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독공보와 함께 하는 생명밥상 캠페인 < 2849호, 2012년 05월 08일(화)>--- 음식은 생명이다 ---"생명밥상엔 생명의 ‘고통’이 아닌 ‘사랑’을!"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밥상을 차리고 먹는 일만큼 거룩한 일은 없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이 살게 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영이 깃든 거룩한 성전을 살리는 일이니, 이보다 귀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진지'란 말에 '참을 알다(眞知)', 곧 '나를 알다'는 뜻이 있는 것도 그래서일까? 그런데 우리는 진지를 대할 때 삶에서 '더 빨리, 더 많이'만을 추구하듯, 무엇을 먹고 있는지 무슨 맛인지 느낄 겨를이 없다. 밥이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있어온 수많은 생명에 대한 공경심을 가질 틈이 없다. 흙과 햇빛과 구름, 벌레, 비와 바람과 천둥, 눈과 서리, 농부의 땀방울,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며 밥상을 차리고 먹는다는 건 애당초 무리일까? 생명밥상 차림의 시작은 '생명의 사랑'을 알아채는 데 있다. 제 자신의 생명을 맘껏 뽐내며 자라다 제 생명을 기꺼이 내어준 먹을거리를 알아볼 수 있는가? 그래야 고기든 열매든 풀이든 낱알이든 '생명의 고통'을 품고 자란 먹을거리를 피할 수 있다.  요즘 우리 밥상에 오르는 고기는 자연 속에서 그들의 본연의 먹이를 먹고 자란 것이 아니기 십상이다. 병약해서 온갖 항생제와 백신을 맞으며 풀 대신 곡물 배합사료들을 먹고 살만 찌고, 사육시설에서 고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공격형 저항호르몬으로 가득하다. 농작물도 농약과 제초제에, 수입산이거나 유전자 조작 된 것이고, 철없이 유통돼 햇빛과 땅의 기운이 부족하고 비료로 인해 과다영양 상태다. 그도 가공된 것이면 방부제 발색제 등 수많은 첨가물이 들어가게 된다.  이 같은 먹을거리를 먹으면, 하나님의 영이 깃든 몸과 마음만 병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까지 해친다. 결국 하나님의 거룩을 범하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지구의 위기도 하나님이 건강하게 성장시킨 생명을 밥상에 올리지 않고, 생명이 고통 중에 죽어가게 하여 초래된 것일지 모른다. 생명의 고통을 먹은 이는 자연과 다른 생명에게 잔혹행위를 일삼기 마련이다. 또 우리가 생명의 질서를 깨고 그들에게 가한 폭력은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와 평화를 깨기 마련이다. 다행인 것은 요즘 들어 밥상에 오르는 먹을거리를 단순한 음식이 아닌 생명으로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된다. 밥을 대할 때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먹이로 내주셨던 주님(요 6:51)을 모시듯 하면 우리도 세상의 밥이 되어 살...
2012.09.01
* 이 글은 기독교사상 2012년 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이 / 책 / 이 / 라 / 면------------------------------------------녹색은총으로의 초대김도일 / 장신대 기독교교교육학 교수 <기후붕괴시대, 생명을 살리는 교회 환경교육>지은이 : 유미호 / 엮은이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 펴낸이 : 도서출판 동연 인류와 모든 피조물이 갈망하는 꼭 필요한 두 가지 은총이 있다. 첫째는 피로 인해 주어지는 은총이다. 이것을 우리는 적색은총(Red Blessing)1)이라 부른다. 모든 생명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총을 받게 된다. 둘째는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시대불변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녹색은총(Green Blessing)이다. 유미호의 『기후 붕괴시대, 생명을 살리는 교회환경교육』은 적색은총으로 인해 영생의 자리에 들어온 이들에게 보내는 처절한(?) 초대장이다. 어떤 초대장인가 하면 녹색은총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장이다. 왜 처절한가 하면 모두가 녹색은총을 알기는 알면서도 그 초대에 응하는 것을 꺼리기에 불편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보내야하기 때문이다. 왜 꺼릴까? 이유는 좋은 것은 알지만 귀찮고 불편하며 매순간 일정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녹색은총으로 들어가는 문은 조금 거칠고 불편하고 귀찮으며, 좁은 문이다. 그러나 이 은총을 받아들여야 모두가 살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기독교교육을 다른 말로 하면 생명을 살리는 교육이다. 이 생명을 살리는 교육은 적색은총과 녹색은총의 합이다.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영으로 오셨다. 생명의 영으로 오셨다는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곧 죽어가는 삶을 다시 살리는 복음을 제시하러 오셨다는 것이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생명을 살리는 교육이며 이는 죽어가는 모든 것을 다시 살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교육이 인간의 구원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 우리의 교회는 성장에 집중하며 죽어가는 인간영혼을 살리고자 노력해왔다. 그동안의 기독교교육은 복음 전도를 포함한 인간 구원의 문제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어찌 보면 한국교회의 선교적 관점에서 복음 전도의 뜨거운 실천이 시대의 요청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을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 말로 생명을 살리는 교육이라 여겨왔던 것이다. 인류는 산업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너무나 숨 가쁘게 달려왔다. 경제성장에 있어 환경의 문제는 사치로 보이는 문제일 수도 있었다....
