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 <디그로쓰 Degrowth> (요르고스 칼리스 외 지음, 우석영, 장석준 옮김, 산현재, 2021년)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어느 나라가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강대국이냐 약소국이냐를 이야기할 때, 조금 더 노골적으로 잘 사는 나라냐 못 사는 나라냐를 따질 때 흔히 일정 기간 동안 한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시장 가치를 합한 수치인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을 따져보게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내총생산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차이로. 하지만 최근 2위 중국이 경제성장을 통해 미국의 국내총생산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머지않아 경제성장이 더 가파른 중국이 미국의 국내총생산을 따라잡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총생산을 국민의 수로 나눈 1인당 국내총생산은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2017년 UN 통계에 의하면 당최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리히텐슈타인 공국이 모나코와 룩셈부르크를 제치고 1인당 국내총생산이 가장 높은 나라다. 미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으로는 간신히 9위, 중국은 중간 정도 되는 세계 75위이다. 대국들로서는 좀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기후위기고 나발이고 간에 오로지 경제성장뿐이다. 부탄은 국내총생산으로는 별 볼 일이 없는 126위의 나라이다. 하지만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에서는 항상 1위를 차지한다. 국민총행복지수는 평균행복(Average Happiness), 행복수명(Happy Life Years), 행복불평등(Inequality of Happiness), 불평등조정행복(Inequality-Adjusted Happiness)을 통해 각 국가의 국민들이 어느 정도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를 측정한 수치다. 부탄이 국민총행복지수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탄 사람들은 경제성장 대신 불교의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가 지구를 괴롭게 만든다는 이야기에는 선뜻 동의한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성장은 이로운 것이고 또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생물다양성감소, 기후위기. 사실 경제성장이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인데도 말이다. 또한 경제성장은 사회의 불안, 소득불평등, 공동체의 파괴, 배타주의와 능력주의,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단 하나의 원인이다. 때문의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경제성장의 망상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탈성장, 혹은 적정성장(Degrowth) 운동이 바로 그 방법이다. <디그로쓰>는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전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경제성장 없는 그린뉴딜, 보편 기본 소득, 보편 돌봄 소득, 보편 기본 서비스, 커먼스(Commons, 공공자산) 회복, 노동시간 단축,...
2021.10.29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추수감사주일을 11월 말로 보통 정하여 지키고 있다. 오래전부터 지켜온 것이라 그냥 지키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한반도에서는 추석이 전래의 추수감사의 의미를 담은 명절인데 굳이 11월 셋째 주 주일을 정하여 추수감사의 주일로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여 날짜를 바꾸는 교회들도 종종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른 절기들만큼 날짜가 중요한 날은 아니다. 한해의 수확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날로서 날짜보다는 지키려는 ‘의미’ 자체가 중요한 날인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결국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이 근간이고, 값없이 주어지는 ‘은총’에 대한 ‘감사’는 받는 이의 당연한 반응이다. 이를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생각해보면 역시 삶에 은총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추수감사주일에는 우리를 배불리는 오곡백과 역시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고백이 담겨있다. 안성진씨가 지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찬양이 있다. 다니엘의 세 친구라고 부르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과 활활 타는 화덕 앞에서 했다는 고백의 말이나 하박국 예언자의 노래가 떠오르는 가사다. 찬양은 ‘감사’가 상황과 환경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뜻을 믿고,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는 믿음의 태도 말이다. 당장 눈앞의 현실에 사로잡혀 좌절과 절망,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넋두리처럼 하는 것보단 더 큰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정부의 2050 탄소중립위원회 국민참여분과와 함께하는 간담회에 종교환경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한 적이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이 위원회는 2050년까지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흡수되는 온실가스를 같은 양으로 만들어 더 이상 온실가스의 농도를 늘리지 않는 사회로의 전환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서 사회시스템의 변화와 대전환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전제 아래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한 여러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하지만 산업계의 반발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내놓은 시나리오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어 수많은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기술분과의 위원장과 산업분과의 위원장이 차례로 나와 시나리오 안에 대해 설명하며 이들은 지금 당장의 상황으로는 이 시나리오 안도 사실상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고, 이쯤에서 만족하고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그러나 당장 처한 현실은 엄혹하고, 겪을 미래는 참혹한데 돈벌이가 중요할까? 당장 먹고 살 오곡백과를 심고 기를 땅이 해수에 잠길...
