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건강이다] <5> 환경의 역습 경험담
"집 새단장 6개월 뒤부터… 온가족 기침·피부병 고통"

11일 '환경이 건강이다' 공개 강연회…'환경의 역습' SBS 박정훈PD 초청

한국일보가 환경재단과 공동으로 환경친화적이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제1회 '환경이 건강이다' 무료공개강연회가 11일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 열린다. 이날 강연에는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 제작자 SBS 박정훈(사진) PD가 나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친환경 생활이 절실한 이유를 들려준다.

지금으로부터 2년 8개월여 전. 20년 가까이 된 낡은 아파트를 구입해 실내 공사를 시작했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토굴 같이 칙칙한 내부를 완전히 개조하는 소위 ‘올(All) 수리’라는 것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니까 환경운동을 하는 지인 중에 “집수리를 하면 몸이 아플 수 있다”며 걱정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실내 건축자재에서 화학물질이 나온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멀쩡한 내 가족에게 설마 충격을 줄 정도일까’하는 생각에 충고를 한귀로 흘렸다. 당시만 해도 새 차와 새 집에서 나오는 독특한 냄새에 아무런 저항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방과 아이 방 모두 벽 한쪽 전체에 붙박이 장을 설치했으며, 벽은 실크 벽지로 바르고 방문에는 페인트칠을 했다. 방마다 새 장판도 깔았다. 거실 바닥은 나무 모양의 필름을 얇게 접착제로 붙여 마루를 깔았고, 집안 곳곳의 벽 모서리 부분을 합판으로 감싸 운치를 높였다. 아이의 공부방이자 나의 서재에는 무늬 목으로 겉 포장한 책꽂이와 책상을 들여놓았다. 창문은 알루미늄 새시를 새로 맞춰 공기의 이동을 완전히 차단, 효율적 난방과 방음이 되도록 했다. 그 덕분에 겨울에도 반팔 차림으로 지내며 문명의 혜택과 깔끔한 실내 분위기를 만끽했다.

그러나 그런 호강은 얼마가지 못했다. 가족 모두가 앓기 시작한 것이다. 여름엔 문을 자주 열어놓고 사니까 별 이상이 없었는데 문제는 문을 닫고 살아야 하는 겨울이었다. 나의 가족은 최근 몇 년 사이 음식 습관을 바꿔 감기는 물론 자질구레한 병들로부터 자유스러워졌는데, 겨울 어느날 가족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건강한 나부터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감기가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띵한 것이 피곤이 영 풀리지 않았다. 아이의 코에서도 콧물이 흐르고 아내의 피부에서는 건선(Psoriasis) 피부질환과 유사한 원형의 피부질환이 군데군데 생기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물질 때문에? 여름 내내 열심히 환기했는데 설마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기관지염은 겨울 내내 내 몸을 괴롭혔다.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관지염 뿐 아니라 밖에 있으면 멀쩡하던 몸이 집에만 들어오면 한 두 시간 안에 가렵기 시작했다. 긁다 보면 온 몸에 붉은 두드러기가 생겼다. 앉아서도 긁고 누워서도 긁고…. 긁으면서 나는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집에 문제가 있는 거야.” 그동안 말로만 듣던 ‘새집 증후군(Sick House Syndrome)’이었다. 새 집이나 새 빌딩에 들어오면 눈이 따갑고 목이 답답하고 머리가 띵하다가 밖으로 나가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증세. 그러나 심해지면 알레르기 비염, 아토피성 피부염, 기관지염, 천식 등으로 악화되는 신종 질환. 실내 공기가 나의 가족에게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새 집이 내 가족을 공격한 것이다.

‘환경의 역습’과 ‘새집 증후군’ 등에 대해 일부에서는 상황을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2년 전 다큐멘터리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방송했을 때의 거센 역풍이 생각났다. 어떤 이는 “못 먹고 일찍 죽는 법을 알려줘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고 전문가들 중에는 우리의 영양섭취가 아직도 부족하므로 동물성 음식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대량 동물사육시스템이 필연적으로 초래한 각종 신종 질병들의 창궐과 항생제 남용, 동물성 영양분 과잉이 불러온 폐해를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가 무엇을 덜 먹고 혹은 더 먹고 살아야 하는지 상식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환경이 그렇게 심각한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환경의 역습을 받는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우리 주변의 약자들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약자는 우리의 자녀들과 임신한 누이와 뱃속의 조카이고 우리의 노부모들이며 현재 痔?아픈 환자들과 알레르기 어린이들이다. 환경을 지킨다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이런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질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 몸이 괜찮다고 집과 자동차에서 나오는 각종 발암물질과 농약ㆍ항생제ㆍ중금속을 과도하게 먹고 마셔댈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우리가 계속 용서하는 한 언젠가 나의 아이가 혹은 나의 부모가 먼저 쓰러질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4/03/10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