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천적은? 자동차!


이 땅에 살아온 고라니와 너구리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예로부터 호랑이 표범과 같은 맹수와 인간이었다. 맹수가 자취를 감춘 지금은 인간만이 예나 마찬가지로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한가지 달라진 것은 위협의 수단이다. 고기와 가죽을 위해 인간이 들었던 창과 총의 역할을 산과 들을 시원하게 가로지른 도로와 자동차가 대체한 것이다.

●소리없이 죽어가는 동물들

한국도로공사가 집계한 이른바 ‘로드킬(야생동물 도로 치사)’ 자료를 보면 2001년 이후 3년반 동안 전국 고속도로에서는 고라니 1266마리, 너구리 1041마리가 차에 치여 죽었다. 도로공사는 여기에 노루 226마리·족제비 154마리·토끼 111마리·오소리 101마리·사슴 39마리·삵 10마리를 더해, 같은 기간 고속도로에서 죽은 야생동물 수는 2948마리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총연장 2778㎞에 이르는 전국 고속도로에서 죽어가는 야생동물의 일부일 뿐이다.

전국 고속도로에서 지난 3년반 동안
고라니 1266마리가 차에 치어
숨진 야생동물 3000마리 육박

최태영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88고속도로의 남원~함양 42㎞ 구간에서만 지난 7월 한달 동안 100마리가 넘는 야생동물이 죽어 갔다. 희생된 동물에는 고라니, 너구리 같은 중·대형 동물은 물론 하늘다람쥐, 무산쇠족제비와 같은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 양서·파충류, 조류 등도 있었다. 이런 소동물을 포함하고, 고속도로 총연장의 11.4배가 넘고 산간지역 구간이 많은 국도·지방도 등을 감안하면 도로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야생동물은 도로공사 집계의 수십수백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최 연구원이 지난 1년간 지리산국립공원 외곽의 19호선 국도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남원~구례 30㎞ 구간에서 죽은 삵만 14마리다. 도로공사의 전국 고속도로 3년반 집계치 보다 많은 것이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도로까지 올라 오지 못해 인간에게 존재를 알리지도 못한 채 소리없이 죽어가는 동물도 많다. 도로에 의해 서식지가 두동강나거나, 서식지와 산란·동면지가 분리돼 버린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 등 양서·파충류들이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이들에게 도로 옆 배수로는 바로 ‘무덤’이다.

‘U’자형 배수로 빠지면 살아나올 확률 1%

한국양서파충류연구소가 지난해 서울대 수의과대와 함께 한 실험결과를 보면 ‘U’자 형 일반 배수로에 이들이 빠져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1%가 못된다. 심재한 양서파충류연구소장은 “이들은 배수로에서 한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탈출로를 발견할 가능성도 있지만, 대개 당황해 왔다갔다하다 탈진해 죽는다”고 말했다. 햇볕이라도 뜨거운 날이면 이들의 생명은 더욱 단축된다.

●이동통로 제대로 만들어야

야생동물을 위해 인간들은 도로 위나 밑에 이동통로를 만들어주고 있다. 이동통로는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무단횡단’하는 동물은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 설치된 이동통로는 지난해말 현재 48곳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 위치선정과 ‘이용자’ 고려를 소홀히 한 설계·시공 잘못으로 유명무실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환경부의 지난 7월 백두대간의 이동통로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현장조사 결과 12곳 중 5곳이 야생동물의 접근이 힘든 급경사에 설치돼 있었으며, 3곳은 유도담장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심지어 통로에 주변식생과 어울리지 않아 동물들의 경계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외래수종을 심은 무신경도 확인됐다. 조사에서 빠진 다른 지역의 이동통로 가운데는 사람들의 통행로나 등산로로 이용되는 곳도 10여곳이 넘는다.


△ 7월1일 남원시 외곽을 지나는 19호선 국도에서 근처 산에서 굴러 떨어진 두더지 한마리가 도로 경계턱을 오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렇게 도로에 갇힌 두더지는 당황해 왔다갔다하다 차에 치이거나 탈진해 죽게 된다.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최태영 선임연구원 제공

이동통로 불과 48곳 그나마
“20억원씩 들여 제값하는 곳 하나도 없다”

환경부는 ‘이동통로 설치지침’에 배수로에 소형동물을 위한 탈출로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양서·파충류가 가장 빨리 배수로를 벗어날 수 있는 탈출로의 최적 경사각은 30도라는 실험결과까지 나와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런 탈출로는 생물다양성 보존의 핵심인 국립공원을 지나는 도로변 배수로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동통로가 제기능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위치선정 잘못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조범준 야생동물연합 사무국장은 “20억여원씩 들인 이동통로 가운데 제 값을 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며 “충분한 기초조사 없이 위치를 잡은 탓”이라고 말했다.

 

‘이용자’ 고려 소홀
위치선정 설계시공 잘못

위치선정의 기초가 될 야생동물 이동에 대한 체계적 조사는 이제 겨우 시작되고 있는 단계다. 그러다보니 수천수만의 야생동물이 도로에서 죽거나, 도로를 건널 엄두를 못내고 도로 사이에 갇혀 살고 있지만, 지금 인간들은 도로가 특정 개체군의 건강한 생존에 가하는 위협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 정보도 갖지 못하고 있다.

야생동물의 희생을 막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도로를 계획·설계할 때부터 야생동물의 이동을 고려하는 것이다. 동물횡단에 대한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하는 표지판, 동물진입을 막는 가드레일이나 경보발신장치 설치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야생동물 도로횡단에 대한 체계적 조사는 이런 조처를 위해서도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야생동물 쳤을떈‥
119·동물구조단체에 따르릉

차를 몰다 야생동물을 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즉사했으면 어쩔 수 없지만, 죽지 않은 경우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면 불행을 당한 동물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한국야생동물구조센터( www.wildanimal.or.kr )가 권하는 대처요령을 소개한다.

동물을 차로 친 경우 무엇보다 운전자의 안전에 유의하며 갓길로 끌어내고 동물구조단체나, 119구조대, 가까운 파출소, 각 시·군의 환경보호과나 산림과 등에 위치를 알린다. 고라니나 노루와 같은 대형동물들은 다가서는 사람을 발로 차거나 공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심한다. 일단 관계기관에 연락했으면 이들이 도착할 때까지 현장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 어떤 이유로든 부상당한 동물을 임의로 차에 싣고 가거나, 숨이 붙어 있는 동물을 길에서 죽이는 것은 불법이다.

교통사고가 아니어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야생동물도 있다. 성숙한 동물인데도 쉽게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거나, 다른 무리들과 달리 비정상적 몸놀림을 하거나, 야행성 동물인데도 대낮에 나와 도망가지 않는 경우 등이다. 이때도 119구조대나 가까운 동물구조단체에 연락하면 좋다.

다친 동물을 접촉할 때는 반드시 두꺼운 장갑을 착용해, 동물의 발톱 이빨 부리 등에 다치지 않도록 하고, 기생충이나 질병 감염에도 주의한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