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적 삶과 영성 수련
곽노순

신구교 공동번역성서 구약번역위원이었으며 시카고의 샤론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한 후
목원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가르쳤고 현재는 후기기독교 신학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소제목
1."고양이예요" 가  아니라"야옹"이다.
2."산적도 없으니 죽지도 않는다."
3.잠든 미인 옆에서 밥먹을 수 있는 삶..

  병폐를 씻게 하는 일곱 가지 갑옷 입기
옆 사람하고 조금 떨어질 수 있어요? 유치원 학생 대하듯이 말한다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제가 요구하는 대로 따라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1.
담대하고 당당하라
왼손으로 목 뒤를 서너 번 문질러 주세요. …… 그만. 손을 무릎에 내리시고… 물론 앉는 건 이래라 저래라 할 것 없이 편안하게 앉으시고… 눈은 떠도 좋고, 감아도 좋고 편안하게 자유롭게…. 다음엔 오른손으로 목을 뒤로 훑어서 서너 번…… 그만… 손을 무릎에 놓으시고… 다음에는 왼쪽, 오른쪽 손을 번 갈아서 목 앞 쪽에서 밑으로 훑어 내리
세요. 번갈아서…… 그만. 손을 무릎에 놓으시고, 편안하게….
이제 목덜미가 훈훈해지면 (다 아는 건 아니겠지만) 몸의 상태에 대해서 예민한 사람은 자기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느껴지는 차이를 알 수 있어요. 목덜미가 훈훈하면 담대해질 수가 있어요. 전 세계에서 한국 사람의 트레이드 마크로 '목에 너무 힘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지나친 경우이고 기독교인들은 담대한 것을 배우셔야 돼요. 성경에
있는 예수가 있고 2000년 동안 우리가 만든 예수가 있죠? 여러분은 잘 아시죠. 약하고 친절하고 속으론 미워도 씽긋 웃고… 그런데 예수란 분은 '문간에서 그 집이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면 신발 흙까지 떨구고 딴 데로 가라', 또 '사람을 선별해서 돼지에게 진주 던지는 꼴이 되지 않게 하라', 또 여차하면 '오른손을 도끼로 잘라라'…. 이렇게 무서운 얘기를 하신 분이예요. 이거 내가 만든 얘기 아니예요. 여러분 복음서에 다 있는 내용인데 교회와 목사님과 여러분들이 채널을 다른 데다 맞추었기 때문에 아주 생소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다윗이나 아브라함이나 엘리야나 모세나 예수나 다 담대함을 알고 있었어요. 당당하게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구요. 당당하면 무슨 이점이 있냐 하면 불필요하게 남이 집적거릴 기회를 줄여서 남이 죄 지을 기회를 줄일 수 있어요.

2. 자기영역을 지키라
손을 이렇게 어깨에서 내려서 배꼽에다 대시고 다같이 숨을 들이쉬세요. 그리고 손을 배 위로 훑으세요. 팽팽하게 숨을 들이쉰 상태에서…  그리고 가만히 계셨다가 내쉬면서 천천히 풀어 주세요.…… 숨은 코로 쉬어도 좋고, 입
으로 해도 좋아요….…… 다시 한번 숨을 들이쉬면서 허리를 잡아 당겨요. 배를 홀쭉하게…… 그리고 천천히 내쉬고 …… 한번 만 더 숨 들이쉬고 내쉬면서 풀고 …… 이 자세도 뱃심을 길러 줘서 하나님이 만든 창조주 세계에서 자기 영역을 지킬 수 있게 해줍니다. 모든 동물들이 자기 영역을 지키죠? 자기 영역을 지킬 줄 아셔야 돼요.

