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건강이다] <1> 도시의 친환경 가족 성진이네
"유기농산물 먹은 후 아토피 싹 나았어요"

현대인들은 온갖 독성물질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이 때문에 환경오염은 개개인의 건강문제와 직결된다. 환경오염에서 시작된 각종 신종 질환이 내 몸과 내 아이, 내 가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 도심 속에서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며 건강하게 사는 '성진이네 24시'를 시작으로 우리의 삶과 직결된 대기 물 화학물질 쓰레기 소음 식품오염 등 각종 환경문제를 점검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한 일을 생각해보는 '환경이 건강이다'시리즈를 매주 목요일자 환경면에 연재한다. 환경운동연합 '벌레먹은 사과팀'이 제안하는 친환경 생활수칙도 소개한다.

성진(4)이네 식구들은 감기를 모르고 산다. 아버지 한태희(41)씨와 어머니 이민수(37)씨는 물론 아들 성재(9) 성진군, 딸 서우(8)양도 병원에 가본 지 오래다. 추운 겨울이지만 어머니는 저녁 요리를 하다 말고 실내 환기를 위해 거실 출입문을 활짝 연다. 그러나 내복에다 겉옷까지 걸쳐 입은 아이들은 찬 바깥 공기에 움츠리지 않는다.

다섯 식구가 둘러 앉은 저녁 식탁에서 성진군은 조막손으로 유아용 젓가락을 움켜쥐고는 콩밥을 잘도 집어 씹는다. 성재군은 동치미 국물을 주스 마시듯 넘기고, 과일을 좋아하는 서우양은 귤을 껍질 째 먹는 아빠를 힐끔 쳐다보며 한 알 한 알 깨끗하게 손질해 먹는다. 세 아이의 분주한 손놀림에 된장찌개와 삶은 양배추 쌈이 이내 바닥 났다. 이씨는 “아이도 어른도 사실 조금만 불편하게 살면 건강이 찾아와요”라고 털어놓는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우장산 자락 단독주택 2층 성진이네 집에는 새 물건이 없다. 소파도, 냉장고도, TV도, 세탁기도 모두 거실과 부엌, 안방 한 켠을 10년째 지키며 버티고 있다. 물건마다 손 때가 가득 묻어있고 누렇게 변한 흰색 가전 제품엔 이제는 없어져버린 기업 마크가 지금도 선명하다.

대부분 가정에서 사라진 트랜스(변압기)가 지금도 안방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씨는 “이사를 가지 않으니 멀쩡한 물건을 버릴 수도 없고…”라며 절약이 습관인 듯 대수롭지 않게 말꼬리를 흐리지만 ‘안 버리는 것’이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깨끗하게 지키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은 숨기지 않는다. “새 물건, 간편한 음식, 편리한 기구를 너무 좋아하면 아이들이 병들잖아요.”

아이들 셋이 한꺼번에 목욕을 끝낸 저녁 9시, 이씨는 욕탕 물을 버리지 않고 커다란 통에 옮겨 담는다. 변기 세척용 물로 다시 쓰기 위해서다. 맑은 물이 차있을 법한 아침 시간에도 변기 안에는 재활용 물이 들어있다. 1년 전만 해도 반상회를 위해 성진이네에 모였던 이웃들이 “성진이네 욕실에는 왜 구정물이 가득해”라며 의아해 했을 정도다.

물절약 캠페인이 없는 겨울철에도 변기 물통 안에는 붉은 벽돌 한장이 물이끼를 가득 안고 잠겨 있다. “좀 번거롭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샤워기 안 틀고, 물 펑펑 안 쓰고, 이젠 알아서 잘 하는 것만도 보람이죠.” 성진이네 상수도료와 전기료가 다른 가정보다 적은 것도 가계부를 쓰는 엄마로선 큰 기쁨이다.

