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피곤증을
시달리는 현대인이여, Here now! 도시인들은
십중팔구 만성 피곤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제거하는 간단한
방법을 함께 하겠어요.유치원 학생 다루듯이 한다고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세요. 유치원 학생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우리 원조께서
말씀하셨으니까… 아주 극진히 대우하는 거예요.
1. 목에
힘을 빼라 숨 들이쉬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서 내뿜으세요.…… 아주 90도 꺾어서…… 숨 들이쉬고, 앞으로
와요. 천천히…… 그리고 앞에서는 오른쪽으로 내뿜으면서…… 오른쪽으로……
바짝 90도로…… 다시 숨 들이쉬고 앞으로…… 앞에서 내 쉬고…… 그만……
그거 쉬운 것 아니냐? 하지만 여러분 하루를 사는 동안에
이렇게 한 번도 안 하십니다. 왼쪽 보려면 몸이 돌죠? 대개 고개는 안
돌아요. 그러니까 목이 뻣뻣해서 한국 사람이 목에 힘이 많은 거라고요.
2 감각기관을
활성화시키라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완전히 떨구면서 내쉬세요. 완전히…… 들이쉬면서…… 앞에 와서 밑으로
갔다 와서 위로 갔다 하는 걸 하나, 이렇게 해서 세 번 하는데, 손바닥으로
귀를 막은 상태에서 각자 편한 대로 하자고요. 시작! 숨 들이쉬고 내려요.다
하셨으면 손 내리시고 편안한걸 즐기세요.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고
사물을 보세요. 머리가 아주 맑아졌어요. 사물을 꽉 쥐고 싶어요. 흐리멍텅하게
오관이 작동했었는데 사진기, 감각지가 아주 고도인 것처럼 사물을 파악하고
싶은 거예요. 눈과 코와 귀가 다 활성화돼서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다 만져보고 핥아보고 감각해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어요. 하루 동안에
남이 나한테 욕한 거, 칭찬 받았다고 괜히 겉멋들인 것 다 쓸어 내는
방법이 이 두 동작이예요.
3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내라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 내는 세 번째가 마지막인데 오른손 엄지로 오른쪽 코를 막고 왼쪽으로
마음껏 숨을 들이쉬세요.…… 다 했으면 둘째 손가락으로 막아요.……
엄지를 열고 내쉬세요. 마음껏…… 또 오른쪽으로 들이쉬고 그냥……
엄지로 막고…… 둘째 열고 내쉬세요.…… 그만. 손 내리시고, 손이
수고했으니까 쉬게 하세요.…… 몸뚱이가 좋은 대로 아무렇게나
쉬세요.……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고 자기 앞의 분위기를 확인해 보세요.
감정의 찌꺼기가 사라졌어요. 원망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이런 것이
다 증발해 버렸어요. 이것이 도시인들을 만성 피곤증에 시달리게 하는
것을 씻어 내는 아주 간단한 방식이예요. 어떤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이제 아들이 컸기 때문에 교육을 시킨답시고 여자들이 발가벗고 춤추는
스트립쇼 하는 곳을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이제 부자가 나란히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아들놈은 황홀해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계속 "에이… 에이, 참"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쿡 찌르면서
"아버지, 저만하면 됐지 뭘 그래요." 그랬더니 "에이,
니 엄마 말이다." 이렇게 말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사람 머리는
늘 딴 데 가 있어요. 몸 있는데 머리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요. 애인하고
있으면 시험 볼 교과서가 떠오르고, 교과서를 펴면 또 애인이 떠올라요.
그러니까 제자리에 있는 적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필름이 포개지듯이
몸하고 내가 생각하는 의식이 포개지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아주 간단해요. 이 간단한 세 가지 동작을 하시면 싫어도 홀연히
여기에 있게 돼요. 여기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내일 걱정? 몸이
따뜻한데 내일 걱정하실 수 있습니까? 할 수가 없어요. 몸이 훈훈하고
기분이 좋으면 "어이구, 이게 좋은데…", "내일 걱정
내일 하지 뭐." 그럽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Forget it' 또 어저께 잘못한 거 이미
다 인천 바다를 건너 적도를 향해 갔고 다 잊어버리게 돼요. 언제, 설교를
많이 들으면? NO! 몸이 차갑고 쑤시고 어디가 허해지면 설교라는 소프트웨어가
귓구멍에 암만 들어가도 뇌에 들어가서는 작용을 안 해요. 이 몸을 못
고쳐요.그래서 몸을 먼저 고치는 방식이 예수께서 하신 거고 또 도교의
방식이예요. 하드웨어인 몸을 고치면 지극히 작은 힌트와 지극히작은
예화, 지극히 짧은 설교만 들어도 양약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런데 몸이
차가우면 암만 들어봤자 헛농사예요. 그런데 그런 헛농사를 교인도 즐기고
목사님도 즐겨요. 그래 오래해야 되니까… 여러분, 제약회사가 완전히
병을 낫게 하는 약을 만들면 그 다음엔 문 닫죠? 그러니까 제약회사는
두 가지 조건이어야 돼요. 타사보다는 좋지만 아주는 안 고치게….
