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파이로’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작성일
2022-10-0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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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파이로> (박현주 지음, 모두의책, 2022년 8월)

때론 원치 않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평생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알아야만 할 때 말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이니, ‘재처리’ 같은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배울 때마다 근심은 한 뼘씩 커졌고, 결국 근심이 자라다 못해 가슴을 넘어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순간부터는 팔자에도 없는 이른바 ‘탈핵 활동가’가 되는 법이다. 그저 소위 전문가들이 하는 연구의 제목일 뿐인 단어들이 그들에겐 가슴이 철렁하는 말이 되고, 때론 상흔이 되기도 한다. 파이로프로세싱이라니, 그 생경한 단어 하나 때문에 피 말리는 싸움을 시작한 이들이 있었다.

원자력연구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 그 앞에서 예배를 드린 일이 있었다.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했고, 주로 많은 분이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었다. 아마도 작중에 등장하는 홍서연은 어쩌면 그들의 분신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생각으로 지역공동체의 생협에서 활동하며, 함께 살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이들 말이다. 그저 평범한 삶의 공간이라 여겼던 곳이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채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진실을 알아버렸을 땐 이미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 작중 홍서연의 모습은 그들을 똑 닮아 있었다.

그들에게 전문가라는 이들은 언제나 거짓말쟁이들이었고, 연구원은 그 거짓말을 은폐하고 들켜도 책임회피만 일삼는 이들의 천국이었다. 연구용 원자로에서 화재가 나도 은폐하기 급급하고, 방사성물질을 야산에 파묻고, 밥벌이를 위해 연구의 위험성을 가리고, 액체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어 지역 하천으로 흘러간 사실을 숨기고, 핵발전소의 방사성폐기물을 연구라는 명목으로 자기 지역으로 옮겨오는 이 위험천만한 집단이 ‘전문가’라는 이름을 달고 버젓이 국민 세금으로 밥벌이하고 있는 것을 너무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정작 사고가 터지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이들이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스스로를 ‘전문가’로 지칭하며 문제를 지적하는 시민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수많은 ‘홍서연’들은 그간 절망감에 휩싸였을지도 모르겠다. 손정후와 같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지닌 학자가 나타나 자신들의 불안감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주기를 바랐으나 누구하나 용기를 내지 못하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때론 육승일 같은 정신 나간 핵공학자들을 만나기도 했을 터이고, 최흥복과 같이 일신의 안위만 궁리하는 이들도 보았을 것이다. 이해관계에 얽매인 ‘전문가’는 결국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국회는 매년 이른바 ‘전문가’들의 밥벌이를 위해 연구예산을 책정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밥벌이를 위해 파이로프로세싱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소듐고속로 같은 것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면 재처리 따위 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이들은 없다. 그것이 핵무기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다. 작중에서 이 국회와 ‘핵마피아’의 동맹은 결국 수많은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도 제대로 책임지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은 진보정당의 의원과 정의감 넘치는 기자가 애를 써도 어쩌면 저 강고한 동맹에 가로막혀 아무런 힘을 내지 못하고, 작은 사고가 났을 때 제대로 조사하여 문제를 밝히고 변화를 시도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일을 막지 못한 모습은 기시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탈핵운동을 하는 이들이라면 아마 다들 한 번쯤 상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일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하며 운동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집어 들어 첫 장부터 천천히 넘기다가 “에너지 민주주의를 꿈꾸며”라는 작은 글씨를 보았다. 이 글귀는 아마도 그저 전기를 생산하는 공장인 줄 알았던 발전소가 자신들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많은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 모두의 염원일 것이다. 그리고 원자력연구원의 곁에 터 잡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도 말이다. 그 당사자였던,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당사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 작가의 말처럼 “탈핵이 인권이나 민주주의처럼 보편적 가치가 되고, 핵 문제가 기후 위기나 미세플라스틱처럼 눈앞의 환경문제로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에너지 민주주의”의 세상에서만 ‘홍서연’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장)

출처 : 탈핵신문(http://www.nonukesnews.kr)

* 탈핵신문 10월호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