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깨달음, 마음의 생태학

생태적 삶과 수련의 실제

사회 : 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획실장
수련 및 주제발표 : 곽노순 / 시카고의 샤론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한 후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가르쳤고, 현재 후기기독교신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 내용 >

(몇가지 수련 동작 후) 자리 좀 바꾸고 쉽시다. 네 가지 동작을 했는데 많이 액체 상태로 왔어요. 숨 쉬기도 수월해졌고 배 속도 느껴지고 머리, 이마, 손바닥, 발바닥이 다 따뜻해요. 무엇을 해서? 아니함으로. 인간이 제일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doing에 중독된 종자이기 때문이죠. 저를 보세요. 여러분이 '좋다'를 언제 하고 잊었냐면은 초등학교 2, 3학년 때하고 잊었어요. body가 아니라 brain의 종노릇을 했기 때문에. 전권을 다시 몸으로 돌려줘라 하는 것이 도가의 입장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민족, 가족, 자유, 다 추상명사고 출생신고와 사망신고 사이에서 가지고 놀던 품목이예요. 그러나, 뭐가 없어지냐면은 몸이라고 하는 것이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내가 단백질이구나', '숨을 쉬어야 사는 구나', '아~ 좋구나', 이런 것을 안다면 지상 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들 인류를 위하네, 조국을 위하네 하는 거창한 광고를 붙이고서는 헐레벌떡 뛰는데 몸은 쑤시고 아프지요. 지금 쉬라고 하면서 한 이 자세는 몸에 붙어있는 나쁜 균을 딱 끊어버리는 자세예요. 이러고 있으면은 병이나, 피곤이나 찜찜한 구석이 가셔요. 한국에서 찜찜한 구석이 제일 많은 데가 병원, 교회, 지하철입니다. 한 번 갔다와 보면 아시죠. 지하철을 1시간 타고나도, 타니까 알죠, 걸레가 됩니다. 교회에 있다가 나올 때도 걸레가 되고 병원에 갔다가도 물론입니다. 좋은 일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통찰을 갖고 드물게 가셔야 되요. 그리고 부득불 그런데에 가게 되었을 때 나쁜 균을 잘라 버리는 자세는 이 자세예요. 이렇게 하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지하철에서도 이러고 있으면 몸에 병이 안들어와요. 자, 그만 이제 눈뜨시고. 사람이 많으니까 여기 이불 하나씩 펴고 한사람씩 누우세요. 입들은 봉하시고. 안경은 벗고. 자기 좋을 대로 누우세요. 입들은 다물고 조용히 몸이 좋다는 대로 벌렁 누우세요. 남하고 상의하지 말고, 몸이 좋은 대로 쓰러지란 말이예요. 안경을 벗고. 옆 사람이 존재하는 거 아니예요. 나밖에 없어요. 예의차릴 것도 없고. 몸에게 물어봐서 몸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어렸을 때처럼. 간혹 어떻게 눕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어요. 하도 오래되어 잊어버렸던 거지요. 불쌍한 사람이 많아요.

손바닥을 바닥에 대 보기도 하시고, 손등을 바닥에 대 보기도 하세요. 그러면 물이 계곡 밑으로 밑으로 가듯이 아주 안착하는 자세가 있습니다. 발을 그냥 벌렁 벌린 게 허전하면, 오른쪽 다리를 왼쪽에 얹어 보세요. 생명기운이 팽팽해져요. 커피 마시고 뇌만 부려 먹었지 몸이 적절히 피곤하지 않아서 건강하게 피곤하지 않고 걸레가 되어서, 어떤 게 좋은 자세인지도 모르는데 오늘 되찾으세요. 무장하시라구요. 아무 눈치 볼 것도 없어요. 몸이 좋아하는 대로. total freedom을 짧은 시간이나마 본인에게 드리라구요. 본인이 알 겁니다. 이게 몇 년만인가. 내가 무엇하느라고 이렇게까지 걸레가 되었는가. 대한민국 사람 위험한 백성입니다. 적이 쳐들어 오지 않는데도. 피차 길에서 죽이고 병신 만듭니다. 전주시 하나 만큼. 그런데도 놀래는 사람이 없어 제가 놀랍니다. 왜 그리 교통사고가 많으냐. 찌르릉 찌르릉 비켜 나세요 우물쭈물 하면 큰일납니다. 어려서부터 세뇌가 되어서 커서 차 한 대 사서 그거 해보는 거예요. 사람이 우물쭈물 하면 차가 멈춰야지. 우물쭈물 하면 큰일납니다라니요. 그것을 어린 시절부터 해서 너도 나도 살기가 뻗쳐서 헐레벌떡 죽음을 향해서 행진하고 있어요. 강토가 깎여 나가는 것은 그것의 한 표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자연을 보호한다고 하지요. 여러분들이 그 일에 애쓰시는 분들인줄 알고 내가 고마워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자라고 한다든지, 자연의 편을 든다는 것이 가소롭다고 봅니다. 우리 몸뚱이 하나 하나가 'part of nature', 즉 우리 자신이 자연의 일부인데 지금까지의 자세르 고치기 전에는 ecology의 성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자, 이 정도 하니까 졸리움도 오고, '아~ 좋다' 하는 느낌이 생기죠. 이것이 자연의 메카니즘이예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자연이듯이 가만히 있는 바위와 산처럼 조금씩 했더니 이렇게 편안하구나. 이것은 명예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고 부자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고 남의 인생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아무 함수관계가 없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이구나. 이것을 여러분이 지금 조금 맛보고 있는 거예요. 이 상태를 동양에서는 시체라고 하죠. 'doing not',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에 시체가 됩니다. 불교에서는 시체라 하고 도가에서는 무위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안식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것을 life style로 가지고 계신 분은 병이 들어설 여력이 없습니다. 몸들이 다 망가져 있으면서도 망가진 강토를 구하겠다니, 제가 보기에는 갸륵하지만은 제일 가까운 자연부터 회복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몸이예요. 하늘이 여러분들을 관리하라고 맡겼는데, 여기부터 하면은 각자가 자기 몸 하나만 병이 한 개도 없이 지금 상태의 우리나라를 회복하면은 60억이 그냥 지상 낙원이 돼요. 그런데 내 몸뚱이는 그냥 혹사하면서 끌고 다니면서 다른 것을 구하겠다고 하니까 ...

