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민주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다

작성일
2023-07-1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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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는 김종철 전 녹색평론 편집장이 쓴 책이다. 무려 430쪽에 달하는 책인데다 저자인 김종철 선생이 평소 다양한 분야의 여러 책을 읽고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이쪽과 저쪽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사상가인 터라 읽기 만만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녹색평론과 수많은 강연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해온 작가인지라 낯설거나 난해하지는 않다.

저자는 현상을 다룰 때 본질에까지 파고들기 위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정치와 경제를 넘나들며, 외국의 다양한 자료를 찾아 읽고 인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저자가 인용하고 설명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의 강연을 들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김종철 선생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흔한 프리젠테이션 자료 없이도 한두 시간 쭉 이야기를 이어가고,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화두로 던져 지겨울 틈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근대문명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고찰하고, 그가 꿈꾼 생태적인 문명이 어떤 것인지를 소개한 책이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다. 그간 편집인으로서 써왔던 녹색평론의 권두 에세이와 강연원고에서 발췌하여 묶어놓았다. 그리고 책이 다루고 있는 강연과 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17년까지의 것으로 시대적 상황이 녹아있기도 하다.

이 책은 인간 공동체의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생태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특히나 농업과 협동조합의 이야기를 강조하는데 폭력적 자본주의로 인해 망가져버린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바로 농촌과 농업, 그리고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저자는 문명을 구분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이 문명과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대안적 문명으로 말이다.

책은 끊임없이 인간다움을 찾고, 물질의 순환을 통해 유지되던 본래의 생태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큰 부와 권력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라고 권한다. 착취나 폭력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 성장이 아닌 자연이 주는 것에 만족한 삶을 꿈꾸라고 말이다. 그가 말하는 소박한 삶은 생태적이고 민주적인 세상이다.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인 ‘탈핵의 논리와 윤리’는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진 2011년에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당시 상황을 고민하고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기 위해 애썼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핵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일본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고, 일이 이 지경이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글과 강연을 지속해서 했다. 그리고 더불어 1953년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에 의해 제창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거짓말에서부터 비롯된 핵발전은 결국 핵무기 개발을 위한 목적이 아니고선 유지되기 힘든 고비용의 발전 수단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결국 핵발전이 강고하게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국가권력의 탐욕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방사성 물질로 인한 피해들을 축소하고,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러한 체계가 공고히 설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핵발전을 유지·지탱하는 문명, 그리고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핵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세상과 결별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진짜 민주적이고, 생명과 평화를 위한 문명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를 역설한다.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 후쿠시마는 그저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간 핵발전이라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저질러온 수많은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일들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고 있다.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원자력이라는 단일 이슈만을 대상으로 싸워 봤자 헛일입니다. 그러므로 탈핵운동은 근본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탈핵운동이 싸워야 할 대상이 단순히 찬핵 발언을 하는 정치인들 혹은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대통령, 그리고 원자력 공학과의 교수 등이 아니라,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잘못된 문명과의 투쟁이라는 말이다.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장)

*  탈핵신문 7월(112호)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 탈핵신문(http://www.nonukes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