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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신앙 이야기

  소리와 소음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모처럼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휴가로 오대산에서 아침을 맞았는데, 맑은 공기만큼이나 아침이 신선하고 고요합니다. 도시에 살면서 한참을 소리 아닌 소음에 시달렸던 귀가 지쳐 있었는지, 간만의 맑고 밝고 고요한 아침에 온전히 쉬며 마냥 행복해합니다. 도시에서는 달리는 차와, 컴퓨터, 냉장고, 에어컨, 선풍기 등의 가전제품이 돌아가는 소리 등등 ‘크고 작은’ 소리에 늘 둘러싸여 지냈습니다. 이들 소리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그 반대의 소리, ‘소음’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다고 하여 ‘음악’이라 부르는 소리도 도시에선 때때로 듣기 싫은 ‘소음’이 되기도 합니다. 소리를 느끼는 것이 주관적 감각이다 보니, 그 크기와 상관없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소음은 주관적 소리를 넘어 소리의 진동수가 아닌 세기에 의해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먼저 소리의 진동수는 소리의 높낮이를 말하는 것으로 그 단위는 헤르츠(㎐)입니다. 사람은 20∼2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200∼6100㎐의 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3000㎐ 부근의 소리를 가장 잘 듣고, 코끼리는 20㎐ 이하의 초저음파, 박쥐는 2만㎐ 이상의 초음파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합니다. 반면 듣기 좋고 싫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리의 세기입니다. 그 세기의 단위는 데시벨(㏈)인데, 10dB 증가할 때마다 세기는 10배씩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합니다. 도서관이 40dB이고, 교실이 50dB, 일상적 대화가 60㏈, 교통이 복잡한 도로가 70dB이니 도서관에 비해 교실은 10배, 일상적 대화는 100배, 교통이 복잡한 도로는 1천배 시끄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항공기의 이착륙 소리는 그보다 세기가 더 큰데,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는 한계선인 120dB도 넘는 130dB이나 됩니다. 이 항공기 소음은 국제민간항공기구가 정한 단위인 ‘웨클’(WECPNL)로 설명되는데, 85웨클(72㏈)이 넘으면 국가나 항공사가 소음방지시설이나 비행기 이착륙 회수조정 등 조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공항 주변 주민들의 피해에 배상해야 하는 조처가 내려진 판결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소음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상당히 괴롭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점차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니 청각세포가 파괴돼 귀가 망가집니다. 때론 같은 크기의 소리일지라도 청력이나 신경이 약한 사람은 그 피해가 더 일찍 더 크게 나타납니다. 소음을 피하여 고요히 머물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데, 벌써 그곳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자연의 소리는...
2016.09.04
   자연에서의 ‘쉼’과 우리의 ‘숨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개망초나 돼지풀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개망초는 가끔 자연 영상물에 등장하는 아주 흔한 식물입니다. 예뻐서 꽃병에 꽂아두곤 하는 데, 구한말 열강의 침입으로 나라가 망할 때 나타나 꽃피웠다고 해서 ‘개망초(亡草)’라고 이름 붙여진 식물입니다. 사실 이 식물은 도시나 농지 주변, 길가처럼 환경이 오염된 지역에서 무리지어 자랍니다. 꽃가루가 알레르기성 질환을 일으키는 돼지풀이나 미국자리공 등도 그렇습니다. 이들 풀들은 쓰레기터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쓰레기 ‘잡초군락󰡑이라고까지 불립니다. 그래서 이들 풀들을 숲 속이나 강가에서 볼 낯이면, 우리의 자연이 즐기는 이들에 의해 쓰레기통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편해집니다. 이제 얼마 후면 여름 휴가철도 끝나 갑니다. 유난히 뜨거운 여름을 어디서 어떻게들 쉬셨는지요? 도시를 떠나 자연을 찾아가 심신이 쉼을 누리는 시간을 가지셨겠지요? 모처럼 가족과 단란하게 산과 들, 바다를 찾다가 교통체증으로 쉼이 한낱 ‘한여름 밤의 꿈’에 그친 것은 아니었길 빕니다. 혹 산과 바다에 쓰레기가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진 않으셨는지요? 