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탈핵,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

작성일
2021-04-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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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에 부쳐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없다.
1942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살상 무기 개발계획이 시작되었다. 원자폭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살상 무기는 히로시마에서 15만 명 이상, 나가사키에서는 7만 명 이상을 죽였다(이때 일본에 체류 중이던 조선인들 중에도 사망자와 피해자가 다수 발생했다). 핵무기 두 발에 전쟁은 끝이 났다. 피해도 피해이거니와 이미 핵무기라는 비대칭 전력이 등장한 이상 싸움에 승산이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순식간에 수많은 이들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 엄청난 위력의 무기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너도나도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혹자는 3차 대전은 핵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쟁 이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제목의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핵을 무기가 아닌 전기를 생산하는 일을 비롯해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세계의 수 많은 국가들이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를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 연설은 활용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이후 냉전체제로 돌입한 미국과 소련 외에도 수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냉전체제를 명분으로 미국과 소련 역시 더 많은 수의, 더 강력한 핵무기 보유를 위해 애써왔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은 핵무기의 개발을 억제하지는 못했으나 오히려 다른 산업의 발전을 불러왔다. 바로 핵발전이었다.
핵무기와 핵발전은 핵분열 반응을 폭발적으로 일으키느냐 적당한 수준에서 통제하느냐의 차이를 가질 뿐 결국 핵분열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핵발전은 핵분열에서 발생한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기껏 물을 끓여 증기로 만들어 터빈을 돌린다는 사실 때문에 평화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핵무기와 하등 다를 바 없이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들 발생시킨다. 지속적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처치 곤란한 독성 폐기물이 핵발전에서 발생한다. 게다가 그 독성 폐기물은 족히 10만 년은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방사선 동위원소를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핵발전소는 기체, 액체의 방사성 물질을 상시 방출하고 있다. 서울대 백도명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핵발전소 인근 여성 주민들에게서 유의미한 정도로 갑상선 암 발병율이 높게 나타났다. 갑상선 암은 방사선 피폭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 질병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체르노빌이 있었고, 후쿠시마가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핵’과 ‘평화’가 얼마나 상반되고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모 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인터뷰에서 “핵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사람을 죽이는 하나님의 선물도 있는지 되물을 일이다.

