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뉴스앤조이 연재 - 기환연과 함께 걷는 초록빛 일곱 발자국 "행복한 '녹색서재' 만들기"> ''긴 고민 끝에 '일단 시작해 보자'는 도전과 함께 공용 서재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먼저 내가 갖고 있는 책을 비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책을 통해 할 수 있는 일들과 공용 공간 또는 공용 물품을 구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나만의 녹색 서재: 미니멀·재사용 교회를 개척하고 담임 목회를 시작하면서 행복한 고민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에는 줄곧 공동 사무실을 쓰곤 했는데, 담임 목회지로 이동하면서 소규모 인테리어 공사를 통해 독립된 서재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교회 내부 공간을 디자인하는 작업은 '생애 첫 나만의 연구실 공간'이 생긴다는 기대 때문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설렘의 시작이었다. 우리 교회는 크지 않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서재를 만들기에 앞서 고민해야 될 몇 가지 조건이 따랐다. 첫 번째는 최소한의 공간을 분리해 '개인 서재'를 만들고, 나머지 공간에 함께 쓸 수 있는 공용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함께 사용하는 공동의 물건을 비치하는 일과 냉난방 에너지 절약을 위한 공용 공간 '공유 시간표'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다. 녹색 교회를 지향하는 우리 교회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한 걸음'이라는 교우들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 디자인은 교회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가장 기본적인 일이었고 또 중요한 일이었다. 먼저 공용 공간을 넓히고 개인 서재 공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혼자 사용하기에 충분한 2평 남짓의 공간으로 분리하였다. 그리고 서재 공간의 물품들은 중고 거래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여 모두 재사용하는 물건들로 구성하였다. 책꽂이와 옷걸이 거치대는 주변 이웃들로부터 '무료 나눔'으로 제공받았고, 책상과 의자는 각각 1만 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재사용 물품으로 구입하였다. 나머지 서재에 필요한 프린터와 컴퓨터, 기타 사무용품은 옆에 위치한 공용 서재 공간으로 배치해, 물건을 공유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최소화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책들이었다. 어릴 적 나의 선생이었고 친구였던 이 보물들을 정리하는 일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개인 서재에 있는 도서들을 공용 공간에 비치해 두어 함께 읽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공간 문제를 해결하고 소중한 보물도 지킬 수 있는 좋은 답을 찾게 되었다. 주일 외에는 특별히 사용하지 않은 교회 공간을 이용하여...
2025.02.21
<연재 - 기환연과 함께 걷는 초록빛 일곱 발자국> 더 누리려는 것은 더 빨리 지구에서 사라지려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소파에서 흘러내리다가 멈췄다. 이윽고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연신 "내일이야"라고 한숨 섞인 말을 하는데 묘한 가락이 있다. 초점을 알 수 없는 눈빛이 허공을 맴돈다. 왜 그러냐고 꽤 다정한 말투로 물었지만, 대답 대신 돌아오는 건 긴 한숨뿐이다. 다음 날 아내를 통해서 그 한숨의 사연을 들었다. 아이돌 그룹이 음반을 발매하는데 그게 꽤 비싸다는 거다. 그래서 감히 사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는 거다. 거절이 무서웠을까? 거절에 이어질 잔소리가 더 무서웠을까? 딸은 내게 앨범을 사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음반의 가격만 기억하는 후진 아빠인 걸 알아챈 걸까? 아내는 6만 원도 더하는 그 앨범을 사 주기로 했다. 적잖이 놀랬지만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딸이 3개월간 하루에 한 시간씩 공부하는 조건으로 앨범을 약속했노라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이 맑다. 