2021.10.28
신앙으로 일구는 생명의 경제 “탐욕의 경제를 넘어 생명의 은총으로”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누가복음 12장 15절) 오늘 우리를 지배하는 학문은 경제학이다. 경제학자 플로라 마이클스(Flora Michaels)는 그의 저서 “모노컬처(Monoculture)” 에서 어떻게 경제학이라는 한 가지 이야기가 세상 모든 것을 바꾸게 됐는지 설명한다. 경제학은 모든 공공정책의 모국어이고 생활의 언어이며, 사회를 형성하는 세계관과 사고방식이다. 단연코 21세기를 지배하는 것은 경제 이야기이다. 이는 거대한 경제학 담론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쉽게 우리 삶에서 공감하는 말이다. 경제적인 감각은 개인과 가정, 전체 사회의 행동방식을 결정 짖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 지금 이순간도 돈을 벌기위해 일하고 있고 매 순간 가장 효율적인 소비와 지출을 고민한다. 인생 노년까지 어떻게 경제적 생활을 할 것인지 재테크를 고민하고 주식과 부동산으로 관심을 집중한다.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효용(Utility)이다. 이 개념은 우리가 물건을 소비할 때 얻는 만족이나 행복을 뜻한다.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시장으로부터 얻을 때 값을 지불하는 효용을 계산해서 경제지표로 삼는다. 이 개념에 따르면 사람들은 소비가 증가할수록 만족하고 행복해진다. 따라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소득이 증가하면 삶의 만족과 행복도 증가한다. 경제학은 이 효용개념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그래프로 나타낸다. 매번 언론을 통해 접하는 GDP 성장곡선은 효용개념을 도식화 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GDP는 증가하고 경제는 발전한다.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면 사회는 더욱 발전하고 행복해진다는 결론에 이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진보를 동일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경제개발과 성장논리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사회적 생산과 재화가 늘어나면 행복해진다던 경제학의 함수와는 달리, 경제적 불평등은 커지고 기후위기는 심화되며 심지어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들은 멸종에 직면해 있다.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인 과학의 학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허황된 욕망을 부추기는 탐욕의 학문으로 비판을 받는다.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를 저술한 도넬라 메도우(Donella Meadow)는 “경제 성장은 인류가 찾아낸 가장 어리석은 목표”라고 비판했다. 기후위기의 사회구조적 토대는 시장경제체제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량폐기에 있다. 탈성장 담론은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사회학자 홍덕화는 “기후위기와 코로나는 경제성장과 성장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재 확산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탈성장의...
