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21작성. 기독공보 기고 일주일에 하루, 지구를 위한 채식을 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자연재해를 일컫는 수많은 용어 중 근래 들어 자주 듣는 말은 지진이다. 지난 해 중국 쓰촨에 이어, 지난 12일 중남미의 작은 나라 아이티에 덮친 강진은 20여 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재민 300만 명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번 지진을 두고,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가 부추기는 태풍이나 홍수, 가뭄과는 달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재난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날씨와 기후의 조그만 변화에도 지질학적 재난은 촉발될 수 있다. 지난 해 10월에 기후 전문가들이 런던에 모여 내린 결론이다. 기후변화는 지구의 섬세한 균형을 뒤엎을 뿐 아니라, 해수면 변화의 경우 아주 작더라도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재난 모두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폐허가 된 아이티에 모금한 것을 전달하거나, 인명구조와 도시시설 복구를 위한 인력을 지원하는 것으로 대응해서만은 안 된다. 이번 지진을 지구 재앙의 경고로 여기고, 어느 나라든 이 같은 재앙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가운데 기후변화를 늦추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럼 무엇부터 시작할까? 요즘 기후변화에 맞선 개인 실천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육식의 제한이다. 축산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세계 교통수단이 만들어내는 온실가스 (전체 대비 13.5%) 보다 많은 18%를 차지하는데다, 메탄의 경우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23배나 더 강하다.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의 흡수원인, 열대우림의 70%가 그로 인해 잘려나가고 있다. 1분마다 축구장 여덟 개 넓이의 열대우림이 불태워지고, 그 속에 살고 있는 5만 종의 생물이 해마다 사라지고 있다. 가축 사육에 필요한 농지, 곡물, 물 등으로 다량의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은 물론이다. 또 육식 1인분은 채식 20인분의 식량과 물에 해당한다고 하니, 지금 먹는 고기가 누군가를 목마르게 하고 굶주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기후변화의 측면에서 보면 육식의 제한은 100년이나 머무는 이산화탄소와 달리 8년밖에 머물지 않아 즉각적인 효과를 낸다. 그래서 최근 ‘미트 프리 먼데이(Meat Free Monday)’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인데,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채식을 하자는 캠페인이다. 벨기에의 겐트 정부는...
2012.07.12
2009. 12. 24. 작성 / 기독공보 기고 지구에게 두려움 없는 사랑을 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북극의 빙하가 녹고, 태풍, 해일, 가뭄, 홍수, 산사태 등 위협적인 자연재해가 지구 곳곳에서 빈번해지고 재앙의 모습으로 인류에 다가서고 있다. 그로 인해 지구의 종말까지도 우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우려는 우려일 뿐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국제적 목표와 시기, 방법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지난 19일 코펜하겐에서 폐막된 기후 정상회담에선 영향력 있는 약속을 만드는 데 결국 실패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 특히 기후 재앙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그 누구 이상으로 '절망'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툰드라의 언 땅이 녹아 메탄가스가 방출되고, 얼음으로 덮어진 바다로부터 복사열의 반사율이 낮아진다면, 지구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파국의 길로 치닫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 살 곳이 없다. 더 이상 책임을 따질 시간이 없다. 그러기에 지금의 ‘아주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 또 그 안에서도 창조를 사랑하는 이들의 책임이 무겁다. 이번 회의에도 그들이 참석했더라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하나님의 창조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기본 생각이다. 우리 가운데 몇이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주는 편안한 생활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지금껏 별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그저 무감각하게 지구의 고통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던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기후변화를 진정시킬 기회의 문이 영원히 닫힐 것이라는 경고를 들으면서도, 재앙에 대한 두려움 이전에 다른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저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성장을 추구하고 교토의정서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원자력발전이나 4대강 사업에 매달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상황이 참 어렵다. 물론 좌절하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지구가 지금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고통 중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바로 우리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하라’고 하였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자리를 마음 깊이 새기어 보자. 그 위에서,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절절한 위기(危機)를 바라본다면 분명히 새로운 길을 찾을 수...
