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며 생 각 하 며

낮을 낮처럼 밤을 밤처럼 살자
채희동/ 본회 집행위원, 벧엘교회 목사

낮과 밤을 잃어버린 시대

도시에 살다 보면 밤낮이 구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칠흑같이 어두워야 할 밤에도 환한 가로등과 시장의 불빛, 그리고 술집의 네온사인들이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제가 사는 시골에도 가로등들이 구석구석 세워져 밤을 없애 버렸습니다. 낮은 낮다워야 하고, 밤은 밤다워야 하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밤과 낮의 구분은 무의미해진지 오랩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밤을 낮처럼 살고 낮을 밤처럼 삽니다.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 노는 사람, 밤새워 컴퓨터방에서 게임에 빠져있는 사람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에 하나는 낮과 밤입니다. 태초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쉼을 얻으며 살아왔습니다. 사람뿐 만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들도 낮과 밤의 질서에 따라 생활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놓은 족속들은 바로 사람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문명이 인류를 뒤덮은 후로 사람들은 전기를 만들고 그것으로 등불을 밝혀 깜깜한 밤을 대낮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환한 밤에 사람들은 노동을 해야 했고 밤에도 일해야 했습니다. 이 때부터 밤낮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창조는 무의미해져 버렸습니다. 밤낮의 구분이 없어진 이후 사람들은 노동의 노예가 되었고, 그래서 사람 자신을 소외시키는 비극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계는 밤에도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밤에 돌아가는 기계 곁에서 사람도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 하고, 결국 기계의 도구, 노동의 노예가 되었던 것입니다.

창조질서대로 사신 유명모 선생님

어쩌면 사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길은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낮을 낮처럼 살고 밤을 밤처럼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순우리말로 풀어 그 깊이를 더해 주었던 유영모 선생님은 새벽 2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도하고 말씀보고 일하는 하루의 삶을 살다가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하루를 살되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하루를 24절기로 나누어 보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은 새벽 3시이고, 춘분은 아침 6시이며, 여름의 길목인 입하는 오전 9시, 여름 한가운데인 하지는 정오가 됩니다. 그리고 입추는 오후 3시, 가을햇살이 가장 따사로운 추분은 오후 6시가 되며, 겨울의 길목인 입동은 저녁 9시, 동지는 자정이 되며 새벽 1시인 소한을 지나 새벽 2시에 대한으로 마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루의 삶 속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24절기가 있어, 하루를 살아도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유영모 선생님은 하루의 처음인 입춘에 일어나 겨울 한가운데인 밤 9시 동지에 잠자리에 들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루에 한끼를 먹었음은 물론이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법도 없이 먼 거리도 늘 걸어다녔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낮을 낮처럼, 밤을 밤처럼 사는 사람

하루를 살되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하느님으로부터 피조된 우리들이 살아야할 삶이라 여겨집니다. 현대인의 마음이 강팍하고 일그러진 것은 하루의 삶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의 때에는 아침을 살고, 점심의 때에는 점심을 살며, 저녁의 때에는 저녁을 살아야 합니다. 낮에는 낮처럼 살고 밤에는 밤처럼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하느님의 생명창조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때는 물론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 보는 때이기도 하지만, 태초 때부터 있던 아침 점심 저녁의 때를 살아갈 때가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때는 인간이 정한 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기계를 만들고 문명을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하신 아침, 점심, 저녁의 때를 거스르고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살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욕망을 채우려고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려 살기를 원한다면, 하루를 살아도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때를 따라 살아가는 것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피조된 존재라면 태초 때부터 있었던 하느님의 창조질서, 곧 낮을 낮처럼, 밤을 밤처럼 살아가는 것부터 순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