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물’이 말라간다

식수부족, 전세계 11억명

물 문제에 대한 지구촌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물은 생명’이라거나 ‘물 위기는 생명의 위기’라는 명제는 더이상 진보적 환경운동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제주도에서 열린 유엔환경계획(UNEP) 특별총회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환경장관들도 이런 인식에 큰 차이는 없었다. 사실 지난 2000년 유엔이 새천년선언에서 “2015년까지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세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천명하고, 2002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지속가능발전정상회의(WSSD)에서 각국 정상들이 이를 재확인했을 때 이미 국제사회는 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실천은 여전히 회의장 주변에 머물고 있다.

 

● 물 문제는 환경 문제

클라우스 퇴퍼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이 제주에서 언급한 대로 물 위기와 관련해 제기되는 통계들은 국제사회가 시급히 행동에 나서야 할 충분한 이유를 제공해주고 있다.

현재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인구는 전세계적으로 약 11억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 인구는 2025년까지 30억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위생적 식수에 따른 수인성 질병으로 해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34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물풍요국가군에 속하는 중국이 2030년 이후 불부족국가군에 들어가는 것을 비롯해 25년 안에 전세계 5개 나라 가운데 1개 나라가 심각한 물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됐다. 이런 세계적 물 부족에 따라 여러 국가에 걸쳐 있는 공동수자원 관리를 비롯한 물 문제가 21세기 국제 분쟁의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한국도 지구적 물 위기의 안전지대에 있지 않다.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의 기준으로는 우리나라는 짐바브웨, 레바논, 말라위, 체코, 덴마크, 폴란드, 소말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물부족 국가군에 포함된다. 2002년 현재 1493㎥인 국민 1인당 가용 연간수자원량은 2025년이면 1340㎥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세계적 물 위기는 지구의 물이 줄어들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물 위기는 자원의 효율적 활용 문제이다. 하지만 환경오염이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물의 양을 줄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물 위기는 환경문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각종 오염물질이 자연의 자정능력 한계를 넘어 물 순환계에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프리카와 중동 등 국지적으로는 가뭄과 집중호우의 증가 등도 직접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온실가스 배출 등에 따른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다.

● 물 상업화 규제 목소리 높아

지난달 27~28일 제주도에서 열린 지구시민사회포럼에 참석한 세계 40개국 200여명의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은 물 위기를 가져온 원인의 하나로 물의 상업화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이미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남미와 남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의 물 공급 체계를 장악한 비벤디, 수에즈, 벡텔 등 거대 기업들이 이윤 추구에 몰두해 물 공급망 개선보다는 물값 올리기에만 급급하는 것이 빈곤층의 물에 대한 접근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주장이다.

지구시민사회포럼에서 세계 3대 환경단체의 하나인 ‘지구의 벗’ 의장 리카르도 나바로 박사는 “물은 모든 생명을 연결하는 끈이며 생명의 본질인 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며 “물로 돈 벌이를 하는 국제적 대기업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는 ‘물의 악의 축’”이라고 주장했다.

지구시민사회포럼 참석자들은 제주에서 채택한 공동 성명에서 물에 대한 상업화와 사유화를 당장 철폐하자고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각국 정부에 물 관련 민간 부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각국 정부가 물 관련 기업의 활동을 평가하기 위한 기술적 역량을 배양하고, 물 관련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며, 이들이 좀더 책임성 있고 투명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 문제 개선은 기업의 협력과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참여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정부기구와 비정부기구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물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근본 원인은 돈 문제다. 물 문제로 당장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 대부분이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기는 어려운 빈곤국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원조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유엔환경계획 사무국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선진국들이 국민총생산(GNP)의 0.7%를 정부개발원조(ODA)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뒤 12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약속이 이뤄지기는커녕 0.36%에 이르던 비율이 되레 0.2%로 줄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