기업에서도 인정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교회가 에너지 측면에 있어서는 대기업도 주목하는 중요한 소비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교회는 비산업 부문에서 가장 큰 에너지 소비처 가운데 하나다. 에너지 역시 시장에서 거래되는 하나의 상품이다. 에너지 시장에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생산자들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그런데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핵폐기물 등의 환경오염 물질이 다량 발생하여 지구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 때문에 에너지 소비자들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과 함께 태양광, 풍력, 지열을 이용한 재생가능 에너지와 같은 친환경적인 에너지의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에너지 소비자로써 자사의 사용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는 협약인 ‘RE100’(Renewable Energy 100%)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직접 재생가능 에너지를 생산하여 소비하는 에너지 프로슈머(Prosumer)로 변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교회에서는 친환경적인 에너지 소비자로써의 적극성이 보이지 않는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는 원론에는 모두 동의를 할 것이다. 이제는 지금 청지기가 어떤 일들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각론을 만들기 위해 다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우선 교회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적극적인 노력과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너지 소비가 가장 많은 부분은 계절적인 냉난방 에너지이다. 냉난방 온도를 적정온도로 유지하는 것, 에너지 효율이 높은 냉난방기기를 사용하는 것, 단열 등으로 낭비되는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비를 상당부분 절감할 수 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한 회원 교회는 주보에 교회가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위해 적정온도로 냉난방을 하고 있음을 알리고, 여름철에는 정장이 아닌 간편한 복장을, 겨울철에는 내복을 갖춰 입는 따뜻한 복장을 권면하고...
2019.08.13
개발을 바라보는 성서의 시선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성서는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 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성서는 때로는 사람들의 권력이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의 선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성서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권력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슬러 불의와 갈등과 죽음을 불러오는 악의 도구였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성서는 악의 도구로 사용된 사람들의 권력이 개발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되며 견고해지고 있음을 경고하며, 하나님의 통치는 권력에 의한 개발이 중단되고 창조세계의 온전성이 회복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성서의 이야기들을 통해 기독교가 개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짧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11장은 대홍수 사건 이후 들판을 개발하여 도시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먼 들판을 찾아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4절, 새번역)라고 이야기하며 돌 대신 벽돌을 굽고, 흙 대신 역청을 사용하여 도시와 하늘에 땋을 높은 탑을 짓는다. 성서는 이들의 시도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뒤섞고,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심으로 결국 중단되고 말았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창세기 11장은 도시의 개발을 하나님께서 우려하셨기에 집적 개입하셔서 서둘러 개발을 제지하셨다는, 하나님께서 개발을 반대하셨다는 성서의 첫 번째 이야기인 것이다. 개발에 대한 하나님의 우려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출애굽기 1장의 이야기이다. 이집트에 머물게 된 야곱의 후손들은 이집트 사람들에 의해 도시를 건설하는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노예가 되고 만 것이다. 그들은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끌려 나갔”(11절)으며,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일이나 밭일과 같은 온갖 고된 일”(14절)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이후 성서는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고 차별과 억압이 없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는 광야의 멀고 험난한 여정으로 인도하셨다고 이야기한다. 개발 사업은 결국 사람들의 권력의 집중화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차별하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의의 구조였던 것이다. 성서는 개발이 가장 먼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의와 평화를 허문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는 이집트 사람들의 개발의 피해자였던 히브리 사람들이 개발의 불의의...
2019.08.05
우리는 자연에서 머물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보게 되던 '셰프'들의 요리가 사라졌다. 대세는 '집밥'이다. 멸치 다시마를 우린 육수에 양파, 고추, 두부 한 줌 넣고 끓인 된장찌개가 미슐렝 가이드의 별들을 잠재운 것이다. 여행도 추세가 변하고 있다. 유명 관광지의 특급호텔 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민박에서 하룻밤을 조용히 보냈다는 글에 사람들은 더 많은 '좋아요'를 누른다. 거기에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사진이 보태지면 부러움과 질투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화려한 인위적인 것보다 소박한 자연스러운 것에 사람들의 마음이 닿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마음을 먹고 시간과 공을 들여야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자연은 본래 우리가 머물던 곳이다.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가 시작된 것은 불과 200여 년 전, 특히나 최근 몇 십 년 동안 사람들은 자연과 차단된 인공의 도시를 만드는 데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이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다시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쉼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인공의 도시가 아닌 숲과 들, 강과 바다가 있는 자연에서 진정한 쉼을 누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람은 자연에서 살도록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오감은 자연에서 살아가기 위해 발달된 감각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는 눈과 코, 귀, 입과 피부의 감각을 고르게 사용하여 자연의 정보를 파악하고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도시라는 인공의 공간 안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각과 청각만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이는 결국 신체의 균형을 파괴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 오감의 균형적 사용을 통해 신체의 균형을 회복하면서 스트레스를 줄이게 됨으로써 쉼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자연과 사회정책에 대한 많은 저술을 하고 있는 리처드 루브는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이란 책에서 자연과 차단된 도시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인지능력이나 관계성, 창의성이 저하되어 발생하는 문제를 '자연결핍장애(Nature-Deficit Disorder)'라고 이야기한다. 리처드 루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자연 안에서 감각과 의식을 성장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오감을 사용하여 판단하는 직감을 발달시켜, 스스로의 판단력과 자존감을 높임으로써 자연결핍장애가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자연을 일시적으로 체험하는 교육만이 아니라, 도시 자체가 자연을 체험하는 공간이 되는 '생태도시'에...
2019.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