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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신앙 이야기

2012. 8. 20 기독신문 기고‘창조의 시간’엔, 모두의 필요를 골고루 채워주는 ‘공생공빈의 삶’을. 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지금은 생명 위기의 시대다. 위기가 시작된 것은 사실 오래되었다. 인간의 탐욕스런 욕망이 인간과 뭇 생명에 대한 죽음과 죽임의 고리를 확대 재생산하여 어두운 그림자가 산과 강, 그리고 바다를 넘어 동식물의 생명 깊숙한 자리에까지 드리워져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상황만 봐도 그렇다. 구제역과 AI로 1천 만이 넘는 동물을 생매장 살 처분하는 것으로 시작된, 지난해 봄엔 폭설이 내리고, 3월에는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여 방사능 공포에 떨어야 했다. 7월엔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큰 물난리가 났고, 9월엔 전기사룡량이 전력공급량을 초과해 블랙아웃(대정전) 사태를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올해 봄엔 가뭄에다 이어진 폭염으로 지금껏 사망∙온열환자가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고 가축들은 떼죽음을 당해야했다. 자연스런 흐름이 막힌 탓에, 한강 본류와 낙동강 중류까지 녹조가 발생해 먹는 물을 염려해야만 했고, 바다에서는 어패류 폐사와 해파리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남해안 적조가 심하게 확산되고 있다. 지금껏 이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의 파괴와 기후의 붕괴가 구체적이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드러난 적이 있었던가? 저명한 온난화 회의론자까지 공개적으로 ‘회심’을 선언하게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다. 기후붕괴로 인한 재앙은 전 지구적이고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다 그 상황은 이미 최악이다. 이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있는 생명의 멸종 속도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1850년과 1950년 사이 해마다 한 종이 멸종하던 것이, 1980년 대엔 하루에 한 종이 사라지고 있고, 2000년 들어서는 시간 당 한 종이 사라지고 있다. 이미 자연의 속도보다 1,000배나 빨라졌다는 건 하나님의 창조에 조금만 관심을 두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상황은 절박하지만, 문제는 상황에 있지 않다. 그 원인을 몰라서도 아니다. 다 알고 있지만, 애써 인정하지 않은 채 응답하지 않고 있어 큰 문제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소리가 귓전을 때려도, 그저 모른 척 성장과 진보의 이름으로 일군 화려한 풍요에 젖어있는 이들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누려야 할 것 그 이상을 누리고 있다.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이 낸 ‘2012 살아있는 지구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의 1인당 생태발자국은 전 세계 평균이 2.7ha로 하나뿐인 지구를 1.5개나 쓰고 있다(우리나라는 1.7배 높은...
2012.09.01
[생명밥상 캠페인_16] ............. [기독공보 2860호 _ 2012년 07월 24일] 생명밥상의 창조론적 이해한경호목사/횡성영락교회밥상 위에 올라오는 밥과 반찬들은 모두 생명체이다. 생명의 존속은 다른 생명의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생물학적으로 그것을 '먹이사슬(food chain)'이라고 한다. 거대한 생명계의 생존과 존속은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면서 생명망(web of life)을 형성한다. 우리는 TV를 통해서 자연생명계에서 항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먹고 먹히는 광경을 볼 때마다 놀라움과 함께 잔인한 동물의 세계에 혀를 차며 불편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사람 역시 작물을 기르고 '죽여서' 먹고, 가축을 길러서 잡아먹는다. 야생동물도 사냥을 하거나 포획하여 먹는다. 심지어 산 채로 먹는 경우도 잇다. 인간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먹잇감이 가장 광범위하며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되지 않는 존재이다.  인간 이외 생물들의 먹이사슬은 본능적인 관계에 속한다. 인간도 물론 생존의 본능으로 다른 생명체를 먹지만 의식과 도덕의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먹이사슬에 대하여 보다 깊이 이해의 차원을 갖고 있다. 밥상에 올라오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 반찬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입에 들어오는지 살펴보면 아마 입맛이 떨어지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가축들을 죽이는 도살의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 내가 왜 고기를 좋아하며 먹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보지 않고 먹으니까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을 했다. 만물 속에는 '한울님'이 계시므로 생명이 생명을 먹는 것은 한울님이 한울님을 먹는 것이라는 말이다. 만물의 화육과 생장은 생명이 생명을 위해 먹혀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며 생명계는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의 거대한 한울님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이천식천(以天食天)은 먹이사슬의 세계를 생물적 차원을 넘어서 높은 영성적 차원으로 해석한 대표적인 말이다. 불교에는 보시(報施)라는 말이 있다. 다른 생명체들이 나를 위해 죽음으로써, 보시함으로써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승들은 기어가는 개미도 밟지 않으려는 생명에 대한 깊은 '자비심'으로 수행한다. 먹이사슬 현상을 먹고 먹히는 잔인한 약육강식의 본능적 관계로 보지 않고 생명의 영성으로 바라보는 말과 실천이다.  우리 기독교의 경우, 다른 생명체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중심적인 오만한 시각이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다른 생명체를 나의 먹이로 삼기 위해 죽이는...
