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느끼는 하나님의 세계

한규영/ 본회 집행위원, 영락교회 사회봉사부 목사

이제는 가을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가을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가르침은 삶에 여유의 중요성과 자연에 변화의 신비입니다. 한 해를 정신없이 살고 여름에는 노느라 쉬지 못하고 지내기 마련인 우리는 가을에 비로소 자연의 모습에 눈을 돌리고, 자연의 변화 앞에 겸허해지기도 합니다. 가을이 우리에게 좋은 것은 진지하게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이 변화(變化)를 거부하며 두려워 하다가  변질(變質)되고 마는 어리석음에 깨우침을 줍니다. 실로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 순응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을 물 - 秋水

가을 물은 여름에 비하여 양도 많이 줄고 또한 그리 활기차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장자(莊子)가 말한 바와 같이 가을 물은 그 색이 깊고 그 자태 또한 신중하고 깊음으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가을 물을 바라보노라면 순하게 그리고 꾸준히 흘러가는 순리의 뜻을 알 것도 같습니다. 우리도 또한 약하다 하여 멈추지 않고 도리어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천천히 여유있게 흘러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가을 물은 또한 아름답게 단풍으로 치장한 산들을 여유있게 비추어 줍니다. 마치 그 아름다움을 보다 널리 보여주기 위하여 가을 물은 겸손함으로 느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가을 산이 아름답게 치장을 하였다면 가을 물은 또한 그 아름다움을 시기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멋을 아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비추어 주는 모습에서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은 자로서 서로 그 빛을 비추어 주고 있는가 자문합니다.

가을 볕, 하늘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른데 그 빛의 기운은 점차로 약해져 갑니다. 강렬하고 화려한 여름의 타는 햇빛은 힘을 잃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볕이 약하여 질수록 나는 그 따사로움에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강렬한 태양이 힘을 느끼게 한다면 가을의 따사로움은 약함 속에 드러나는 친밀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이 약해짐으로 친밀함을 느낄 수는 없는가 생각하여 봅니다. 또한 약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함으로 서로 다가옴을 나눌 수 없는가도 묻게 됩니다.

돌봄의 영성은 '스스로 약해짐'에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도 약해짐을 통하여 우리 곁에 오셨고, 약해짐을 통하여 높이 들리셔서 영광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일방적으로 강함을 갈망하고 화려함을 사모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실망하고 싫증을 쉽게 느끼게 되는 지도 모릅니다. 가을 햇살과 같이 약하여 져서 따사로운 모습으로 서로에게 소중한 그런 모습을 가져보기를 소망합니다.

가을에 느끼는 고독

무엇보다도 가을에는 홀로 있음의 아름다움을 잠시라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혼자 있음을 힘들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성이지만 이는 현대사회에 와서 더욱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사회가 커지고 소위 '네트워크'가 발전된 사회일수록 고독과 소외의 현상 또한 병리적으로 번져나가는 오류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일찍이 뉴잉글랜드 지방 월든(Walden) 호수에 들어가 혼자 살면서 자연을 즐기던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외롭지 않습니까?"이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월든 호수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하나님 역시 홀로 존재한다. 그러나 악마는 결코 혼자 있는 법이 없다. 그는 많은 패거리들과 어울려 대군을 이루고 있다" 그렇습니다. 고독은 단순히 홀로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넓고 진지한 교감을 향하여 문을 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홀로 계심의 자존하심은 모든 만물이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생의 근원이 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을에 느끼는 고독은 그간에 우리가 얼마나 질(質)이 낮은 사귐과 피상적인 만남 속에서 지치고 닳아 있는가를 깨우쳐 줍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고독함은, 자연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서 아름답게 변화해가듯이 우리도 또한 더불어 변화해감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 고독은 변화함에 동참함으로 용기를 가지는 영적인 힘이기도 한 것입니다. 가을에 느끼는 외로움은 우주 가운데 충만하신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동참하는 기회가 됩니다. 가을이 외롭지 않듯이 사람은 혼자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