2012.09.01
[생명밥상 캠페인_9] ------------------------------------- 기독공보 [2847호] 2012년 04월 23일 필요만큼 차려먹고, 모두에게 고른 생명밥상을!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전 세계 비만인구가 영양실조 등으로 고통 받는 기아 인구를 초과했다. 지난 해 국제적십자사연맹은 세계재난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인 가운데 약 20%에 달하는 15억 명이 비만으로 고민하는 반면, 15% 정도인 10억 명은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는 물론, 바이오 연료와 식량 수요 증가 및 기상 이변과 경작지 감소로 인한 곡물가격의 급등 때문인데, 실은 우리의 밥상에서 비롯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 상 한쪽에서는 3초에 1명씩 굶어죽고 있는데, 과식하면서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거나 병에 걸려 괴로워하고 있지 않은가? 기후변화로 경작지가 준다고 염려하면서 음식을 남겨 버리거나 먼 나라에서 수입해온 것을 즐겨 밥상에 올리고 있지 않은가?  사실 요즘 '거룩한 성전'인 우리 몸은 이전 시대에 없던 고혈압, 당뇨, 심혈관계 질환 등 생활습관병을 많이 앓고 있다. 너무 많이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어서 생긴 일이다. 아이들도 그로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육류와 설탕 등을 많이 먹다보니 매우 공격적이고 산만해질 뿐 아니라 정서불안, 스트레스 등 정신적 질환을 앓는 이들도 많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수많은 음식물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년 동안의 발생량을 합하면 그 무게가 5백만 톤이나 되는데 돈으로 환산하면 18조원이나 된다. 이는 우리나라 연간 식량수입액의 1.5배이다. 식량자급률이 25% 밖에 안 되는 나라의 전체 쓰레기 중 음식물이 28% 이상을 차지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해마다 전체 아동 사망의 1/3인 260만 명이 죽 한 그릇 먹지 못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걸 생각하면 심히 마음이 아프다. 지금 당장 자신의 필요를 알아 적게 먹는 '소식(小食)'을 훈련하자. 남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웃 사랑은 가능하다. 1년 치 버려지는 음식 값이면 전 세계 기아 인구를 최소한의 영양 상태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 곧 필요만큼에 만족한다면, 건강은 좋아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다스려 마음까지 평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웃과 나누니 인생이 행복해짐은 물론이다.  밥상을 차릴 때는...