2021.10.14
생태적 무기력 넘어서기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20년) 독서 후기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후변화가 만든 생태적 위기로 세상은 대멸종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지난 1992년 리우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뒤로 줄곧 이야기된 사실이다. 그런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으니 내가 잘못된 건가? 예민해지고, 화가 가득차고, 의심하게 되고, 결국 무기력해진다. 마침내 일상생활의 소통과 관계에 장애가 발생한다. 증상은 분명하지만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기후 우울’(climate grief), 혹은 ‘생태 불안’(eco-anxiety)이라고들 한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이나 생태적 위기에 대해 이야기해도 변하지 않는 사회에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증상이다. 세상이 바른 방향으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완전한 치료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증상을 완화시키는 방법은 있다. 아직 감춰진 보석같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창조세계의 온전성’(integrity of creation)을 몸과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 대자연이 아니라도 좋다. 보는 눈과 듣는 귀만 있다면 책상 위의 작은 화분에서도 하나님의 기운을 입은 생명의 섭리는 여전하다. 그리고 그 오랜 야생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책 한 권. 당신은 고귀한 존재이며 당신의 시간은 다시 있지 않을 신비의 세계라고 속삭이는 책 한 권 역시 무기력에 빠진 나의 손을 잡아준다. 메리 올리버는 서른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낸 미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1935년에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메사추세츠 프로빈스타운에서 지내다 2019년에 플로리다에서 잡초가 우거진 모래언덕에 묻혔다. 그녀는 진정한 바닷가 습지 안내자였다. 그녀의 글에는 습지에서 살아가는 새와 물고기와 동물들과 나무와 풀에 대한 눅눅하고 포근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냥 저절로 아름다운 것들에 관한 그녀의 낮고 작은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상처의 위로를, 절망의 희망을 찾았다. 밤새 내 마음 불확실의 거친 땅 아무리 돌아다녀도, 밤이 아침을 만나 무릎 꿇으면, 빛은 깊어지고 바람은 누그러져 기다림의 자세가 되고, 나 또한 홍관조의 노래 기다리지(기다림 끝에 실망한 적이 있나?). (천개의 아침, 71쪽) 시인이 된다는 것은 깊은 영혼을 간직하기 위해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사가 매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맑은 언어를 빚어내는 일인 듯하다. 그래서 진즉에 시인이 되는 것은 포기했다. 그래서 늘 우왕좌왕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메리 올리버와 같은 이가 찾아낸 지구의 거룩한 이야기에 마음 한 자락 굳어버린...
2021.10.08
한국교회의 의미 있는 첫걸음, '2050년 탄소 중립 선언' 이양환 간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인간의 책임과 역할 기후위기, 전 지구적 위기이다. ‘전 지구’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같이, 이 위기를 맞은 생물종은 단순히 인간만이 아니다. 이 푸른 별에 발붙여 살아가는 모든 생물종들이 이 위기를 동일하게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후위기”라 불리는 이 급격한 환경 변화의 책임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 급격한 기후 변화의 주도적인 책임이 단연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인간은 이 별의 역사에서 비교적 긴 시간을 존속해온 것은 아니었으나, 합리성이라는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법들을 익혀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합리성의 바탕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여러 생물종의 멸종을 이끌어내고, 여러 작물의 유전자를 조작해왔고, 수많은 탄소를 배출해왔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의 과오들을 우리의 잘못으로 ‘판단’하고 ‘인식’하는 것 또한 인간이 지닌 고도의 합리성 덕분이다. 이를 통해 변화하는 기후의 비정상성을 판단하고 위기상황을 인식하고, 어떻게 다시 이 푸른 별을 정상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결국, 이 별이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에 대한 책임과 역할 모두가 인간에게 가장 크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은 지금까지 스스로의 합리성을 올곧게 사용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다. 언제나 이기와 욕망의 문제가 이를 왜곡시켜왔기 때문이다. 사사기에서는 한 시대의 암흑기를 표현하며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삿17:6)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현실에 비추어 말 그대로 적확한 표현이다. 각기 인간은 자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지만, 참 옳은 방향은 각자의 이익만을 따져서는 결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시험대에 오른 인간이 심판받을 것은 단지 고도의 합리성만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합리적인 해결책을 인류 공동체가 함께 수행할 것인가. 진정으로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사과하며 재발을 방지할 것 인가하는 심정적이고 도덕적인 차원도 함께 심판받을 것이다. 전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 노력 기후변화는 이미 30년 전부터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리우선언’과 ‘의제 21', '생물다양성 보전 협약’, ‘기후변화협약’ 등이 채택되었던 <환경 및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UNCED)>에서부터 국제적인 사회 논제로 부상해왔다. 더불어 1997년에는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규정하는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가 일본 교토에서 채택되었고, 이후 2015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선진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가 감축 의무에 참여하는...