두 사람의 욕망은 교차하는 지점이 명료했다. 내게는 퍽 좋은 일이다. 눈치가 빨라서 무언가 사 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는 딸애의 한숨 소리는 짧아서 슬프기 때문이다. 아내의 처사는 가혹하지 않다. 그게 그나마 지키기 쉬운 약속인 걸 깨닫는 나이가 되기까지, 공부 약속은 방귀보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딸은 앨범을 얼마나 기뻐할까? 얼마나 만끽할까? 5분가량 소리지르고 며칠 동안 굿즈를 어루만지거나 포토 카드나 스티커 모서리를 만지작만지작하는 게 고작일 게다. 그리고 앨범과 굿즈는 딸의 방을 어지럽히는 역할을 하는 정도로 딸과의 관계를 이어 갈 것이다. 이 수순은 개가 똥을 싸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딸은 이따금 누에고치처럼 가만히 웅크리고 누워서 유튜브 삼매경에 빠진다. 그런 자세의 딸에게 분명히 어떤 인플루언서가 바람을 넣었을 것이다. 얄밉게 카드 모서리를 매만지는 모습을 보여 주며 자랑질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딸에겐 그 인플루언서처럼 많은 앨범을 가질 방도가 없다. 어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가지고 싶은 것의 단가가 놀랍게 커졌을 뿐이다. 저마다 자신의 인플루언서가 있다. 인플루언서는 행복을 우리가 움켜쥘 수 없는 거리로 옮겨 놓는다. 조금 다가섰다 싶으면 툭툭, 이강인 선수가 드리블하듯 행복을 몰고 간다. 어른들은 참 불쌍하다. 욕망으로 펄펄 들끓는 증기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토해도...
2024.12.13
'기후 미식'과 요한복음 4:34 [기환연과 함께 걷는 초록빛 일곱 발자국] 이번 주 공동체 식사 '생명 밥상' 차려보기   # 밥상에 오를 자격 친구의 집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긴 밤이었습니다. 야심한 밤에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입이 심심해진 우리는 이내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지요. 친구는 마침 직접 캐 온 오이가 있다며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가 웃으며 꺼내 든 오이 두 개. 하나는 보통 오이보다 약간 더 굵은 녀석, 다른 하나는 조금 더 마른 녀석이었습니다. "이 정도만 돼도 팔 수가 없어요." 밥상에 오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오이들이지만, 상품 가치를 따지자면 팔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오전 내내 오이를 따고, 가득 쌓인 오이를 하나하나 살피며 '특', '상', '중'으로 나눕니다. 조금이라도 결격 사유가 있다면 등급은 뚝뚝 떨어집니다. 보통 오이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오이들은 특에서 상으로, 상에서 중으로, 그마저도 등급을 붙일 수 없는 녀석들은 아예 논외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버려지는 오이들이 못해도 10%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자격 없는 오이들을 씹으며 밤을 보냈습니다. # 생명 밥상 식재료 구하기 못생긴 오이만 버려질까요?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농산물의 상당수가 품질 규격에 미치지 못해 버려진다고 합니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매년 25억 톤가량의 식품이 유통되지 못한 채 버려진다고 하니, 비단 못생긴 오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생명의 길 초록 발자국' 7주 실천 워크북의 첫걸음이 '생명 밥상 만들기'인 만큼, 이번 주는 못났다는 이유로 시장에 나오지 못한 채소들을 밥상 위에 올려 보고자 했습니다. 최근 구독하기 시작한 채소 박스 구독 서비스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2주에 한 번씩 작은 박스에 못난이 채소를 담아 배송해 주는 서비스입니다. 원래라면 아깝게 버려질 채소들이 생산자 위주의 유통 구조를 통해 배송됩니다. 종이 상자에 종이 테이프, 생분해 비닐 등으로 포장된 채소들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2인 가구에 적당한 분량이 담겨 오기도 하고, 매번 다른 채소들을 만날 수 있어 신이 납니다. 평소라면 굳이 사지 않았을 채소가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걱정 반 설렘 반으로 함께 배송받은 레시피를 천천히 읽어 봅니다. 평소 편하게 찾던 프랜차이즈 마트나, 급한 마음에 죄책감을 안고...