2012.09.01
생명밥상 캠페인_15 [기독공보 2859호, 2012년 7월 17일] 수입농산물과 생명밥상, 신토불이(身土不二) 한경호 목사(횡성영락교회) 세계화의 시대이다. 지구공동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교통 통신이 발달하면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무척 쉬워졌다. 물자의 교환은 물론 오랜 옛날부터 이루어졌다. 모든 생활재를 자급할 수 없고, 교환은 상호 유익이 되는 일이었다. 이웃 간의 물물교환이 장날로 확대되었고,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시장경제로 정착되었다. 교환의 범위가 옆집과 이웃에서 이제 세계로 확대되었다. 문제는 이 교환의 목록에 농산물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농산물 수입이 점차 확대되어 오다가 우루과이라운드협정 이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농산물은 이제 일반 공산품처럼 각국 간의 차별 없이 유통되고 있다. 지금은 쌀까지 수입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가 먹는 농산물의 70% 이상을 외국농산물이 차지하게 되었다. 축산의 경우 배합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가 전량 수입 옥수수이니 밥상에 올라오는 고기는 외국농산물이나 다름이 없다. 세계의 기후와 토질과 작물은 매우 다양하다. 각국의 작물들은 그 지역의 기후와 토질에 오랜 기간 적응하면서 유전자가 고정된 것들이다. 지역 주민들의 삶은 그 지역 생명체들과의 먹이사슬 속에 연결되어 있다. 그 지역 농산물은 오랜 기간 지역 주민들의 생물학적인 삶 속에 녹아있기 때문에 그것을 섭취해야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동남아 열대지방의 쌀(소위 안남미)은 푸슬푸슬하고 찰지지 아니해서 우리가 먹으면 맛도 없고 소화가 빨리되어 배가 금방 고파진다.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 쌀을 먹으면 찰지고 묵직하여 소화가 잘 안된다고 한다. 지역의 생태적 환경과 식문화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가 바나나를 양식처럼 먹고 살 수는 없다. 우유도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효소가 없거나 약한 사람들이 있어서 설사를 하게 만든다. 이렇듯 농산물은 생산된 지역의 생태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먹어야 좋은 것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인 것이다. 또한, 수입농산물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우리 식탁에 올라온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에서 우리 집 식탁까지 돼지고기와 포도가 올라오는데 얼마나 많은 석유에너지가 소모될까? 우리의 양돈농가와 원예농가를 죽이면서까지, 그리고 그 많은 석유에너지를 소모하면서까지 수입해다가 먹어야 하는 것인가? 생명밥상을 차리려면 이 푸드 마일리지(food milage)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마지막으로 수입농산물은 여러 가지 유해한 처리를 해서 들여온다. 농산물은 생명체여서 오랜 기간의 수송과정에서 부패하거나 망가지지 않도록 처리를 해야 한다.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 요꼬하마...