주무셔도 좋고, 코를 골아도 좋아요. 오랜만에 눈치 보지 말고 몸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자기 자신만 있어요. 쉬시면, 얼굴이 다 평화로워요. 왜 그리 뛰고 심장을 혹사하며 위장을 파먹어 가며 간을 상하게 하나요, 더 이상 그러지 마세요. 환경친화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가장 가까이 있는 환경이 이 몸이예요. 잠 잘 자고 밥 맛이 좋고. 탄소, 수소, 산소, 질소로 된 값을 따지면 30불도 안되는 하드웨어로 되어 있어요. 잠깐 살다가는 하드웨어예요. 별거 아니예요. 자연의 연속이예요. 주무셔도 좋아요, 시체가 되는 게 평화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사는 동안엔 긴장이요 죽음은 릴렉스요. 그 죽음을 미리 가져다가 삶에 써야 해요. 그것을 종교라고 해요. 종교란 우울해지고 염세가 되라는 게 아니에요. 내가 몇 살 때 이런 것을 맛보았나 생각해봐요. 그 때는 아무 지위도 없었고 재산도 없었고 남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하루 종일 친구와 놀고 싶었고 백만장자 이상으로 행복했어요. 그게 예수가 돌아가라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제 슬슬 일어나는 동작을 하겠습니다.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얹어 주세요. 그리고, 두 손을 포개서 머리 뒤에 하세요. 그러면 생명이 팽팽해지고, 깨어나고 일어나는 거예요. 아주 조심히 하세요. 갑자기 하면 안돼요. 좌우 바꾸시고, 생명이 팽팽해지는구나. 사지를 놀리는 것을 어릴 땐 다 즐겼어요.

다음에는 무릎을 허공으로 세우시고 두 발바닥으로 바닥을 대세요. 그리고, 오른쪽 정갱이를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으세요. 이런 자세가 가장 좋습니다. 하루 종일 다리는 나를 들고 다니라고 수고했기 때문에, 중력에 대해서, 공평하게 다리도 위로 올라가는 기간이 있어야죠. 그러면은 피가 얼굴로 많이 고여서 생각이 모아져요, 그런데 이런 자세를 안해요. 왜, 대개 이런 자세는 실직했을 때 하는 거니까. 하지만 이 자세가 아주 좋은 거예요. 일어날 때 잘 때 5분 10분씩 습관으로 삼는 사람은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숨이 점점 깊어지죠? 우리는 지구가 하나의 촌락이 되었으니까. 인도 꺼 이스라엘 꺼 대한민국 꺼 다 가릴 꺼 없이 다 써도 부족해요. 언젠가 화성이나 다른 데서도 올 거니까. 지구 것을 치지 말고 쓰세요. 발을 좌우로 바꿉시다. 시체가 된 다음에 부활하는 과정이예에요. 천천히 하셔야 되요. 갑자기 하시면 위험해요, 보통상태로 돌아올 때. 아무 것도 여러분이 한 거 아니예요. 헐레벌떡 테니스장에서 볼링장에서 축구하고 뛴 것도 아닌 데 온 몸이 불덩어리가 되고 노곤하게 되었죠. 노곤한 것은 평안한 거에요. 샬롬이 뭐 별겁니까. 히브리어만 알면 됩니까. 몸뚱이가 차가운 데. 사람들은 참 어리석어요. 히랍어 사전을 뒤지고 벌벌 떨지만, 몸엔 냉기가 돌아요. 지금 여러분의 상태를 샬롬이라고 해요. 우리나라 말로 한다면 평안이고 노곤함이고. 다리를 쭉 바닥으로 펴시고, 눈을 떠서 손도 펴시고. 천장을 쳐다보세요. 천장의 여기저기를 보세요. 눈동자를 동작시키란 말이예요. 눈은 뇌의 연장이예요. 가장 깨게 하는 데 중요해요. 그리고, 속으로 7번만 셉시다, 눈 뜬 상태로. 대강 대했으면, 천천히 일어나서 그냥 앉아 주세요. 천천히. 손을 편하게 놓고 움직이지 말고 편안히 있으세요. 이제 조용히 각자 자리에 돌아가셔서 무릎을 꿇고 앉읍시다.

