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 해결의 열쇠, 기후 정의

작성일
2021-04-2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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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해결의 열쇠, 기후 정의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기후정의 - 희망과 절망의 갈림길에서> (한재각 저, 한티재, 2021년) > 서평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여행을 떠났다. 멋진 경치가 펼쳐진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최고급 코스요리를 시켜 배불리 음식을 먹었고, 어떤 사람들은 평범한 한 끼의 식사를 주문해 먹었고, 어떤 사람들은 간단히 빵 한조각과 음료수 한 잔으로 대충 요기를 했다. 밥값을 계산하는 시간, 최고급 코스요리를 시켜서 배불리 식사를 했던 사람들이 나서서 “우리는 다함께 여행을 왔으니 이제 밥값은 똑같이 나누어 냅시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인가? 그동안 서로 먹은 것이 다른데! 기후문제에 있어서 국제사회의 해결방식이 바로 이렇다고 <기후정의>의 저자 한재각은 이야기한다.

기후문제가 심각하고 해결이 시급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후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에 있어서는 각자의 상황에 따른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변화협약 복귀 후 처음으로 진행된 기후정상회의에서도 기후위기의 해결방식을 주도하기 위한 각국 정상의 기선 싸움이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에 대비해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밝혔고, 이에 대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인류 공동의 문제인 기후변화 문제 대응에서는 미국과 협력을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책임이 크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연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국가는 중국, 2위 국가는 미국이다. 하지만 그동안 대기 중 온실가스를 배출 누적 총량에 있어서는 미국이 1위이고, 중국은 유럽에 이은 3위이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으로는 중국 사람들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양은 미국 사람들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경제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다같이 줄여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이 더 많은 미국과 유럽이 온실가스 감축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쏟아내온 북반구의 선진 산업국가들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고 기후변화의 피해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반면에, 변변한 산업이 없어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저위도와 남반구의 저개발 국가들은 해수면 상승, 가뭄, 홍수, 대화재 등 온갖 기후재난으로 기후난민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심각한 실정이다. 이러한 기후 불평등과 부정의를 타개하기 위해 기후 피해국들이 ‘기후부채 상환’과 같은 선진산업국가의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묻는 정책을 제시했었지만, 국제 사회의 현실이 그리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고 말았다. 저자는 국제 사회가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기후문제의 해결이 늦어지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정확히는 국제 사회의 불평등이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고, 기후정의를 세우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이 기후위기 해결의 열쇄가 될 것이라고 믿음을 이야기한다. 국제 사회가 기후위기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의지를 보여줄 때만이 기후 약자를 포함한 전 세계의 사람들이 문제 해결에 힘을 모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행을 떠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논란 끝에 밥값은 각자 먹은 것을 각자 계산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수중에 가진 돈이 거의 없어 남은 여행 기간에도 빵과 음료수만으로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돈이 없는 이유가 최고급 코스 요리를 시켜먹은 사람들이 당연히 지불했어야 할 임금이 체불되어서였고, 그들이 흥청망청 밥값으로 소비했던 돈이 바로 바로 그 체불임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여행이 계속 이어지려면 정중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돈의 원래 주인에게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 남의 것을 빼앗아 즐기는 이들에게 이 여행은 천국일 수 있지만, 여전히 주린 배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 여행은 고통이 가득한 지옥일 뿐이다. 정의가 천국의 열쇠다.

(이 글은 4월 28일 바이블25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