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 지구를 살릴 것이다 송 영 걸 전주대신교회 담임목사 생태적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거룩한 피동성’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룩한 피동성’은 존재하는 모든 개별자가 미지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자연의 신비 앞에 자신을 단순하게 맡기는 것이 아닐까? 조금만 눈을 들어 생태계를 향해 렌즈를 들이대면,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의 힘으로 자랐다고 우쭐대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생태적 삶을 산다는 것은 겸손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머무는 목양실 앞에 정원이 하나 있다. 거기엔 이름 있는 꽃도 있지만, 한 번도 이름을 불러 본 적 없는 꽃들도 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천사의 나팔’, 그 둘레에 야생화와 나그네새가 심어 놓고 간 꽃들의 향연에 나는 매일 취한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정원, 나는 하루 세 번 정원 속 제단을 향해 경건한 예배를 드린다. 정원 속 내 님들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춘다. 가느다란 햇빛이 얼굴에 닿자 수줍고 간지러워 고개를 돌린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나를 불러 나가보니, 님들에게 즐거운 소식이 왔나 보다. 어느 누구 하나 나를 보며 미소 짓지 않는 이들이 없다. 찾는 이들이 많아 지쳤을 텐데...천사의 나팔은 흔들림 없이 나를 경외심으로 올려다본다. 내게 절을 하는 것 같아 나도 맞절을 한다. 천사의 나팔은 악마의 나팔과 전혀 다른 꽃이다. 독말풀로도 불리는 악마의 나팔은 하늘을 향해 꼿꼿이 피어난다. 이와 달리 천사의 나팔은 지면을 향해 다소곳이 피어난다. 그 꼿꼿함이 서양 사람들 눈에는 하나님과 맞서려는 교만함으로 비춰졌나보다. 그래서일까? 천사의 나팔의 겸손함이 어두운 밤 나에게 당당한 자태로 보여 지는 것은 단순한 착시일까? 그때 나는 알았다. 천사의 나팔은 자신이 어둠에 있을 때 주목하는 이 하나 없다고 느낄 때 오히려 당당하게 된다고.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아 6:4) 어여쁘고 당당하고 씩씩하다. 그렇게 오늘 일어난 일들을 쏟아낸다. 자세히 보면, 누구하나 같지 않고, 다른 색상을 걸치고 있다. 무심한 듯 그리고 위태로운 듯 흙속에 발을 파묻고 위태롭게 서 있는 님들이 나의 정원에 모여 있다....
201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