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밥상  
본문: 마. 6:11 ,창. 1:29

                            안상임 목사 (여성교회)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금년도 사업중의 하나로 '생명밥상차리기'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지 않기 위한 크리스천 운동입니다. 한국에서 년 15조원이나 되는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를 교회를 통해서 조사하여 통계보고서를 내고 그리스도인들이 음식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생명밥상운동을 벌여 나가자는 것입니다. 전국민이 참여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지만 우선 창조의 보전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적인 실천을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70년대 말에 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에서 교육 총무로 일할 때 생명문화운동을 시작하면서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자동차를 대기 오염의 주범이라 하여 자가용을 갖지 않기로 하였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신학을 하면서 여성과 자연이 가부장문화의 횡포에 시달려온 것을 인식하며 자연을 살리는 창조의 보전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청지기의 신앙이며 여성신학을 사는 길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으로 생명밥상을 비추어 보니 성경에서 이르신 말씀과 여러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첫째, 일용할 양식을 간구하는 예수의 기도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하루의 양식을 간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루의 양식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왜 단지 하루의 양식을 구하라 하셨을까요? 하루의 양식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무척 단순해지고 겸손해지는 느낌입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배고 누웠으니 장부의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라고 읊은 어느 선사의 시구가 생각납니다. 그런 말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비난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의 단순하고 여유 있는 삶이 그리워지는 요즈음 세상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만 충족하도록 가르치시며 겸손한 마음을 일깨워주심이 아닐까요?

  둘째, 하루의 양식만 허락하는 '하늘의 만나' 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에짚트를 떠나 광야를 헤맬 때,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루치의 양식만을 거두라는 명령을 받고도 사람들은 더 거두어다 쌓아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 다 썩어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바로 거두어서 싱싱한 것을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오늘의 지식과도 상통합니다.  호랑이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만이 음식을 쌓아두느라고 기계를 만들고, 화학 약품을 개발하고, 전기를 쓰고, 야단법석인 것이다. 내가 필요한 만큼만 거두고 나면 나머지는 자연으로 돌아가서 다음의 생명을 살리는데 쓰입니다. 저의 조그만 옥상 밭에서 저는 이 원리를 배웁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느 것 하나도, 쓸데없이 존재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풀 한 포기라도 다 할 일이 있고 필요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새삼스러이 아주 오래 전에 배운 질량불변의 법칙이 생각납니다. 이 법칙은 참으로 오묘하여 물질이 변하여도 그 질량이 변하지 않으니 어떠한 형태로든 우주 안에 존재하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식물은 우리가 먹을 만큼만 취하고 나머지는 그냥 놔두면 다른 사람이나 동물들이 먹으면 됩니다. 또 그냥 놔두어서 썩으면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쓰레기가 되지 않습니다. 과일 껍질이나 채소를 다듬은 찌끄러기는 그대로 땅에 묻으면 다 썩어서, 미생물들이 다 먹어서 분해하기 때문에 다 생명을 위해 쓰여집니다. 좋은 비료가 되는 것이지요. 만든 음식을 남겨서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비료를 만들었더니 소금 끼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식물의 비료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든 음식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밥은 하늘입니다.
한 때 전 세계를 휩쓸었던 김지하의 말이 생각납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밥을 하늘이라 생각하면 밥 알 하나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귀중해서 버리지 못하고 나누어 먹으려면 버릴 일이 없을 터이니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밥알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다시 집어먹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일본식 교육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일본식이라 해도 좋은 점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훈련이 절실히 요구되는 지금입니다.  "밥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다"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어왔다면 어떻게 밥알을 흘려버리겠습니까? 그런데 요즈음에는 밥이 흔해져서 그런지 남은 밥을 그냥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밥이 하늘이 아니고 쓰레기로 보이게 되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넷째, 하나님은 풀과 열매를 먹이로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29절에 보면, 창조를 마치신 하나님께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낟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 나무를 준다. 너희는 이것을 양식으로 삼아라.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도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 창조 질서에 속합니다. 창조질서는 하나님이 창조한 모습대로 있는 상태입니다. 3장 이후는 타락 이후의 인간의 모습이고 그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니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예수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고, 그 창조를 보살피는 청지기 역할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이요, 그 부름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를 회복하는 일을 실천하고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가 회복되는, 창조 질서를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하는, 창조의 보전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과일과 곡물과 채소를 먹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창조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노아의 방주 이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하셨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타락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전의 창조 질서를 회복해야 하는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 부름 받은 것입니다.

 다섯째, 창조회복을 보는 이사야의 꿈입니다.

이사야서 11장에 보면 바로 창조질서의 회복을 보는 이사야 선지의 말이 나옵니다.
"늑대가 새끼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수염소와 함께 뒹굴고,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이사야 선지는 동물들이 풀을 뜯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창조 회복의 꿈을 보았을 것입니다. 동물이 동물을 먹이로 하지 않는, 사자가 여물을 먹는 세상을 보았습니다. 강자와 약자가 함께 어울려 풀을 뜯는 평화를 꿈꾸는 이사야 선지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창조 회복의 세상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경쟁질서가 아니고 강자와 약자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사는 평화로운 나라입니다. 약자는 강자의 먹이가 되는 살육의 지옥이 아니라 약자와 강자가 어울려 사는 하늘의 질서입니다.

이러한 신학적인 해석을 하면서 우리 집에서 모이는 모임에서 생명밥상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선 음식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불교에서 행하는 발우공양에 가까운 식사를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육식을 하지 않으면 생선 정도는 놓아도 되는 것일까? '우리 농산물을 쓰고,' '제철에 나오는 음식을 먹고,' '마당이나 화분에서 내가 기른 채소를 먹는' 등등 '생명밥상차리기'에서 해보려는 실천 사항들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잡곡밥,  취나물, 북어자반, 더덕구이, 옥상에서 뜯은 미나리가 좀 많기에 초고추장에 무쳤습니다. 상추에 곁들이는 쌈감도 옥상 밭에서 뜯었습니다. 신선초, 취, 머우, 씀바귀 잎, 배추장다리, 고수 등입니다.  호박과 두부를 새우젓에 지졌습니다.  북어와 새우젓은 식물은 아니지만 우선 처음이니 그 정도로 바꾸어 가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후식으로 최리바를 구었습니다.

    식사를 시작하면서 각자 큰 접시를 쓰는데 상추 잎을 깔아서 접시에 음식이 묻지 않게 하고, 나중에 상추 잎으로 싹 닦아서 먹으면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인도네시아 친구가 자기네는 식사 후의 설거지 걱정이 없다고 한데서 나온 생각입니다. 그들은 바나나 잎을 따서 접시처럼 음식을 담아 먹으며, 다 먹고 나면 그냥 숲에다 버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바나나 잎은 없지만 요즈음에 상추는 사시사철 있으니 쌈도 먹을 겸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음식은 부폐처럼 덜어 먹기로 하여 일일이 그릇에 담는 번거로움을 피했습니다. 다 먹고 나니 모두 깨끗하게 접시를 비웠습니다. 버린 음식도 없고 설거지도 간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우리는 하루의 양식을 구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회복시켜 나가는 일에 동참하십시다.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을 우리 만 실천할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의 소명으로 받아서 이웃들에게 퍼뜨리는 일도 해야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내주시마고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께서 저희가 하는 일을 함께 해주시며 저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에로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