2021.10.01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고 말 것이다 "너희는 망한다! 주님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자들아, 왜 주님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다." (새번역, 아모스 5장 18절) 예언자들은 멀쩡한 나라, 아니 부유하고 강성한 조국을 향해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했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해야 했다. 심지어 망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서는 침략군에게 투항해야 한다"고 선포하는 이도 있었고, 곧 도래할 끔찍한 결말을 대중에게 전해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러워 자기 운명을 저주한 사람도 있었다. 예언자들은 포로가 돼서도 마른 뼈가 살아나는 기적을 전해야 했고, 불타고 잘려 버린 그루터기에 남은 희망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읽을 줄 알았고, 그 속에 놓인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운명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런 운명에 처한 이유가 이스라엘이 스스로 저지른 죄악 때문이라는 사실에 애타게 아파했다. 최근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6차 보고서 중 제1실무그룹 보고서가 발표됐다. IPCC는 이 보고서를 제54차 총회에서 승인했다. 2018년에 나온 '1.5℃ 특별 보고서'의 내용도 대중들에겐 아직 낯설고 어려운데, 이번 보고서는 사실상 '1.5℃ 특별 보고서'의 결론보다 더 우울한 전망을 담고 있다. 앞선 보고서에서 경고했던 시기보다 약 10년가량 위기의 시점을 앞당겨 전망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극지방 빙하가 녹고 해수면 상승이 일어나며, 해마다 발생하는 극단적 기상이변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하고, 지금 멈추지 않는 한 이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고 전망했다.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통해 결과를 추론하지만, 실제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추론·전망보다 더 심각한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한 경고가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다 망하고 말 것"이라는 예언자들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기후 위기,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8월 12~19일 전국 만 14세 이상 69세 이하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기후 위기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3%p). 다가올 대선의 중요 의제로 기후 위기를 다뤄야 한다는 응답이 91.1%에 달할 만큼 기후 위기는 이미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는 중대한 문제가 됐다. 응답자 중 97.7%가 기후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으며, 80.1%는 이 문제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독교인들의 위기의식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019년...
2021.09.17
그린 엑소더스(Green Exodus) : 기후위기 시대, 생태적 전환을 위한 한국교회의 여정 제2편 : 회색에서 녹색으로, 기후-녹색교회 세우기 글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한국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기후변화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논의 주제가 된 것은 이미 30년 전 일이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 및 개발에 관한 UN회의'에서는 ’생물다양성 보전 협약‘과 함께 ’지구온난화 방지협약‘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1997년에 열린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 회의‘에서는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목표를 지정한 ’교토 의정서‘가 채택된다. 그리고 2015년에 파리에서 열린 ’UN기후변화 회의‘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가 참여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최초의 협약인 ’파리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었고, 2018년 인천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회의에서는 산업화 이후 계속된 지구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특별보고서를 채택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은 ‘기후악당국가’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논의에 방관자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최근에야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정책과 법안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0년에 ‘한국판 그린뉴딜 계획’을 통해 총 220조 원의 투자를 통해 저탄소 경제로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겠다는 구상과 ‘대한민국 탄소중립 선언’을 발표한다. 또한 2021년 5월에 국가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하여 8월에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초안을 발표했다. 한편 국회에서는 2020년 9월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을 채택하였고, 2021년 9월에는 탄소중립과 관련된 법안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편 지방정부에서는 지자체마다 ‘탄소중립 선언’을 잇따라 발표하였고, 산업계에서도 업계별 탄소중립 계획 발표와 함께 RE100 캠페인과 ESG 경영에 대한 논의 확대되고 있다. 또한 시민사회에서는 2018년부터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여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결성하고, 부분 지역별로 기후위기 비상행동 조직이 이루어져 정부와 산업계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2050 한국교회 탄소중립 선언 이에 교계에서도 2020년에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기독교 신학포럼’이 조직되어 정기 포럼을 진행하고 있고,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는 기후위기 대응 집중사업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2021년 3월에는 기독교사회단체들과 참여교회를 중심으로 ‘기후위기 기독교 비상행동’이 결성되어 수요기후행동과 월례 기도회, 기후행동학교를 진행하고 있으며, 5월에는 한국기독교회회협의회 소속 9개 교단장과 연합기관 대표가 참석한 자리에서 ‘2050 한국교회 탄소중립 선언’을 발표하고 한국교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비상행동으로 생태목회...
