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마/당/14 - 현대 생태신학자들(7)


                       유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창조안에 계신 하느님, 그리고 생명의영

                        이 정 배

부설 (사)한국교회환경연구소장, 감신대 교수

독일 튀빙겐 대학의 조직신학자 몰트만 만큼 한국에 널리 알려진 신학자도 드물 것이며 그의 책만큼 한국어로 많이 번역된 사상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한국 신학계 내에 그로부터 배움을 받은 학자들의 수도 1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내세우는 에큐메니칼 신학자이기에 우리는 그로부터 많은 신학적 통찰을 얻고 그와 더불어 신학적 비젼을 같이하고 있다. 지금까지 출간된 그의 저서를 보면 '삼위일체와 하느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 '창조안에 계신 하느님' 그리고 '생명의 영' 등이 있다. 전반기의 몰트만 사상이 정치적 주제와 깊게 연루되어 있었다면 그의 후반기 신학적 실존은 창조 및 생명문제에 뿌리내리고 있다 하겠다. 무엇보다 먼저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을 통하여 몰트만은 전통적인 창조론과 진화론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것을 말하고 있다. 하느님이 전 창조 속에 내주하고 있다는 믿음은 몰트만으로 하여금 진화론을 창조의 빛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즉 진화란 하느님의 영이 전 창조의 힘과 생명이 됨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영으로서의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 속에 생명을 주는 원인으로서 세계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당신께서 입김을 불어넣으시면 다시 소생하고 땅의 모습이 새로워집니다"(시편 104편 30절). 이처럼 하느님이 자신의 힘을 통하여 그의 힘 속에서 창조하며 그의 영의 임재가 창조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규정한다는 고백을 토대로, 몰트만은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을 '생명의 영'이란 이름 하에 더욱 구체화시켜 주고 있다.

하느님의 영이 전 우주 공간 내에서 창조의 힘과 생명의 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몰트만은 '내재적 초월'이란 개념을 즐겨 쓰게 된다. 내재적 초월이란 초월적 근원인 동시에 모두 살아있는 것들이 삶의 힘으로서 내재하는 하느님의 영, 루아흐가 모든 만물 속에서 언제든지 경험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 경험이 종래와 같이 인격적 역사적 지평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몰트만 신학에서 생태학적 의미와 중요성을 발견하게 되는 부문도 이 대목에 이르러서이다. 몰트만은 21세기를 위한 신학의 과제로서 유럽중심주의와의 결별, 교파주의로부터 에큐메니칼 의식으로의 이행 그리고 기계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유기체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말했던 바, 마지막에 언급한 유기체적 세계관이란 바로 전 우주 만물 속에서 하느님 영을 체험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과 맥이 닿아 있다. 더 이상 우주 만물이 지배와 정복의 대상, 소유가치근거인 물질이 아니라 하느님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트만은 창조의 힘과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하느님 영의 활동을 그리스도의 활동과 전적으로 대치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몰트만은 생명력 있는 하느님의 영, 구약의 루아흐 그리고 삶의 경험 속에 내재된 하느님의 영 모두는 기독론의 빛에서 상대적 자존성을 가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성서의 사건 속에 하느님 영의 현재성이 힘, 호흡 등 비인격적 생명력으로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은 하느님의 본질 속성이 아니라 그가 인간 역사 내에 나타난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말이다. 하느님 본질은 오히려 비인격적 생명력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및 인간의 역사적 삶에 대한 하느님의 연민 속에 더 잘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역사적 활동성을 그의 우주 생명력과 구별하려 했던 몰트만에게서 우리는 십자가 중심의 서방신학적 잔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스도 십자가 없이는 우주적 생명력 그 자체는 범(犯)허무주의에 빠진다고 단정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하느님과 세계는 결코 동일시 될 수 없으며 무로부터의 창조는 하느님의 내재성을 말한다 하더라도 결코 포기될 수 없는 기독교만의 특성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몰트만이 내재적 본질 개념을 통해 전통적 의미의 영성 대신에 영육을 통전하는 생명력 자체의 종교적 의미를 부각시킨 점을 높게 평가한다. 생명력으로서의 종교성이야말로 오늘날 생태학적 신학을 말할 수 있는 근본 모티브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