2012.09.01
[기독공보 생명밥상 캠페인_8] ------ [2845호] 2012년 04월 5일 곡채식으로 기후재앙의 두려움을 넘는다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우리는 받은 복(창 1:29)이 참 크다. 하지만 그 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매일 대하는 밥상을 봐도 알 수 있다. 우리의 밥상을 지탱해주는 지구 동산은 기후 붕괴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축산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세계 교통수단이 만들어내는 온실가스(전체 대비 13.5%) 보다 많은 18%나 된다. 특히 축산업에서 나오는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3배나 더 강력한 지구온난화의 힘을 갖고 있는데, 전체의 37%나 된다. 이런 축산업을 통해 고기가 계속 밥상에 오르는 한, 지구 온도는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로 인해 거대한 북극의 빙하가 급속도로 녹아가고 있으며 이상 기후로 인한 자연 재난은 계속되고 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가 물에 잠기는 것도 시간문제다. 더구나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변종 질병들도 세계 곳곳에서 무섭게 창궐하고 있다. 우리라고 그런 위기의 예외일 수는 없다. 이미 위협은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 구제역과 조류독감과 광우병, 신종 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병을 고려하면, 생명을 위해 먹어야 할 먹을거리가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심한 경우는 생명까지 앗아가고 있다.  이 같은 재앙을 막으려면, 지금 당장 기후붕괴를 늦추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은 하나님이 처음 허락하신 음식, 땅에서 나는 것으로 밥상에 희망을 불어넣자. 육식 위주가 아닌 채식 밥상을 차리자는 것이다. 사실 육식은 앞서 지적한 이유 이외에도 이산화탄소의 흡수원인 열대우림의 70%가 잘려나가게 했다. 1분마다 축구장 여덟 개 넓이의 열대우림이 불태워지고, 그 속에 살고 있는 5만 종의 생물이 해마다 사라지고 있다. 가축 사육에 필요한 농지, 곡물, 물 등으로 다량의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은 물론이다. 또 육식 1인분은 채식 20인분의 식량과 물에 해당한다고 하니, 지금 먹는 고기가 누군가를 목마르게 하고 굶주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기후변화의 측면에서 보면 육식의 제한은 1백년이나 머무는 이산화탄소와 달리 8년밖에 머물지 않아 즉각적인 효과를 낸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채식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고통 중에 있는 지구는 기다리고 있는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채식에 대한 염려가 있다면 우선 먹는 횟수와 양을 줄이는 것으로 출발해도 좋을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만...
2012.09.01
[기독공보 생명밥상 캠페인_7] ------ [2844호] 2012년 04월 3일 생명밥상으로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봄이다. 교회적으로는 사순절기를 보내고 있다. 봄 햇살 가득 담은 봄나물 한 무데기 밥상에 올려 발밑의 땅을 느낀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며 세상에 생명의 밥으로 오신 주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을텐데. 헌데 봄 기운을 전해줄 지구가 에너지 문제로 기후붕괴는 물론 방사능에 의한 위협 앞에 서 있다. 밥상만 봐도, 상상도 못할 많은 에너지가 올려지고 있어 지구의 목을 조르고 있다. 밥은 생산과정은 물론, 가공, 유통, 보관, 조리, 그리고 먹고 난 후 버려지는 음식쓰레기 처리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또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비닐하우스 농사나, 수입 농수축산물과 같이 먼 거리 수송을 할 경우에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어 온실가스의 발생량이 더 늘어나게 된다. 제철을 벗어나 수천 킬로미터를 운반해온 것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 한끼 밥상에 드는 에너지가 4.7kWh라 한다. 이는 냉장고를 80시간, TV를 22시간, 에어컨을 5시간 켜는 양인데, 이로 온실가스는 승용차 1대가 25km를 달리면서 배출하는 양인 4.8kgCO2e가 배출된다. 또한 소나무 1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양이라니 밥상에 드는 불필요한 수고를 줄여 지구에게도 평안을 전할 일이다.  우선은 가까운 곳, 곧 우리 땅에서 난 것을 먹자. 이는 여러 의미가 있다. 이동거리가 짧으니 소비되는 에너지와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우리 땅에서 우리 농민이 키워낸 것일테니 우리 땅과 농업을 살리게 될 것이다. 먼 거리 이동을 위해 뿌리던 농약을 덜 쓰게 할 터이니 그만큼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철에 난 것을 먹자. 제철에 난 건 맛과 영양 면에서도 일품이지만, 환경을 보호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철 것은 각 계절별로 나타나는 질환에 약이 된다. 봄철 음식은 간에 좋고, 여름철 음식은 심에 좋고, 가을철 음식은 폐에, 겨울철 음식은 신에, 그리고 장마철 음식은 비위에 효과적이라던가… 결국 자연의 일부인 우리는, 자연과 리듬을 같이 할 때, 곧 제철음식을 먹을 때 몸이 건강해짐을 알 수 있다. 제철에 난 음식을 항상 먹으려면, 직접 재배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주말농장이나, 혹은 텃밭이나 베란다일지라도 할 수만...