마지막 동작. 양쪽 발 뒤꿈치에 엄지를 대로 앞을 좀 올리시고. 그리고, 저를 보세요. 이마를 땅에 댈 터인데 귀를 겉에서 막고, 눈하고 입을 가리도록 하시고. 손바닥 칠 때까지 엎드려서 어머니 품처럼 느끼세요. 손을 두 손바닥을 허벅지 가까이 대시고. 척추를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똑바로 돼요. 머리와 척추, 지구가 일직선이 돼요. 정갱이가 접혔으니 혈관이 압박을 받아서 혈액순환이 왕성하게 일어나서 훈훈해요. 지금 무릎을 꿇었으니 겸허해질 수도 있겠어요. 머리와 척추, 그리고 지구가 일직선이 되었으니 정신은 맑게 되고, 몸은 불덩어리가 되어 쫙 풀어졌고, 숨도 깊이 쉴 수가 있고, 허벅지에 양손바닥이 가는 게 만병통치 자세에요. 왼쪽 허리춤에 자기가 고안한 멋진 칼 한 자루가 있다고 상상해요. 모든 짐승이 이빨과 뿔과 발톱이 있어요. 우리는 그것이 없기 때문에 혀끝으로 해서 온갖 정신 질환을 겪고 있어요. 모든 생물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요 돼요. 칼을 차고 있다면 다 무사예요. 무사가 남을 죽이는 무사냐. 아니죠, 출생신고와 사망신고 사이에 숲을 헤쳐가기 위한 무사예요. 본래 편안한 데서 와서 편안한 데로 돌아가는데 일 만가지 오 만가지 거품현상에 쓰여 가지고 몸과 마음을 다 걸레로 만들죠. 그 적을 무찌르는 것이예요. 성경에서는 성령의 검이라고도 하고요. 이 칼로 아까 맛 본 하나님의 나라, 선(禪), 거기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일체를 모두 치는 것을 말해요. 어떤 종류가 있을까요. 내가 이 몇 분동안에 맛보았던 것을 맛보지 못하게 하는 첫째 요인은 두려움이예요. 또, 증오. 또 허위의식, 자만, 돈 좀 있다고 하는 것, 세상 원망하는 것, 팔자 타령하는 것. 이런 것들을 칼로 치시란 말이에요. 왜, 아무 것도 안했는데, 아무 것도 필요없구나. 그것이 시편 23편이에요. 말들만 하지 말고 맛을 보았느냐 하는 거에요. 지구촌이 되니까. 남이 와서 툭 쳐도, 가져가라 할 수 있고. 잠자리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남이 못 알아듣는 게 무슨 상관이예요. 내 몸이 훈훈한데 말이지요. 타인이 필요없기 때문에 줄 게 있는 것을 사랑이라고 해요. 타인이 꼭 필요한 중독증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의존성이지. 홀로 가끔 무사의 상태로 생활화했습니다. 손님이 오면 서로 무릎을 꿇어 보십시오. 서로 정중하고 겸손하게 대하게 될 것입니다. 척추가 똑바로 되어 있으니 허튼 소리 안할 것이고, 정신이 맑으면서도, 말이 많지 않을 거예요.