3. 수줍음을 없애라
오른손으로 위에서부터 밑으로 흝어서 배꼽 밑으로 쓸어 주세요. 한 서너 번… 천천히 인두로 미는 것 같이…… 그만, 손을 무릎 위에 놓으시고…가슴 앞 쪽 위에서 밑으로 잔잔한 더운 기운이 흘러가게 되면 수줍음이 없어져요. 수줍은 사람은 남보다 어쩌면
더 독한 욕심과 야망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감추는 방식이 수줍음이라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다 알고 있어요. '쭈뼛쭈뼛'하는 것은 덕이 아니에요.
 기독교인들에게 흔히 많은 병을 제공하는 것이 죄의식인데 예수께서는 자기가 태어나고 보니까 자기 동포들이
그저 미주알고주알 다 죄가 된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리고 청년이 돼서 사방을 돌아보니까 다 죄의식에 병들어 있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네 죄를 사한다' 그랬어요. 그 내용도 안 들어보고 말이예요. 다 벗기우고 자기가 담당하고 책임을 지겠다, 이렇게 해서 그 사회에서 죄의식을 벗겨 주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대로 도교, 불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 지구에 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 중에서 33살의 젊은 예수께서 지구에 남긴 유산은 무엇이냐? '용서' 하는 것. 그게 트레이드 마크였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죄의식이 가장 많은 인간을 배출해냈어요. 교회가. 예수는 그 점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가 없죠. 수줍음 중의 하나가 '길트(guilt)'예요. 무화과나무로 자기 몸을 감추려고 하는 그런 심정.

4. 자기 자신을 지키라
다음에는 갓난아기가 잘 때 하는 것처럼 엄지를 감싸고 주먹을 꽉 쥐시고 힘을 주시고 그 다음에 힘을 빼세요. 힘을 뺀 상태에서 이 형태만 유지하시고 그냥 헐렁하게 밑에다 내려놓으며 숨을 들이쉽시다. 같이…… 그리고 어깨 올리세요.…… 텅 내려놓으세요. …… 한번 다시 숨 들이쉬고요.……어깨 올리시고…… 숨 내쉬고, 힘을 탁 풀고…… 한번 다시 숨 들이쉬고 …… 숨 내쉬고……서양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doing'이었어요, '하는 것'. 지금 여러 가지 자세를 할 때 혹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행위 자체가 중요한가보다… 그건 아니에요. 수영 선수가 스프링 보드에서 몇 번 하다가 다이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위 한 다음에 가만히 있을 때 오는 그 여운을 즐기는 것이 동양이에요. 그래서 아까 할 때보다 하고 난 다음에 그 독특한 진동이 신체 부위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것을 예리하게 쫓아갈 적에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을 체험할 수 있어요.
동양은 'doing'이 아니라 행위 뒤 여운에 있는 진짜 엑기스를 잡는 것이에요. 우리가 산문도 즐기고 시도 즐기는 것처럼, 또 가사가 있는 유행가도 즐기고 가사가 없는 클래식도 즐기는 것처럼, 서양의 행위와 동양의 무위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제가 주제넘게 유치원 학생 대하듯이 해드린 거예요.이 자세는 '숫기' - 수놈의 기운 - 을 얘기해요. 당당하게 나가게 되는 것. 우리는 인류가 백만 년 사는 동안에 다른 동물과 많이 다른 것을 요구해 왔어요. '여자는 숫기가 있을 필요가 없다', ' 얌전하고 이쁘고 순종하면 된다'
이러한 것들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이 아프리카에 갔다가 사자를 만났는데 자세히 보니까 암놈이라서 맘이 놓입니까, 아니죠. 암놈이 더 사나워요. 그래서 '암 사람은 유약하다', 이것은 인류가 길들인 작전이에요. 다 홍콩 영화에 나오는 고대 무술하는 여자처럼 자기가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 해요. 일본에는 사무라이 시대가 있었죠. 칼을 차고 가기 때문에 칼을 대장간에서 만들고 잘 만들었나 보기 위해서 지나가는 사람 목도 베고 그랬다고 해요. 피차가 칼을 찼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있느냐? 수백 년 지난 다음에도 말이 길지가 않아요. 그리고 상대에게 조심해서 말해요. 함부로 말하는 게 없어요. 서양도 권총을 차고 서부 개척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않아요. 여차하면 끝장나니까….
그런데 우리는 중국에 조금만 바치면 국방예산도 필요 없는 상태로 500년을 지내면서 "없던 걸로 해", "있던 걸로 해" 이런 말장난하는 더러운 문화를 만들었어요. 그러면 칼과 총이 있는 게 더 정상입니까, 그렇습니다. 짐승은 다 발톱과 이빨이 있어서 자기를 지키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자기를 지킬 준비를 하면, 판단의 서늘함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씨 조선이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것을 경험했더라면 조정에서 소를 잡아먹는 것만은 안했을 거예요. 그런데 조곡만 바치면 국방 예산이 들지 않으니까 그냥 앉아서 심심하니까… 게임은 해야 되겠으니까… 김씨, 이씨 소를 잡아먹는, 그렇게 하고도 안한 걸로 하고, 없던 걸로 하는 이런 푸세 문화가 생겼어요.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 모든 짐승의 논리요, 그런 자세가 - 뭐, 여러분이 나가서 총을 사라는 얘기가 아니라 - 아브라함의 자세였습니다. 에녹이고 노아고 다 이런 고대의 추장이었는데, 당당하게 두발로 하나님이 지은 이 대지 위에서 그런 것을 기초로 해서 나중에 사랑, 친절, 용서가   나오는 것이지요. 목과 가슴과 배와 어깨를 이렇게
해서 어지간히 내 영역을 지킬 수가 있어요.

