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 우리에게는 희망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작성일
2023-05-3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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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우리에게는 희망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 기후위기 시대의 농촌교회의 준비와 대책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들어가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간, 기후시계 홈페이지(https://climateclock.world)는 지구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6년 64일 11시간 7분 57초’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6년 2개월 뒤, 그러니까 2029년 7월 중순 무렵이면 지구 표면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기후시계는 현재와 같이 인류가 연평균 420억 톤의 탄소를 배출하는 상황을 가정해서 지구평균기온의 상승이 1.5도에 이를 때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류가 배출하는 탄소의 양과 지구평균기온과의 상관관계를 정량화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2018년에 인천에서 개최된 IPCC 회의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고려할 때 지구평균기온의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해야한다는 인천특별보고서가 채택되었고, 이후 과학자들은 지구평균기온의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20년부터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이 최대 4,000억 톤이라는 탄소예산(carbon budget)을 책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기후시계는 현재 인류의 탄소예산이 고갈되는 시점을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기상기구(WMO)는 5월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앞으로 5년 뒤인 2027년까지 지구평균기온상승이 1.5도에 도달할 확률이 66%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기후위기의 현실은 기후시계가 보여주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5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 참담하고 아득한 현실을 우리가 인정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직도 기후위기가 좌파 환경단체가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만든 가짜뉴스라고, 혹은 시한부종말론의 임박한 종말의 징조로 믿고 있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이 글에서 나누려는 이야기는 농촌교회, 도시교회를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가 긴박한 위기상황에 처해있으니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야한다는 전제가 없이는 무척 현실성이 없는 꿈같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좋겠네요. 이 글은 기후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농촌교회와 도시교회가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교회를 만들기 위한 전환의 여정을 꿈꾸는 이야기입니다.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짊어졌더라도 이왕 짊어진 십자가이니 희망을 꿈꾸면서 힘차게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게 조금 더 멋지지 싶어서요.

 

기후위기,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제는 많은 분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계셔서 기후위기의 원인과 적응, 대응 방법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해드릴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주제가 기후위기 이다보니 기후위기를 둘러싼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들의 핵심은 짚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으레 기후위기를 지구의 위기라고 생각하고 지구를 살려야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엄밀히 따지자면 기후위기의 위기 상황은 지구의 위기라기보다는 인간사회의 위기입니다. 지구는 45억 년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급격한, 때론 완만한 기후변화가 진행되어왔습니다. 현재 우리 인간사회는 지구의 역사에서 짧은 한 순간에 불과한 신생대 홀로세의 기후에 적응해서 성장해오다가, 화석연료를 과다하게 사용하여 수십만 년에 걸쳐 일어날 법한 급격한 기후변화를 발생시켜 인간사회의 위기 상황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앞으로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생물다양성의 급격한 감소로 6번째 대멸종의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지만, 현재의 지구 생태계가 사라지더라도 지구는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 다른 모습의 생명의 별로 연대기를 이어 나갈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의 지구의 시간에는 우리 인간들이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울 테지만요. 결국 기후위기는 우리 인간사회의 위기, 보다 본질적으로는 지구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존재 양식의 위기입니다. 지금의 기후변화는 인류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구의 한계 이상으로 지구의 대기에 온실가스를 방출한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지구 대기뿐 만인가요? 인류가 땅과 강은 또 얼마나 파헤치고 더렵혔나요? 바다에는 산업폐기물부터 생활오폐수까지 온갖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다 이제 방사능 오염수도 내다 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류세’의 ‘인류’는 지구에 지질학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지구를 지배한 대단한 존재라는 의미보다는, 지구 생태계 전체를 망가뜨려 지구의 연대기를 뒤바꿀 정도로 아주 극도로 못돼먹은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염치가 있다면 기후위기 앞에서 지구 생태계의 다른 종들에게 석고대죄의 마음, 종교적으로는 참회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6번째 대멸종은 우리들 오롯이 우리 인류의 탓이고, 우리가 그 책임을 감당해야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기후위기가 우리 인류의 탓이라고 하자니 뭔가 좀 억울하고, 열이 받칩니다. 학창시절에 한두 녀석 사고뭉치 때문에 선생님한테 단체기합을 받는 느낌이랄까. 기후위기가 인류의 탓인 것은 맞는데, 인류 가운데는 탄소배출을 더 많이 한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지요. 다들 아시는 것처럼 현재 지구상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단연 중국입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는 한 번 방출되면 대기 중에서 200년 동안 없어지지 않고 온실가스로 작용을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이산화탄소 배출을 지난 200년 동안의 누적량으로도 따져봐야겠죠. 누적량은 순위가 바뀌어서 일찌감치 산업혁명을 이루었던 유럽이 선두를 차지합니다. 미국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압도적인 일등이구요. (참고로 한국은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은 상대적으로 순위권 밖이지만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이 일등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나 현재 상황으로도 북반구 국가들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남반구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인류가 다 잘못했다고 하는 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온실가스를 북반구 선진산업국가가 배출했고 그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취해왔는데, 현재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오히려 아열대지역 저개발 국가들에 집중이 되고 있습니다. 남반구 국가들은 자신들의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북반구의 선진산업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기후정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도 기후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북반구의 선진산업국가들은 피해자인 저개발국가들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생색내기 기금 조성조차 온갖 핑계를 대고 미적대는 상황입니다.