2012.07.12
은총의 숲이 되어 주세요. 양재성 목사(기독교 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해빙과 해수면 상승, 폭풍과 해일, 질병의 확산, 생물종의 멸종, 곡물생산량의 감소 등 환경문제는 전 지구적인 난제다. 거기에 공기와 수질 악화, 토양의 오염, 방사능 오염, 쓰레기 문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환경오염의 원인은 불행하게도 인간의 탐욕이다. 창조의 꽃인 인간의 방만한 삶이 하나님의 창조의 걸작인 지구 생태계를 파괴시켰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은 지구 표면의 1/3에서 이미 사막이 되었거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상태로 진행되면 2100년엔 지구의 절반이 사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호주와 스페인의 사막화, 그리고 아프리카, 몽골의 사막화는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사막화를 막고 지구를 살리고자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전 케냐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왕가리 마타이 교수는 자난 30년 동안 나무를 심었고 아프리카에 희망을 주었다. 그로 인해 200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말했다. <전 인류가 평생 10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지구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10그루는 상징적 의미이다. 인간이 평생 발생시키는 탄소의 양은 나무 1,000그루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니 평생에 나무 1,000그루 심기 운동을 펼치면 어떨까? 숲은 곧 자연이다. 숲은 모든 나무 자원의 보물창고이며 거대한 산소공장이다. (숲 1헥타르에서 44명), 숲은 공기 정화기이며 (연간 1ha의 침엽수는 약 40톤, 활엽수는 68톤의 먼지를 정화함).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진 방음벽이고 천연의 녹색댐이자 거대한 정수기이다. 숲은 자동으로 가동되는 재해방지센터이며(방풍림) 우리의 쉼터이자 건강증진센터요. 온갖 동물들의 보금자리이다. 숲은 문화의 산실이며 배움터요, 놀이터이며, 자본이다. (우리나라 숲의 경제적 가치, 연간 58조원) 기후변화로 인한 몽골의 사막화는 전 국토에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강력하면서도 시급한 대처가 없으면 나라가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이다. 사막화는 선진국의 경제성장이 원인임으로 선진국의 책임 있는 행동이 요청된다. 한국교회는 몽골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사막화를 해결해 줌으로 선교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아울러 이웃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인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다. 은총의 숲 조성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지구 생태계를 살릴 수 있으며 몽골의 초록화로 사막화를 저지하며 황사를 줄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줄여 지구온난화를 억제할 수 있고 아시아와 한반도의 사막화...
2012.07.12
090531 _ 교육과교회 ‘생명을 살리는 환경교육’ 7,8월호 원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생태적 책임' 교육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지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는 건강하지 못하다. 얼마나 더 우리의 삶을 지탱시켜줄 지도 장담할 수 없다. 사람들이 내놓는 나쁜 물질이 하나뿐인 지구의 수용능력을 초과했고, 자원의 소비 속도가 인류와 지구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빨라서이다. 지금 당장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들은 지구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채우면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해마다 ‘살아있는 지구 보고서(Living Planet Report)’를 발표하는 세계야생동물기금협회(WWF)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연에 주는 부담을 일컫는 생태발자국이 자연의 정화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먹는 것과 입는 것, 사는 집과 일하는 공간, 일과 여가를 위해 움직이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정도를 넘게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에 열을 올리는 우리나라의 생태발자국 지수1)는 4.05ha로, 하나뿐인 지구를 2.26개나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이들이 목표로 하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데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태발자국을 자랑하는 나라로 생태발자국 지수가 9.7ha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생태발자국인 1.8ha보다 무려 5배나 넘게 소비한다. 만약 전 세계가 이들처럼 산다면 지구는 5개 이상 필요하다는 말인데, 가능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재난을 예견하고 극복한 요셉이야기 성서에 보면, 다가올 재앙을 예견하고 그에 지혜롭게 대처한 요셉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있었기에 이집트 백성 대부분이 굶어죽을 뻔했던 재난을 극복하였고, 또 나라 전체의 살림살이도 유지될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떤가? 요셉의 시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 자료를 보면 굳이 요셉처럼 예언을 해석하는 능력이 없더라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 세계 자원의 재고량을 종류별로 기록하고 소비량 변동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이 자원이 대략 언제쯤 바닥날지 가늠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다가오는 재난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인데, 남아있는 자원을 요긴하게 쓰는 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루라도 빨리 경제생활의 토대를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전환하고, 나쁜 물질의 배출도 꾸준히 감소시키는 길을 찾지 않으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세상에서 오래도록 생존할 수 있으리라...