5. 너그러워지라
양쪽 손을 위로하고 귓밥을 조금씩 잡아 당겨요. 이렇게 좀 만져 줘요. 아주 심하게 안 하셔도 돼요. 조금만 만져 주고 내려놓으세요. 그 여운에 진짜가 있다고 했어요. 가만히 있기만 하면 우주의 기운에 예민해져요.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그걸 알아차릴 수가 없는 거죠. …… 시계처럼 가만히 있기만 하면 천지 자연에 있는 기운이 알아서 내 몸을 관통해서 효험을 보게 되는 것예요. …… 지금쯤 귀가 아까 흥분한 거하고 틀려요. 박하사탕처럼 싸- 하면서 따뜻한 게 얼굴 쪽으로 퍼지게 돼요. 그러면 저절로 숨이 깊어지고….눈을 감고 요 맛을 보시란 말이에요. 요게 어떻게 다른가. 아까 것하고…  점점 더 선명해지죠? 따끈한 것이… 그리고 여기에 코도 위로 뜨듯하게 하고 머리도 이마도 훈훈하게 하고 그러면 숨이 점점 더 깊어져요. 배 밑에까지… 요런 상태가 되면요, 누가 툭 쳐도 씩 웃고 누가 사기 치려고 하면 "에이 가져가라 가져가", 이렇게 관용을 가
질 수가 있어요. 10리 가자고 하면 10리 가구요. 예수님이 2000년 전 박혁거세하고 동시대인인데, 그때하신 비유를 가지고 요즘의 젊은 애들이 그래요. "글쎄 목사님, 나는 그러려고 하는데 나더러 5리 가자는 사람이 없어요". 이렇게 뻔뻔해졌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내가 한 연구를 남이 좀 가져가려고 할 적에 요렇게 귀가 따뜻하면 "에이, 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 네가 가져가라"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이삭이 우물을 팠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돌로 메우면 "또 딴 데서 파지" 하면서 계속 열댓 번 옮기는 장면이 창세기에 있습니다. 또 요셉이 형제들한테 모함을 당해서 팔려 갈 적에 - 우리 같으면 심장마비 걸렸겠죠 - 또 그 중에서도 잘못해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될 때, 우리 같으면 심장마비도 열댓 번도 걸렸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기사가 없어요. 어떻게 그랬을까? 예수께서 이삭의 이야기, 요셉의 이야기 이런 것을 공부하시다가 '아, 우리 조상들이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었구나' 했는데, 이것이 노동자 출신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사례에서 그분의 지혜가 트였지, 하늘에서 낙하산 타고 떨어진 게 아니예요. 귀가 이렇게 따뜻하면 기독교의 덕목이라 할 수 있는 '허물도 좀 덮어 주고', '양보하고', '잊어 주고', 어떨 땐 좀 '속아 주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한 마을에 10명만 있어 봐요. 시간이 갈수록 전체에 누룩이 퍼져요. 소돔과 고모라나 서울시나 그런 사람 천만 명만 있으면 동북아시아가 다 돼요. 그런데 한국에 있는 천만여 명이 무슨 일을 하는지 여러분 다 아시죠? 이렇게 귀가 뜨거운 적이 없는데 사랑을 하려고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죠. 스케이트 안 신고 빙판에 지치는 꼴을 하니 얼마나 보기 싫습니까? 보통 신발을 신고 스케이트 지치는 시늉들을 벌써 백년을 해 왔어요. 대한민국 교회가. 왜? 귀가 이렇게 따스한 것을 한번도 맛보지 못했으니까.