2012.09.01
생명밥상캠페인_14 [기독공보 2858호, 2012년 07월 11일] 생명밥상의 상징, 쌀 한경호 / 횡성영락교회 목사생명밥상을 차리는 데에 제일 중요한 것은 밥이다. '밥상',"밥 먹었니?","밥 잘 먹고 공부 잘 해야 돼","밥이 보약이야" 등의 말에서 보듯이 다른 식재료들보다 밥이 상차림을 대표하는 말이다. 밥을 잘 먹는다는 말은 밥만 잘 먹는다는 말이 아니라 상에 차린 모든 음식을 다 잘 먹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밥의 재료는 쌀이다. 그래서 어떤 쌀로 밥을 짓느냐가 중요하다. 오래 전 일본에서 '이따이 이따이'병이 발생했었다. 쌀의 오염에서 비롯된 공해병이다. 인근 지역의 공장에서 나온 폐수가 논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폐수 속의 중금속이 벼에 축적되었고,그 쌀로 밥을 지어 오랜 기간 먹다가 발생한 병이다. 논농사에서 중요한 것은 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요즘 물 오염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어떤 물로 벼농사를 짓느냐 하는 것이 쌀의 '생명성'을 평가하는데 중요하다.다음,벼가 자라려면 양분이 필요하다. 거름이 들어가야 하는데 보통 화학비료를 사용한다. 요소비료,복합비료,이삭거름 등 대체로 화학비료들을 많이 쓴다. 화학성분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과다하게 사용하면 땅이 소화를 못하고 토양성분도 변하여 점차 산성화된다. 또한,화학성분이 지나치면 벼 뿌리나 줄기,나아가 벼 낱알에도 축적되고,논 물꼬를 타고 시냇물로 흘러들어가 하천생태계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화학비료는 안 쓰는 것이 가장 좋지만 퇴비를 중심으로 하면서 소량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무농약재배도 있다.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농약이다. 화학비료를 중심으로 재배하면 벼가 약해져서 병충해에 쉽게 걸린다. 자연히 농약을 치게 된다. 농약은 고독성물질이다. 병충해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땅이 오염되고, 농민이 농약 중독에 노출되며,작물도 오염된다. 결국 소비자의 건강에도 해를 끼치게 된다. 물론,자연생태계와 인체는 정화력과 치유력이 뛰어나서 상당 부분 극복해나가지만 지속적으로 쌓이면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사람이 약을 오용하거나 과다 복용하면 문제가 되듯이 농약 또한 그렇다. 문제는 인간의 약은 생명에 지장이 없도록 치밀하게 제조한 것이지만 농약은 고독성이며,주변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화학농약 때문에 논생태계가 단순해지고,주변 하천의 생명체들이 해를 입으며,그 볏짚을 먹은 소가 임신을 못하는 경우들도 발생한다. 화학농약은 사용하지 말고 대신 미생물제 등 천연적인 방법으로 방제하는 방법을 발전시켜야 한다.물,비료,농약은 쌀의 생명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쌀의 생명성이 살아있어야 생명밥상을 차릴 수 있다. 깨끗한 물,천연적인 방법의 농약과 비료가 생명밥상을 차리는데 필수적임을 알고 쌀을...
2012.09.01
[생명밥상캠페인_13] ................... 기독공보 [2857호] 2012년 07월 06일 에너지와 생명밥상 과정의 생명성 한경호 / 횡성영락교회 목사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는 토지와 자본 그리고 노동이 필요하다. 노동은 땅에 에너지를 가하는 행위로써 갈고,심고,뿌리고,덮고,거두고,저장하고,운반하고 등의 다양한 노동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축력과 인력으로 모든 일을 하였는데 이제는 기계가 거의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 노동력은 다른 말로 힘 에너지이다. 이 힘의 원천은 밥(인력)과 사료(축력)였다. 그러나 기계는 기름(경유,휘발유,등유 등)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농사에너지가 천연에너지에서 화학에너지로 대체되었다. 농기계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가장 많이 쓰는 것으로는 경운기(이제는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함),트랙터,관리기,탈곡기,제초기,이앙기,콤바인 등이다. 이외에 비료살포기,종자살포기,농약살포기,건조기 등 매우 다양하다. 이 모든 기계들이 기름으로 돌아간다. 또한,화학비료도 기름으로 만들고,겨울철 하우스농사는 난방용 기름 없이는 불가능하다. 바야흐로 에너지 다소비형 석유화학농업시대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재 생명농업으로 농사짓는 농민들도 거의 다 기계를 사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사용할 뿐이다. 에너지의 기계화와 화학화는 적은 인력을 대체할 뿐 아니라 생산력도 증대시킨다.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구조이다.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 기름에너지에 의한 기계화 및 화학화가 얼마나 지속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과 강력한 기계 힘에 의한 땅에 대한 폭력적인 취급,농민 심성의 기계화로 생태정서가 점차 상실 되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 자신이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계로,농사의 주체에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땅과 생명으로부터의 소외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생명밥상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사고와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결과의 생명성'뿐 아니라 '과정의 생명성'을 앞으로 생각해야 한다. 농약 안 뿌리고 화학비료 안 주는 정도를 넘어서서 농사활동 전반에 걸친 '과정의 생명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농사 규모도 작아지고,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로 가야할 것이며,노동력이 더 많이 들어가는 힘든 농사가 될 것이다. 자칫하면 농민들만 힘들어질 수 있다. 소비자의 각성과 참여가 요구되며,집단화된 소비자의 힘이 필요하다. 소비자 20~30가구가 농가 한 가구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여 생산자-소비자가 함께 의논하고 생산,소비하는 체제로 가면서 농민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매우 앞선 얘기일 수 있는데 생명밥상이 내포하고 있는 농업살림의 가치를 살리려면 그렇게 가야한다. 생명농업의 기계화로 인한 규모화는 생명밥상운동과 조화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생명농업은 평야지대가 아닌 중산간지대에 적합한 농업이다. 인력 및 축력 중심의 농사로 가능한 규모(기계라고 해야 경운기와 관리기 사용하는 정도)여야 생명농업이라고...