2021.09.06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김상준 지음, 아카넷, 2021년) 서평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장자> 1편 ‘소요유’에는 날개의 길이가 삼천리이고, 하루에 9만 리를 날아간다는 ‘붕새’가 묘사된다. 북명 바다의 큰 물고기가 변신한 붕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6개월 동안 남명 검은 바다로 큰 날개짓을 하며 날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붕새는 상상속의 새일 뿐이라고? 감상준 교수는 붕새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머리 위로 유유히 날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아시아 대륙의 시베리아 땅과 지구에 쏟아진 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응축하고 있는 뜨거운 태평양 사이의 대기의 흐름으로 발생하는 계절풍을 붕새로 본 것이다. 지구의 한극과 열극 간의 기후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동아시아 지역은 수만 년 동안 뚜렷한 4계절과 풍부한 강수량을 바탕으로 내부적 확장을 지향하는 소농 중심의 농경 문명이 성장했다. 특히 근대 이후 고도화된 소농농업의 생산성은 동아시아의 인구와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며 ‘내장적’ 번영을 누린다. 반면 서구유럽은 근대 이후 전쟁체제를 바탕으로 한 외부적 ‘팽창’에 골몰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식민지 지배와 약탈을 통한 성장한 근대 서구문명은 결국 동아시아마저 움켜쥐게 된다. 우월한 서구유럽이 열등한 동아시아를 점령하는 ‘서세동점’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근대서구유럽 문명은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만들어 팽창해야만 하는 문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서구유럽의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농민, 노동자, 여성, 그리고 지속적인 자연의 지배와 약탈은 결국 사회경제적, 정치군사적, 기후환경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 기후환경의 위기는 대파국 혹은 대전환이라는 문명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에 이르게 했다. <붕새의 날개>의 저자는 이제 자연의 흐름, 지구의 흐름, 천하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만이 파국이 아닌 성공으로 귀결하는 방향이고, 다시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바로 초기근대 동아시아의 내장 문명의 원형을 바탕으로 한 탈근대적인 내장 문명을 향해 문명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내장 문명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평등을 증진시키고,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를 해소하며, 이념적 패권다툼이 아닌 상호협력을 이루며, 인류의 생태의식을 각성하고, 새로운 과학의 성장을 도모하는 문명이다. 우월한 힘을 통한 지배와 폭력 대신, 수평적 협력을 통한 생산력과 생산력의 확장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저자는 문명의 전환은 근대문명을 종결하고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20만 년 호모 사피엔스 인류사 최초의 사건이...
