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속의 식물 (15)

보리
최영전

보리는 성경에 30회 이상이나 등장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으로 내린 7가지 식물 중의 하나로서, 밀 다음가는 주요 식량자원이다. 하지만 계 6:6에서 알 수 있듯이, 밀에는 못 미치는 값싼,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이었다. 계 18:13에 보면, 각종 고귀한 것은 총망라되어 있는데, 그 속에 보리는 포함되지 않은 것을 보더라도 값진 축에는 못들어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리는 가난의 상징이요, 또 값어치 없는 것의 상징으로도 쓰였음을, 민 5:15에서 보게 된다. 즉 타인과의 부정을 저질렀든지 그런 의심을 받은 여인에 대한, 의심의 소제로서 보릿가루 1/10 에바을 예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황도 두지 말라고 했다.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라고,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데에 쓰인 비열한 사람을 표현한 하찮은 것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베드윈족은 적에 대한 철저한 경멸을 표시하는 데에 '보리떡의 영혼'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 이야기의 의미를 삿 7:13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교만한(저희들이 강하다고 믿어서)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해변의 모래처럼 수없이 몰려와서 이스라엘을 치려고 골짜기에 진을 쳤는데, 기드온은 하나님이 이르신 대로 밤에 미디안의 진중에 가서, 한 사람이 동료에게 꿈이야기를 하는 것을 엿듣게 된다. 그 꿈은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중에 굴러와서 장막을 쳐서 무너뜨렸다는 말과, 그 꿈을 해몽하기를 이스라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 바로 그 보리떡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드온은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용기를 내어 큰 승리를 이끈다. 여기서 보리떡은 가난하고 겸손한 기드온을 업신여기는 비유로 쓰인 것이다.

그러나 그 하찮게 여겼던 보리떡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기적을 행하는 능력으로 나타났음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보게 된다.

요 6:9의 오병이어의 기적사건이다. 어린 아이가 도시락으로 지참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예수님께서는 축사하시고 자기를 따르는 오천명이라는 많은 사람에게 먹이시고 남은 조각이 12바구니에 찼더라(13절)는 사건은 분명 하찮은 보리가 축복받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또 왕하 4:42~44에, 엘리사가 어떤 사람이 가져온 처음 익은 식물, 즉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로 100명이 먹고 남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환에게 명하여 사람들에게 베풀었더니 100명이 다 먹고도 남았더라는 기적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면 보리떡은 기적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리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룻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오미의 가정이 흉년이 들자 베들레헴에서 기근을 피하여 모압지방으로 이주했다가, 그곳에서 온 식구를 잃고 나오미만 남아서 이방 여인 며느리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그 때가 보리추수 때라 효부 며느리 룻은 보리 이삭을 주워서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아름다운 효행을 보게 된다.

보리는 세계 5대 식용작물의 하나이다. 밀, 벼, 옥수수 다음 가는 세계 제 4위의 곡물로서 다른 어떤 곡물보다 더위와 건조에 잘 적응하여 견딘다. 맥(麥)류 중에서도 가장 생육기간이 짧기 때문에, 고위도 지방의 여름이 짧은 곳에서도 재배가 가능하여, 세계의 온대 및 아열대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다.

생육기간이 짧은 것을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출 9:31~32 출애굽 10재앙 중에, 모세가 지팡이를 하늘로 향해 들매 하늘에서 뇌성과 우박이 쏟아져서 온 애급의 밭에 있는 채소와 나무들을 쳤다. 그 때 보리이삭이 나왔고 아마는 꽃이 피어 손상을 입었으나, 밀은 자라지 않아서 상함을 면했다는 대목에서 보듯이, 일찍 자라서 밀보다 1개월이나 일찍 수확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리는 유월절 제사에 바쳐지고, 밀의 첫수확은 오순절 제사에 바쳐졌던 것이다.

보리는 세계에 약 25종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주식용 곡물이지만 중동지역에서는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의 주된 식량이다. 가난한 자는 오이와 보리빵이 1회의 식사로 되어 있다. 동양권인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에서도 식량의 일부로 중요하게 여기며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빈곤한 계절인 춘궁기를 보릿고개라 했다. 겨울양식은 떨어지고 보리 수확기는 아직 멀어서, 그 기간의 견디기 어려운 궁핍한 계절을 표현한 것이 보릿고개다. 따라서 보리는 가난과 상통하는 동시에 춘궁기를 면하게 해주는 구원이기도 했다.

이렇던 보리가 현재는 돈 많은 사람이 걸리기 쉽다는 성인병(당뇨, 고혈합)이나 각기병 등의 예방치료를 위해 이용되는, 부자가 즐겨 찾는 건강식품이 되고 있어서 이 시대의 아리러니를 엿보게 한다.

구미에서 보리는 주로 사료로 쓰이고, 일부는 주정용(酒精用)으로 대량 활용되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보리가 알콜음료가 된다는 기록이나 암시는 없다. 그러나 애급에서는 BC 2000년에 보리를 맥주재료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고대 벽화에서 알 수 있다. 또 BC 2800년에 바빌로니아에서도 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두줄 보리를 맥주나 위스키의 양조용으로 사용한 역사는 오래된 것이다.

보리는 화본과에 속한 1m 남짓 자라는 일년초~월년초이다. 껍질이 잘 벗겨지는 쌀보리와,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 껍질보리가 있다. 파종기에 따라서 가을에 뿌리는 가을보리와 봄에 뿌리는 봄보리가 있다. 그런데 심는 시기는 달라도 추수기는 같아서 수확기에는 어김없이 강풍이 불어와서 이삭이 떨어지기 쉽다. 이것을 두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삭줍기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속담도 있다.

보리의 성분은 단백질 8.4%, 당질 7.4%, 지방 1.8%, 수분 11.8%, 섬유 1.6%, 인산 0.95%, 칼슘 0.034%, 비타민 등이 함유되어 있다. 당질은 전분이 주성분이며, 단백질은 밀과 성분이 달라서 발효빵을 만들지 못한다. 다만, 보릿가루에 밀가루를 5~10% 섞어서 국수, 과자, 빵을 만든다. 보리를 물에 불려서 싹을 틔우는데, 발아과정에서 지아스타제라는 효소가 형성되어, 이 효소가 맥아의 전분을 발효 중에 당으로 바꿔놓는다. 이것이 엿기름으로서 감주, 소주, 된장, 고추장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보리는 볶아서 보리차로도 널리 쓰인다. 보릿짚은 가공용(모자, 자리, 포장지) 제지원료, 퇴비, 연료 등의 용도가 많다.

이솝 우화에, 닭이 특히 보리를 좋아하는데, 산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암탉이 말하기를, 보석 40개보다 보리 1알이 더 절실히 갖고 싶다고 했다. 귀한 다이아몬드도, 보석이 필요없는 닭의 세계에서는 한낱 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성서속의 식물', 아카데미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