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개발을 바라보는 성서의 시선

작성일
2019-08-0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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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을 바라보는 성서의 시선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성서는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 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성서는 때로는 사람들의 권력이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의 선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성서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권력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슬러 불의와 갈등과 죽음을 불러오는 악의 도구였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성서는 악의 도구로 사용된 사람들의 권력이 개발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되며 견고해지고 있음을 경고하며, 하나님의 통치는 권력에 의한 개발이 중단되고 창조세계의 온전성이 회복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성서의 이야기들을 통해 기독교가 개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짧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11장은 대홍수 사건 이후 들판을 개발하여 도시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먼 들판을 찾아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4절, 새번역)라고 이야기하며 돌 대신 벽돌을 굽고, 흙 대신 역청을 사용하여 도시와 하늘에 땋을 높은 탑을 짓는다. 성서는 이들의 시도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뒤섞고,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심으로 결국 중단되고 말았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창세기 11장은 도시의 개발을 하나님께서 우려하셨기에 집적 개입하셔서 서둘러 개발을 제지하셨다는, 하나님께서 개발을 반대하셨다는 성서의 첫 번째 이야기인 것이다.

개발에 대한 하나님의 우려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출애굽기 1장의 이야기이다. 이집트에 머물게 된 야곱의 후손들은 이집트 사람들에 의해 도시를 건설하는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노예가 되고 만 것이다. 그들은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끌려 나갔”(11절)으며,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일이나 밭일과 같은 온갖 고된 일”(14절)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이후 성서는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고 차별과 억압이 없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는 광야의 멀고 험난한 여정으로 인도하셨다고 이야기한다. 개발 사업은 결국 사람들의 권력의 집중화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차별하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의의 구조였던 것이다. 성서는 개발이 가장 먼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의와 평화를 허문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는 이집트 사람들의 개발의 피해자였던 히브리 사람들이 개발의 불의의 구조를 망각하고 다시 개발의 유혹에 빠져들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열왕기상은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설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솔로몬 왕은 주변 왕국들과의 교류와 정략결혼을 통해 국가체제를 강화하면서 각 지방의 산당에서의 제사(3장)를 대신할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하게 된다.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일은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통한 개발 사업이었다. 우선 전국에서 3만 명의 노무자를 동원해서 레바논에서 수많은 나무를 벌채하여 옮겨와야 했고, 8만 명의 채석공이 채굴한 석재를 7만 명의 일꾼들이 옮겨와야 했다.(5장) 솔로몬 왕은 7년이란 시간을 들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6장)하였고, 그 후 13년의 시간을 들여 자신의 궁전을 건설한다.(7장) 이 20년 동안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아모리, 헷,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강제 노역을 시킨다.(9장) 이집트의 불의한 억압과 착취의 삶에서 탈출해서 정의와 평화를 추구했던 히브리 사람들이 자신의 국가 건설을 위해 주변의 약자들을 노예로 삼았고 자연을 수탈하는 불의한 권력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을 형성하는 과정은 대규모 개발 사업을 통해 이루어졌고, 개발 사업으로 건설된 성전과 왕궁은 왕을 중심으로 한 권력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성서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서는 이러한 개발을 통한 권력을 부정하고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려했던 예언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모스서 9장은 “성전기둥 머리들을 쳐서, 문턱들이 흔들리게 하여라. 기둥들이 부서져 내려서,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치게 하여라.”(1절)라는 불의로 가득 찬 이스라엘의 성전과 성읍이 무너지고 새로운 성읍이 세워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한다. 하박국서 2장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사람들이 “피로 마을을 세우며, 불의로 성읍을 건축하는 자야, 너는 망한다!”(6절)라며 이스라엘을 비난하게 될 것이라고 불의한 개발로 세워진 이스라엘 권력의 파국을 예언한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개발을 향한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인 분노는 아니었다. 요나서 4장은 잘못을 회개한 니느웨에 대해 하나님께서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11절)라고 하시며 개발된 도시를 포용하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에스겔서 3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성읍들에 사람이 다시 살고, 폐허를 다시 건설할 것이다.”(10절)라고 하시며 성읍의 재건을 약속하신다. 이는 결국 성서는 탐욕을 추구하는 개발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불의와 갈등과 죽음이 이 세상의 문제의 근원이며, 하나님께서는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이루는 온전한 개발을 원하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갈릴리라는 온화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자라났던 예수님께서는 성서가 전하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시고 주변 사람들을 수탈함으로서 이루어진 제국의 평화에 기댄 개발로 만들어진 예루살렘과 주변 도시들, 그리고 무엇보다 예루살렘의 성전의 본질을 꿰뚫어보셨다. 마가복음 11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기록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17절)라고 호통을 치시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로 성전이라는 로마제국의 권력에 기생한 지배 체제를 이끌어가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십자가형이라는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성서는 권력을 지탱하고 있는 불의한 개발의 진실을 폭로하며, 기존의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했던 예수의 죽음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초대교회의 사회적 상황 가운데서 새롭게 해석되어 초대교회 공동체의 언어로 성서에 기록된다. 히브리서 13장의 “우리에게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14절)라는 이야기는 현실을 지배하는 불의한 제국의 체제 가운데서 살아가면서도 이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려는 초대교회의 고민을 보여준다. 나아가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1,2절)라고 묘사한 새로운 예루살렘의 모습,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하나님의 나라’를 그려내는 데에 이르게 된다. 성서는 창조세계의 온전성이 회복된 도시를 이루어내는 일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개발’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글은 2019년 종교환경회의 종교인 대화마당에서 발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