2021.09.02
창조의 계절 1989년 동방 정교회의 총대주교는 ‘피조물을 위한 기도의 날’을 선포했다. 9월 1일부터 시작되어 10월 4일까지 이어지는 이 기간을 세계교회가 ‘창조절’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키는 전통은 ‘피조물을 위한 기도의 날’로부터 비롯되었다. 전통적 교회력에서는 성령강림 후 주일이 길게 이어지는 기간이다. 그 중 다섯 주를 특별히 ‘창조절’로 지키게 된 것이다. 창조절은 산업화 이후 벌어진 생태계 파괴와 생물다양성 상실과 멸종, 지구 자체가 지속 불가능한 상황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교가 내놓은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의 창조절 주제는 ‘지구를 위한 희년’(Jubilee for the earth)이었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를 비롯해 다양한 교단 및 단체가 참여하여 자료집을 내기도 했다. ‘지구를 위한 희년’ 자료집은 성서의 희년처럼 해방과 쉼을 통해 폭력적으로 착취당하던 모든 이들, 사람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땅에 이르기까지 해방과 쉼을 얻는 생태적 전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2021년 창조절의 주제는 ‘모두를 위한 집(A home for all)’이다. 아마도 ‘모두를 위한 집’은 지구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집에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집인 이 지구라는 공간에 우리를 살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말이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기후위기가 삶을 앗아가는 공간에서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을까? 내 이웃이 기근으로 인해 굶어 죽고, 때론 폭우에 실종되고, 혹은 온열 질환으로 수백 명이 사망할 때, 그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이해될까?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선선한 바람한 점 불어오지 않는 단칸방에서 한낮의 뜨거운 열기 뿐 아니라 열대야를 나야하는 이들에게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곡식이 메말라 죽어버리고, 땅은 윤기 하나 없는 푸석푸석한 모래가 된 광경을 보는 농부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양떼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헤매지만 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막으로 변해버린 광경을 목격한 유목민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로 비춰질까? 그리고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전염병이 창궐하여 우리의 삶을 멈출 때 과연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는가? 물론 삶에는 수많은 질곡이 존재하고, 폭염, 폭우, 가뭄, 홍수, 기근과 사막화, 전염병의 창궐이 세상에 없던 일은 아니었다. 역사에는 이런 일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매해마다 전 지구적 현상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은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2021.08.31
그린 엑소더스(Green Exodus) : 기후위기 시대, 생태적 전환을 위한 한국교회의 여정 제1편 : 그린 엑소더스, 생태적 전환을 향한 여정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문명과 기후 고고학적인 발견에 의하면 인류가 소위 문명을 형성한 것은 기원전 10,000년 이후의 일이다. 세계 4대 문명이라고 하는 메소포타미아, 황하, 이집트,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6,5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무렵에 강을 이용한 관개농업이 가능해지면서 번영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왜 인류는 기원전 10,000년 이전에는 문명을 이루지 못했을까? 지질학은 그 이유를 기원전 10,000년이 되어서야 258만년 가량 계속되었던 빙하기(Ice age),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가 끝나고 비로써 온화한 기후의 ‘홀로세’(Holocene)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원전 10,000년 이전의 유라시아 대륙은 두껍게 얼음이 쌓여있어 사람들이 문명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었고, 기원전 6,000년 무렵 고온다습한 ‘홀로세 기후 최적기’를 거치고 나서야 현재와 같은 생태환경이 만들어졌다. 인류의 문명이란 온화한 날씨라는 기후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써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문명의 탄생 이후로도 기후는 인류 문명의 흥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어진 소빙기(little ice age)에는 식량생산 감소로 인한 인구감소와 집단적 이주가 발생했다. 특히 몽골 초원에 닥친 추위는 칭기즈 칸의 몽골제국 건설의 동력이 되어 유럽 문명의 민족대이동으로 인한 연쇄적 흥망을 연출했다. 또한 이 시기에 유럽에 패스트 팬데믹이 발생했던 것 역시 식량 확보를 위해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빈번해졌기 때문이었다. 기후변화, 그리고 기후위기 지난 8월 9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6차 보고서의 일부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기후변화는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 분명하고, 현재대로라면 불과 10여 년 후에는 세계 평균기온 상승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어 극지방의 빙하가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며, 생태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하게 될 것이고, 인류는 극한의 폭염, 가뭄, 홍수, 화재, 한파를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UN난민기구에서는 지금도 기후적 요인으로 인한 난민, 기후난민 발생이 해마다 2,500만 명을 넘어 전쟁으로 인한 난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불과 수년 안에 기후난민은 억 단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현재 지구 생태계와 인류 문명에 가장 심각하고도 급박한 위기를 발생시키고 있는 요인이다....
2021.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