나일론이라는 게 처음 나왔을 때 석산 나일론 양말이 있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인가 그랬는데 영원히 안 떨어져 가지고 결국 그 회사 망했어요.
안 떨어지는데 누가 사냔 말이죠. 그 당시는 패션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는데 말예요. 다른 회사보다는 질기지만 결국엔
떨어지게 해야지. 그래야 먹고살지. 그래서 모든 것이 완전히 고쳐주지
않는 것예요. 그러면 목사들이 앉아서 짰냐. 교인과 목사간의 무의식의
협약이에요. 이면 계약이 그렇게 됐다는 것이죠. 완전히 새사람 되는
거 다 두려워하죠. 완전히 새사람 되면 어떡해, 딴 놈처럼 비슷하게
살아야지. 그러나 죽을 때가 되면 너무 늦죠. 어떤 도인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제자가 거의 동년배들이예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닌 것처럼 여러분은 예수님이 한 3000살 된 줄 아세요? 어쩌면 베드로가
더 나이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청년부 회원쯤 되는
30살 또래들이 몰려다니며 여관에도 들리고 노숙도 하고 그랬겠지. 하여튼
이 사람이 가는데 마다 제자들이 "스승님, 스승님!" 해서
귀찮으니까 어느 마을에 들어가서는 "내가 선생이라고 티내지 말아라."
이렇게 약조를 받은 다음에 여관집에서 하룻밤 잤어요.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은 다음에 여관집 주인이 차를 한잔씩 대접했어요. 선생한테
주더니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제자로 받아 달라고 해요. 그래서
선생이 사방을 둘러보고 "누가 나를 선생이라고 알려 줬냐?"
그랬더니 다들 아무도 안 했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어요. 그래서
여관 주인에 게 물었어요. "내가 스승인 걸 도대체 어떻게
알았소?" 그랬더니 여관집 주인이 "제가 이 한자리에서 30년
여관업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제가 손님께 차를 드렸는데 지금 선생님처럼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고 이 차와 입술과 물뿐인 양 이렇게 'here now'인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어떻게 내가 모를 수 있겠습니까?"
간단한 세 가지, 좌우로 돌리고 상하, 그리고 코로 하는 것. 이렇게만
하면 현대인의 만성 피곤증의 50%가 가셔지는 걸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아까 했던 갑옷 입기는 크리스천들의 많은 병폐를 씻어서 남을 용서하고
관대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인간상으로 정형시킬 수 있어요.그런데 우리가
지금 여기 있어야 하나님이 응답해도 대답을 들을 수 있지, 몸은 서울에
있는데 맘이 다른 곳에 가있으니까 하나님이 응답해주고 싶어도 어디다
맞춰야 될지를 몰라서 우리가 못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시려면 두 필름을 제발 포개시라구요. 그래서 'here now' 라고 했어요.
'here now' 이어야만 정말 맹수처럼 살아 있는 것이예요. 우리는 찰나를
사는 것이에요. 80년 살아도 찰나인데, 찰나를 살아봐야 그것의 앙코르로
영혼이니 영생이니 또 주문하죠. 매번 흩어져서 분열증으로 살면서 어떻게
신청곡은 그것으로 하느냔 말예요.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현대인은
늘 허약하거나 병이 들었어요. 얼굴이 누렇거나 하얗거나 퍼렇거나 벌겋거나
아무튼 병들었어요. 여러분 다 아시는 걸 동양의 학문적인 근거에서
나온 것으로 상기시켜 드리기 위해서 말씀드린 거예요. 근심 걱정
매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위에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또 슬픔이나 좌절을
오래 하면 폐가 상한 것이고, 탐욕이 지나치거나 조급증이 과하면 심장이
고장난 것이고, 울화가 터지고 난폭하면 간이 터진 거고, 무서운 것이
많으면 신장병이 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동양 선조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마감날짜에 쫓기는 사람은 반드시 치질에 걸립니다. 생애의 작은 기쁨이
벌써 다 빠져나간 사람만이 당뇨에 걸립니다. 그리고 남을 이래라 저래라
집적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대개 대머리 되고, 결단할 것을 자꾸 보류하면
잇몸에서 피가 나게 돼 있어요. 그리고 인색한 사람이 변비에 걸려요.
