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만찬 식탁의 생태학적 의미

첫째, 성만찬 식탁 위에 올려진 모든 음식은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성만찬 식탁 위에서는 적게 있으면 적게 나뉘고, 많이 있으면 많은 대로 공평하게 나뉘어진다. 모두가 저마다 필요한 것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생명문화 현상의 근본조건이 된다. 엠마오 도상에서 있었던 성만찬 사건, 그리고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낙망한 베드로 형제들과 더불어 나누신 식탁공동체의 사건 속에서 우리는 나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 도덕적인 의무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하나님을 알고 전체를 지각하는 신앙 행위이자 예배 행위가 됨을 볼 수 있다.

둘째, 성만찬의 식탁은 단순하고 소박한 음식으로 준비되어진다.

성만찬의 식탁은 음식물과,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와의 염려스런 교제를 가능케 한다는 사실이다. 식생활에서 먹고 남는 부분들은 단순하게 개인적인 차원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굶주리고 있는 이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세계 상황 속에서, 마찬가지로 자연의 파괴가 논의되는 마당에서 공동체적인 죄악일 수 있음이 기억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셋째, 성만찬의 식탁이란 늘 대화와 교제를 동반하였다.

여기에서 식사란 더욱 축제로서의 상징력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종말론적으로 정의된 성만찬 식탁은 곧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자기 실현, 소외된 노동의 가치 회복 등을 중요한 문제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관계의 회복이란 종말론적 식사 행위의 중요한 차원이며 생명 문화의 기본 특질이기도 하다.

넷째로, 공동체적 식사 행위는 우리 인간만이 결코 이 땅의 주인이나 소유자로 온 것이 아니라 손님인 것을 알게 해준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에 의해 초대된 손님들인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식탁에 초대된 존재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현상에 동참하는, 작고 약한 피조물들을 염려하는 하나님의 협동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말론적 식사로서의 성만찬은 감사를 동반하는 식탁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감사란 창조의 해방을 선포하며 다가오고 있는 주님의 현존에 대한 환호를, 새 하늘과 새 땅에 비전을 표현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아무리 현재는 세계 상황이 인간의 생존 물음이 암담스러운 지경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을 상실해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종말론적 식탁 공동체는 우리에게 희망과 소망을 가르쳐 준다.

이상으로 우리는 생명 문화를 위한 성만찬 행위의 예배적 상징력을 묘사 해 보았다. 성만찬 행위란 오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의 선포이다. 오늘 우리가 자기만을 위하여 남의 생존을 침해하는 것은, 인간만을 위하여 전피조물의 생존을 허무한 데 굴복토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와 살에 다시금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성만찬 행위란 바로 이 점에서 사실적 세계 종말의 위기 앞에 선 인간에게 새로운 생명 문화 윤리를 부여하는 인간의 예배 활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만찬 행위는 우리들에게 부단히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의 화해와 겸비의 그리스도 상을 각인시켜 줄 것이다. 그것만이 오늘의 세계 대재난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구원 매개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정배 (감신대 교수,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기독교적 생명문화의 창출을 위한 예배와 성만찬 행위의 상징적 의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