6. 평안함을 찾으라
안경 쓰신 분은 좀 벗고… 손으로 얼굴을 좀 문지르세요. 빡빡 문질러서 화장을 지우라는 게 아니라 손에서 다 기운이 나가니까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돼요. …… 인두질을 하란 말이죠. 뭐 많이 할 필요는 없어요. …… 그만 손 내리시고 가만히 물결 같은 여운을 즐깁시다.이런 상태를 평안이라고 하는 것이예요. 얼굴이 아랫목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져요. 전신에 대한 앞측이 얼굴이죠? 전신에 관한 정보가 얼굴, 귀, 손바닥, 발바닥에 축소판으로 있어서 거기다 침을 놓는 것이예요. 그래서 자주 얼굴을 만지면 아주 좋은 것이라는 거예요. 왜 여자가 대한민국에서 남자보다 10년씩이나 오래 사는가, 이유가 많겠지만 남자들 손바닥이 얼굴에 가는 것보다 여자의 손바닥이 가는 횟수가 많습니다.……

7. 기를 느끼라
이제 손바닥 밑이라 할까? 요기도 얼굴을 사방으로 둘러 가면서 밖으로 세 번씩만 문지릅시다. 이렇게 하나, 둘, 셋,…… 또 옆에 …… 1시, 11시 방향으로…… 그 다음에는 옆에 …… 힘있게 안해도 돼요. 맨 나중엔 턱에…… 이제 다 됐으면 손을 내려놓으시고 손이 수고했으니까 많이 쉬게 하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릴렉스! 편안하게 내 버려두세요. 얼굴은 광채 나는 태양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사자라고도 할 수 있어요. 아까 것하고 뭐가 다르냐 하면, 지금 한 동작이 축도에 해당하는 것인데 환함이 더해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눈을 감았어도 내 눈앞이 환한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열과 빛이 인간에게 있어야 하는 것인데 아직까지는 목 밑으로 열을 가한 것이고 귀의 짜릿함을 주고 얼굴에 환함을 일으켜요. 더움과 밝음, 그래서 몸은 노곤하고 졸립죠? yes! 불가에서 '선'이다, 일본에서 '센이다'하는 것이 뭘까요.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왼쪽, 오른쪽을 가름과 마찬가지로 몸이 노곤하고 환해지는 상태를 쉽게 말해서
'선'이라고 해요.우리는 노곤해지면 잠들고 꿈꾸게 되고 커피 먹어서 머리가 맑아지면 몸이 떨려요. 그런데 그 둘의 중간점, 몸은 지금처럼 노곤한데, 머리는 환해지는 것을 선이라 해요. 이런 것을 불교가 생기기 이전부터 고대인들은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기다리다가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느꼈는데, 이 중에 저처럼 나이 많은 분들은 어렸을 때 경험했을 거예요. 밭에 쭈그리고 앉아서 풀을 뽑을 적에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에 간격이 멀고 그 사이에 사람의 키 만한 곡식이 자라고 있으면 나른하고 땅에서 오는 뜨거운 기운이 있어요. 그게 얼마나 사람을 졸립게 하고 좋은지… 쭈그려 앉았어도 스프링처럼 기운이 팽팽하고…그래서 혼자만의 그런 것을 고대인들은 기독교, 불교 같은 것이 생기기 몇 천년 전부터 다 경험했어요. 짐승은 지금도 경험하고… 그래서 사자나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으려 할 적에 오른발을 앞에 들었다 하잖아요. 소리가 바스락하고 날까 봐 내리지 않고 가만히 들고 있는 상태죠. 짐승들은 벌써부터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서 이 자연의 출렁거리는 기를 느껴요.
겨울에 한강이 얼었을 때 새들이 쭉 앉아 있는 것을 볼 때 대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유, 어떻게 쟤들 양말도 안 신고 저러고 있냐?" 그 세 개로 쪼개진 빨간 살점의 발이 시리니까 한쪽은 들고 한쪽은 내리고 하는데 그게 지방층 때문인가. 서양 사람들이 모르고 그걸 곰이 동면하는 것처럼 지방층이 많아서 그렇다고 그래요. 그게 아니예요.
