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생◆각

이 땅의 모든 생명과 함께 하는 그린크리스마스를!

  유미호 / 본회 기획실장

2003년도 한 해가 저무는데 가슴에는 공허한 바람만 인다. 지구촌은 광기와 살기가 가득하고, 공포가 내려앉아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정신은 오히려 오그라들고, 인류는 물신 앞에 굴복한듯, 크고 화려한 것, 빠르고 강한 것에 홀린 사람들의 숨은 갈수록 얕아지고 거칠어만 간다. 남보다 앞서고, 남보다 많이 갖고, 남보다 강해지려고 바둥거리며 살아간다.

그래도 이맘때면 다들 주고받는 감사와 선물은 잊지 않는다. 그러나 감사와 선물조차 마음을 따뜻하게 하기보다는 과소비와 낭비 그리고 환경에 해악을 주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시내 곳곳의 가로수와 조경수에 온갖 색깔의 장식용 전구가 휘감겨 밤거리에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나, 그것은 엄청난 전력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잠시 사람들의 눈길을 끌뿐 식물들이 받아야 할 고통과 생리적인 변화는 전혀 고려치 않는다. 나무를 감싸고 있는 전구와 전선이 발생하는 열은 식물 주변의 온도를 상승시켜 식물이 겨울을 나고 봄을 대비하는데 필요한 적응력을 약화시킨다. 추워야할 밤에 전구를 켜므로 식물이 인식하고 있는 낮과 밤 온도 변화의 주기가 흐트러져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정상적인 온도 이상의 온도가 지속될 경우에는 식물 자체의 방어작용에 의해 껍질 등 특정 부위의 세포가 죽거나 종양이 생성될 수도 있다. 겨울철 추위에서 일정 기간 지내야 이듬해의 개화와 결실, 생장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

이 계절, 아기 예수님은 어둡고 초라한 마굿간,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생명의 님으로 오셨다. 하루 하루 먹고 일하고 자고 싸는 순박한 짐승 가운데, 낮고 천한 자리에 살아있는 생명과 세상의 밥으로 오셨다. 그러기에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과 축복은 사람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생명이 함께 누려야 함이 마땅하다.

주고 받는 선물은 늘 생명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선물을 고를 땐 가급적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선물을 찾자. 선물받는 사람이 생명에게 더욱 호의적이 될 수 있도록 풀꽃과 나무, 혹은 씨앗을 주어 돌보게 하는 것은 어떨까. 살아있는 화분에 담긴 식물은 공기를 청정하게 해주고, 우리의 생활공간을 아름답게 하며, 지구온난화 현상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고받는 선물 이상으로 일년 사계절이 다 아름다운 선물이 되게 하기에 충분하다.

모임에선 일회용품은 줄이고 상차림에 도자기 접시나, 유리컵을 사용하자. 보다 적은 종이 소비와 보다 적은 쓰레기를 내놓도록 힘쓰자. 음식 준비는, 유기농산물을 사서 유해 살충성분에 노출되는 것을 줄여야 한다. 그것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지속가능한 농법을 장려하는 길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장식 역시 사람뿐 아니라 식물들도 예수 탄생의 기쁨과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해보자. 자연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장식을 찾아 마을의 작은 산이나 공원을 거닐며, 가지라든가, 잎사귀, 열매들 그리고 꽃들로 장식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부득이 나무를 장식할 때는 사이즈를 최소화하고 장식 전구의 수도 최소화하여 에너지를 절약하자.

아니 장식으로 나무를 감출 게 아니라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을 맞고자 몸 속 수액을 비우는 나무의 기도를 몸과 마음을 모아 함께 드려보자. 마굿간처럼 어둡고 캄캄한 우리네 몸과 마음에도 아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안의 생명의 빛을 회복시키시고 빛나게 해주실 것이다(기독교세계 12월호에 게재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