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 트러스트 '결실'
시민들 한푼두푼 모아 "산을 지키자"
서초구 1만여명 30억원 모금
2년만에 山길목 4곳 매입 앞둬
"주민 힘으로 난개발 막아냈다"

“기부금 액수의 과다가 아니라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예요. 이제 아이들은 산에서 함부로 나무를 꺾지도 휴지를 버리지도 않지요.”(최난주 서울 양재고 교장)

“처음에 땅주인들은 당국이 환경보호를 빙자해 헐값에 땅을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지자 강경했던 땅주인들도 주민운동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송정숙 우면산내셔널트러스트재단 이사장)

서울 강남 지역의 한자락을 그 이름처럼 ‘소가 누워 잠자듯’ 넉넉하게 품고 있는 우면산(牛眠山). 4일 잔설이 쌓인 등산로 곳곳에는 ‘여러분의 정성이 우면산을 살립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경쾌한 걸음으로 산을 오르는 서초구 우면동 서초동 방배동 양재동 반포동 주민들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 못지않게 요즘 또 다른 기대에 가슴 벅찬듯했다.

우면산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땅을 사들이는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이 곧 첫 결실을 맺기 때문이다. 난항이던 토지 매입에 청신호가 켜졌다. 현재 3명의 땅주인 가운데 2명이 트러스트 운동의 뜻에 동의해 매각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2003년 6월 우면산트러스트재단 설립과 함께 시작된 이 토지신탁(信託) 운동의 후원자는 2월말 현재 1만2,291명으로 늘어났다. 모금액도 8개월만에 30억원을 넘어섰다. 서초구 약정액 17억원을 포함한 현재 모금액은 30억1,187만원. 재단은 이 돈으로 설립 2주년이 되는 6월20일께 예술의전당~서초IC를 잇는 우면산 일대 사유지 4곳 1.305평의 땅을 사들일 계획이다.

전체 155만평에 달하는 우면산공원 면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 상징성은 무척이나 크다. 강남의 요지라는 이유로 개발압력에 맨몸이 드러나있던 우면산이 주민들의 손에 의해 주민 품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재단이 매입할 땅은 우면산의 길목이다. 이곳이 확보되면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하다. 재단은 앞으로 20년간 우면산 일대 34곳 8,950평의 땅을 더 확보할 계획이다. 강화도 갯벌, 충남 태안 신두리사구 등 최근 전국 곳곳에서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펼쳐지고 있지만 서울 지역에서는 우면산이 유일하다.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은 또 주민과 자치단체가 합심해서 일궈낸 소중한 성과로 평가된다. 1993년 우면산 일대에 유류저장시설을 설치하려던 기업과 법정다툼 끝에 이겨 공원을 조성한 서초구와 관내 기업 학교 종교단체 주민단체들이 한뜻으로 참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조남호 서초구청장은 “자연녹지인 우면산 일대의 용도변경을 요구하는 건설업자들의 유혹이 거셌지만, ‘산을 지켜달라’며 1만원 혹은 2만원을 통장에 입금하는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생각하면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6월이면 주민 품으로 돌아오는 우면산 땅에 서초구는 기념비를 세우고 타임캡슐에 기부자들의 명단을 담아 영원히 보존하기로 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은 바로 ‘스스로의 삶터를 지킨 주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5/03/04 18:24수정시간 : 2005/03/04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