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마/당/19 - 현대 생태신학자들(11)

스위스의 환경 목사

쿠르트 마르티(Kurt Marti)

이 정 배 감신대 교수
 부설 (사)한국교회환경연구소장,

쿠르트 마르티는 스위스 베른 태생의 환경운동가이자 환경을 전문 주제로 다루는 신학자이다. 바젤대학 칼 바르트 교수 밑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스위스 내에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자들 간의 대화, 반핵 및 환경문제를 다루는 평화주의운동을 이끌고 있는 진보적 성향을 지닌 목사이기도 하다. 주로 설교를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목회자로서의 그의 삶에 스위스 교회는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의 생태학 관련 주저들도 절제된 언어로 표현된 신학적 설교문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창조신앙: 하느님의 생태학(Sch pfungsglaube

:Die kologie Gottes, Stuttgart, 1983)'과 '오 하느님(O Gott),1986'등이 그것이다. 환경, 자연 그리고 평화의 주제를 적절한 성서 본문과 연결시켜 한편의 신학적 설교를 만들어내는 목사로서의 그의 역할에 우리 모두는 감동할 수밖에 없다. 환경설교문이 대단히 부족한 현실에서 마르티 목사의 글들은 한국교회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나 마르크스주의 체제 모두가 자연파괴에 대해 똑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적 개인주의나 마르크스적 국가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자연과 인간에게 우호적인 경제방식을 성서적 시각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교회 역시 너무도 가부장적 구조를 가졌으며 그 속에서 기독교의 하느님이 지나치게 남성적 으로 축소되어지고 있음을 개탄한다. 가부장적 기독교가 희랍적 계몽주의와 버금가게 자연 착취와 자연파괴에 앞장서 왔음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신학자들이 얼마 전까지 자연을 신학적 주제로서 깊이 사색하지 못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이다. 목회자로서 그는 우선 자연을 신학의 영역으로만이 아니라 예배와 기도 속으로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연의 고난이 바로 인간의 고난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신약성서 희랍어의 '한계(Grenze)'라는 단어가 '의미'를 지시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따라서 무한계적 성장에로의 망상은 무의미성, 내지는 혼동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로부터 그는 자연과 인간의 화해와 생태학적 균형에 근거하여 사회구조 및 생활방식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실천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시104에서 고백되는 생태학적 경영자로서의 하느님 이미지는 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신학적 단서가 된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저마다 배고파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려 깊은 경영자로서 모든 피조물들의 요구를 들어주시되 생태계의 존속 자체가 망가지도록 내버려두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다스리는 생명공간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생명 및 가족 공동체로 결속되어져 있다고 그는 믿는다.

따라서 그는 인간을 더 이상 지배자나,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창조의 원초적 관계성 속에서 살아야 할 일꾼으로서 바라보고 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흙으로부터 양식을 얻는 피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이 유일하게 창조에 있어서 그것과 반목적일 수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사려깊은 생태학적 경영자로서의 하느님은 이런 인간을 죄인이라 부르고 있다고 그는 이해한다. 인간 노동이 창조를 존속시킴으로써 하느님의 사려깊은 경영을 돕게 될 때, 인간은 이로써 하느님의 형상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그의 탁견이다. 하느님의 전권을 생명을 자라게 하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능력으로 보는 한에서 우리는 그를 생명해방신학자로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스스로가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인간 및 모든 피조물들과 더불어 생명공간(Biotop)을 형성하신다는 것, 이것 자체가 인간에게 유일한 기회이며 희망이라고 역설하는 그에게서 우리는 목회자로서의 정열과 신학자로서의 혜안을 느낄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