2024.11.06
“생명의 길 초록발자국” 기후위기시대 삶으로 드리는 예배 임지희 활동가(기독교환경운동연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가 끓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는 추석까지도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졌으며, 폭우피해가 속출했다. 또한 남해, 서해, 동해 바다도 역대급 고수온으로 바닷물 온도가 30도까지 오르며 물고기가 집단으로 폐사했다. 세계 곳곳의 상황도 심각하다. 극심한 폭염으로 학교에 가지 못한 세계의 아이들이 2024년 4월과 5월 사이에만 2억 1000만 명을 넘는다.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에서 섭씨 50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매년 평균 20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삶의 터전을 떠나고 있다. # 이 여름을 겪은 우리의 삶은 달라져야 한다 이 여름을 보낸 우리는 그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절박한 소리를 들은 우리의 삶은 분명 그 전과 달라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돌보고 지키는 일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먹고, 입고, 지내는 일들에서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발생되며, 우리의 삶을 지속하는 행위들이 창조세계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제는 우리 삶에서 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하며 창조세계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성찰하고, 회개하며, 탄소를 배출하는 삶으로부터 과감히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탄소배출이 없는 새로운 삶의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며,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창조세계를 지키고 돌보는 생태적 삶을 안내하고자 한국교회 탄소중립 캠페인 <생명의 길 초록발자국>을 진행하고 있다. <생명의 길 초록 발자국>은 기후위기의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식, 의, 주, 에너지, 교통, 문화, 경제의 7가지 영역에서 탄소배출을 줄여나가는 삶을 실천하는 캠페인이다. 각 영역의 일곱가지 실천으로 기후미식, 슬로우패션, 미니멀라이프, 녹색교통, 그린에너지, 녹색서재, 생명경제를 제안한다. 일곱가지 실천 주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1.기후미식 우리가 먹는 식품의 생산과 운송, 보관, 폐기의 과정에서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삶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식생활의 전환이 꼭 필요하다. ‘기후미식’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건강한 음식을 먹는 일이다. 탄소 배출이 특히 많은 식품으로 육류가 있다. 세계 모든 온실가스의 1/4 가량이 식품 생산으로 발생되는데, 그중의 절반 이상이 육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또한 식품이 먼 거리를 이동하면 그 만큼의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채식 중심의 식사를 하며, 인근 지역에서...
2024.10.05
지난 7월 15일 명동에 있는 한국YWCA연합회에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이하 11차 전기본)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다. 패널들은 정부가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만들면서 10차 전기본보다 전력수요를 높여 잡았고, 이것이 핵발전소 추가건설 등의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또 전력수요를 늘려잡게 된 요인 중에는 인공지능(AI) 활용 확대에 따른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전력, 전기차 시장의 성장, 용인에 건설된다는 반도체 클러스터 등이 거론되고 있었다. IT 산업에서도 AI는 새로운 분야로서 각광받고 있다. 산업계는 앞다투어 이러한 산업을 위해 전기의 생산을 늘려주기를 요청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요구에 무비판적으로 응답하는 것은 여전히 성장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미래는 탈성장』이라는 책은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로 가는 안내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들은 ‘탈성장’ 연구자로 활동하는 이들이다. 마티어스 슈멜처와 안드레아 베터의 독일어 저작을 아론 반신티안이 영어판으로 확장하여 냈고, 이 책은 이를 번역하여 발간한 것이다. ‘성장’이 만들어온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너머, 저자들의 말처럼 ‘유토피아’와 같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한 이들은 꾸준히 모여 논의하며 다른 세상에 대한 제안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저자들은 그간 논의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모으고 선별하여 탈성장에 대한 일종의 안내서를 만들었다. ‘탈성장’은 아직 낯설고 어려운 개념일 수 있고, 이 책은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탈성장’에 대해 친절하게 잘 풀어 설명한다. 2장에서 저자들은 성장의 개념에 대해 다룬다. 아이디어로서, 사회적, 물질적 과정에서 성장을 구분하여 보고 성장이라는 말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룬다. 성장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고, 그로 인해 사회가 그 말에 맞추어 변화되어 온 과정, 그로 인해 발생한 계급이익, 그리고 그 결과 일어난 생명과 지구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이어 3장을 통해 성장에 대한 비판 지점을 다룬다. 삶의 생태적인 토대를 파괴하고, 웰빙과 평등을 가로막으며, 서로와 자연 사이의 소외를 낳고, 착취·경쟁·축적에 의존하게 되고, 부정의한 지배·추출·착취를 재생산하는 ‘성장’의 이면을 다룬다. 책의 후반부는 탈성장의 비전, 경로, 이를 위한 전략과 미래를 다루고 있다. 4장은 다양한 탈성장 비전의 조류들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를 통합하여 정의하는 데에 이른다. 5장은 ‘탈성장으로 가는 경로’라는 제목으로 구체적으로 탈성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정책과 여러 가지...