서구시대 사람들은 집집마다 총이 있었기 때문에 말이 길지 않았어요. 일본도 사무라이시대를 통과했기 때문에 말이 없어요. 여차하면 목이 날아가기 때문이죠. 이씨 조선 500년 문화는, 하고도 없던 것으로 합시다, 그러죠. 너절한 문화 속에 사는 거예요. 다시 맹수로 돌아가셔서 내가 나를 지키는 천지의 기운을 머금어요. 영토와 국민이 필요없는 내가 왕이다. 자족할 수 있다. 그 검을 자주 자주 쓰시기 바래요. 나중에 정중하게 왼쪽에 다시 칼집에 넣고. 상상이 깊은 사람 벽에 걸어 놓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성경에서는 성령의 검이라고 했지만, 체험도 못하는 것은 거품현상이고 인플레이션이에요. 무엇이 더 필요한가 스스로 물어봐요. 이렇게 하는 것이 환경친화적이예요. 여러분 자신이 자연이고 부분이예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틀린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내 몸이 자연이구나 인정하시고, 우직하게 하세요. 병이 떨어집니다. 몸이 화덕이 되었죠. 착각하죠 불을 때었나, 아닙니다. 마지막 동작 양손을 대고 숨을 7번만 쉽시다. 속으로 하나님께 간구해도 좋아요. 조국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내 가정을 위해서, 지혜와 힘을 주십사 하고, 나를 지켜라고 하고. 이런 강건함을 주어서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장수할 수 있도록 간구하세요. 내 마음의 문제로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게 지켜달라고 하고. 허위의식이나 삶을 헛되게 보내는 오해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해 보세요. 여러분이 지금 상태에서 농축된 표현으로 아뢸 때만 하늘에 전달되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해야 잠꼬대지. 하나님은 잠꼬대에 대답을 할 정신병자가 아니예요. 간결하게 간구할 때 여러분이 바라시는 금수강산이 회복될 수 있고, 이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해야 다 헛 거고 무슨 일이든지 천가지를 해야 헛 일이라는 것을 다 아세요. 그러나, 내 몸을 고쳐서 하나님만 운동에 동업자를 끌어들이면은 성공은 확실합니다.

누가 좀 이제 창문 좀 열어 주세요. 기 할 때는 문을 닫아야 해요. 겸허해지고 정신은 맑아지고 숨은 저절로 깊어지고. 오늘 한 것을 다 잊어버리시면, 아무 데서나 무릎 꿇고 15분만 있어요. 저절로 문제가 삭아져요. 보통으로 돌아갑시다. 주무시는데 도중에 깨서 죄송합니다. (웃음) 동작에 대해 질문 있으시면 하세요.
- 늦게 들어와서 죄송하구요, 동작하시면서 소리를 내시던데 왜 하시는거죠.
- 저절로 나와서 말릴수가 없어요. 일부러 하실 필요는 없구요. 나도 몰라요.

요새는 그런게 없는데 대전, 양구에서 군대 생활하던 60년대였어요. 트럭에 짐을 잔뜩 싣고 내가 쫄병이니까 그 위에 타고 갔어요. 소주 한 잔 하면서 두 놈 하고 달리고 갔어요. 터널이 나왔는데 표지에 터널 높이가 4.2m라고 써있었어요. 위에 있는 놈이 밖에서부터 짐까지가 5m인데 사방을 보고 앞을 딱 치고 "경찰 없어 들어와, 들어와." 그래 어떻게 됐겠어? 경찰만 없으면 되나? 그래요. 높이 4.2m 되는 지구가 무너지는 소리가 10년째 나고 있어요. 욕심이라는 자본주의 트럭을 몰고 가는데 하나님 안봐 하나님 없어. 하나님만 없으면 되느냐 말이야. 한 개밖에 없는 터널인데, 한 개밖에 없는 지군데, Greed(탐욕)라고 하는 5m짜리 트럭을 몰고 인류가 4.2m 터널을 향해 들어간 지가 10년이 됐어요. 누가 그렇게 몰고 가느냐? 지구에 있는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까지 '탐욕'이라고 하는, '자본주의'라고 하는 트럭을 몰고 터널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은 지가 벌써 10년이어서 여러분들이 특별히 나서서 애쓰시는데, 어떤 bar의 바텐더에 한 사람이 들어와 괴상한 주문을 했어요. 위스키를 10잔을 담으라고 하더니 쪼록 쪼록 다 마시는 거예요. 지가 무슨 김정일도 아닌데, 한 잔 들이키더니 아홉번째, 여덟 번째 것을 먹고,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zero, 빈잔들만 남았어요. 그리곤 쓰러지면서 하는 얘기가 "숫자가 계속 줄어 드는데 난 왜 더 취하냐?" 이랬다는 거예요.