거기에다 잘 아시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남반구 국가들은 대부분 북반구 국가들의 식민지 피지배국가 였습니다. 남반구 국가들은 지금 북반구 선진산업국가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가 남반구 국가들의 자원을 약탈한 것이라는 역사적 부정의를 언급하면서 이제 ‘역사적이고 글로벌한 차원의 기후정의’를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선진산업국가 너희가 기후위기의 주범이니, 너희가 기후재난의 피해를 책임지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다른 한 편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도 ‘세대 간의 기후정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 세대가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자원과 기후생태환경을 미리 끌어당겨서 사용하면서 온갖 풍요를 누리면서 앞으로 다가올 피해와 문제해결의 책임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미래세대가 떠안아야 할 기후적, 생태적 부채를 지금 당장 감축해야 한다는 ‘세대 간의 기후정의’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기후위기의 본질은 우리의 엉망진창의 삶, 인류라는 너무나 큰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어떻게 써야할 줄 모르는 철없는 존재의 미숙함 그 자체입니다. 인류는 국가 간에, 인종 간에, 성별 간에, 세대 간의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며 힘있는 존재가 힘없는 존재를 마음대로 지배하고 약탈해왔고, 그러한 몹쓸 행태가 지구 생태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양심과 경계 없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제 우리 인간사회가 그러한 엉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지구가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퇴거명령서인 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후위기의 본질이 인간사회가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세대적으로, 그리고 생태적으로 정의롭지 못했던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해법은 인간사회의 정의로운 관계인 ‘기후정의’와 지구 생태계와의 정의로운 관계인 ‘생태정의’에 있다는 것이 명백해집니다. 우리에게 희망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비인간 존재 모두에게 정의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말입니다.

 

기후위기 시대, 한국교회의 대응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발표된 지난 2021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원교단 및 연합기관과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함께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기독교 탄소중립 선언’을 발표하고, 한국교회 탄소중립을 위한 ‘생명의 길 초록 발자국’ 캠페인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선언은 한국교회의 연합기관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행동이 필요함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선언문으로, 교회와 교단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결단에 나서야 한다는 결단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기독교 탄소중립 선언’의 후속작업으로 ‘한국교회 탄소배출 감축 중장기 이행 목표 :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로드맵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문화위원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감 본부 선교국, 기장 생태공동체운동본부, 예장 총회 사회봉사부의 전문가들이 준비위원회를 조직, 수개월 간의 자료 조사와 토론을 거쳐 한국교회가 기후위기 상황 가운데 언제, 얼마나, 어떻게 탄소배출을 감축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실천 계획으로 기획, 제작되었습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탄소중립’은 기후위기라는 문제의 정답이 아닙니다. 탄소중립은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시나리오와 경로를 세우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만들어지는, 기후위기라는 인류의 모든 문제가 뒤얽힌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 지나가야하는 한 지점, 이정표입니다. 예를 들어서 현재 한국 정부가 이야기하는 핵발전 확대를 통한 탄소중립은 어쩌면 손쉽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핵폐기물과 함께 재생에너지에 적합하지 않은 중앙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더 큰 문제와 갈등을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무책임한 시나리오이고,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어려울 것이 분명한 엉터리 경로를 설정한 어처구니없는 로드맵일 뿐입니다. 핵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을 조기에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독일 정부와 같이 상대적으로 모범적인 탄소중립의 시나리오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2045년 무렵에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경로에 있어서는 기후운동진영으로부터 너무 느슨하고 안이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몇몇 사람들, 특히 핵발전 업계와 탄소배출 기업의 이익에 민감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로드맵을 뚝딱 만들어내고는, 어떤 방법으로 탄소중립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이야기에는 귀를 틀어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 들어 다행스럽게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은 기후위기기독교신학포럼에서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들에게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대한 생각도 듣고, 이 로드맵에 참여한 교단들이 로드맵을 실행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신학자들이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예정입니다. 근데 정작 이 로드맵을 실행해야 할 당사자인 한국교회와는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막 빠져나온 한국교회의 현실이 아직 녹녹치 않아서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이 글이 한국교회와, 특히 한국농촌교회와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른 농촌교회의 준비와 대책