2012.07.12
기후변화 시대의 이웃 사랑은, 배출한만큼 값을 치르는 데서부터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창세기 4장 9절에 보면,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네 아우가 어디에 있느냐" 동생을 돌로 쳐서 죽이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형에게 하나님이 던지신 질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생명을 바라보시고 함께 아파하시며,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네 몸 같이 사랑해야할 이웃은 또 어디 있느냐?"하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IPCC 등 유력한 국제기구들이 거듭 경고했듯이, 지구는 이제 6년 후를 내다보기조차 어렵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이 심한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또 신음 중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 앞에 당당히 나서려면, 먼저 우리가 누린 것의 댓가, 곧 그동안 배출한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만큼의 값을 치뤄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부가 너무 많다면 올 한해 발생시킨 것부터라도 말입니다. “배출한 만큼 값을 치르는 것”은 한 단어로 표현하면 '탄소 중립(Carbon Neutral, 2006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이라고 하는데, 소비와 활동으로 배출한 탄소의 양을 상쇄(相殺)시키는 것, 곧 배출한 탄소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값을 치루면 되냐구요? 자신이 발생시킨 탄소량을 계산해서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아 지구 이웃을 위해 사용하면 됩니다. 내가 발생시킨 탄소배출량은 어떻게 알 수 있냐구요? 우리집의 탄소발자국 측정하기 http://www.greenstart.kr 위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하는 곳에서 측정하면 됩니다. 나온 수치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지구가 받는 고통의 정도이니만큼 회개하고 돌아설 맘을 먹어야겠지요. 그리고 그 수치, 곧 자신의 탄소배출량에 탄소시장 거래가격을 적용하여 kg당 15원을 곱하면, 자신이 배출한 탄소 대신 치루어야 할 값이 나옵니다. 15원은 Primary CDM(청정개발체계) 세계 평균가격 기준인 13달러/tonCO2에 따른 가격입니다. ‘자신의 탄소배출량(kg.CO2) * 15원’ 복잡하시다면, 우리나라 평균 탄소배출량에 따랴 나눔실천하셔도 좋겠지요. 우리나라 총 CO2 배출량이 연간 4억 34,000톤(세계 9위, 2002년 IEA보고)이니까 한 사람이 연간 12톤(33.61kg/일)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년으로 하면 ‘12톤 * 15,000원 = 180,000원’‘을, 하루로 하면 ‘33.61kg * 15원 = 500원입니다. 이런 계산도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하루 평균 33.61kg의 CO2를 배출한다고 했는데, 이는 하루에 나무 0.3그루가 들이마시는 양입니다. 그러니까 일년 동안 110그루의 나무(소나무 기준)를 심으면 됩니다....
2012.07.12
090403 _ 교육과교회 ‘생명을 살리는 환경교육’ 5월호 원고 생태감수성을 일깨우는 자연체험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생물은 하늘과 땅, 바다를 벗 삼아 살아간다. 그 종류는 아담(사람)이 붙여놓은 이름만도 170만 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약 70만 종이 곤충이고, 4만 1천 종이 척추동물, 25만 종이 식물이며, 나머지는 무척추동물, 곰팡이류, 조류 기타 미생물들이다. 여기다 알려지지 않은 것들까지 합하면 약 6천만 내지 1억 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생물 종(種)의 다양함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인 혜택을 주어왔다. 일례로 1960년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들의 생존율이 1/5이던 것이 지금은 4/5로 껑충 뛰었는데, 이것은 마다가스카르산 열대산림식물을 약재로 한 처방 덕택이다. 생명의 아픔에 둔감한 우리들하지만 지금의 생태적 현실은 너무 암담하다. 생물종이 빠른 속도로 없어져 요즘은 하루에 100여 종씩, 1년에 2만 종 이상이 우리 곁을 떠나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최근 30년 동안 100만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했고, 또 지금은 세계 생물종의 50%가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는 국토의 허리인 백두대간, 생태계의 보고인 개펄, 철새가 쉬어가는 습지, 최후의 녹지인 그린벨트…, 지난 20여 년 간 전국적으로 매년 1만 6천여 ha의 농지와 7천여 ha의 산림, 그리고 3천여 ha의 개펄이 사라졌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만도 연간 500여 종에 달하는 살아있는 생물종이 자취를 감췄다. 