지구 망가뜨리는 게 기업인데, 여러분 같은 NGO도 굉장히 많은데 왜 날로 취하는지 내가 모르겠어 하는 것과 같죠. 여러분 같이 애쓰는 사람이 어느 나라든지 많은데 강도는 점점 더해가니 "왜 이리 취하지" 하는 얘기가 떠오르네요.어느 장님이 있었는데 친구 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얘기하다가 이제 집으로 가게 됐는데 집주인 친구가 아주 사려가 깊었죠. 마당에서 신을 신는데 친구 장님에게 '여기 등불이 있으니 가져가라'고 그랬어요. 장님이 '야, 내가 눈을 못 본다고 날 놀리는 거냐' 하고 시비를 했어요. 집주인 친구 하는 말, "아, 그게 아니라 자네는 필요 없지만 딴 사람이 보고 비켜 갈 거 아닌가." 하는 거였어요. "아 그래, 고맙네" 이러고는 이제 등불을 들고 논두렁을 건너 집으로 갔어요. 그런데 30분쯤 가는데 사람들이 자꾸 부딪히는 거예요. 그래서 "야~ 자식들아. 나는 눈이 멀었지만 눈 뜬 자식들이 이것도 못 보고 막 부딪히냐" 그랬죠. 그랬더니, 그 쪽에서 하는 말,"불은 무슨 물이냐. 다 꺼졌다, 이놈아"이게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예요. 등이 다 꺼진지도 모르고 있단 말이죠. 차라리 등이나 없으면 사람이나 안쑤시지 않겠어요. 위 세 가지 이야기는 정부, 교회, NGO, 개인 등 모두에게 해당되는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음으로 여기서 주신 제목대로 '생태적 삶이란 무엇이냐' 환경 친화적 삶이란 뭐고 어디서부터 가능할까? 칠판을 놓고 어쩌고 학자 이름을 대고 하면 졸릴 것이고, 좋은 환경에 있으니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간략한 얘기 몇 개만 하려고 해요."태백일세'라고 하는 책에 고구려를 세웠다고 하는 고주몽이 이렇게 조서를 내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천신께서 만인을 만드실 때 한가지 모양으로 고루 세가지 참을 주셨으니, 이에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세상에 서게 되었도다.' 무슨 소리냐? 인간 이해가 뭐냐. 많은 짐승과 같이 사는 우리는 누구냐. 하늘을 대신하여 서게 되었다고 하는 자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날 지구에는 천신을 대신하여 하는 자각을 가진 이가 없어요. 그런데도 지구에 발을 붙이고 있어요. 어디서부터 환경보전운동을 할 수 있느냐. 내가 아까 '기' 할 때 말씀드린 대로 몸 자체가 자연인데, 주제넘게 우리가 자연을 보았다 하는 건 웃기는 거야. 우리는 자연의 신비한 메카니즘의 한 파트일 뿐이거든요. 사실 거창한 용어들은 많이 써서 그렇지, 지구 표면 위에 있는 비행기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는 버러지들과 같아요. 우리가 자연의 일부인 거죠 . 그래서 고구려의고주몽은 우리가 삼라만상 중에서 '하늘을 대신하여 땅에 서게 되었도다' 라고  말하는 거예요.그런가 하면 중국에는 가장 오래된 '산해(山海)경'이라고 하는 책이 있어요. 일종의 지리지인데 2000년 내지 3000년 정도된 아주 오래된 책이죠.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옛날 임금들은, 그때도 옛날 임금이 있었던 모양이야. 봉선을 행했다. 봉선이 뭐냐. 봉건제도라는 '봉'자를 일컬어 이렇게 말했어요. 어느 지역의 가장 높은 태산 꼭대기에다 제단을 쌓고 천신의 공에 보답하기 위해 제사 지낸 것을 봉이라 하였죠. 또 선은 무엇이냐. '선'(이 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선(禪)'자인데, 불교보다 오래 전에 나온거야) 자는 뭐라고 나오냐면 제일 큰 산 바로 밑에 있는 낮은산, 거기를 깨끗이 씻고 땅의 고마움에 대해서 땅에게 제사하는 것을 선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 임금들은 봉선을 행했다. 다시 말해서 생태학적으로 기능해주신 heaven and earth, 하늘과 땅에 대해서 'Thank you, 고맙다' 했다고 하는 것이예요.

우리는, 기독교의 표현으로 하면 천부(hearven's father)와 지모(earth's mother)의 관계를 갖고 있을 때 인간은 아까 내가 넓게 앉으라고 했을 때처럼 그 때는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웠어요. 간격을 갖고 있어야 자연스러워지죠. 지하철이나 아까 말한 것처럼 밀도가 빽빽하면 부자연이 탄생이 되요. 한복처럼 헐렁하게, 아무튼 사람은 헐렁하게 있어야 해요. 맹수도 다 자기 영역이 있어요.우리가 헐렁해지면, 고주몽이 통찰한 것처럼 '내가 만상중에서 하늘을 대신해서 있구나' 하는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것은 특권일 수도 있고, 책임감일 수도 있죠. 그리고 산해경에 일컫듯이 옛 임금들은 제일 높은 산에서 하늘에 보답하는 '봉'과 조금 낮은 산에서 땅에다 하는 '선'을 행어요. 과연 우리는 이런 천부와 지모에 대해서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어요.