간단히 요약을 해서 말씀드리자면,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은 창조세계의 온전성 회복과 지구적 기후정의, 한국사회의 2050 탄소중립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서 한국교회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2040년까지 100% 감축하는 계획입니다. 2050년 보다 10년 앞당겨 2040년에 탄소중립을 이루지만 2050년까지 지속적으로 재생에너지 생산과 자연기반 탄소흡수원을 확대해서 탄소배출을 계속해서 감축하는 계획이라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는 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부문, 시기에 따른 방안과 교육, 조직, 예산 등의 기반 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은 교회의 탄소배출 부문을 교회의 건물과 이동수단에서 직접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탄소가 배출되는 직접배출 부문, 외부에서 전기, 열원 등을 사용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탄소가 배출되는 간접배출 부분, 물품구매, 폐기 등으로 탄소가 배출되는 기타 간접배출 부분으로 구분하고 각 부분에서 어떤 방식으로 언제까지 탄소배출을 감축하거나 상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부문 별 감축 방안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직접배출 부문에서는 2030년까지 현 대비 50%, 2040년까지 100%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경로인데, 이를 위해 에너지 절감, 효율화, 전력화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탄소배출량에 대한 기초 조사, 한국교회 탄소중립 위원회, 탄소배출 감축 지원기금, 정부의 지원제도 확대 등의 기반조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접배출 부문에서는 에너지 절감과 효율화를 통해 2030년까지 20%, 2040년까지 40% 탄소배출을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통해 2040년에는 사용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방법과 경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기금조성, 한국교회 에너지 협동조합 설립, 농촌-도시교회 재생에너지 생산구매 협약 등의 기반조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기타 간접배출 부문에서는 배출 저감, 적정사용과 인증제를 통해 2030년까지 20%, 2040년까지 40%의 탄소배출을 감축하고, 2040년까지 토양회복과 흡수원 조성을 통해 배출되는 탄소를 흡수하고, 이를 위해서 저탄소물품 인증제도, 농촌교회와 토양 탄소저장력 회복사업 추진, 숲 조성 사업, 생태영성 및 생태감수성 교육 등의 기반조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농촌교회 목회자 분들에게는 좀 눈에 들어오는 이야기 거리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서 지금이 2030년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처음에 말씀드린 기후시계의 시간이 현실화 된다면 지구의 평균기온은 1.5도 상승을 훌쩍 넘어 2도 상승을 향해 달려가고 있겠지요. 한국의 기후도 5,6월부터 아열대 기후가 시작되어 10월까지 이어지는 열대야가 일상화되었을 것이고, 봄, 가을, 겨울 내내 비가 오지 않다가 여름 한 철 태풍이 연속해서 올라오며 쏟아내는 집중호우에 풍수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경제사회 전반이 다 큰 위기에 직면해 있을 테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문제일 것입니다. 탄소국경세의 엄격한 부과로 화석연료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가버린 데다, 사회 전반의 에너지 시스템이 지역분산형 재생에너지 위주로 재편되면서 재생에너지 공급 상황에 맞추어 에너지 소비가 가능하도록 에너지 사용 전반의 변화가 일어났을 테지요. 정부에서는 뒤늦게 재생에너지 생산을 해야 한다고 각종 지원정책을 마련할 테지만 이미 화석에너지에 익숙해진 산업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과 갈등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교회의 에너지 문제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싶어도 생산할 부지가 없어 비싼 비용을 들여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도시교회들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동안 먼 곳에서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를 먼 곳에서 송전을 통해 사용해도 비용에 부담이 없었기에 과도한 에너지 사용해 익숙해진 도시교회들은 달라진 에너지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농촌교회는 도시교회에 비해 재생에너지 생산 여건은 유리하지만,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싶어도 교회 재정의 어려움으로 생산설비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 테지요.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은 이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을 예측하고,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 농촌-도시교회가 상호적인 재생에너지 생산-공급 협력토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도시교회가 지금부터 에너지 사용 절감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을 기금으로 적립하여 교회 건물에서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그린 리모델링, 제로에너지 건축을 대비하면서, 동시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여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하는데 부지 측면에서 유리한 농촌교회의 도움을 받자는 것입니다. 물론 도시교회가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농촌교회에 설치하면서 부지사용에 대한 비용과 설치를 허락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더불어서 농촌교회는 도시교회에서 어쩔 수 없이 배출되는 기타 간접부문의 탄소를 상쇄하기 위한 숲 조성과 토양 탄소저장력 회복 등 자연기반 탄소흡수원 조성에도 도시교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서 친환경, 저탄소, 자원순환 물품 인증제도가 한국교회에 정착이 되면 탄소발자국 측면에서 유리한 친환경, 로컬푸드의 사용이 일상화 될 것이고, 도시교회는 인근 농촌교회를 통해 친환경, 로컬푸드를 공급받는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호적인 관계가 현실의 제도로 구현이 되려면 수많은 연구와 세부적인 논의가 우선되어야 할 테지만, 저는 무엇보다 이러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소속 교단과 지방회에서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대한 논의와 시범사업, 그리고 교단과 지역의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실천계획이 이야기되도록,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이 기후정의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계속 이야기를 하셔야합니다.