2024.08.30
눈이 부신 햇빛 아래, 야트막한 산에 둘러싸인 작은 항구 마을이 있었다. 대항이라고 불리는 항구 앞으로 잔잔한 바다에 햇볕이 부서지고 있었다. 6월 햇살은 뜨거워도 그 여유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해치진 못했다. 풍경에 취해 연신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와중에 가덕도 신공항반대대책위에서 일하는 김현욱 활동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산들은 깎여나가고, 바다는 매립되어서 이곳이 공항의 활주로가 됩니다.” 종교환경회의는 2024년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생명 평화 순례를 했다. 10일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향하는 길에 먼저 밀양을 방문하여 기도회를 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를 오랫동안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싸움을 이어온 남어진 활동가가 맞이했다. 남어진 활동가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보라마을. 이치우 어르신이 765kV 송전탑 문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곳이다. 이치우 어르신의 논 한가운데로 지나는 송전탑 앞에서 천주교 주관의 기도회를 진행했다. 남어진 활동가는 송전탑 건설 이후 주민들이 겪은 고통을 증언했다. 마을 공동체는 파괴되고,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 치유되지 못한 채 상처는 깊어져 가고 있다. 남어진 활동가는 이 상흔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 상흔은 그가 오래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현재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를 비롯해 밀양과 같은 방식으로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핵발전소의 추가건설을 말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다른 지역까지도 송전탑의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은 깊은 고민을 안겨주는 지점이었다. 밀양을 떠나 순례단이 향한 곳은 가덕도였다. 대항전망대에서 둥글게 모여 선 순례단은 기독교의 주관으로 기도회를 가졌다. 양재성 목사는 멸망으로 가는 넓은 문에 대비되는 좁은 문을 향해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가덕도 신공항반대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김현욱 활동가는 가덕도 신공항의 문제를 설명했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는 대규모 토목공사이지만 실은 들이는 비용에 비해 경제성은 미미한 공항, 그리고 바다를 메꾸어 활주로를 만들지만 기존 육지이던 지역과 부등침하가 예상되어 안전성도 확보가 힘든 공항. 대규모 토목공사를 5년 만에 하겠다는 현재 국토부의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특별법까지 만들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추진되고 있었다. 주민들을 내쫓아 삶을 망가뜨리며,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할 것이 뻔한 공항이 정말 필요한지 아름다운 가덕도의 바다와 산이 묻고 있었다. 순례단은 대항을 지나 외양포로 향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포진지로 사용되던 곳을 강점기 이후...