똥도 아까워서… 이 몸이 그냥 말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다 가르쳐 주고
있다구요. 이런 것이 360가지가 있어요. 대한민국에 많고 외국에도
많은 10가지만 말씀드린 거예요. 하나님이 만든 기계가 그냥 있는 게
아니예요. 아주 예민하죠. 우리가 만든 컴퓨터보다도 더 월등한데 이
미세한 것을 관찰할 만큼 여유가 있고 고요 하느냐가 문제지요.
제가 시카고에서 목회할 때의 어느 겨울날, 소아과 의사인 교인에게서
전화가 와서 "아유, 이거 농담이지만 목사님 이번엔 감기가 안
돌아요." 그래서 내가 "야 이놈아! 감기가 안 돌면 다 좋잖니?
그런 것 고치고 싶어서 한 직업인데…" 그랬어요. 사람이 얼마나
우습습니까? 대한민국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있어요. 제가 미국에 한
26, 7년 살던 사람이니까 얘기 하지만, 어저께 경부고속도로로 오는데
레카가 한 20대 넘게 기다리고 서있어요. 레카가… '어떤 놈이 안 다치나!'
하구선…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론 야박하고… 이런 뻔뻔한 사업이
나온 것이예요. 장의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게 다 내 재료라고 할 테고,
의사들은 겨울에 감기 환자들을 보면서 씨-익 웃을 테고… 그러지 맙시다.
제가 표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저는 신학교 지망할 때 그랬어요. '어떻게
되어서 나 같은 놈이 이것을 지망하게 되었는가? 좋은 세상이 되면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뭐냐?' 제가 물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수학문제 풀고
싶은 게 내 꿈이고 수영을 한다든지 그런 게 차라리 좋다. 법도 없고
겁도 없는 세상, 아무 겁 없고 법이 없어도 사는 그런 사람이 되면,
그것이 언젠지 모르지만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때까지다. 그 다음에는
바둑, 장기 두고 낚시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게 따로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게 없고 사람 구원하는
것만 좋은 사람은요 천당 가서도 예수 만나도 "예수 믿어"
이럴 거라고… 얼굴도 안 보고 해요. 그래서 기독교하고 다른
종교하고 비슷해요. 대전에 대순진리교인가 죽순진리교인가 많더라고요.
밤에 총알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한 젊은이가 찾아 왔어요. 하늘엔 별이
있고 깜깜해서 갈 길이 바쁜데 대뜸 찾아오더니 "조상을 섬기세요?"
그래서 내가 "조상 섬기는 건 좋은데, 자네 윤회 안 믿어?"
"윤회 믿어요." "그게 넌지도 몰라. 넌지도 모르는데
도대체 어디 다 하냐? 그 조상이 넌지도 모르는데… 그 다음엔 우리
조상들이 살던 때를 생각해 봐. 어떻게 살았겠냐? 지금으로부터 500년
후에는 우리 후손이 날 섬긴다. 햇빛 쬐고 눈 맞으면서 간 놈 한 놈도
없다. 너처럼 그냥 그 날을 좀 살았지. 그리고 그 조상의 제일 위의
조상이 어디 있냐? 그게 지금 동물원의 원숭이다. 그러니까 조상보다
그 원숭이를 섬겨야 되고 그 원숭이도 있기 전에 뭐가 있었냐? 천지
자연이 있었다. 이 천지 자연이 더 큰 부모다. 그 다음엔 뭐냐?"
바로 그때 마침 낙엽이 하나 떨어지길래 "늘 힘을 추구하는 게
종교인데 힘도 좋지만 서글픔을 알아야 종교가 된다. 이 낙엽이 떨어지는
것처럼 너나 나나 동창생이다. 백년 이내에 같이 죽는 놈이니까…
그래서 목숨 붙은 걸 다 불쌍히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지 종교지, 뭐
초능력적인 힘이 있어 가지고는 형편없다. 너 조상이 어디 있냐? 너
생기기 위해서 아버지, 어머니 있었지. 아버지 생기기 위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있었지. 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있었지. 자꾸 하면 이렇게
되는데 어지럽지?" 내가 이랬더니 어지럽대요. 조상이 되면 '∧'
이렇게 되는 줄 알았는데 '∨' 이렇게 되거든… 그래서 어서 가라고
하니까 그러더라고요. 현대인들이 다 이렇게 허약하거나 병들었거나
그래요. 그래서 크리스천으로서 갑옷 입는 게 좋고 또 도시인으로서는
스트레스 푸는 게 좋고…손가락 동작으로 존재를 다스림 손가락만 하는
것을 간단히 가르쳐 드리겠어요.
