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건강이다] "땅·물 살리고 우리도 살았죠"
<7> '팔당생명살림' 양평 두물머리 농민들

상수원 보호 규제로 절망의 나날… 그리고 10년…

‘물을 살리자니 농민이 울고, 농민을 살리자니 물이 울고….’

꼭 10년 전인 1994년 서울과 한강 상류 팔당 사람들은 이런 고민에 빠져있었다. 팔당 일대가 서울 시민의 먹는 물을 공급하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온갖 규제가 이뤄지면서 손발이 묶인 팔당 농민들은 ‘차라리 팔당 물이 빨리 오염돼 상수원구역이 더 상류로 옮겨갔으면’하는 독한 마음까지 먹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는 노태환(41)씨는 오히려 물 때문에 행복하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는 이곳이 청정지역으로 자리잡으면서 그가 생산한 딸기 파 상추 시금치 고추 등 유기농 채소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노씨를 포함해 94년 12농가에 불과하던 팔당생명살림 소속 농민은 올해 72농가로 불었고, 이들로부터 무공해 채소를 공급 받는 도시 소비자 회원만 1,000가구를 넘는다. 양평군에서만 2,700여 농가가 친환경 농업을 해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상수원보호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뜻있는 농민들은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 유기농을 하고 소비자들은 이들이 생산한 안전한 농산물을 사먹는 상생을 이뤄냈다. 맑은 물도 살리고 토양도 지키고 나아가 식탁 위 먹거리까지 살리는 친환경 선순환인 셈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5년 전 두물머리로 귀농한 서규섭(37)씨의 농장은 코 끝을 자극하는 파 향기로 가득했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약도 치지 않은 그의 파는 일반 농가에서 성장촉진제를 써가며 재배한 길고 굵은 대파보다 크기는 작지만 맛은 더 맵고 향은 더 진하다. “제초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잡초를 뽑아내는 일이 가장 번거롭다”고 털어놓는 서씨는 “풀과의 전쟁을 치르다 보면 노동력이 일반 농사보다 5배는 더 든다”고 했다.

아이들을 모두 교육시키고 뒤늦게 두물머리로 온 공만석(55)씨의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브루컬리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공씨는 “진작 왔어야 했다”며 “서울 살 때보다 더 건강해졌다”고 자랑했다. “게으름 피우지 않을 만큼만 농사짓는다”며 겸손해 하는 공씨지만 비닐하우스 12개동 1,800여평을 일구며 50대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성을 보이고 있다.

“비료 대신 힘들여 만든 퇴비를 뿌린 후 토분 사이로 지렁이가 꿈틀대고 때로 두더쥐가 다니는 것을 보면 땅이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죠.” 그렇게 일군 땅은 그에게 연간 6,000만원의 소득을 안겨준다.

빨간 딸기가 주렁주렁 열린 주옥석(51)씨의 딸기 농장 가운데는 벌통이 하나 놓여있고 꿀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 딸기 꽃의 자연수정을 위해서다. 성장촉진제를 쓰지 않은 주씨의 딸기는 속이 비지 않아 육질이 단단하고 더 달다. 진드기를 막기 위해 비닐하우스 가장자리에는 마늘과 파가 심어져 있다.

주씨는 “한 품종을 대규모로 재배하거나 한 밭에 같은 품종을 계속 심지 않는다”며 “때로 땅을 놀리기도 하고 열매채소와 뿌리채소 4~5가지를 번갈아 심어 토양의 순환 구조(윤작)를 맞추는 것이 유기농의 생명”이라고 했다.

팔당생명살림 양수일 생산팀 과장은 “이곳 농민들은 과거 발목이 노랗게 되도록 뿌려댄 제초제의 폐해를 절감하고 미래를 바꾸기로 작정한 이들”이라며 “수요가 늘면서 지금은 오히려 생산이 소비를 못따라갈 정도”라고 했다. 농가 소득도 크게 늘었다.

처음 운동본부를 만들 때 평균 1000만원에 크게 못미치던 농가당 연소득이 지금은 3,000만원을 넘었고 고소득 농가도 적지 않다. 서울시는 물이용부담금으로 유기농산물 판매장을 만들고, 농협은 자금을 빌려줘 유기농을 육성하며, 소비자는 유기농산물로 식단을 짠 결과이다.

이들이 일하는 농장 바로 옆에는 팔당호의 수질을 늘 감시하고 검사하는 한강물환경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최근 팔당호 살리기 유기농업 10년 평가 토론회에서 권승구 동국대 교수는 “친환경 농업으로 농약사용과 화학비료 사용량이 80% 이상 줄고, 특히 양평군 개군면 향미천의 경우 부근 80여 농가가 주요한 수질오염원이던 축산 오폐수 처리를 위해 톱밥축사를 설치해 5급수이던 샛강이 2급수로 개선되기도 했다”고 발표했다.

농약을 줄이고 하수관로를 깔아 한강물을 1급수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과 더 안전하고 생명이 살아있는 농산물로 식탁을 채우려는 땀 흘림은 봄볕 아래 계속되고 있었다.

양평=김호섭기자 dream@hk.co.kr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4/03/24 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