고요해지면 우주의 기운이 오기 때문에 물개가 외투 안 입고도 헤엄쳐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예요. 고대인들이 다 그랬어요. 불교인의 독점이 아니예요. 고요해지면 누구든지 하는 것이지, 종교 행사가 아니예요. 생물학적인 현상이예요. 고요해지게 하는 것을 사냥꾼과 묵상하는 사람이 많이 하니까 그들이 밝혀 내서 그런 것입니다. 원래는 모든
짐승들이 다 하고 있는 것을 인간은 뇌를 써서 지구를 점령하고 그 값을 치르느라고 지금 다 두통이 생겼는데, 짐승과 나무는 두통이 없습니다. 두통약 먹는 건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어요. 기린은 목이 긴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데, 모든 전문화된 게 단점이자 장점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빨, 손톱, 발톱도 없고 뿔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뇌 하나 가지고 지구를 점령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폐단을 우리가 지금, 20세기에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 아시는 짓거리를 하는 게 뇌죠. 더러 우리가 brain에서 "Come back to body" 뇌에서 몸으로 가끔 오는 것을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이예요. 엿새 뇌 쓰고 하루 몸을 쓰란 말이죠. 그래서 몸은 이렇게 훈훈하게 하는 것! 아마 민감하지 않은 사람도 알 거예요. 아무 말할 필요 없이 약간 훈훈하고 커피 안 먹어도 머리가 훤해져요.
이런 상태를 모든 종교인들이 축하했어요. 몇십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살던 사람이 한 번 누굴 따라서 유럽 여행을 했어요. 이것저것 편리한 게 많은데, 샤워기가 있었던가 봐요. 그래서 틀어보니까 소나기가 막 나오는데 참 좋더라고… 그래서 자기가 아프리카로 돌아 갈 적에 하나 훔쳐 가지고 갔어요. 그리고 고향에 가서 벽에 붙였는데 '이게
안 나오더라고…' 영성이라는 것은 벽에다 샤워 꼭지 붙이는 게 아니예요.
또 감옥소에 진짜 도둑질해서 온 놈하고 또 어떻게 해서 들어 왔는지 아무튼 철학 전공 한 놈하고 같이 쓰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손발이 잘 맞아 가지고 어느 날 탈출하게 됐는데 이 두 놈이 지붕의 기왓장을 살살 밟고 밤에 빠져 나왔어요. 물론 진짜 도둑이 앞장서고 철학과 출신이 뒤에 쫓아갔어요. 한참 가다가 도둑이 잘못 짚어서 기왓장 하나가 떨어지니까 지나가던 경비원이 "이게 뭐야?" 그랬더니 "야옹!" 도둑이 이랬어요. 또 한참 가다가 뒤에 있는 놈이 발을 잘못 디뎌서 기와장이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이게 뭐야?" 가 아니라 "누구냐?" 그랬더니 "고양이예요." 그랬어요. 자연적인 삶이라는 것은 우리 존재에서 '야옹' 소리가 나와야 되는 것이지 '고양이예요' 하는 문장
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이제까지 하신 일곱 가지 동작은 특별히 크리스천들에게 많이 있는 쭈뼛쭈뼛하고 길트(guilt)하고, 속은 용서할 준비도 안 됐는데 용서한다고 하고 그런 병폐를 씻기 위한 아주 간단한 동작인데 제가 그냥 '갑옷'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우리가 '갑옷'을 입고 나가야 되니까…

다음장:산적도 없으니 죽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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