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노래
프란치스코가 기도했다고 하는
아씨시의 서바조산 계곡 동굴에 있는 수도원에는 프란치스코가 새들에게
설교하는 모습이 담긴 벽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와 제자
둘이 한 지방을 지나가다가 새들에게 "새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날개를 주고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고 설교하였습니다. 그후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제비가 모여들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하늘이 까맣게 수천 수만 마리의
새가 짹짹거렸습니다. 그래서 제비들을 향해 "오, 자매 제비들이여
조용히 하시오. 지금은 사랑의 형제들에게 설교하는 시간입니다"
라고 하니까 제비들이 조용히 했습니다. 거짓말 같은 소리지요, 그렇지만
사랑의 법칙이지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의 제자 한 사람이 시편에 관계된 책 한 권을 자기가 가지게
해달라고 청원을 올렸는데, 프란치스코는 "우리는 완전한 무소유인데
네가 책을 가져가면 그 책을 꽂을 서가가 필요할 것이고, 서가가 있으면
그 다음 책상이 필요할 것이고, 그 다음 방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무소유 가난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니 그 책을 가져가겠다는 생각을
버려라"라고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와 같은 시대에 스페인에
도미니크라는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도미니크는 프란치스코와 달랐습니다.
그는 학문을 장려하였지만 프란치스코는 그를 배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이 들어가면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을 잃어버리고 교만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제자들이 학문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였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프란치스코
정신이 끝까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말년에 교단에는 소위 인텔리 계층,
즉 지식층들이 제자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지식층들이 보기에 하는 일이
어린애 같고 맹랑하여 프란치스코가 하는 일을 비판하고 프란치스코정신을
거역하여 프란치스코 교단에 위기가 왔습니다. 그 지식층들 가운데에
형식상으로 프란치스코의 후계자가 된 엘리야는 겉으로는 그를 존경하지만
실제적인 삶은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위반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말년에 베르나 산에서 40일 동안을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산은 해발 1300m나 되는 높은 산입니다. 그 산 꼭대기에는 집채만한
현무암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의 기도의 제목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주여, 제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두 가지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첫째는 주님이 저를 위해 겪으신 그 지극한 고난을 제 영혼으로도 체험하고
제 육신으로도 체험하게 해주시옵소서. 둘째는 주님의 가슴에 저를 향해
불타던 그 사랑을 저도 주님을 향하여 가지게 해주십시오. 이 두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제자들도 오지 못하게 하고 40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성자의 기도이지요. 기도가 끝날 무렵 프란치스코에게 성흔, 오상이
나타났습니다. 기도가 응답된 것이죠. 프란치스코는 어디를 가든지
음식초청을 받으면 맛있는 음식을 그냥 먹지 않았습니다. 꼭 재를 가지고
가서 뿌려서 먹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위궤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질을 앓고 있었으며 원시적인 치료로 눈을 두 번이나 대수술을 받고난
후에 소경이 되었습니다. 위궤양, 소경, 불면증에 시달리고 두발, 두손,
옆구리 다섯 군데 상처에서는 피가 철철 나오는 등 아주 비참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잘 믿으면 복받고 잘 산다고 생각하는데 제일
잘 믿는 프란치스코는 그 모양이 되었습니다. 자기 집도 아내도 없는
프란치스코를 클라라가 자기가 수도하는 수도원에 모셔다가 요양을 시켰습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믿음의 딸이요, 수도의 동반자인 클라라의 마음의
간호를 받고 있던 그는 갑자기 영감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 때 그의
유명한 '태양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주 전능하신 착하신 하나님이여. 오! 나의 주님 만물들이
당신께 찬송을 드리나이다. 보시옵소서! 우리 형제의 저 우람한
태양의 찬송을. 온누리 대낮을 주관하는 태양! 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를 통해서 우리를 비추고 계신 것. 오! 태양은 너무도
눈부셔 얼마나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지요. 지극히 높으신
주여! 태양이야말로 바로 당신의 모습이니이다."
이 태양의 노래를 지어
놓고는 너무도 기뻐서 그 제자들에게 매일 그 노래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33장에도 그 노래가 있습니다. '온천하 만물 우러러 내 주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몸은 병이 들고 눈은 먹고, 교단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제자 엘리야를 후계자로 세웠습니다. 그는 자기의
죽음이 가까이 온 줄 알았을 때 태양의 노래 마지막에 한 줄을 첨가했습니다.
그 내용은 "오! 나의 하나님 우리 자매인 육체의 죽음을 위해서
당신은 찬송을 받으시나이다." 45살 중년의 나이지만 자기가 곧
죽을 것을 알고 임종이 가까이 왔을 때 그는 말하기를 "오래지
않아서 나는 먼지와 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제자들에게 "먼지와 재가 될 것이니 내 몸에 먼지와 재를 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제자들과 시편 142편을 노래하도록
하고 '여호와여! 주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분신이니이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님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였습니다. 죽을
때는 옷을 완전히 벗고 알몸이 되어 내 자매 내 누님인 땅에다가 직접
살을 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대로. 그의 시신은 아씨시에 있는 지오지리오 성당 지하실에 안장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활동한 기간은 불과 22년밖에 안되지만 프란치스코의
감화는 800년간 전세계 구석구석 안미친 데가 없습니다. 모든 성인은
잠자코 가만히 서 있어도 세계가 감화를 받습니다. 한국 종교계에서
기다려지는 것은 신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하나의 성인, 하나의
성녀입니다.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성인 몇 사람, 특별히 프란치스코라는
성인이 일어나서 우러러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이탈리아는
'프란치스코'를 말합니다. 성인 하나가 일어나면 그 나라가 벌어먹고
살 정도입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의 무덤교회의 지하실에는 프란치스코의
무덤이 있고 전 3층으로 되어 있는데 그 곳이 꽉 찼습니다. 저도 그
곳을 찾아가 지하실에 있는 무덤에 가서 철책을 붙들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여 성인이 주님을 따라 걸어간 길을 나도 꼭 따르게 해주시옵소서."
제가 몇 해 전에 프란치스코의 전기뿐 아니라 한국의 프란치스코라고
불리는 이현필 선생의 전기도 썼습니다. 막상막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장 예수님처럼 살다 갔습니다. 이현필 선생은 평신도로서 화학산에서
4년, 지리산에서 3년 엎드려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데 한번
엎드리면 일어나지 않아서 지리산에 사는 까마귀들이 죽은 송장인줄
알고 부리로 꾹꾹 찔렀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그는
지리산에서 소리쳐 통곡하면서 십자가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 지시고, 예수는 귀중하신 보배 피를 흘리사, 구원받을
참 길을 열어 놓으셨느니라.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오, 아! 십자가,
아! 십자가,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라" 이 노래를 부르고
겨울에 맨발로 걸어 내려오면 산밑에 있는 제자들이 달려와서 선생님을
끌어 안고는, '우리 선생님하고 예수님밖에 없다'면서 수 백명이 따라
다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 한국 개신교 100년 인물사에 그런 인물이
이 한 분밖에 없습니다. 평생 거지 옷을 입고 하는 그분의 설교는 다른
목사들의 설교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땅 파는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다', '시래기국 먹는 것이 우리 기도다.' '맨발로 다니는 것이 성신
충만이다'라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달은 태양의 거울이지요. 달은 빛이
없습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서 지구에다 비쳐 주지요. 성인은 예수의
거울이 지요. 프란치스코든, 이현필이든 베네딕트이든 예수님을
본받은 예수님의 거울입니다. 우리도 성인들을 사랑하고 본받아서 그
분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첫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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