2012.09.01
[기독공보 생명밥상 캠페인_6] ------ [2842호] 2012년 03월 12일 (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밥상, 구원의 밥상 정경호 교수 / 영남신대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세계는 전쟁의 문제 난민의 문제,살인적인 빈곤의 문제,자연생태계의 파괴 및 자연적 재앙의 문제,핵 위기의 문제,물의 부족 문제,곡물의 절대적 부족 등등으로 우리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 특히 2000년부터 곡물생산량이 곡물소비량보다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식량위기의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다가 2007년과 2008년에는 본격적으로 식량위기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2008년 벽두부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극빈국 가운데 방글라데시,필리핀,인도,이집트,카메룬,잠비아,멕시코,아이티를 포함한 37개국에서 두 배나 폭등한 식량과 물의 부족으로 인하여 아사직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세계 인구 70억 인구 가운데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살인적인 빈곤층이 11억 명이 이상이 되며 상대적 빈곤층은 16억 명이 되어 전 세계 인구의 40% 정도가 빈곤 상태에 노여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러한 남반구의 극빈의 현실이 있는가 하면 세계의 5대 곡물시장의 지배자들인 미국의 카길(Cargill), 아터 대니얼스 미드랜드(ADM),프랑스의 루이드 레퓌스(LDC),아르헨티나의 병기(Bunge),스위스의 앙드레(Andre)와 같은 제국의 곡물회사들은 2008년부터 곡물의 가격이 폭등하여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어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켠에는 헤롯 안티파스처럼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토해낸 죽음의 밥상이라면 다른 한켠에서는 쌀 한톨,밀가루 한 움큼이 없어 흙빵을 구워먹어야 하는,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된 병든 세상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 우리들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5병2어의 기적의 밥상이다. 그런데 5병2어의 기적의 사건은 너무나 중요하여 4복음서에 다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마 14:13-21,눅 9:10-17,요 6:1-14) 특히 마가복음에 나오는 5병2어의 기적의 밥상 이야기는(막 6:30-44)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토해내고 다시 입으로 쑤셔 넣는 헤롯 안티파스의 잔치 이야기(막 6: 21-29) 바로 뒤에 나오는 말씀이기에 더더욱 우리들에게 큰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사흘을 굶주려 가며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 곧 참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굶주리고 있는 그들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하여 행여나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알아보게 하셨다. 이때 어린 아이가 내어 놓은 보리빵 다섯개와 생선 두 마리 위에 예수님께서는 손을 얹어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나누어 주었더니 남자 어른...
2012.09.01
2012. 3월호 신앙세계 기고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침묵의 봄’을 깨운다 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침묵의 봄’을 깨운 한 여성40년 전 사라져가는 수많은 생명과 절규하는 지구를 대신했던 이가 있었다. 레이첼 카슨(1907~1964)이다. 자연을 벗 삼으며 자라나 문학을 전공하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해양생물학을 공부했던 그녀는, 1958년 세상에서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는 한 여인의 편지를 받고 4년에 걸쳐 증거를 수집해 종합해냈다. “울새 어치 굴뚝새 검정지빠귀 … 대체 새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밤새 봄을 지저귀던 새들은 더는 울지 않는다. 자연은 소리를 죽였다. ‘침묵의 봄’이 온 것이다…” ‘침묵의 봄’이란 책이 그 결과물이다.‘침묵의 봄’은 문명생활의 상징처럼 쓰이기 시작한 DDT 등 유독성 화학물질과 미국 야생생태계의 광범위한 파괴에 관한 이야기다. 