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건강이다] <4> 식품오염에 시들어가는 아이들
'간편 식단'의 역습… 약골 비만兒로

햄버거 1세트 열량 1일권장량 53%
패스트푸드가 소아비만·고혈압 주범
인스턴트 식품속 화학조미료도 '독소'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지민(10ㆍ여)이는 바이올린 학원에서 돌아오자 마자 냉장고 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음식점 스티커부터 훑어내려 간다. 학원 친구가 놀러 온 오늘 저녁 메뉴는 둘이서 피자로 정했다. 배달 주문은 습관처럼 단축 다이얼이다. 지난번 주문 때 받아 둔 쿠폰으로 무료 서비스되는 콜라 페트병 1병도 빼놓지 않는다.

혼자 저녁을 먹은 어제는 자장면이었다. 경기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 지민이네 아파트 출입문 앞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배달해 먹은 음식 그릇이 쌓인다. 매주 목요일 아파트단지 안에 장터가 서는 날에는 떡볶이와 어묵이 학원으로 향하는 지민이의 간식이다.

밤 8시가 넘어야 직장에서 퇴근하는 엄마가 아침에 미리 저녁밥을 챙겨놓아도 지민이는 간편한 배달 음식이 더 좋다고 했다. “배달된 음식 그릇에 겹겹이 싸여있는 랩을 뜯어내는 것이 좀 힘겹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 밥을 찾아먹는 것 보다는 나아요.” 엄마가 몇 차례 “다 돼있는 밥도 못 꺼내먹냐”며 다그치기는 했지만 며칠 가지 못한다.

참다 못한 엄마가 한식으로 시켜먹으라며 용돈을 주고 가도 지민이의 메뉴는 분식 자장면 돈까스 피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민이의 항변은 단순하다. “맛 있고 편하잖아요.” 그 사이 외동딸인 지민이의 체중은 갈수록 불어 39kg이나 나간다. 또래 아이들 평균보다 5kg이나 더 나간다.

 


호서대 식품공학과 이기영 교수는 “어린이 비만과 아토피성피부염은 말할 것도 없고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등 어른들이 주로 걸리는 성인병이 오히려 요즘 아이들에게 많이 나타나고 있다”며 “패스트푸드와 각종 합성 식품첨가물이 함유된 가공 식품이 식탁을 차지해버린 결과”라고 말했다.

생활 여건 변화와 식품 산업 발달로 식탁이 각종 해로운 먹거리로 가득해지고 있다. 건강과 안전보다는 아이들의 시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첨가물로 뒤범벅된 패스트푸드, 화학 포장재에 담긴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가공식품, 항생제를 먹고 자란 육류와 육가공품, 방부제와 농약이 들어가는 수입 밀가루, 갈수록 농약 강도가 높아지는 빛깔 좋은 과일과 채소, 중금속 오염 위험에 처한 생선들, 유해성 논란이 뜨거운 유전자변형농산물(GMO)….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공 식품은 우유 어묵 소시지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심지어 국거리와 반찬까지 모두 대량 생산된 공정을 통해 나오는 음식을 먹고 산다. 아이들은 김치를 멀리하고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을 찾는다.

아이들이 즐기는 패스트푸드는 소아 비만의 주범이다. 소비자보호원이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영업하는 7개 패스트푸드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 3가지 품목으로 구성된 1세트의 열량은 최대 1,065kcal로 10~13세 여자 어린이의 1일 열량 권장량(2,000kcal)의 53%를 차지했다.

비만으로 직접 연결되는 햄버거세트의 지방함량도 최대 41g으로 1일 지방 섭취기준량인 50g(영양소기준치)의 82%나 됐다. 소아 고혈압의 원인이 되는 소금류도 비슷하다. 햄버거세트의 나트륨 함량은 최대 1,693mg으로 1일 나트륨 섭취 기준량 3,500mg의 48%를 차지했다.

소비자보호원은 “아이들이 간식으로 자주 먹는 이들 패스트푸드의 지방과 나트륨 함량은 한끼 섭취필요량을 초과하는 만큼 어린이에게 보다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순천향대 소아과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초ㆍ중ㆍ고생의 비만(표준체중 20% 이상) 비율이 1984년 3%에서 2001년 10%로 3배 이상 증가했다.

2002년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가 서울시내 초등학생 680명을 대상으로 체지방 검사를 실시한 결과 4명 중 1명 꼴로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하대 의대 임종한 교수는 “패스트푸드는 칼슘과 비타민이 부족하다”며 “칼슘 비타민 부족은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는 납 카드뮴 등 중금속의 흡수를 증가시켜 중금속에 의한 건강장애와 면역기능 약화를 초래, 잦은 발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회생활로 바쁜 주부들의 손을 덜어준다는 인스턴트 식품과 가정의 주방을 채우고 있는 화학조미료도 경계 상이뇩?우리나라에서는 화학합성물 381종과 천연첨가물 161종, 혼합제제 7종 등 549종의 식품첨가물이 사용되고 있다. 라면 1봉지에만도 평균 1.65g의 화학조미료가 들어있다.

인스턴트 식품업체들은 기준치와 허용량 등을 내세워 첨가물 사용이 무해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첨가물이 체내에 들어가면 30~50%는 호흡기나 배설기관을 통해 배출되지 않고 몸에 축적된다.

화학조미료에 들어있는 L-글루타민산 나트륨은 몸속에서 소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비타민 B6(피리독신)를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화학조미료의 과다 섭취는 단백질합성과 항체ㆍ호르몬ㆍ신경전달물질 생성 등 생리작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B6의 결핍을 가져오고 이 때문에 청소년기에 특히 중요한 단백질 대사와 생리기능에 문제를 가져온다.

B6의 결핍은 1차적으로 무력감ㆍ두통을 유발하고 면역력 저하와 뇌손상 및 암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말 홍콩 정부는 맥도널드가 사용하는 양념에서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유전자 변형 발암물질로 경고한 감미료 스테비오사이드가 함유된 사실을 적발, 양념을 매장에서 수거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 오유신 간사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화학조미료의 하루 허용량을 어른 6g, 어린이 3g 정도로 규제하고 있지만 잦은 외식 등 잘못된 식문화 변화로 우리 국민의 화학조미료 섭취량은 이 수치를 넘은 지 이미 오래”라며 “라면 과자 소스 육가공품 등을 통해 섭취하는 보이지 않는 화학조미료가 더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섭 기자dream@hk.co.kr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4/03/03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