자연을 향하는 이들의 짐 가방을 들여다보면 편리하다는 이유로 종이컵 등 일회용품이 많고, 컵라면 등 인스턴트식품이 담기기 일쑤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일상생활에서 종이컵이나, 캔이나 종이팩에 담긴 음료 등 일회용품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종이팩은 재생하여 화장지를 만들고, 알루미늄캔은 녹여 다시 알루미늄을 만들고, 종이컵도 분리수거하면 재활용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하는 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활용 이전에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은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올 여름 자연을 찾으며 일회용품을 일체 가져가지 않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다소 불편하고, 오는 길에도 짐이 가벼워지진 않았어도 그만큼 마음은 가벼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를 되가져오거나 그곳의 쓰레기를 봉지 하나만큼이라도 주어왔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것은 어쩌면 산천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우리가 자연을 찾아가 지켜야 할 기본예절이란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휴가’의 ‘휴(休)’자도 사람인(人)변에 나무 목(木)자로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쉰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현종 님은 ‘나무에 깃들여’라는 시에서 나무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무들은/ 난 그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2016.09.04
비닐봉투보다 종이봉투가 선한가?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요즘 비닐봉투를 사용하는 일이 단순히 보기 좋지 않은 것을 넘어 악한 행동으로까지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는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쓰이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비닐봉투의 사용을 금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캠페인으로만이 아니라 법으로 그 사용을 금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지난 5월 뉴욕에서는 모든 일회용봉투에 5센트의 비용을 부과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메사추세츠 주에서는 소매점에서 비닐봉투 사용을 금하고 재생종이와 재활용 봉투에도 10센트의 비용을 물리는 조례를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캘리포니아 주가 일부 지자체에서 조례를 통해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금하던 것을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되기 시작한 것은 일찍이 아일랜드에서였습니다. 아일랜드는 2002년 처음으로 일회용 비닐봉투에 세금을 부과하였는데, 그로 인해 배출량이 거의 90%까지 줄었습니다. 일회용 비닐봉투가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 불릴 만큼 환경오염의 고질적 원인 중 하나라 보기 때문입니다. 잘 썩지 않고, 소각하면 유해물질이 배출되는데다가 함부로 버리면 해변과 바다를 떠돌며 큰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닐봉투 사용을 금하는 것입니다. 금지 법안까지 마련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비닐봉투 사용이 완전히 금해질 수 있을까요? 그럴 순 없을 것입니다. 물건을 사 가려면 어쨌든 무언가가 필요할 것이고, 비닐봉투를 대신할 ‘환경적으로 선한 것이 무엇이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는 비닐봉투 대신 종이봉투 혹은 재사용 가능 봉투를 선택하였습니다. 그것은 환경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봉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종이봉투가 비닐봉투보다 온실가스를 더 많이 만든다고 합니다. 종이가 더 무겁기에 봉투를 만들 때 드는 에너지가 더 많고, 운반도 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비닐봉투만이 아니라 모든 일회용봉투의 사용을 막는 것이 맞습니다. 일부에서는 재사용 가능한 가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면으로 된 가방도 환경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1파운드의 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5000 갤런의 물이 필요하고, 면은 종이와 달리 재활용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한 비닐봉투는 최소 12번 이상, 면으로 된 장바구니는 최소 132번 이상, 종이봉투는 최소 4회 이상 써야 일회용비닐봉투보다 지구온난화를 박는데 도움인 된다는 지적입니다. 그러고 보면 최선은 일회용 봉투에 비용을 부과하면서 동시에 재사용 가능한 가방을 튼튼하게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마저도...