2024.07.15
2014년 6월 11일 밀양에서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이 자행되었다. 2024년, 올해는 그 일이 벌어진 지 꼭 10년째 되는 해다. 탈핵운동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우리가 간혹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 그리고 송전선로의 문제를 함께 다루며 지역이 당하는 차별과 혐오, 배제와 비민주성을 지적한다면 이 이야기의 시작이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이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탈핵 담론은 밀양 송전탑 투쟁을 통해 한층 지평을 넓힌 것이다. 그리고 ‘밀양 할매’라고 부르는 탈송전탑·탈핵 활동가들의 운동이 결집시킨 연대활동가들은 여전히 탈핵운동에 동참하는 이들로 남아 있다. 저자는 행정대집행이 끝난 2014년 가을, 밀양으로 내려가 탈송전탑, 탈핵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투쟁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긴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행정대집행이 10년이 되는 2024년 올해 책을 펴낸 것이다. 청취한 말들은 가공되지 않은 채 책의 일부가 되었고, 덕분에 생생한 목소리들이 담겼다. 사실 탈핵 희망버스가 출발할 시점부터 이미 ‘밀양 할매’들의 싸움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저 자신들이 살아온 땅, 그리고 후손들이 살아갈 땅에 철주가 박히고, 그것이 나와 내 이웃의 건강을 해치고, 내가 발 딛고 살아가던 산과 들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파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밀양 할매’들은 시작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바도 없다. 그것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생길 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말이다. 그저 ‘나랏일’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고, ‘돈지랄’을 해대는 통에 마을은 풍비박산이 나고, 이웃끼리 말도 섞기 싫을 정도로 공동체가 파괴되는 가슴 아픈 일들을 겪었다. 한국전력 직원들과 시청공무원들은 합의서에 서명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한전 직원들은 주민들을 일부러 갈라치기 하기 위해 공작에 가까운 일들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그로 인해 오래 유지되어오던 마을 공동체가 깨어지고 주민들은 서로 원수처럼 되기도 했다. 일상적인 폭력, 즉 가까운 이웃들과의 분쟁으로 인한 고립과 배제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권력은 이런 불법적인 일들이 자행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전의 편에서 주민들을 핍박했다. 그럼에도 이미 반대의 이유가 너무나도 명확한 싸움을 관둘 수 없었던 ‘밀양 할매’들은 싸움을 이어 나갔다. 베어질 나무를...
2024.05.17
법원은 사회의 많은 문제에 있어서 법률에 근거해 최종의 판단을 제공하는 곳이다. 서로 주장과 반박을 통해 옳고 그름을 따져 묻는 검사와 변호사같이 법률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한 가지 문제를 깊이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사가 종합적인 판단을 법률에 근거해 하게 된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사법적 판단에 대해 신뢰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무수히 많았던 핵발전소에 대한 판결을 보며 그간 많은 이들이 법원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곤 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두 곳의 핵발전소를 멈춰 세운 판결을 한 히구치 히데아키라는 전직 판사가 퇴임 이후 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내렸던 판결이 왜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오이 핵발전소의 운전과 다카하마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막은 판결의 주된 논리는 크고 작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 게다가 핵발전소 자체가 가진 결함들은 재난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경험한 것 역시 판결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저자는 상식, 이성과 양식(良識)에 근거한 판결을 했다고 여러 번 밝힌다. 이는 전문가들의 과학적 논쟁에 매몰되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판결이 피해당사자, 즉 피폭을 당할 위험으로 인해 고향을 떠난 피난민들의 입장, 혹은 일어날지도 모르는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에 놓인 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한 판결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법이 소수자, 약자, 피해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그 단순한 진실을 끈질기게 붙잡은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적 판단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당한 질문에 전문가의 권위주의나 알아듣지 못 할 말들로 본질을 흐리지 않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답변해야 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이라는 신념을 바탕에 두고 끊임없이 질문했다. 저자는 법관 출신답게 단어의 의미를 규정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위험’이라는 말의 용례를 사고 발생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피해의 규모가 커지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한다. 저자에게 핵발전소는 두 가지 모두의 측면에서 위험성을 가진다. 저자는 이를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설명한다. 핵발전소는 피해의 규모에서도 광범위하고 막대하며, 지진이나 지진해일과 같이 심각한 재난 뿐만 아니라 단전이나 단수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도 대형 사고의 위험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위험성을...
