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순절에 생각하는 핵문제
김영락 / 목사, 본회 사무총장

추운 겨울이 벌써 끝나고, 봄이 되었다. 봄의 관문에 사순절이 있는 것은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서는 고난의 시절을 지내야 하기 때문인가 보다. 지난 5일, 재의 수요일로 시작된 올해의 사순절은 어느 해보다도 마음이 더 가라 앉는다. 봄에 오는 새를 맞이할 맑은 하늘을, 반갑지 않은 황사에게 빼앗기고, 더욱이 미국의 전쟁 먹구름이 이라크에 이어 한반도까지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문제와 남한의 핵폐기장 문제로 올 한해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려면 어느 때보다도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만이 아니라 미국도 핵무기를 보유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으로 평화를 지키려는 나라는 세계의 경찰국가가 될 수 없다. 미국은 전쟁으로 석유를 확보하고, 군수업체와 제약업체를 살리려는 욕심을 버리며, 이웃 국가들은 비극적인 전쟁으로 얻을 이익에 눈이 어두워 전쟁을 지원하거나 묵인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온 천하까지 얻으려는 욕심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절감한다.

핵문제도 그 근원은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한다. 간단히 배경을 살펴본다. 지난 2월 초에 정부는 동해지역의 두 곳, 서해 지역의 두 곳을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로 선정했다. 핵폐기장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에 오염된 단순한 쓰레기 - 이런 것을 저준위 핵폐기물로 분류함 - 와 사용후 핵연료 - 폐연료봉이라고도 하며, 이는 고준위 핵폐기물로 분류함 - 와 같이 매우 위험하고 살인적인 방사능이 나오는 물질을 보관하는 장소다. 정부는 중저준위 폐기물은 영구 처분을 하며, 고준위 폐기물은 임시로 저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우리 단체를 포함한 환경단체들은 핵폐기장을 짓기 전에 핵폐기물이 양산되는 원자력발전소의 증설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의 핵폐기물 처리시설이 2008년이면 포화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번에 핵폐기장을 꼭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에 핵폐기물을 저장해왔듯이, 필요하면 그곳을 확장해서 사용하면 된다.

정부가 부득이 핵폐기장을 지으려는 것은 원자력발전을 더 늘리려는 계획과 더불어 사용후 핵연료를 재사용하기 위한 연구를 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운반과정에 많은 비용이 들고 위험한 고준위 폐기물을 "임시"로 저장하기 위해 한 곳에 모으려고 하는가? 원자력발전소를 증설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사용후 핵연료를 재사용하는 문제는 더욱 중대한 문제이다. 현재 북한에서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했다고 해서 문제가 심각해졌는데, 그 이유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폐연료봉을 재처리해서 핵폭탄의 원료를 추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문제와 남한의 핵폐기장문제는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원래가 핵폭탄과 원자력발전은 이란성 쌍둥이다. 고농도의 핵물질을 순간적으로 핵반응을 시키면 핵폭탄이 되는 것이고, 저농도의 핵물질을 천천히 핵반응시켜서 전기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그리고 원자력발전을 하고 나면, 핵연료에 들어있는 우라늄(U238)이 핵반응 후에 불행(?)하게도 플루토늄(Pu239)이라는 핵물질로 변하게 된다. 다른 물질들과 섞여 있는 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을 재처리라고 부른다.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것은 핵폭탄의 원료를 뽑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원자력발전은 이와 같이 핵무기 원료를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방사능 폐기물을 양산하기 때문에 점차로 줄여나가야 한다. 방사능물질은 인체에는 암을 일으키고,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위험한 물질이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하지만, 인간의 감각으로는 방사능을 감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그리고 그 방사능을 인위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그 물질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자력 발전은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면 현재 전력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원자력 발전은 포기해야만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포기할 수 있는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사순절의 삶을 일상화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올해 사순절에는 특별한 결단을 해야겠다. 에너지와 물자 - 모든 물자가 에너지이므로 - 소비를 줄여 원자력발전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자. 얼마나 줄이면 될까? 2001년도 우리 나라에서 소비한 전체 에너지 중 전력의 비율이 14.5%이고 그중 40%가 원자력 발전이므로, 전체 에너지 중에 약 6%가 원자력 발전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화시켜 생각하면 우리 소비생활 중에 약 6%를 줄이면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된다.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생활비의 6%를 줄이는 것이다. 모르기는 해도 모든 식구들이 핸드폰만 사용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이렇게 핵문제는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지만, 우리의 생활을 조금만 단순화시키면 핵문제를 넘어 세계의 평화를 앞당길 수 있다. 올해 사순절은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 가까이 가보자. 제일 먼저 내가 평화를 얻고, 가정이 평화를 얻으며, 나라와 세계가 평화로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