2016.09.04
기독공보 NGO 칼럼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이진형 목사   무더위의 끝자락이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주,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함께 하고 있는 종교환경회의에서는 전라북도 전주와 완주지역에서 2박 3일의 생명평화순례를 가졌습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5대 종단의 환경단체들이 모여 있는 종교환경회의에서 전주 완주지역을 이번 순례지로 삼은 이유는 완주혁신도시에 농업진흥청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봄,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 한국교회협의회(KNCC) 생명윤리위원회와 함께 환경주일 주제를 “생명을 위한 선택, 반 GMO”로 정하고 한국의 유전자조작식품(GMO)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던 중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여러 종류의 유전자조작식품을 연구하고 재배하고 있었고, 특히 농업진흥청에서는 유전자조작으로 만든 벼를 노지에서 재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유전자조작식품은 국내외에서 식품안전성에 관한 논란과 더불어 다국적기업의 종자와 농약 독점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논란, 생태계의 유전적 오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농산물 자급 비중이 30%를 밑돌아 대부분의 식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계 1위의 유전자조작식품 수입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었데, 거기에 덧붙여 국내산 농산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벼까지 유전자조작식품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유전자조작식품의 유토피아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시민, 종교, 환경 단체들이 유전자조작식품의 문제들을 인식하고 국민들의 선택권을 위해 유전자조작식품 완전표시제를 요구하고 있었고,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한국교회 안에서도 ‘탈 GMO 생명살림 기독교연대’가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국적기업과 대기업이 장악해버린 식품업계와 시급하고 절박한 일들이 이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유전자조작식품 반대 운동은 아직 그리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싸게 많이 먹을 수 있으면 됐지 뭐가 문제야 라는 경제논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질서를 따르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명논리보다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평화순례로 뙤약볕이 내려쬐는 전주 시내와 완주의 들판을 걷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믿었던 농업진흥청으로 배신을 당했다는 지역 농민들의 분노의 목소리를 들었고, 걸으면서 식품안전 관계자들의 유전자조작식품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기에 밥상 위의 핵발전소와 마찬가지라는 두려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걸으면서 5대 종단의 종교인들은 한결같이 유전자조작식품은 생명의 순리를 거스르는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이니, 농업진흥청 유전자조작식품사업단에서 유전자조작식품을 재배를 중단하고,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내어놓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마음을 모으고 각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순례 마지막 밤,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종교인들의 기도 덕분인지 오랜 가뭄으로 애태우던...
2016.09.02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돌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이진형   다들 참 바쁘고 힘겹게 살아갑니다. 때론 제 갈 길을 제대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가는 일이 버거운 느낌입니다. 그러니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이미 지나가버린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일은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바라보는’ 일이 바로 ‘돌봄’이라는 말의 본뜻이라고 합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나 아닌 다른 존재를 향해 눈길을 주는 일, 바로 그 일이 돌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돌봄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빛과 어두움을, 해와 달과 별들을, 풀과 나무와 짐승들을, 정성을 들여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하나님의 돌봄으로 만들어졌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저 스쳐 지나가도 아무렇지도 않을 흔하디흔한 먼지를 빚어 사람을 만드셨다는 이야기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돌봄으로 이루어진 것이란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돌봄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맡겨진 일은 창조세계를 돌보라는 돌봄의 사명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돌아서서 바라보는 일, 돌봄에 충실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서 위태위태한 지경에 이른 오늘의 상황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돌봄은 너무나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창조세계는 그리스도인들의 돌봄을 목말라하고 있고, 애태우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봄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돌아서야 합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큰 것을 차지하고, 더 화려한 것을 추구하려는 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돌아서야 합니다. 남들이 가는 길에서 돌아서지 않는 돌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한참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나쳐버린 그 곳에 홀로 생명을 돌보시느라 외롭게 서 계십니다. 주저하지 말고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돌봄을 위해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얼마나 깊이 병이 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무엇으로 치유해야 하는 지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바라보고 계신 곳을 우리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 새 한 마리, 그 어떤 생명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의 바라봄에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서서, 주님이 바라보시는 곳을 바라보는 일,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돌봄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신 산과 들을, 강과 바다를, 숲과 나무를, 새들과...