2024.01.17
영화 <수라>를 보면 4인의 성직자가 삼보일배를 하며 새만금에서 서울을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 걸음 걷고 한번 길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새만금의 생명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 성직자들, 그들은 영화 속에서 지쳐서 길바닥에 쓰러져서 울기도 하고, 오랜 삼보일배로 인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휠체어에서 타인에 손에 이끌려 끝까지 순례를 이어갔다. 새만금 방조제는 건설되었으나 수많은 뭇 생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걷는다는 삼보일배는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이 그들의 걸음에 동참했고, 그들의 걸음을 보고 생태 문제에 관심 두기 시작한 이들도 많았다. 걸음은 그간 수많은 이들을 흔들어 깨웠고, 세상을 바꾸기도 했다. 2017년 1월 21일 제13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 황분희 ‘월성원전 인접 지역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이후 무작정 나아리로 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일곱째별’이다. 저자는 황분희 부위원장의 발언을 가슴 속에 담아두었다가 그해 8월 무작정 핵발전소를 향했다고 책에서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은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를 방문한 그 이후 저자가 겪은 것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발간한 르포르타주다. ‘나아리에서 나아리로 걸어간 5년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이 책은 많은 장을 여정, 즉 길 위에서 경험한 것들로 채웠다. 나아리에서 황분희 부위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후 각종 토론회와 기자회견, 행사 등에 동참하던 저자는 이후 성원기 교수를 만나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 참여하게 된다. 저자는 매일의 여정과 그 길 위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록에 덧붙여 수많은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한 흔적이 책 곳곳에서 보인다. 저자는 신문 기사를 찾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이트를 찾아 정보를 수집했다. 걸음과 공부의 시간은 아마도 무작정 나섰던 걸음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2018년 영광에서 서울까지의 여정은 저자가 새로운 이정표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성원기 교수)와 함께한 2018년 뜨거운 여름, 길 위에 나선 내 인생이 어느 한 방향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 동참하고, 그사이 수많은 탈핵운동의 사건들을 찍고 기록으로 남겼다. 후쿠시마 인근지역을 방문하기도 하고, 상경 투쟁에 나선 지역주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몇 차례 소송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고, 주민들의 곁에 머물며 그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관찰자와 기록자의 자리에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2023.12.11
  그린 엑소더스 : 미래를 향한 교회의 도전   최근 체제전환연구소(System Change Lab)는 기후행동추적, 세계자원연구소 등의 연구단체와 함께 ‘2023년 기후행동보고서’(State of Climate Action 2023)를 발표했습니다. ‘2023년 기후행동보고서’에서는 205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계의 기후행동이 적절한 방향과 속도로 가고 있는지를 전력, 건물, 산업, 운송, 산림 및 토지, 음식 및 농업, 금융, 탄소제거기술의 8가지 분야의 42개 지표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분석 결과는 평가된 42개 지표 가운데 ‘신규 자동차의 전기자동차 보급률’의 단 1개 지표만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과 속도에 올라있고, ‘석탄발전 비중 감소, 건물운영 탄소집약도 감소, 대중교통 인프라 확대, 삼림 벌채율 감소’ 등의 30개의 지표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속도가 느리고, ‘화석연료 보조금, 개인 자동차 이용율 등’ 6개의 지표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이탄지대 복구 등’의 나머지 5개의 지표는 평가 데이터가 부족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보고서는 전반적으로 볼 때,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열펌프, 전기 자동차 등 저탄소기술을 채택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목표이행의 올바른 방향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속도가 ‘비참할 정도’로 부족한 비상 상황이라 엄청난 노력의 가속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2023년 기후행동보고서는 지난 10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10월’이었고, 2023년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세계기상기구(WMO)의 발표와 함께, 1.5도 목표를 점검하는 '전 지구적 이행 점검'(Global Stocktake, GST)의 결론을 발표하게 될 11월 30일 두바이 유엔기후변화협약 제 28차 당사국총회(COP28)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사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모든 분야에서 파리협정의 1.5도 목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전 지구적 이행 점검의 과학적 결론을 이미 발표한 상태입니다. COP28에서는 이 과학적 결론을 토대로 '정치적 메시지'를 발표하게 될 텐데, 그동안 온실가스를 주로 배출한 쪽은 선진국이고 개도국이 기후위기에 입은 피해에 대한 지원은 적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개도국과, 과거부터 미래까지 배출량을 모두 고려해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도 온실가스감축목표를 상향해야 한다는 내용이 메시지에 담겨야 한다는 입장의 선진국의 치열한 의견대립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개도국과 선진국 의견대립의 가장 첨예한 지점은 '손실과 피해 기금'의 조성과 운용 방법의 논의가 될 것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손실과 피해를 본 국가를 지원하기 위한 '손실과 피해 기금'의 조성은 지난...
2023.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