2012.09.01
농심(農心)과 생명밥상 생명밥상 캠페인_12 (기독공보 2856호 - 2012년 06월 19일) 한경호 / 횡성영락교회 목사 농심(農心)이란 무엇인가? 농심은 농민의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농민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첫째,정직한 마음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생명의 이치를 아는 마음이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아는 마음이다. 자연의 원리를 따라서 순응하면서 살 줄 아는 마음이다. 요즘은 농기계 작업을 하니까 농토와 농로들이 다 직선화되었지만 과거에는 거의 다 곡선이었다. 자연의 생긴 모습대로 따라가고 순응하는 삶의 모습이다. 자연은 정직의 성품을 농민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둘째,농심은 생명을 보듬고 키우는 어머니의 품성이다. 생명은 연약하다. 자칫하면 병들거나 죽을 수 있다. 잘 먹이고 돌보아야 한다. 생명을 돌보는 어머니의 품성은 온유한 마음이다. 마음이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다. 따뜻하고(溫) 부드러운(柔) 마음이 생명을 키우는 힘이다. 농민의 마음이 사납고 거칠면 생명을 기를 수가 없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농심이 많이 거칠어졌다. 작물과 가축이 상품이요 돈이다. 생명에 대한 애정이 '돈'의 힘에 의해 각박해졌다.  셋째,농심은 모든 것을 품고 수용하는 마음이다. 농심은 땅심에서 유래한다. 땅은 한없이 넓은 품을 갖고 있다. 무엇이든 다 품고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농민들은 어지간한 억압과 착취도 고통스럽지만 수용한다. 그러면서 반 만년동안 온 국민들을 먹여 살렸다. 가이없는 골짜기이다. 생명은 골짜기에서 나온다. 농민의 얼골(얼굴)을 보라! 얼골은 얼(영,정신)이 깃들어 있는 골짜기이다. 농민의 얼골에는 생명의 영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그 얼골이 요즘 많이 망가졌다.  넷째,농심은 은근과 끈기의 마음이다. 5백m정도 떨어진 산비탈에 콩밭이 있는 농민이 가을 수확 철에 콩을 거두어 지게에 실어 집으로 들였다. 한 차례 왕복에 1시간 정도 걸리는데 하루 종일 운반하였다. 그 걸음이 너무도 일정하고 차분하여 흔들림이 없었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저게 바로 은근과 끈기이구나. 한국인의 기질을 말할 때 은근과 끈기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농심이었구나"하고 깨달은 적이 있다. 농사는 싫든 좋든 자연의 일정에 맞추어 해야 한다.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 밭고랑이 1백m도 넘는데 호미로 김을 매다보면 앞이 까맣다. 햇빛은 따갑고…. 그런 고랑이 수 십 개인데 그래도 해야 한다. 묵묵히 참고 끝까지 가야 한다. 은근과 끈기의 마음이 길러질 수밖에 없다.  농민들의 마음속에는 위와...
