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靈性,spirituality).

          우리의 깊은 영성((靈性)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평형기(平衡器)다
                           -안느 윌슨 쉐이프-

우리는 바쁠 때 영성 생활에 대한 생각을 거의 못 한다. 그런 것은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어 조용한 장소에 가서
명상을 하거나 숲에서 산책을 할 때에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일상의 '진짜' 생활에서 떨어져야 영성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미안하지만, 영성생활이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하거나 말거나 하는 그런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가?-그것이 곧 영성이다. 우리의 행위를 가능케 하는 바탕이 영성이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를 가능케 하는 바탕이면서 그 모든 행위를 가능케 하는 기본 과정(process)이다. 너무 바빠서 영성생활을 못한다고 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우리로 하여금 바쁠 수 있게 하는, 그것이 바로 영성(spirituality)인 것이다

영성(靈性)은 참여(participation)이다. 자신의 삶에 참여 할 때 우리는 영적인 존재가 된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영성으로부터 도망 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닌다.

                영적 균형

                           인간은 식물과 동물의 동등한 파트너다. 그들을 착취 할 수 있는 주인이 아니다.
                                     -하이다 그와이-

오랜 세월 우리는 인간이 진화(進化)의 꼭지점에 서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살았다. 이 착각이 크게 균형을 잃은 행성(行星)과, 모든 존재의 독립과 균형에 대한 인식의 결핍을 초래했다. 나무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데 우리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는데 그들이 필요한가? 그렇다 우리는 그들이 있어야 살 수 있다. 바위가 바위로 존재하는데 우리를 필요로 하는 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하는 일을 계속하는데 바위가 필요한가? 그렇다 필요하다.  이 지구에 따스한 균형이 자리 잡도록 하려면 먼저 우리가 지상(地上)의 가장 중요한(important)존재로서의 힘과 책임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잘못 인식하므로 써 균형을 잃게 했다. 기울어진 세계를 다시 균형 있게 하려면 우리의 시각(視角)을 돌려 크고 옹근 전체를 볼 필요가 있다.

                파괴의 성향

                             네가 무엇을 파괴 할 때 위대한 영(The Great Spirit)은 네 가슴에 그늘을 드리운다
                                                                   -조 프라이데이-

우리는 파괴하려고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을 파괴 할 때마다 우리는 균형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자신의 균형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균형까지 무너뜨린다. 누가 무슨 짓을 하고, 우리는 그 때문에 화가 난다. 화가 나는 건 좋다. 그가 무슨 짓을 했든, 그것이 무엇을 파괴하는 짓이라 해도, 우리도 똑같은 짓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자격을 얻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우리를 폭발시키는 무슨 일이 생겨도 상관 않고 그냥 우리의 일을 하면서 내버려 둘 수가 있다. 꼭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한 대로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을 큰소리로 꾸짖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뚝뚝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한다. 그럴 경우 무너진 균형을 회복하는 일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는 남을 책(責)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을 하되 우리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사람들-우리 자신을 포함하여-을 치유해 주어야 한다.
기록(記錄)을 바르게 남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기(自己)알기

         선(禪)의 정수(精髓)는 자기존재의 본성(本性)을 꿰뚫어 보는 기술(art)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속에서 자유로 가는 길을 가르킨다.-D.J. 수주키-

무한한 신성(神性)의 불꽃이 우리 모두 속에 들어 있으며,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 불꽃 속으로 잠겨 들 수 있음을 믿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네 현대인은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는 균형 있는 삶의 길이 우리 바깥 어디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대답을 밖에서 찾도록 아주 잘 훈련되어 있어서 영낙없이 그러고들 있다. 안으로 들어가 내적 우주를 탐색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생각하고 반응하고 느끼면서 우리의 생각과 반응과 느낌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상황에 대하여 반응 할 때 잠깐 멈추고 그 반응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반응과 반응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존중 할(to honor)필요가 있다.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what can we learn from it ?).

우리의 반응이 옳았는지 글렀는지 시비(是非)를 따지는 일은 요점(要點, point))을 놓친 짓이다.그것들은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 그것들은 우리의 배움을 위한 학교다.우리는 내적 우주에서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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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레교회이야기 487호(01/3/18)에서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