성진이네가 처음부터 건강한 것은 아니었다. 성진군은 생후 10개월께 중이염을 앓았고 3세까지만 해도 아토피로 고생했다. 인근 우장산 자락에 우후죽순처럼 아파트 단지들이 빼곡이 들어차면서 공사 먼지와 소음에 아이들은 한동안 고생했다. 이씨는 “큰 아이나 누나보다 막내가 모유를 적게 먹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형과 누나에게까지 번진 피부 가려움증을 없애기 위해 이씨가 선택한 것은 우선 식탁을 바꾸는 것이었다. 남편과 함께 9년 째 활동하고 있는 환경단체를 통해 ‘Eco 생협’이라는 지역단위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했고 농민들이 농약 안 치고 퇴비와 미생물로 땀 흘려 키운 유기농산물을 생산지로부터 직접 구입하기 시작했다.

통조림과 햄ㆍ소시지, 피자 같이 인스턴트 식품을 가능한 없애고 잡곡과 된장찌개, 생선, 김, 나물로 식탁을 채웠다. 처음엔 입에 잘 맞지 않아 하던 아이들도 금새 자기들이 손수 잘 찾아 먹었다. 농약 없이 자라 벌레 먹고 흠이 많은 농산물들은 다듬고 손질하기가 번거러운 만큼 이씨가 부엌에서 일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아이들 과자 산양유 등 간식류와 휴지 세제 칫솔 등 생활용품은 물론 화장품까지 모두 협동조합을 통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한다. 휴지는 재활용 폐지를 사용해 형광물질이 들어있지 않은 재생휴지를 구입하고, 세제도 합성계면활성제를 사용해 때가 쏙 빠진다는 고강력 세제 대신 인체와 환경에 해가 적은 천연비누분을 사용한 물비누를 쓴다.

1주일 식단을 미리 짜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은 한 달에 24만원 정도. “식료품에다 일반 공산품을 사는 데 필요한 생활비까지 포함된 데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결혼 10년차인 이씨 부부가 남들이 다들 불편해 하는 단독주택에 눌러 앉은 것은 순전히 건축사인 남편 한씨의 고집 때문이었다. 이씨는 4년 전까지만 해도 새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남편을 졸랐다. 그 때마다 남편은 “그래도 한 뼘이라도 땅을 밟고 살아야지”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들이 이제서야 새집 증후군에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건축 일을 하는 남편은 일찌감치 새 아파트가 얼마나 많은 독성 물질로 가득하고 실내 오염이 심한지 알고 있었던 셈이다. “실내 오염의 위험을 알게 된 지금은 아무리 재테크가 좋아도 제가 안가요.”

서울 혜화동에 있는 아동 학습지 업체 건축사인 남편 한씨는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을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출퇴근한다. “봄날 퇴근 길 성산로에서 버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카시아 향과 한강다리에서 바라보이는 석양이 너무 좋다”고 했다.

지하철은 버스보다 편리한 대신 지하 공기가 나쁜 점이 흠이지만 그래도 책을 보고 운동 삼아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어 좋다. 9년 된 성진이네 마르샤 승용차는 특별한 나들이 때를 제외하고는 늘 골목길 한 켠에서 쉬고 있다.

사실 성진이네가 환경 문제에 눈뜬 것도 우장산 토박이인 한씨가 대학시절 취미였던 스킨스쿠버를 핑계 삼아 전국 곳곳을 다니며 환경 훼손 현장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부터다. “바다가 오염되고 메뚜기와 미꾸라지가 사라지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는 한씨는 “아이들에게도 늘 풀냄새 흙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씨는 지금도 주말이면 월드컵경기장 옆 하늘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틈 나면 김포평야 농수로를 찾는다. 직장에선 동료와 팀 직원들에게 “1회용 컵을 아껴쓰라. 이면지를 쓰라”며 잔소리를 늘어 놓고, 산에 가면 등산로를 따라 뿌리까지 깊이 패인 나무들이 안타까워 등산조차 삼가할 정도다.

“웬 청승이냐며 핀잔 주던 이웃과 친척들이 공감하고 함께 동참할 때가 가장 좋다”고 말하는 한씨와 이씨는 “친환경 생활은 조급하고 과격했던 아이를 부드럽게 만들었다”며 아이들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김호섭 기자 dream@hk.co.kr  입력시간 : 2004/02/11 16:1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