다음으로 환경친화적 것이나 자연을 보호하겠다고 애쓰는 여러분들은 조직에 있거나 개인 시민이거나 간에 꼭 가져야 하는 것이 있어요. 뭐냐면 vision(비전)이 있어야 해요. 지금부터 3600년전에 우리 조상은 이렇게 시를 읋었어요. '산에 핀 꽃이여, 산에 핀 꽃이여, 지난 해 만 그루 심고 올해 또 만 그루를 심어. 불암산에(백두산에) 봄이 오니, 꽃들은 울긋불긋 천신을 섬기며 태평을 즐기네.'3600년 전 16대 단군이 한 거라고 단군책에 기록되어 있어요. 지금부터 자그만치 3600년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식목일처럼 산에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예요. 그러니까 하늘을 대신해서 땅을 가꾸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지난 해 만 그루, 올해 또 만 그루 그리고 임금과 백성이 일체가 되어서 '산에 핀 꽃이여' 하고 꽃을 노래한다는 것은 이미 경제는 해결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불암산에 봄이 오니 꽃들은 울긋불긋 천신을 섬기며 태평을 즐기네' 그래서 꽃을 즐기는 여유도 갖고 있었고 나무를 심는 생태적인 노력도 하고, 그리고 천신을 섬기며 즐겁게 태평을 누렸다고 하는 것이예요.여기 나온 이런 vision을 품어야 해요. 하나도 망가지지 않는 곳을 - 고압선도 없고, 도로도 없고 터널 깐 것도 없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 골프장 지은 것도 없는 곳을 우리 조상들이 봇짐을 메고서 김삿갓처럼 가듯이 갈 수 있는 그런 vision을 품으셔야 해요.vision까지 잃으면 맨날 불평하는 버러지가 돼요. vision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우리나라든지 외국이든지 아직 손상되지 않은 곳이 있으면 기회가 닿는대로 자주 가 봐서 그것을 즐겨야 돼요. 태평을 즐기셔야 돼요. 어떤 사람들은 죽어서 천당을 갈는지 모르지만 천당을 가서도 예수에게 전도지를 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뭐 봉사할 것 없어요. 이러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워크홀릭(일 중독). 일을 아예 안하는 이들에 비하면 좋은 것일런지 모르지만 지구는 대개 과해서 문제가 생겨요. 조금 지나쳐서 120%를 하는 거죠.그래서 이런 얘기가 있어요. 몇 년 전에도 했는지 모르지만은(지난 98년 본 단체에서 개최한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영성강좌'에서 '자연적 삶과 영성수련'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한 바 있음. 당시 강의내용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음)

중세기 유명한 랍비가 있었는데 어느날 젊은이가 와서는 선생님 토라를 가르쳐 주십시오. 경전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랬어요. 그랬더니 'Get Out, 꺼져' 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부엌에서 설거지 하던 부인이 '아, 여보. 성경을 가르쳐 달라는데 기특하지. 뭐를 잘못 했어요?' 했죠. 그랬더니 그 랍비가 '흥, 지 뱃속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살 것인지 다 아는데 거기다 성경공부는 붙여 가지고 시간을 딴 데로 돌리려는 수작이야' 이렇게 설명을 했대요. 그 다음날 왠 젊은이가 와 가지고 또 문을 두들기면서 '선생님 제가 사회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랬더니 'Get Out, 꺼져' 그랬어요. 부인이 있다가 '어, 여보. 어제 온 애는 성경을 배워가지고 토크쇼를 할는 지 모르지만 오늘 온 애는 착한 것 같은데 뭐가 잘못 됐소' 그랬더니 그 랍비가 '동기는 착하지만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면서 남을 도울려고 하면 해로울 수가 있지.' 이렇게 말했어요. 큰 괄호에 대한 것이 없는데 소괄호만 고쳐주면 뭐하느냐는 것이지요. 큰 것 없이 그냥 작은 것에만 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의도는 좋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여러분, 의도만 좋으면 다 좋은 걸까요? 히틀러나 스탈린의 어머니, 박정희나 전두환의 어머니가 누구였겠는가 생각해봐요. 다 자식을 애지중지 하면서 끔찍하게 사랑하지 않았겠어요. 마찬가지예요.