2016.07.20
  ‘비닐봉투’ 사용 줄이기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요즘 쇼핑할 때 비닐봉투(플라스틱 백)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된 듯합니다. 비닐봉투는 1957년 미국에서 샌드위치 포장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 이후 마트 계산대에서 사용되면서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5,000억 개 이상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190억 개 이상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양으로 보면, 약 370여 장이나 됩니다(스페인 120여 장, 독일 70여 장). 매일 약 5천만 장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지난 10년 간 1.5배나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사용되고 있는 비닐봉투가 갖는 문제점은 이렇습니다. 버려져 분해되는 데 100~500년이 걸리고, 분해되는 동안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여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247만 톤에 이릅니다. 게다가 비닐봉투를 9장 만드는 데 드는 석유면 승용차 한 대가 1km를 주행할 수 있습니다. 때로 그냥 바다로 흘러들면 해양생태계를 위협하는데, 해양생물들이 플라스틱을 먹고 영양부족으로 죽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다거북은 비닐봉투를 해파리로 착각하고 먹기에 멸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태평양 환류지역에 형성된 한반도 크기의 7배나 되는 쓰레기 섬의 경우 80%가 플라스틱과 비닐봉투입니다. 문제가 이러한데, 우리나라에서도 비닐봉투 상당수가 가정용 종량제봉투에 그냥 버려지고 있습니다. 무게로 보면 종량제봉투의 17.4%나 됩니다. 재활용품 선별장에 반입되는 재활용품으로 보면 약 50~60%가 비닐쓰레기입니다. 그래서 환경부와 대형할인점은 ‘1회용 비닐쇼핑백 없는 점포’ 자발적 협약을 체결하고 2010년부터 그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야할 길은 멉니다. 중소규모 점포는 물론 전통시장, 그리고 대형마트의 속비닐, 우산 비닐과 세탁소 비닐 등 그 사용량은 늘어만 갑니다. 1년에 단 며칠만이라도 ‘비닐봉투 없이’ 지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가 ‘비닐봉투 없이’ 지내는 날을 하루씩 더 늘여나가면... 이미 아일랜드에서는 ‘비닐봉투 없는 날’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무상 비닐봉투 제공이 금지되고 세금이 부과되었는데, 5개월 만에 90%까지 사용량이 줄어들었습니다. 1인당 1년 평균 사용량이 18개입니다. 세계 최초로 1회용 비닐봉투에 세금을 부과한 덴마크는 더 작은데 4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1988년부터 플라스틱으로 만든 1회용 부엌용품이나 종이접시에 판매가의 50%에 달하는 세금이 부과되고 있습니다. 비닐에 싸여 신음하는 지구를 생각하면 우리도 가야할 길이긴 한데 어떤 방법이 좋은 걸까요?지난 달 서울시와...
2016.07.14
160613_바이블25_음식정의   음식 정의(Food Justice)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최근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저소득층 가구의 영유아가 비만일 확률이 일반 가정에 비해 높다고 합니다. 저소득층에 과체중 영유아의 비중이 컸는데, 저소득층 가구의 영유아가 상대적으로 균형 있는 영양섭취를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탄수화물과 지방의 섭취는 많은 반면, 비타민A, 비타민C, 나이아신(비타민B3) 같은 중요 영양소의 섭취는 기준치에 못 미쳤습니다. 영유아 시절의 건강과 영양 정도가 성인이 된 뒤까지 영향을 미쳐 고혈압, 당뇨병, 암 등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것을 고려하면, 제도적 보장이 시급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지역사회 통합건강증진사업' 중 저소득층의 영양 섭취를 돕는 사업이 임·출산부와 영유아에게 쌀, 감자, 달걀 등 보충 식품을 공급하는 '영양플러스' 사업이 고작입니다. 음식정의(Food Justice)란 말이 있습니다. 유기농 제품이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격 때문에 그냥 싼 가격의 음식을 선택해서 먹어야 하는 현실 때문입니다. 한 방송사가 보도를 통해 ‘고도비만은 가난을 먹고 자란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하여 부모의 적절한 보살핌이 없으면 식사가 불규칙해지고 인스턴트식품을 과하게 먹게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영양도 불균형해지는 데다 가난이 주는 무력감이 고도비만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비만이 곧 그 사람의 경제력을 가늠’할 만큼 음식 차별이 심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시하기엔 갈수록 현실이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못 먹어’ 죽는 이들보다 '잘 못 먹어' 죽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먹으려 해도’, ‘잘 먹으려 해도’ 경제력이 안 되거나 삶이 분주해 끼니를 때우듯 식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어린 세대일 경우 마음이 더 아픕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영유아들은 과자, 사탕, 초콜릿을 먹는 비율이 20.2%이고, 고소득(월 261원 이상) 가정의 영유아의 12.8%보다 크게 높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 특히 자라나는 세대는 더 ‘건강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음식은 인간답게 살 권리에 있어 최우선의 조건입니다. 소득이 적더라도 최소한으로 좋은 음식을 먹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를 일찍부터 고민하며 실천한 이들이 있는데,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지역의 피플즈 그로서리(People's grocery)입니다. 값싼 패스트푸드나 편의점 가공식품으로 한 끼를 때워 건강이 좋지 않으면서도, 비싸서 채소를 사먹지 못하던 이들에게 유기농 채소를 싼 가격에 공급하였습니다. 시에서 빌린 땅에 유기농 채소 씨앗을 뿌려 재배하여...
