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기저귀로 바꿨더니 아기가 더 튼튼해졌죠"
[환경이 건강이다] <9> 1회용 기저귀 안쓰는 세정이 가족

1회용 포장용기에 담겨 배달된 죽으로 아침을 먹고, 직장에 출근해서는 1회용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패스트푸드점이나 테이크아웃 가게에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과 음료로 점심을 때운다. 주방에서는 음식포장 랩과 알루미늄 호일로 음식을 보관하고 요리 때도 주방티슈와 비닐장갑, 나무젓가락이 넘쳐 난다.

할인점에서는 1회용 종이기저귀가 매출 1위 상품을 차지하고 쇼핑 때는 어김 없이 비닐봉투가 등장한다. 쓰레기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 권우용 간사는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담긴 생활 쓰레기의 25%가 1회용품”이라며 “자원낭비와 환경호르몬 우려에도 아랑곳 않고 ‘생활 편의’를 이유로 1회용품에 중독돼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7개월 된 아기 세정이를 키우는 주부 배선윤(28)씨는 이런 ‘편리’를 포기하고 1회용품 중독을 거부하며 살고 있다. 서울 논현동 배씨의 집 거실 한켠에는 삶아 빤 하얀 천 기저귀가 널려있다. 세정이 아빠 허성만(34)씨는 능숙한 솜씨로 말린 기저귀를 다림질하고 가지런히 접어 차곡차곡 정리한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1회용 종이 기저귀를 멀리하고부터 아이가 튼튼해졌어요.”

세정이가 태어난 후 배씨는 ‘당연히’ 할인점에서 1회용 종이기저귀를 사다 채웠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세정이 엉덩이는 짓무르고 빨갛게 변하더니 발진이 생기기 시작했다. 병원 치료도 받고 처방해주는 약도 발라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그렇게 3개월. 속이 타던 배씨는 집 인근 약국에서 약사로부터 “1회용 기저귀는 통풍에 문제가 있는 만큼 천 기저귀를 사용해보라”는 권유를 받고는 귀가 솔깃해졌다. 인터넷에서 천 기저귀 대여점을 찾아 계약하고는 하루 20장 분량을 1주일에 3차례씩 배달 받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주일도 안돼 세정이 엉덩이는 다시 보송보송해졌다. “대소변 기저귀를 구분해 배출하면 업체가 수거해가기 때문에 그리 불편하지도 않아요.” 그동안 1회용 종이기저귀를 들어가던 1개월 7만~8만원의 비용을 감안하면 1개월에 5만원씩 들어가는 천 기저귀 사용료는 오히려 싼 편이었다. 배씨는 ‘요즘 같은 시대에 궁상맞게 웬 천 기저귀냐’는 이웃들의 핀잔에도 아랑곳 않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천 기저귀 전도사’가 됐다. “천 기저귀를 사용하면 아이의 건강 뿐 아니라 두뇌발달에도 도움이 돼요. 순면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이 지속적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아이의 감각이 발달하고 이는 곧바로 두뇌 발달로 이어지죠.” 이달 들어 가맹점 사정으로 배달이 끊기면서 배씨는 아예 기저귀 50장을 매일 삶고, 빨래하고, 말리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 명의 아이가 대소변을 가릴 때까지 소모하는 종이기저귀 양은 많게는 6,000장에 이른다. 아이 하나가 대소변을 가릴 때까지 숲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지현 서울환경연합 부장은 “우리나라 엄마들의 98%가 1회용 기저귀를 사용한다”며 “지난해 사용된 양은 무려 20억8,400만개”라고 말했다. 시민환경연구소 조사 결과 1회용 기저귀는 천 기저귀보다 산림자원을 240배나 더 낭비하고 지구 온난화물질인 이산화탄소는 2.9배, 폐기물은 10.2배나 더 나올 정도로 환경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정이의 ‘1회용품 사절’은 아빠의 직장인 디자인사무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엄마의 쇼핑문화도 바꿔놓았다. 허씨의 사무실 직원들은 종이컵 대신 모두 개인별 머그컵을 만들어 사용한다. 배씨는 쇼핑 때마다 장바구니를 챙겨가고, 물건이 많을 때는 할인점에서 제공하는 종이 박스를 이용한다. 부엌에서는 음식 포장용 랩이 사라진 대신 밀폐용기가 등장했다. “알고 봤더니 생활 속에 숨어있는 1회용품이 의외로 많았다”고 말하는 배씨는 “휴지 대신 걸레 사용이 늘어난 점이 가장 큰 변화”라며 활짝 웃었다.

김호섭 기자 dream@hk.co.kr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4/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