오염수 방류는 사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4월 13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했다.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는 갑작스러운 뉴스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일본 정부는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공식화할 기회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2011년에도 1만1500t을 주변국과 협의 없이 방류했다. 관리 부실로 오염수가 누출되기도 했고, 2013년 8월에는 당시 도쿄전력의 발표에 따르면 리터(ℓ)당 8천만 베크렐(Bq)의 스트론튬이 포함된 고농도 오염수 300t이 누출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아마도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난 날부터 운명은 이렇게 결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런 지진해일이 일으킨 핵사고로 인해 지역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 후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핵사고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사고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가장 이슈가 되었던 세슘의 반감기가 30년이다. 이 말은 30년이 지나면 그 양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 사이 생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과 같은 방사선을 방출하는 채로 자연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물론 절반으로 줄어든 세슘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어떤 전문가들은 반감기가 한 열 번쯤 지나면 그 양이 미미해져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게 따져도 300년이다. 사실상 핵발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핵종들 가운데 세슘은 반감기가 긴 편에 속하지 않는다. 핵폐기물 처분장을 결정할 때 10만 년간 지하수와 지진 등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지반을 찾는 이유가 바로 방사선의 반감기 때문이다.
핵을 두고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한번 핵분열을 시작한 핵연료는 그 열기가 쉽게 식지 않기 때문이다. 연료로서 가치가 다한 연료봉을 꺼낸 직후 연료봉을 저장 수조 안에 보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한참 가동 중이던 핵발전소가 폭발한 후쿠시마는 연료가 녹아내릴 정도로 강한 열기가 발생했고, 이 녹아내린 연료봉은 인간이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열기를 내뿜고 있다. 후쿠시마의 오염수는 바로 이 연료를 식히기 위해 끊임없이 공급되는 냉각수다. 이 냉각수를 그대로 바다로 흘려보낼 수는 없으므로 저장탱크를 지어 핵발전소 지역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값싸고 편리한 해결책을 선택한 일본정부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장치(ALPS)로 두 차례 처리해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했고, 이 장치를 통해 제거되지 않는 삼중수소는 물에 희석해서 버리겠다고 결정했다. 물론 방사성 물질의 총량엔 변함이 없다. 바다를 떠돌면서 여러 곳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말이다. 해양 생물들이 당하게 될 피해는 고스란히 생태계 먹이사슬에 따라 인간의 피해가 될 것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반감기가 12.3년인 삼중수소는 체내에서는 12시간 정도면 배출되지만 만약 그 중 일부라도 체세포와 결합했을 때는 내부피폭의 위험성에 노출된다고 말한다. 내부피폭은 방사성 물질이 체내에 머물며 방사선을 방출하여 DNA 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뜻한다. 암과 같은 질병을 일으킬 위험을 몸에 안고 사는 것이다. 일본이 오염수에서 제거했다는 핵종들이 정말 제거된 것인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삼중수소를 저렇게 바다에 버려도 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이하 IAEA)의 전문가 그룹은 지충주입, 해양방출, 수증기방출, 전기분해 수소방출, 지하매설 5가지의 오염수 방출의 방식을 제안했고, 이 중 자연에 피해를 덜 끼치는 더 나은 방식이 분명히 존재했다. 게다가 제안된 방법 외에도 지역에 저장 탱크를 더 설치하는 방법도 존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이러한 방법 중에 해양 방류를 선택한 것은 안전과 생명에 대한 고민없이 그저 편리와 비용적 이익을 생각한 결정이었다. 지역 주민들에게서 토지를 수용하고, 보상을 해주거나 별도의 설비나 장치를 활용해 또 돈을 쓰기보단 그저 해양에 방류해버리는 손쉬운 방향으로 결정을 한 것이다. 올림픽의 개최를 위해 여전히 방사능 방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지역에 지역민을 돌려보내는 결정을 내렸고, 노숙인과 외국인 노동자를 꼬드겨 후쿠시마에 밀어넣고 방호복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채 노동시키고, 그들에게 준 일당을 숙소와 식대 등의 명목으로 고스란히 돌려받은 일본 자민당 정권이 해양 방류 문제에 대해 생명과 안전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도외시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베 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월성 원전 배출수에 비해 자신들의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이 100분의 1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베의 주장은 후쿠시마 오염수의 오염 정도가 검증되지 않았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 그러나 배출 자체는 사실이다. IAEA는 이번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해 “국제적 관행”을 따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위 위원장은 한겨레 21 기고를 통해 “핵폐기물 버리는 ‘오랜 관행’과 싸우자”라고 제안한다. 이미 오래된 관행처럼 방사성 물질이 바다에 버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 천 차례의 핵실험과 지속 된 핵발전 과정에서 발생 된 기체와 액체 방사성 물질들은 그렇게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을 채 자연에 버려지곤 했다. 그리고 그건 핵발전을 하는 거의 모든 나라가 다 똑같이 저질러온 짓이었다. 월성 핵발전소 지하 관정에서 높은 농도의 삼중수소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한수원이 숨겨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문제를 일컬어 “비계획적 방출”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계획적 방출”이 존재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비계획적이면 문제가 되고, 계획적이면 괜찮은가? 사실 어떤 것도 괜찮지 않다.

결국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다.
핵발전소가 기후위기의 대안인 양 말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핵발전소는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다. 작년 여름 태풍에 소외전원상실로 긴급정지한 고리와 월성의 핵발전소 6기와 냉각수인 강물의 여름철 온도 상승으로 인해 멈춘 프랑스 페센하임 핵발전소는 기후위기에서 핵발전소의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밖에도 방사성 물질이 별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핵발전소가 없으면 전기료가 크게 오르고, 우리의 삶이 어려워질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전기가 필수적인데 탈핵하면 큰 일이 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개별 문제의 반박에 할애하기엔 지면이 아깝다. 결국 핵발전소의 문제는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충분할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핵실험, 핵무기를 원하지 않았듯, 핵발전소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거나 소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핵사고가 불러온 고통에 공감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월성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이 매일같이 상여 시위에 나서고, 손자, 손녀, 아들, 딸의 소변에서 삼중수소 검출 때문에 눈물 짓는 일을 본 이들이라면 특히나 그럴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가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송전선로를 따라 밀양 할머니들을 아프게 하고, 결국 우리에게 도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 전기는 일종의 죄악에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이 싸움에서 침묵한다면 이 죄악은 당연히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역시 우리는 고통받을 바다 생물들과 어민들, 그리고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정의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루는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그간 국민의 동의도 얻지 않고, 방사성 물질들을 아무렇지 않게 바다에 버려온 국가들의 낡고 위험한 관행을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에너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제멋대로 핵발전소를 늘려왔던 정책 결정권자들의 월권에 저항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 주민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방사선량 ‘기준치 이하’라는 말로 문제를 덮어버린 기술관료들의 오만함에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 성장’ 혹은 ‘돈’으로 우리를 유혹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만든 이 시대의 바알 신앙과 싸워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선언>이 말하듯 “핵은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는 믿음 안에서 말이다.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간사,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그리스도인연대 사무국장)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입니다.(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2615&fbclid=IwAR2LmMomkBSSAn5RNSPStCySPlBMC7jGiqNHAceU31ahh2yewTnwt3lFZ2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