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삭개오입니다

작성일
2021-11-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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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삭개오입니다

임지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활동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성서 곳곳에서는 이 땅에 정의를 일구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일깨운다. 이 시대의 정의는 결코 기후위기를 간과한 채로 선포될 수 없다. 기후위기는 이제 단지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니며, 오늘의 뉴스 헤드라인으로 찾아오고 있는,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심상치 않다. 세계 곳곳에서 폭우와 폭염, 초대형 산불 등의 기후재난들이 잇달아 일어나며, 이로 인해 피해를 입고 고통받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 유엔 인권 최고 대표 메리 로빈슨은 ‘기후변화는 21세기 인권에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 말했다. 성서는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시는(마태복음5:45) 분이라 증언한다. 성서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후란, 악인이냐 선인이냐, 의로운 자냐 불의한 자냐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위해 주신 은총이라 할 수 있다. 지구에 사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기후인 것이다. 이 기후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구 위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을 기대어 살아가도록 부여하신 토대를 빼앗는 것이며 지금까지는 없었던 무자비하고도, 잔혹한 폭력인 것이다.

한국교회여, 기후정의를 외쳐라
기후변화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이들이 수백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에 벌어질 일이 아닌 오늘의 고통이다. 국제난민감시센터(IDMC)에서는 전 세계 난민이 780만 명에 육박하며, 이 중 기후 난민이 분쟁 난민보다 약 3배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또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관련 사건으로 2050년 안에 최소 12억 명이 난민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문제는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이들이 기후변화의 발생에는 책임이 없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말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9월 25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는 ‘지금당장 기후정의’를 메인 구호로 삼고 집중기후행동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기후행동에 동참했으며,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도 기후위기 기독교 비상행동을 통해 기후정의를 외치는 일에 함께 행동했다. 기후정의란 국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기후위기를 야기했고,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과 피해 또한 불평등하게 돌아가며,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불평등이 가중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기후위기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전 세계의 시민들은 기후정의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하며, 피해를 겪고 있는 이들은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국가의 사람들이다. 기상학자 조천호 박사는 세계 인구의 20% 이하인 선진국들이 전체 온실가스의 약 70%를 배출하고 있는데, 기후변화의 피해는 약 3%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개발도상국의 10억 명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독일의 민간연구소 저먼워치(German Watch)에서 2019년 발간한 기후위험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8년까지 기후변화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10개 국가는 푸에르토리코, 미얀마, 아이티, 필리핀, 파키스탄, 베트남, 방글라데시, 태국, 네팔, 도미니카로 모두 아시아와 남미의 개발도상국들이었다. 이러한 불의한 상황을 일컬어 기후활동가들과 학자들은 ‘기후 불평등’, ‘기후 부정의’라 부르며 선진국들이 기후문제에 더 많은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불의한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개발도상국들에서는 ‘기후부채(climate debt)’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선진산업국들이 대기 중에 배출하여 축적해 온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개발도상국들에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부채를 값으로 환산한다면 미국은 9조 7천억 달러, 독일은 2조 3천억 달러, 영국은 2조 1천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 한국도 기후채무국에 속한다. 하지만 선진국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온전히 보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선진국의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 기후부채를 보상하는 것조차 요원하다.

경제평화연구소(IEP)에서 발표한 ‘생태학적 위협 기록부(ETR) 2020’은 전세계적으로 자연재해 발생 건수는 1960년 39건에서 2019년 396건으로 10배 이상으로 급속도로 증가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기후재난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기후난민이 앞으로 수도 없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을 입을 모아 내놓지만, 정작 기후 난민과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 사회를 존속하게 하고 지구 생명체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생존의 기반인 기후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정작 이 지경을 야기한 이들이 아닌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중되는 기후 부정의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정의’는 이제 ‘기후정의’이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삭개오입니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눅19:8)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갔던 삭개오의 일화는 무척 친숙한 이야기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자신이 강제로 빼앗은 것을 네 배로 갚겠다는 회심의 고백을 했다. 삭개오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하는 세리들의 장이었다. 당시 세리들은 정해진 세금 이상을 탈취하기도 하여 사람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었다. 그러한 이유로 삭개오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자신의 행위로 인해 고통 받았을 이웃의 아픔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강제로 빼앗은 것에 대해서는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이제 기후악당국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우리가 지고 있는 기후부채를 상환하겠다는 의지와 기후재난으로 고통당하는 기후난민들을 위한 기후정의의 길을 만들어나가겠다는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기후 부정의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지금, 한국교회에는 삭개오와 같은 결단의 고백이 있어야한다. 더 나아가 기후위기 시대의 절박한 상황을 직시하며 기후난민에 대한 기후 정의의 책임을 깨닫고 ‘생태적 회심’을 결단하는 일이 너무도 절실하다. 기후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을 돌보고, 이들을 위한 길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시대 교회들의 선교적 사명이기 때문이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를 통해 ‘삭개오 기금’을 조성하여 한국교회가 기후위기로 재난상황에 처한 기후난민들을 돕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가 삭개오입니다’라는 고백과 결단이 기후난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란 취지에서 붙인 이름이다. 생태적 회심을 결단하며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나누는 ‘기후 헌금’들이 모여 삭개오 기금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성된 기금을 통해 기후재난의 현장에서 기후난민을 지원하는 일들이 진행될 것이다.

기후정의를 촉구하고, 기후위기로 고통당하는 이웃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기후 부정의로 발생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비겁한 외면보다 용기있는 함께함으로, 기후불의가 아닌 기후정의를 선택함으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자. 우리가 바로 삭개오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