1. 힘이
솟게 하는 동작 손은 이렇게 쥐시고
가운데 손가락만 이렇게 붙이세요. 그리고 아무 데나 놓으세요. 책상에
놓아도 좋고 무릎에 놓아도 좋고 힘있는 사람은 들어도 좋고… 대개
"숨은 어떻게 쉽니까?" 이래요. "아! 숨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뭐 단전 호흡, 배꼽호흡, 쓴전호흡
이래가지고 많이들 해요. 짐승들은 그런 거 몰라요. 그냥 몸이 알아서
하게 하면 저절로 깊어지고 저절로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그 얘기 다 아시죠? 지네가 잘 가다가 개미를 만났어요. 개미가 지네더러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다. 도대체 언제 오른발 내고 왼발 내냐?"
하니까 지네가 그 자리에서 결국 움직이질 못하더래요. 그걸 생각하려니까,
몸이 알아서 하게 돼 있는데… 숨은 몇 분에 몇 박자 쉬라고 하니까
몇 달씩 돈 내고 배워도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여러분의 몸이 좋은 대로하시면
저절로 숨이 깊어지고 저절로 몸이 훈훈해지고 몸이 알아서 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그걸 배로 해라, 등으로 해라. 그건 기교에 속하는 거예요.
그런 철학이 서양이에요. 'Doing'을 하는 거예요. 자기 좋을 대로하세요.
기운이 좀 있으면 척추도 세울 테고, 없는 사람은 구부려도 좋고… 가장
좋은 자세는 없어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걸 코로 해도 좋고 입으로
해도 좋고… 그것을 하나로 해서 아홉 번만 세자구요. 속으로…… 네,
아홉번 하셨으면 가만히 그 자세로 놓고 잠깐 얘기를 들으세요. 이것은
심장 부분을 특별히 훈훈하게 해 주어서 힘을 솟구치게 하는 방식이예요.
아무 것도 믿으실 필요 없어요. 과학이에요. 관찰하고 실험하는 것이예요.
2. 평화롭고
조화롭게 하는 동작 다음에는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만 대시고 다른 건 접고 아홉 번 셉시다. ……
아직 처음이기 때문에 차이를 모르시겠지만 아까 가운데 손가락은 훈훈하고
힘이 솟구치게 하는 것이고 지금 넷째와 다섯째는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것이예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분노할 까닭이 없고 두려워할 까닭이 없게
돼요. 이 넷째 손가락은 간에 해당하고, 화나는 것과 관계되며 다섯째는
신장하고 겁이예요. '샬롬'이 뭐냐? '평화'가 뭐냐, 두려울 대상도 없고
화를 퍼부을 대상도 없는 것을 평화라고 하는 것이예요. 간과 신장이
건강한 사람은 평화를 누리는 거예요. 그 전에는 도저히 평화를 느낄
수가 없어요. 그것이 이 자세가 요구하는 것이예요.
3. 치유케
하는 동작 이제는 둘째손가락만 대시고
일곱 번만 합시다.…… 둘째손가락은 만병통치를 하는 거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폐를 좋게 해요. 그래서 호흡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예요.