지금 지구는 요 모양 요 꼴인 것은, 동기는 좋은데 그 동기가 우리 아들이 이쁘다고 사탕만 먹이면 이빨이 왕창 나가듯이 동기 때문에 된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라고 했어요. 누구든지 차거운 머리와 더운 가슴을 가지란 이야기죠. 그래서 잘못하면 일 중독이 될 수 있고, 성경공부처럼 거창한 토의나 회의 같은 것을 즐길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세 번째 젊은이가 와서 똑똑 두들기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선생님, 저를 도와 주세요.' '뭘 도와달라는 것이냐' 고 그랬더니. "제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나이는 얼마 안먹었지만, 인생경험은 얼마 안되지만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속이 공허한 까닭은 뭐죠? 선을 행하고 와서도 저녁이 되면 속이 허한 까닭은 무엇이죠. 또 내가 이웃에게 선을 행했다면 십중팔구 배신을 당하니 그 까닭은 뭡니까?"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옳거니, 너같은 놈을 내가 기다렸다." 하고 얘기했대요. 그건 뭐냐. 크리스챤 하고 바리스챤이 있는데, 바리스챤은 나팔만 부는 것을 말하는 거죠. 예수께서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어요. 숨기는 것은 왜 숨기느냐. 유교적 경향이냐, 아닙니다. 이웃의 눈치볼 것 없이 '우주에 나 혼자 있구나' 하는 자세를 가지면 거만할 것도 없고 아주 자연스러워지고 비굴해지지도 않아요. 자연스러워서 힘이 고여요. 힘이 고이게 되면 은밀한 중에 아버지께서 갚으신다고 그랬어요.

크리스챤은 은밀한 것을 제일 먼저 할 줄 알아야 해요. 예수가 제일 싫어하는 종자는 나팔만 부는 바리스챤이예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하늘의 상을 받으려면 숨어서 해요, 숨어서. 겸양으로. 그 때 power가 고여요. power가 고이는 것이 뭐냐.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역사의 도랑을 만들 수 있어요. 대한민국에 그렇게 뛰는 사람이 많은데, 벌써 30년째 군사독재와 싸워온 이들이 많은데 왜 맨날 원점에 있는거죠? 그건 숨어서, 진짜 하늘이 있다고 알고 하는 이들이 없기 때문예요. 모세는 나이가 120, 180,190 됐는데도 매일 아침 텐트에 들어가서 '오늘 내릴 분부 없습니까?'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은 어떻습니까? 대개 70만 되면 나를 따르라고 말하잖아요. 어느 누구도 모세처럼 '오늘 주실 말씀 없습니까?' 하고 말하지 않아요. 그런 인간이 없기 때문에 역사가 뱅뱅 도는 것이구요. 저는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산에 핀 꽃이여 산에 핀 꽃이여' 하면서 천신을 섬기며 태평을 즐기십시오. 무슨 소리냐? "천당에 가서도 뭐 봉사할 것 없어요?" 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고 vision을 갖고 틈틈이 깊은 산이나 냇물에서 즐기셔야 된다는 말씀입니다.즐기실 줄 모르는 사람이 "아이구 이렇게 어려운데 즐길 새가 어디 있어요?" 해요. 그런 사람은 자기 몸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하는 거예요. 아까처럼 노곤하고 평온할 때라야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지 환히 볼 수 있고 줄 게 있지, 내가 밤에 잠을 못자고 설치고 해봐야 혀 끝으로 꼬집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뱃 속이 다 알고 있습니다. '아! 단군때 부터도 천신을 섬기며 enjoy 했구나.' enjoy는 그렌저 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꽃을 노래하면서 하는 것이예요.

환경하시는 분들은 환경친화적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 소리를 듣고 나무들이 그래요 '내 옆에 5분도 안 있었어, 참 불쌍하다.' 그 좋은 기운을 알 수가 없지요. 바위, 산, 나무, 계곡 이것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군처럼 즐기며 vision을 가져야 해요.다음으로 앞에서 말한 단군책에 자그만치 4200년 전 단군 왕검에 대한 이런 말이 있어요.'단군 왕검은 단목의 그늘에서 곰, 호랑이와 더불어 노닐며 소와 양이 살찌는 것을 보았다.' 산에 핀 꽃을 즐긴 예수는 들의 백합화를 보는 여유가 있었을 뿐 아니라, 아담이나 다니엘이나 아씨시 프란시스처럼 맹수와 벗을 하고 가축을 치기도 했어요. 그런 모습을 4000년 전 우리 단군의 모습에서도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작은 그림 몇 점을 소개해 드리려 해요. 긴 소린 많이 들었을테니까.