2016.06.20
160608_바이블25()_광릉 숲과 관통터널   광릉 숲과 관통터널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하나님이 갖가지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들이 인간에게 쓸모 있기 때문에 좋다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 자체가 보기에 좋았고 그것이 하나님을 만족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고 ‘종류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생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서로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가치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생물에 대한 우리의 파괴행위는 설령 피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나라의 생물다양성의 상징인 광릉 숲을 위협하는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수도권 제2 외곽순환도로 건설계획으로 광릉 숲 생물권보전지역 완충구역을 터널이 관통하는 계획입니다. 터널이 관통하게 될 광릉 숲은 온대활엽수림의 대표적 숲(소리봉)으로 자생식물만도 983종, 천연기념물이 20종나 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입니다. 단위면적당 생물종(약 5,710종) 서식처로는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광릉물푸레, 털음나무, 흰진달래, 털사시나무, 광릉골무꽃, 느리미고사리, 참주름조개풀, 참나래새, 참비비추, 중의무릇, 가지복수초, 개싹눈바꽃, 참작약, 노랑앉은부채, 광릉요강꽃 등의 특산식물과 광릉나비나물, 광릉말털이슬, 광릉개고사리 등 특별한 식물들과 희귀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망태버섯, 화경버섯 등 681종의 버섯류가 서식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 숲에서는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희귀특산 및 멸종위기 동식물이 안정적인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저마다의 긴밀한 작용에 의해 생존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하나의 종이 멸종하거나 수가 감소한다면 도미노처럼 광릉 숲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이 곳 광릉 숲이 그나마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부터 왕릉이 위치하면서 인간의 간섭이 최소화됐고, 일제강점기 임업시험림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의 계획대로 관통터널이 들어선다면 광릉 숲의 생물다양성 감소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래세대에게도 우리가 물려받은 광릉 숲의 다양함이 그대로 전해지게 되길 바랍니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오늘이라도 광릉 숲을 찾아가 그곳의 다양한 생물들과 진지한 만남을 가져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 곳에서 그들과 만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홍수 심판의 한 가운데서 다양한 생물종을 지켜냈던 노아처럼 생물종의 풍성함을 온전히 보전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끝>
2016.06.20
160531_바이블25(57)_ 가습기 살균제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하게 하는, 가습기 살균제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6, 28).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후 처음으로 건네신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한 축복이자 명령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그 복을 누리는 건 고사하고 지키고 돌보라신 명령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우리 몸을 드나드는 물질이 생명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 이상으로 유해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편리함을 누려오긴 했지만, 한 순간의 편리함에 불과합니다. ‘극미량’일지라도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운 가운데 몸을 병들게 합니다. 