호흡이 모든 병을 왜 고치느냐? 편도선, 두통이나 설사 났을 때 실험
정신을 갖고 - 그 당시에는 아프지만 - 3분이고 2분이고 눈을 감고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서는 가만히 보세요. 호흡에 그 숨결이 벌써
들려져요. 날이 흐리고 해가 질 때 자살하고 싶던 마음들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런 날 우울하고 친구도 안 오고 애인도 안 오고, 전화도 안
올 때 depression에 걸리는데 가만히 앉아서 이 자세로 10분 내지 20분간
있어봐요. 그러면 홀연히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이상할
정도로 상태가 10층으로 올 라오는 것이예요. 우리 상태가 한 곳에
있는 게 아니예요. 거의 지하실에 있어요. 어떤 사람은 3층, 어떤 사람은
20층… 꼭대기에 가보면 존재가 다 조그맣게 보여요. 그런데 아래층
그것도 지하실에, 훈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 딘가 서늘하게
해줘요. 머리를… 내관이라고 하는, 관조하고 자기를 들여다볼
때 하는 아주 좋은 자세가 있어요. 사람들이 생각한다고 하지만 아니예요,
그건 조건반사예요. 이런 상태로 한 30분간 있다 보면 문제가 저절로
증발하고 머릿속에서 조동사, 목적어로 '그 놈이 이렇게 했으니까 나는
이렇게 해야 되는데…', '성경이 이러니까 이렇게 해야 되겠지' 하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영상적으로 벌써 빛의 속도로 '척척척' 서늘해지는
거죠. 존재가 항아리에 물이 가득찬 것처럼 뿌듯하고 제왕이 된 것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짧은 시간에 3종류를 가르쳐 드려서
죄송하지만 다 외우실 거라고 믿고 했어요. 그 중에 떠오르는 것 한
두 가지만 해도 되니까요.어떤 사람이 대학교수로 있었는데 한번은 동료
교수가 임종을 맞았어요. 죽게 됐는데 자기 집으로 좀 와 달라고 해서
그 교수가 갔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위로의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거예요.
그 교수는 불교인도 기독교인도 아니니 누굴 들먹거리겠어요. 예수님
믿어라, 부처님 믿어라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죽 답답하면
죽는 사람이 얘기 한 거예요. 뭘 좀 말해 달라고…. 그랬더니 "걱정하지
말게, 죽지 않어."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는 사람이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어요. "아니 내가 지금 숨이 넘어갈텐데
안 죽는다고 하니 농담이 너무 심한 것 아니오." 그랬더니 "아니다.
진심이다. 안 죽어. 산 적이 없으니까…" 이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욕망과 후회 사이에서 떠내려간 이것을 너는 삶이라고 부르겠는가?"
이렇게 말했어요. "욕망과 후회! 욕망과 후회! 욕망과 후회! 이
조건 반사로 떠내려간 3, 40년, 4, 50년, 이것을 삶이라고 부르겠는가?
당신은 산 적이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마, 결코 죽지 않아."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자 이 사람이 펄펄 뛰다가 나중에 눈물이 나면서 그 사람의
손을 덥석 잡고 "고맙다" 그랬어요. "나는 삶도 삶처럼
못 살았는데, 당신의 말이 아니었으면 죽음도 죽음으로 못 맞이할 뻔했다"
그러면서 "정말 고맙다" 하고 갔어요.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야 할 얘기예요. 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너무 강조해서 나는
안 죽어도 되는 것처럼 착각해요. 김씨, 이씨 누군가가 대신 죽어 주는가,
아니예요. 여러분 각자가 태어날 때 예수가 대신 태어난 게 아니니까…
태어난 게 내 이름으로 태어났으면 가는 것도 내 이름으로 가는 것이예요.
그런 것을 예수가 '이렇게 하렷다.' 하고 멋있는 동사 변화표를
보여주시면서 본을 보이시고 또 구체적인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신비한 방법으로 접근해 온 것이예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천년 동안
해 온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회피하는 짓이었어요.
그게 아니예요. 그리스도가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대로 살렸다!' 한
것인데 우리는 삶 도 특별히 모든 종교인 중에서 쭈뼛쭈뼛하고 조금만
틀리면 죄라고 하면서 형편없이 살다가 죽는다구요. 어느 날 교회에
가 보니까 어느 분이 겨울인데 감기에 걸리신 모양이예요.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혼이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감기나 고쳐라. 감기나…' 그랬어요. 제 얘기는 사도신경을
버리라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제 자신이 그 처지가 내 처지가 아닌 기도제목으로
통성기도 할 적에, 또 그 처지 가 내 처지가 아닌 가사의 찬송을
부를 때, 입을 다물고 속으로 기도했어요. '이 가사가 내 가사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어느 날 생활이 변화해서…' 그러면서 보니까, 미안하지만
내가 남이 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어요. 사람이 언행이 일치하면 몰라도
못하면 말이라도 말아야지.어쨌든 이렇게 다섯 가지 동작을 하면 제왕처럼
뿌듯해서 욕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비로소 살수가 있고,
물론 비로소 죽을 수가 있고 그리고 더 나가서 비로소 부활할 수가 있어요.
죽지 않고는 부활 못해요. 살지 않고는 죽을 수가 없고.
다음장:잠든미인 옆에서 밥먹을 수 있는
삶
첫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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