우리 조상들은 그 옛날에도 산에 나무를 심었어요. 또 임금과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비하고 또 즐기기도 하였죠. 우리가 만물 가운데 하늘을 대신해서 섰던 아담과 같은 관리자가 고주몽이었어요. 또 산해경에 보면 곰과 호랑이가 제일 많이 등장하는데, 서로 몰고 다녔다고 해요. 뭘 말하는 거냐면 동물과 식물 틈에서 더불어 사는 철학을 말하는 것이예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하는 것은 둘째이고 우리 조상이 그랬다는 것이죠. 상상일지라도 한 번 그런 그림을 그려야 앞으로 지구가 좋은 날이 올 겁니다.

끝으로 같은 태백일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살생에도 법이 있나니 예로부터 부여에서는 말이 있어도 타지 아니하고 죽이는 것을 금하여 방생했다. 특히 잠자는 짐승, 알을 품은 짐승, 새끼, 유익한 것, 네 가지는 죽이지 않았다.' 우리가 목구멍이 있어 먹어야 하지만 알 품은 것을 어떻게 먹을 것이며, 잠자는 것을 어떻게 먹냐 하는 겁니다. 또 새끼와 인간에게 유익한 것을 어떻게 죽이냐 하는 겁니다. 이처럼 고조선과 부여에서는 임금으로부터 백성까지 살생에도 법도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걸 보면 머리가 숙여져요. 제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곰의 웅담에다가 빨대를 대고 빠는 후손, 빤히 바라보며 사슴 피를 빠는 후손, 낙지를 산 채로 끓이는 후손, 꼬리치며 정을 주던 개를 죽여 먹는 후손을 환경친화적인 우리 선조들이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여러분 통찰을 얻으셔야 됩니다. 대한민국에 왜 이렇게 살기가 넘치느냐? 군사 정권 때부터 시작됐어요. 그 때부터 백성들이 살기를 싫어한 게 아니라 전염이 되었죠. 다 살기가 등등해져서 아주 침략적인 백성이 되었고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짐승금(禽)에 짐승수(獸)자, 즉 금수강산(禽獸江山)으로 변해 버렸어요. 4000만이 넉넉히 짐승이 되더라구요. 우리 선조들의 문서와 비교해 볼 적에 전혀 다른 변종, 돌연변이가 된 거예요. 여러분, 자연이라고 할 때 여러분 몸뚱이고, 동물이고 식물이고, 그 다음에 광물인 줄 아세요. 그렇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은 아주 한 상 차려놓고 거나하게 먹어 치워요. 그 가운데 살기가 퍼지게 먹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용의 눈물' 하고 '왕과비'를 보더라도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전부가 한 상 차려 먹는데 그런 사람들이 뭐 하냐면 사람 잡는 것밖에 하는 게 없습니다.

그 두 대하드라마가 전부가 먹는 것하고 사람 죽이는 모습밖에 안했습니다. 물론 거기서 한 상 차리는게 빠지면 어울리지가 않죠. 왜 그런 줄 아세요. 전, 미국에서 오래 살다와서 처음에 철판구이를 접하곤 철판도 구워 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상당한 용가리들이다 했죠. 아무튼 품목이 다양하대요. 한 번은 내가 무식해서 갈매기살이 진짜 갈매기 고기냐고 했더니 아니라더군요. 재미있는 통계가 있어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음식이 제일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래요. 대한민국 전체가 밥상이고 밥상에다 기를 놓고 사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할 지도 모르죠.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삼겹살이다, 뭐다 이렇게 해부학적인 용어들은 다른 나라에선 보기 어려운 것이예요. 우리 조상들 보기가 부끄러워요. 또 아무거나 먹어서 논두렁에 뱀도 없고 개구리도 없어요. 불란서에서는 포도주 한 잔이면 밤새도록 얘기하며 보낸다거나 음악을 듣는데 우리는 '혀의 문화'가 발달해 무엇이든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죠. 모든 걸 혀로 확인하려고 하는 유아적인 상태에 있다고 할까요. 가끔 저를 대접한다고 돈 꽤나 있는 제자들이 날 데려가면 죽겠어요. 배는 고파 죽겠는데 (음식점에는) 안 도착하는 거예요. 아무데서나 먹으면 됐지, 꼭 뭐 잘한다고 소문난 곳을 찾아가요. 그리고 애써 찾은 곳에서 먹으면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남 씹는 거죠. 억시게 먹는 것과 억시게 남 씹는 것. 그게 드라마에 나온 이야기잖아요. 그러니 살기가 계속될 수밖에요. 여러분의 직감에 호소합니다. 클린턴이나 카터 같은 사람도 자기가 토스트 해 먹는 건 간단하게 돼요. 우리는 푸지게 먹어야 되죠. 게다가 소화제까지 먹어가면서 끄윽 끄윽하며 먹어요. 그리곤 목에 힘주고 아래 내려다 보며 반말하고. 우리 조상들은 안그랬어요. 그럼, 꽃을 얘기하고 환경친화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제가 이상한 처방을 내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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