유독성 화학물질이 어떻게 토양을 오염시키고, 녹색식물을 고사시키고, 그 잎에 붙어사는 곤충을 무차별 살육하고, 그 곤충을 먹고사는 새들을 죽게 하는지, 그리고 수생생물을 떼죽음 당하게 하고, 인간의 건강을 파괴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하는 구체적 사례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생태적 연관 관계에 무지한 전문가들, 정책 당국자, 그리고 산업의 이해관계도 그려져 있다.연약한 여성, 카슨의 힘은 위대했다. 비록 책이 출판되고 2년도 되지 않아 암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책은 생명을 철저히 세분하는 기존 과학에서 벗어나 주변의 모든 존재와 의지하며 살아가는 생명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그로 미국 환경정책의 방향이 바뀌었고, 주민들에 의한 환경운동이 촉발됐으며, 화학회사들은 인근 주거지역에서 떠났다. 비록 규제가 덜한 제 3세계나 개도국으로이긴 했지만. 두 지역에서 전해져오는 ‘침묵의 봄’ 소식 이제 바야흐로 봄이다. 씨앗 속에 숨어있는 어린 싹이 올라오기엔 겨우내 언 땅이 아직 너무 두터운 듯하지만, 봄은 서서히 문득 우리 앞에 다가섰다.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면, 새들이 재잘거릴 것이고, 그러면 우리도 그에 맞춰 노래 부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로 즐거워할 수만도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올 봄 두 지역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봄’ 소식 때문이다. 한 곳은 유럽의 곡창지대인 체르노빌이고, 다른 한 곳은 아시아의 후쿠시마(福島, 복 받은 섬)다. 이들 두 지역은 모두 사람들이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를 돌리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았는데, 그로 인해 지금 ‘침묵의 봄’을 맞고 있다. 체르노빌은 사고 후 2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2012.09.01
구세공보 3월호 기고우리가 지켜야 할 지구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에 두시며 동산을 돌보고 지키게 하셨다.” (창2장15절) 양재성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교회 지붕마다 햇빛 발전소를 설치하고, 교회 안에 초록가게와 생협이 세워지고, 교회의 담장이 사라지고, 주차장을 논과 밭 등 공원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교인들이 자전거를 이용하고, 자발적으로 통행금지에 참여하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떨까? 주보나 자료집은 모두 재생용지를 이용하고, 꽃꽂이 대신에 화분을 활용하고 헌금의 30%를 환경선교를 위해 사용하면 어떨까? 범지구적인 문제로 일본 대지진과 해일,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은 일본 열도를 넘어 세계 모든 나라에게 경각심을 주었고, 원전에 대한 주요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인한 가축의 생매장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였다. 강풍과 홍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가뭄과 남벌로 인한 숲의 상실과 사막의 증대로 인류는 물론 지구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 기후변화는 지속적으로 식량 생산량을 감소시키고 있어 위협은 더 커지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세상을 보시고 감탄하셨다. 그리고 세상을 돌보고 지킬 청지기로 인간을 지으셨다. 자연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담겨져 있다.(롬1/20)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신학자 도드는 예수께서 자연계의 비유를 많이 말씀하신 것은 자연계의 질서와 영적인 질서 사이엔 내적인 친밀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불신앙이다. 예수께서는 불편하고 위험하더라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성령의 마지막 열매가 절제라고 가르친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 * 녹색교회를 세우자창조질서보전을 위해 기도하고 설교하고 교육하며 자원재활용에 참여하고 교회 관리를 생태적으로 하고 건축도 친자연적으로 세워간다. 유기농산물을 먹고 화분을 놓고, 불필요한 행사는 줄이고 간소화한다. 차 없는 주일을 지키고, 대중교통이용을 이용한다. 환경현안에 신앙적 양심을 가지고 대응한다. 주보나 자료집을 재생용지로 만들고 햇빛이나 풍력발전소를 설치 운영한다. 환경부를 두고 모든 교회사역을 환경선교와 연계시킨다. * 생명밥상을 차린다.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려 공손히 먹고, 음식을 남겨 버리지 않음으로 내 몸과 마음, 하나님의 창조세상을 살리는 운동에 참여한다. 생협을 이용하고 도농직거래운동에 참여한다.* 지구 온난화 억제 운동에 참여한다.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이용을 생활화하고 가까운...