생명의 신음소리도 주변에 가득하다. 빠른 시간에 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풀 대신 성장호르몬과 항생제가 배합된 곡물사료를 먹은 소들은 소화기관이 망가져서 내장이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고통을 겪는다. 우리가 먹는 햄버거 한 개엔 소 60여 마리의 원한이 서려 있으며, 이를 위해 2.5평의 열대 숲이 사라지고, 과도한 방목은 전 세계 목초지의 60% 이상을 파괴해 매년 남한만한 땅이 사막으로 변한다. 밤낮 가릴 것 없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사료를 먹고 자라는 닭들은 알을 낳아도 품을 줄 모른다. 또 현대 어업이 먹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잡는 것은 연간 2천만 톤으로 세계 어획고의 4분의 1인데, 모두 죽거나 죽어가는 채로 바다에 내버려진다. 우리에게 이들 생명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기계’일 뿐이지 호흡하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아니게 된지 오래됐다. 이토록 생명이 죽음으로 몰리고 우리의 생존도 위협받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아픔과 괴로움에 여전히 둔감하다. 위기를...
2012.07.12
< 2009년 2월 23일 기독교환경회의 개회예배 때의 설교문입니다> 생태학적 영성의 패러다임 전환(롬 8:22-23) - 청지기 모델에서 중추신경계 모델에로-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삭개오작은교회 전도목사) 생태학적 영성의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자연환경파괴와 생태계의 교란 및 생물종의 기하급수적인 멸종과정의 진행은 인류의 생존자체에 위기신호를 보내온지 오래다. 환경위기의 근본원인으로서 서구기독교문명의 실재관에 책임이 있다는 린 화이트의 주장은, 일부 타당성이 있지만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실적인 진단은, 문명사적인 근원을 캐내는 논쟁보다는 17세기 산업혁명이후 인류생활 패턴을 바꿔온 인간중심의 무한성장 신화와 인간성의 무제약적 탐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생태환경의 위기지역은, 기독교문명을 모태로하는 서구사회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동심동체를 강조해마지 않았던 인도사회나 중국사회가 더욱 심각하다는 현실이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녹색 지구행성을 살리는 일과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대처방안 모색을 위하여, 기술공학적이고 환경보존 정책의 개발 실행이 중요함과 아울러, 자연과 인간의 상호관계성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전환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서 본문에 의하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안다”(롬12:22)고 밝히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성령의 처음익은 열매인 우리 곧 인간과 그리스도인들도 속으로 탄식하며 몸의 구원을 기다린다고” 밝히고 있다. 피조물은 이제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들, 영적으로 성숙한 자녀들의 출현을 기다린다고 말한다.(롬 8:19) 이 말씀의 깊은 뜻을 ‘생태학적 영성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조명하려고 한다. 청지기모델에서 중추신경계 모델에로 일언이 폐지하고 중세기 수도원운동, 경건운동, 그리고 근대자본주의적 시민사회 출현에 결정적 공헌을 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의식의 핵심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인간의 청지기 의식’ 이었다. 청지기 윤리의식은 참으로 위대한 기독교 영성의 패턴이다. 그것의 핵심은 인간이란 하나의 피조물이라는 것, 인간이 가진 모든 재능과 소유물은 본래 자기 것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의 것 이라는 고백, 주인의 재산이나 토지를 맡은 관리인으로 청지기의 사명은 그것을 증식시키고 이윤을 많이 남기는 근면과 정직이라는 책임의식 이었다. 그런데, 이제 지구촌의 생태환경운동을 펼침에 있어서 적어도 천년이상 기독교인들의 의식을 지배해온 청지기 모델의 근본적 변 화가 요청되는 문명사적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이유는, 막스베버가 말하고 기독교 윤리학에서 말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청지기의식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지속할 수도 없으며, 심히 부패하고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선 단순소박했던 17-18세기 자본주의사회의 초기단계와...
2012.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