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생명과 평화로 향하는 걸음

작성일
2023-12-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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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를 보면 4인의 성직자가 삼보일배를 하며 새만금에서 서울을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 걸음 걷고 한번 길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새만금의 생명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 성직자들, 그들은 영화 속에서 지쳐서 길바닥에 쓰러져서 울기도 하고, 오랜 삼보일배로 인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휠체어에서 타인에 손에 이끌려 끝까지 순례를 이어갔다. 새만금 방조제는 건설되었으나 수많은 뭇 생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걷는다는 삼보일배는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이 그들의 걸음에 동참했고, 그들의 걸음을 보고 생태 문제에 관심 두기 시작한 이들도 많았다. 걸음은 그간 수많은 이들을 흔들어 깨웠고, 세상을 바꾸기도 했다.

2017년 1월 21일 제13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 황분희 ‘월성원전 인접 지역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이후 무작정 나아리로 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일곱째별’이다. 저자는 황분희 부위원장의 발언을 가슴 속에 담아두었다가 그해 8월 무작정 핵발전소를 향했다고 책에서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은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를 방문한 그 이후 저자가 겪은 것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발간한 르포르타주다.

‘나아리에서 나아리로 걸어간 5년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이 책은 많은 장을 여정, 즉 길 위에서 경험한 것들로 채웠다. 나아리에서 황분희 부위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후 각종 토론회와 기자회견, 행사 등에 동참하던 저자는 이후 성원기 교수를 만나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 참여하게 된다. 저자는 매일의 여정과 그 길 위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록에 덧붙여 수많은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한 흔적이 책 곳곳에서 보인다. 저자는 신문 기사를 찾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이트를 찾아 정보를 수집했다. 걸음과 공부의 시간은 아마도 무작정 나섰던 걸음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2018년 영광에서 서울까지의 여정은 저자가 새로운 이정표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성원기 교수)와 함께한 2018년 뜨거운 여름, 길 위에 나선 내 인생이 어느 한 방향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 동참하고, 그사이 수많은 탈핵운동의 사건들을 찍고 기록으로 남겼다. 후쿠시마 인근지역을 방문하기도 하고, 상경 투쟁에 나선 지역주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몇 차례 소송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고, 주민들의 곁에 머물며 그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관찰자와 기록자의 자리에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만남은 결국 사람을 바꾸어놓는 힘이 있기에 저자의 삶도 차근차근 변해가고 있었다. 책은 그 여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관찰자나 기록자가 아닌, 탈핵을 위해 실천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저자는 결국 이 만남과 경험을 통해 자신 역시 탈핵을 위한 순례의 길에 선 순례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특히나 ‘청명’과의 만남을 통해 소비하지 않는 실천이 탈핵운동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장면이나, 이후 이를 실천하기 위해 1일 1비움 노력을 기록해간 모습은 저자가 얼마나 진심으로 탈핵을 위한 걸음에 동참하는 순례자가 되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탈핵운동에 함께한 이들이라면 이 책의 어느 순간이든 낯익은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주 역사적이거나 대단한 사건들은 아닐지 모르지만 결국 그 시간을 통해 지금을 만들어왔다는 것이고, 그 순간마다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애씀이 있었다. 이 책은 기록을 통해 자칫 놓치고 있던 것들을 기억하게 한다. 결과가 어떻든 모든 일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결과에 실망하고, 변화 없는 현실에 낙담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의미 없는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기록에 남아 있는 그들은 그 시간을 기대와 희망으로 채우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묵묵히 지나온 그 시간을 통해 누군가는 감동하고, 누군가는 깨닫고 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조끼를 입고, 피켓 내지는 현수막을 들고, 몸자보를 붙이고 걷고, 앰프 들고 길거리에서 지나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목청을 높여 외치는 행위. 이것은 의미 없어 보일지 몰라도 결코 의미 없는 일로 전락할 수 없다는 사실. 본인이 마침내 순례자가 된 저자는 이 사실을 기록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탈핵신문 2023년 11월(116호)
  • 임준형 사무국장이 탈핵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