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

생명을 위한 '비움의 기도'
김영락 / 본회 사무총장, 목사

1995년 이전에 우리 사무실은 종로 5가에 있었다. 환경운동을 하려면 힘들더라도 흙에 가까이 가야 할 것 같아서 서울 근교에 텃밭이 있는 곳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100평 남짓한 밭과 재래식 변소가 있는 단독주택을 빌려 4년간 채소를 기르며 지냈었다. 교통이 불편하고, 회원들이 오기도 힘들었지만 봄이면 밤꽃 내음에 취하고, 가을이면 지붕에 밤알이 떨어지는 소리에 즐거웠었다. 그리고 흙에서 얻어진 채소를 먹고, 재래식 변소에 용변을 보면서 인간은 지금도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의 환경운동을 되돌아보면, 초기에는 환경보전을 위한 생활수칙을 중요시 해서 1994년에 '생명길 좁은문 운동지침'을 만들어 운동했었다. 물론 생명길은 좁은문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이므로 가치관의 전환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역시 생활실천을 앞세운 것이었다. 그러다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는 생태적 감수성에 눈을 뜨게 되어 '생태적 영성'을 주제로 한 강좌를 1998년부터 실시했고, 2000년부터는 농장을 빌려 주말에 회원들과 함께 농사를 체험하고 있다. 그리고, 산과 들, 바다로 나가 자연을 배우면서 자연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은혜를 나누고 있다.  

그러던 중에 작년에 우리는 '생명밥상운동'을 통해서 몸과 흙과 자연이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였다. 흙이 깨끗해야 먹을거리가 깨끗하고, 그래야 몸도 건강하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야 자연을 아끼게 된다는 사실에서 몸과 자연은 뗄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환경보전의 출발은 영성의 회복에 있다는 결론을 다시 얻게 되었다. 사실 환경의 위기는 무절제한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것이고, 인간의 탐욕에 기인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단순하고 불편하게 살면 자연과 친밀해지고, 생태적 감수성이 예민해져서 맑은 영성을 회복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선악과로 인해 세상에 들어온 죽음은 십자가에 의해서 회복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회복하는 것만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십자가는 자기 희생이고,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갈2:20) 해야 이 땅에 생명을 회복시킬 수 있고, 자신도 영생을 얻게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한 출발은 '비움의 기도'에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도는 '채움의 기도'였다. 하나님에게 무엇인가 자신의 욕구를 채워달라는 기도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기를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이 기도와 같이 '비움의 기도'가 궁극적인 기도가 되어야 한다. 환경회복, 혹은 창조보전이라는 절대절명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내 마음을 비우는 '비움의 기도'이다.

한국교회에서 '비움의 기도'는 기도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부요함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가난을 흠모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높아지고자 기도했다면 이제는 낮아지고자 기도하는 것이다. 이 기도는 먼저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 시냇물이 가파른 계곡을 흐를 때 요동을 치며 흐르지만, 넓은 강에 이르면 유유히 흐르고, 더 낮고 더 넓은 바다에 이르면 끝없는 평화를 누리게 된다. 그렇듯이 낮은 곳에 이르면 자신에게 평화가 오고, 이웃에게 평화를 끼친다.

이제는 생명을 위해 '비움의 기도'를 하자고 제안한다. 짧으면 5분, 길면 20분씩 아침 저녁으로 조용히 모든 생각을 흘려버리면서(떠오르는 생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므로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무시하는 것) 주님만을 부르며, 가급적 입술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고요하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잠자듯이, 아니 죽은 듯이 고요히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주님께 맡기고 애기가 엄마 품에서 평안히 잠자듯이 쉬는 것이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주시고(롬8:26) 우리는 그 '비움의 기도'를 통해서 얻은 '비운 마음'을 하루의 삶으로 연장시킴으로,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는(약1:15) 악순환을 막을 수 있게 된다.

하루 중에는 이러한 기도를 출발점으로 해서 주님 안에서 살게 되고, 일주일 중에는 주일에 일손을 놓고 하나님 앞에 나감으로 일주일을 주님 안에 살게 된다. 생각을 멈추고, 일손을 멈추는 것은 피곤을 회복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내가 쉬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의 영성이 회복되고, 회복된 영성은 몸을 회복시키고, 자연을 회복시키게 된다. 새해를 출발하는 이 시점에서 '비움의 기도'로 시작하자는 제안을 한다. 부디 2003년이 우리 단체의 모든 회원들이 창조보전을 위한 위대한 새출발을 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