 

기후위기 시대, 한국교회의 적응

앞에서 주로 기후위기 시대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어쩌면 목회자들에게는 기후위기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가 더 큰 고민이실 것 같습니다. 현재도 늘어가는 폭염기에 노약자들이 야외활동을 제한하도록 안내를 하고 있는데, 사실 노약자들이 집에 있다고 해서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유럽에서 폭염기에 사망하는 사망자의 대다수가 냉방 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주거지에 거주하던 노약자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폭염, 혹한기에 노약자들이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쉼터를 마련하는 것과 함께 에너지 복지에 대한 기준 마련이 시급한데, 법을 만드시는 분들은 이런 더위와 추위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 건물을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교회의 지표가운데 구원의 방주가 있는 것을 기억하면서 기후위기 시대 말 그대로 비를 피하는 방주로써 교회가 쓰임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뭄, 홍수, 풍수해, 폭염, 감염병 등 다양한 기후적 요인으로 인한 위기의 상황에 대한 교회의 대응과 적응 지침 마련이 필요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회봉사부에서 작년에 재난대응 지침을 발표한 바가 있는데, 여러 측면에서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후위기 상황이 적응에 있어 교회의 역할은 기후위기상황에 대한 정확한 교육과 사람들이 행동의 변화를 촉진하는 교육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교육의 정점은 바로 예배를 통한 말씀의 선포입니다. 목회자들이 기후위기 상황에 대한 과학적 분석 정보를 연구해서 각종 가짜뉴스에 노출되어있는 교인들에게 올바로 전달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제 기후위기 시대의 목회자의 사명은 어떻게 성서를 기후정의, 생태정의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올바른 생태적 인간상을 재정립하는 일에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기후위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면, 우리 사회는 기후난민들을 향한 혐오와 폭력, 기후재난으로 인한 비용 분담에 대한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의 갈등,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생태적 자원을 독점하고 선점하려는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전개 될 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러한 때에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 지 이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기후위기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교회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타자에 대한 묻지마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바라기는 아무리 심각한 위기에서라도 끝까지 인간됨의 품격과 생명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되새기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는 희망의 공간으로써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나오며

글머리에서 이 글이 기후위기라는 상황에서 농촌교회와 도시교회가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교회를 만들기 위한 전환의 여정을 꿈꾸는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졌었는데, 횡설수설 앞뒤 없는 이야기만 늘어두고 어정쩡하게 마무리를 하려니 참 민망합니다. 암튼 저는 기후위기에 대해 회피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뭐가 됐든 새로운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도 거창하게 숫자로 치장을 했지만 실은 농촌교회와 도시교회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전환의 희망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기후위기란 것이 그릇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니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의 본질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저는 제가 가진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만든 이야기를 다 꺼내보았습니다. 이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이 저의 어설픈 이야기에 품격있는 댓글을 달아주시거나, 아니면 더 속 시원한 새로운 이야기로 이 이야기를 새롭게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갈릴리 사람 예수의 이야기에 홀딱 반해버려서 한국교회라는 작은 공간에 모여 있는 이야기꾼들이 아닙니까? 이야기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희망의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한국기독교농촌목회자연대회의 기후위기 세미나에서 발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