2012.09.01
생명밥상 캠페인_5] ------ [기독공보 2840호] 2012년 02월 28일 (화)   세례요한의 빈들의 밥상 정경호교수/영남신대 마가복음 1장 6절에 의하면 세례 요한은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은 검소하고 절제된 삶을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메뚜기와 석청으로 대변되는 세례 요한의 밥상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세례 요한의 밥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의 분봉 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는 로마제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기 위해서 왕으로 위임된 아버지 헤롯 대왕과 로마의 왕 아우구스투스와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종의 인질로 로마에서 모든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헤롯 안티파스는 기원전 4년 아버지 헤롯 대왕이 죽자 그의 형제들과 함께 왕국을 분할하여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의 왕이 되었는데 그는 이웃나라인 나바테아의 공주 파샬리스와 결혼 했으나 이혼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이복동생인 빌립 2세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을 하여 세례 요한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는다. 이에 헤로디아는 그를 부추겨 요한을 잡아 가두게 했으며 헤롯 안티파스의 생일잔치에 자신의 딸을 시켜 요한의 목을 가져오도록 하게 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헤롯 안티파스의 생일잔치의 밥상은 어떠했을까? 마가복음 6장에 나타나는 헤롯의 잔치의 밥상은 당시 로마의 밥상과 매우 흡사한 밥상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당시의 로마제국의 밥상은 부요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밥상은 질적으로 다른 양극화된 밥상이었다. 당시에 가난한 사람들은 주로 보리로 만든 거친 빵, 곡물로 만든 국수와 옥수수 가루 죽 등을 먹었으며 콩, 무화과, 올리브와 함께 치즈를 먹었다. 그러나 가끔은 구운 돼지고기나 소금으로 간을 한 생선도 사 먹기도 하였다. 반면 부요한 로마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많은 손님을 초대하였는데 이때 주인은 값비싼 최고급 재료들을 준비하여 음식을 만들어 자신의 우월감을 나타내려 하였다. 에프타이저로 불리는 식전 요리가 두 차례 나왔으며 본 요리는 세 차례나 나오는데 처음엔 살찐 어린 닭과 암돼지 요리와 토끼 요리와 함께 구은 생선 요리가 나오고 그 다음엔 수컷 멧돼지 고기와 함께 각종 대추가 나오면 마지막으로 통돼지와 함께 맛있게 삶은 송아지 고기가 나온다. 그리고 후식도 두 차례나 나오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의 밥상이었다. 대계는 본 요리 두 번째가 되면...
2012.09.01
[생명밥상캠페인4] .... [기독공보 2839호] 2012년 02월 20일 (월) 모두가 넉넉한 만나의 밥상 정경호교수 구약성서 출애굽기 16장에 나타나고 있는 만나의 밥상 곧 '메추라기와 만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히브리 민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희망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데 광야의 갈 3일도 채 되지 못하여 우린 모두 애굽 땅에서 배불리 먹었는데 이제 광야에서 굶어죽게 되었다는 불평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양식을 내려 히브리 백성들을 먹이신 사건이 곧 만나의 이야기이다. 1-18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들이 먹을 만큼,식구의 수대로 한 각각 오멜씩 만나와 메추라기를 거두어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였으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이 먹을 만큼만 거두었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거둔 것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명하셨으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다음날을 위해서 남겨 두었던 만나와 메추라기는 모두가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괴연 이러한 만나의 밥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만나의 밥상이란 밥상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만나의 밥상의 주체는 출애굽후 광야의 삶을 가능하도록 공급하신 분은 애굽제국의 바로 왕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더욱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나의 밥상의 주체는 돈을 신으로 섬기는 물신(物神,Mammon god)도 정치의 힘이나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제도 아니며 수익을 많이 올리는 대기업도 거대한 초국적 농산물 기업이 아니라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려주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만나의 밥상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생명되게 하시어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둘째,만나의 밥상이란 모두가 평등한 공정한 밥상이며 그리고 모두에게 넉넉한 밥상이라는 것이다. 출애굽기 16장 18절에 나오는 말씀으로써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평등의 밥상이기에 평등한 분배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나의 밥상은 각 사람이 가져간 양은 서로 달랐으나 모두가 넉넉한 만족한 밥상이었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특히 신자유주의의 경제세계화가 보여준 밥상은 많이 가진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 반면에 적게 가진 자는 살인적인 빈곤으로 신음하고 있는 양극화의 밥상이요 불평등한 밥상이다....
201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