2012.09.01
2012.05.24_ 아시아 카톨릭 뉴스 송고희망을 노래하게 하는, 녹색교회 실천 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우리는 지금 ‘열병’과 ‘방사능 피폭’에 시달리고 있는 지구 동산 한 가운데 있다. 동산을 지키고 돌봐야 할 책임이 있지만, 대부분 누리고 있는 풍요와 편리함에 빠져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해하고 있거나 주저하고 있기 일쑤다. 물론 지구 동산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 작은 노력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녹색교회’를 꿈꾸는 교회들의 노력도 있다. 비록 적은 수이지만 1998년 기독교환경운동연대(www.greenchrist.org)가 제정한 ‘녹색교회21’에 기초한 녹색교회 만들기에 함께해온 교회들인데, 이들 녹색교회들은 겉모습에서부터 푸른 향내가 짙게 풍긴다. 벽면엔 담쟁이넝쿨이 푸름을 더하고, 건물 지붕에서는 태양광전지가 반짝거린다. 교회 둘레엔 담장이 없다. 주변이 작은 숲이다. 비록 작지만 온갖 동식물들이 자라고 지역주민들이 드나들며 친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 쪽에는 토마토, 상추, 오이, 당근 등을 키울 수 있는 텃밭도 있다. 교회 앞마당엔 자전거가 줄지어 있다. 성도들은 자전거를 타고 세상과 교회를 오간다. 녹색의 눈으로 성경을 읽으며 자녀들에겐 창조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가르친다. 신음하는 피조물의 아픔을 느끼기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에 기꺼이 헌신한다. 이들 교회들이 하고 있는 녹색실천은 크게 여섯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는 하나님께 받은 ‘햇빛 바람 등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이다. 광동, 지평, 청파교회 등은 교회 지붕에 태양광발전기 3kW를 올렸다. 2010년부터는 햇빛과 바람, 자전거발전기를 이용해 불을 밝히는 친환경십자가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다. 둘째는 ‘실내 적정온도 맞추기’다. 예배당이나 사무실의 온도를 여름에는 시원한 옷차림(쿨비즈)에 26~28°C를, 겨울에는 내복(웜비즈)을 입고 20°C 아래로 낮추게 하고 있다. 교인들에게도 온도계를 선물로 주어 가정에서 에너지 절약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셋째는 가정과 교회에서 나오는 ‘생활 속 CO2 줄이기’다. 2007년 이후로 신양교회 등은 매월 마지막 주일을 ‘차 없는 주일’로 지킨다. 주일마다 주차장을 비워두고, 맑은 공기와 함께 주일을 맞으며 지구는 물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있다. 아울러 많은 교회들이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기, 가스, 수도, 자동차 주유비 등 생활 구석구석에서 발생시키는 CO2를 ‘에너지가계부’에 기록하게 하여 자신이 지구에 얼마나 고통을 안겨주는지 알아 고통 받는 생명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했다. 넷째는, 나무를 심고 가꾸어 ‘교회를 푸르게 하기’다. 숲을 회복하는 것은 이산화탄소를...
2012.09.01
* 기독공보와 함께 하는 생명밥상 캠페인_11 * <기독공보 2851호>생명밥상으로 생명의 온전성 회복을!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우리는 날마다 밥을 먹는다. 아니 살아 숨 쉬는 생명이라면 모두 다 밥을 먹는다. 그만큼 밥은 생명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기본에 충실하듯 밥을 먹는다면 몸과 마음은 물론 삶이 온전할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그 생명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먹는 것이 '기본에 충실하며' 제대로 먹는 것일까? 우선은 주식인 쌀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우리 땅에서 올곧게 농사지어온 농부의 마음이 깊이 배인 '국내산 유기농' 쌀을 선택하되,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 먹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주실 때 그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풍성히 담아놓으셨다. 그러니 주신 대로 통째로 먹는다면 우리의 필요는 자연스럽게 채워지게 될 것이다. 실제로 쌀은 현미를, 밀가루는 통밀을 먹기만 해도,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심장병의 25%, 당뇨병의 50%, 비만의 80%, 암의 20%가 감소한다고 한다. 의료비가 3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다.  이제 살아있는 먹을거리를 정제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삼가고, 생명의 먹을거리를 받은 것 그대로 먹자. 맛을 내기 위해 넣는 설탕, 소금은 물론이고, 사과나 감자, 당근 등도 껍질째 먹는 연습을 해보자.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껍질에도 많이 들어 있다. 껍질의 섬유질에는 오염 물질을 흡착하여 제거하는 해독과 생리 활성 기능을 가지고 있는 비타민, 미네랄, 바이오 플라보노이드와 같은 영양 성분이 들어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같이 밥상을 차려 먹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천천히 공손히'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밥을 천천히 먹는 일은 단순히 소화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온 마음을 집중하여 밥을 먹는다는 것은 밥이 내 밥상에 오르기까지 관계한, 그리고 내 입 안에 들어와 살과 피가 되어준 수많은 생명들을 살피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습관이 아닌 온전한 식사기도를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삶을 온전하게 할 것이다. 이미 그것을 믿고 지난 10여 년 동안 교우들과 함께 생명밥상을 차려 나누어 온 교회들이 여럿 있다. 밥을 통해, 교우들의 몸과 마음은 물론 영혼을 살리려했고, 또 그로 생명의 온전성을 회복하고자 애써왔다. 신음하고 있는 이 땅 지구를...
201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