사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만 보더라도, 유해물질은 편리함 대신 우리 몸은 물론 ‘살아가야(生) 할’ 명을 받은 수많은 생명들로 하여금 생명을 뽐낼 겨를도 없이 죽게 하거나 살아 있더라도 건강한 제 모습을 잃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초음파 ‘가습기 살균제’에는 세정, 소독 기능을 하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들어 있는데, ‘원인미상 폐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화학물질로, 가습기를 통해 폐포 꽈리까지 들어가면 ‘단순 감기 - 기흉 - 폐 섬유화(조직이 굳어짐) - 사망’으로 이어지게 하는 유해물질입니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1997년과 2003년에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물질이기도 합니다. 2011년 처음 가습기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에야 역학조사로 상관관계가 확인되고, 2013년엔 사용자의 폐 손상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116배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그 이후로 정부의 대처는 별다른 게 없었고, 기업의 제품 출시는 계속되었습니다. 그 결과 올해 또 14명이 사망하는 등 지금까지 사망한 이가 수백 명(정부 기준 146명, 시민단체 기준 239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 1,200명이 넘는 이들은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고통을 계속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늘 그렇듯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임산부와 어린 아이, 노인과 같은 약자들이기에 아픔은 더 큽니다. 800여만 대 이상의 가습기 사용자가 있다는데, 거기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이 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주여, 받은 바 생명을 안전하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지혜를 허락 하옵소서.’ 이제 받은 생명의 ‘생육하고 번성함’을 생각하며,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제품을 쓸 땐 먼저 의심을 해볼 일입니다. 아주 미량일지라도 화학물질이 들어갔다면 어떤 것이든 꼭 써야 하는 것인지 물을 일입니다. ‘자연적’...
2016.06.03
기독교연합신문 환경주일 칼럼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이진형 주일 오후, 집사님들이 아침에 교회 텃밭에서 거둬온 푸성귀들을 다듬으십니다. 아무개 집사님은 요즘 왜 그렇게 예뻐졌냐, 태양의 후예 뒤엔 볼만한 드라마가 없다, 다음 주일 식사준비는 뭘 하면 좋을까 하시면서 하하호호 이야기꽃을 피우십니다. 다듬던 열무 잎사귀에서 달팽이 한 마리가 툭 떨어집니다. 마침 엄마 옆에 앉아있던 꼬맹이 하나가 얼른 달팽이를 집어 들고 쪼르르 친구들에게 달려갑니다. “우와, 달팽이다.” 아이들은 서로 만져보고 싶다고, 자기가 먹기를 주겠다고,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바야흐로 여름입니다. 아직은 볕만 피해들 그늘만 찾으면 아쉬울 것이 없지만, 머지않아 미세먼지로 가득한 뿌연 하늘을 싹 거둬줄 장맛비가 쏟아지고 나면 후끈후끈한 더위도 시작될 터입니다. 그리고 그 더위는 풀과 나무들의 힘을 북돋워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마을 저수지 근처 논두렁만큼은 가을입니다. 얼마 전에 심은 모들이 아직도 여리한 때인데도 논두렁 풀들은 가을 서리를 맞았는지 누렇게, 푸석푸석 말라있습니다. 제초제를 뿌렸다고 하십니다. 평생 땅을 살피셨던 어르신이 이제 예초기를 돌려 풀을 벨 힘조차 없어지셨는지, 제초제를 뿌리고 부직포를 덮겠다고 하십니다. 파릇파릇한 거울 같은 논 사이사이로 누런 논두렁이 이어져 있습니다. 논이 쌀을 만드는 공장처럼 보입니다. 제초제를 뿌린 논두렁에는 풀들이 살지 못합니다. 풀이 살지 못하니 풀에 깃들어 사는 벌레들도 살지 못하고, 벌레들을 먹어야 하는 새들도, 작은 물고기들도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뭇 생명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서로 어우러져 살게 하셨는데, 제초제를 뿌린 논은 오로지 벼만을 위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유전자조작식품(GMO :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도 그러합니다. 사람들은 땅에서 자신이 원하는 작물만을 기르기 위해 제초제를 뿌리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식물의 고유한 유전자에 제초제 성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미생물의 유전자를 조합해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생명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리고는 숲을 불태우고, 밭을 만들어 제초제를 대량으로 살포한 땅에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GMO를 재배합니다. 제초제 과다 살포로 다른 식물들, 동물들,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GMO를 장기간 섭취한 동물들은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실험결과가 발표되어도 GMO를 재배하는 거대한 기업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이미 경외감도 두려움도 상실한 그들에게 땅이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201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