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마당/ 생태학적 신학자들12 마크
월러스(Mark I. Wallace) 이정배 / 부설연구소 소장, 감신대 교수 마크 월러스는 미국 예일대학 신학부 졸업생을 주축으로 한 소위 신예일학파 소속의 소장학자로서 생태학적 성령론에 관한 중요한 책 'Fragments of the Spirit(1996)'을 써서 신학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현대 철학에 대한 소양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또한 철학적 언어를 성서적 수사학의 도움으로 관계짓는 능력 역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는 위의 책 내용을 중심하여 "생태학적 성령론과 생명신학"이란 논문을 학계에 발표한 바 있다(「신학사상」지령 100호). 필자가 월러스의 생태학적 사유를 핵심적인 주요 내용으로 삼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성령을 하느님의 녹색 얼굴로 이해하여 교회 공동체의 생태학적 구원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 주었고, 둘째는 성령을 탈형이상학적 진리론의 맥락에서 그의 수행적 특성 - 바람이 부는 것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 을 부각시켰고, 셋째로는 성령이 모든 류의 중심주의를 거부하고 차이와 구별을 강조하는, 일명 차이의 축제를 가져 왔으며, 마지막으로 생명 수여자로서 성령이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행해지는 폭력과 맞서는 역동성을 본질로 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몰트만과 같은 신학자로부터 성령이 생명의 영으로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으나 여전히 성령은 그리스도 중심주의의 틀 속에서 신학의 주변부로 여겨져 왔었다. 다시 말해 기독론은 언제든 성령론의 확대에 대해 경계를 지고 한계를 긋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월러스는 영의 정체성을 성서 안에서 적극 통찰함으로서 성령의 신학적 의미, 곧 하느님의 녹색얼굴로서의 성령을 강하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성령의 독자성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월러스가 말하는 하느님의 영인 성령은 타자(남자/여자, 백인/유색인, 인간/자연 등)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문화적 경계를 파괴하며, 인간 외적인 것을 수단으로 대상화시켰던 인간 중심주의를 폐기시키고 있다. 그래서 성령은 피조물에 대한 청지기로서 인간을 이해하기보다는 먼저 자연과 우주의 친구가 될 것을, 그래서 자연 내의 거주자, 순례자로서 인간을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만이 자연을 지키는 청지기가 아니라 한 마리 토끼의 똥은 자연을 위해 유익하다는 발상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가이아 이론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졌다. 이렇듯 인간과 자연간의 가치서열 체계를 수평적 평등관계로 만드는 녹색윤리의 근거가 바로 성령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월러스의 생태학적 성령론은 자연을 하느님 몸의 메타포로 이해한 멕페이그와도 구별된다. 그에 의하면 멕페이그의 범재신론적 모델이 비록 비계층적인 생명중심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원론적 잔재를 남겨놓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주는 하느님이 자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방식 하에서 하느님에게 의존된다고 보기에 하느님의 몸인 세계가 상처받더라도 하느님 자신은 여전히 환경적 고통으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월러스는 생명 중심적 하느님 모델, 즉 하느님의 녹색얼굴로서의 생태학적 성령론이야말로 하느님과 세계의 운명을 하나로 결합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자연의 죽음과 신의 죽음 모두가 하나밖에 없는 지구의 만성적 환경오염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임을 숙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월러스의 생태학적 성령론의 특징은 한마디로 인간을 다른 피조물로부터 구별시키는 차이를 제거하는데 있다. 하느님의 녹색얼굴이 전 자연 내에 영의 파편처럼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성서적 수사학의 도움으로 철저하게 전개시키는 월러스의 작업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이러한 파격적인 생태학적 신학을 전개시킴에 있어서 성서 언어, 성서 본문에 대한 인용이 대단히 많은 것이 위 책의 특징이다. 특히 욥기 38장 이하 부분에 대한 생태학적 해석은 가관이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