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10. 기상이변과 건강

더워지는 한반도…열대병 시달린다

지난해 여름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3만5000여명이 희생됐다.기후변화가 직접 원인이 돼 건강을 해치고 목숨을 잃는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은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를 소비할 때 배출한 온실가스가 원인으로 지목된다.또 기상이변은 대기오염을 부채질하는가 하면 전염병을 확산시키기도 한다.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그해 여름엔 정말 퇴근하기가 싫었을 정도였습니다. 에어컨이 있는 시원한 사무실에 있다 저녁에 문을 열고 나서면 마치 사우나에 들어서는 것 같았습니다."

기록적인 '찜통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1994년 여름. 10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더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당시 30대 초반의 회사원 李모(43)씨도 "계속된 더위에 땀띠로 고생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낮 최고기온의 평균치가 섭씨32.2도에 이르렀던 94년 7~8월 서울지역에서는 93년 같은 기간에 비해 전체 사망자가 988명이 더 많았다. 최고기온이 30도를 넘는 기간이 연속해 33일간 지속되면 사망자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인은 다양하지만 폭염이 건강에 부담을 줘 사망률을 높이는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에서는 사망자 수가 75.3% 증가했다.

또 폭염이 직접 원인이 되는 열사병 사망자는 94년 전국적으로 100명이나 됐다. 93년 2명, 95년 13명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늘어나는 폭염 피해=최근 10년간 서울지역에 폭염 빈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주대 예방의학과 김소연 연구원은 "94년의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90년 초반에는 연속적인 폭염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사흘 이상 폭염이 계속된 날이 연간 25일씩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폭염이 휩쓸었던 프랑스 파리의 경우 예년보다 사망자가 1154명이 늘었고, 이 가운데 3분의 2가 노인이었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보았다. 아파트 맨 위층에 거주하거나 에어컨이 없는 사람일수록 피해가 컸다. 95년 미국 시카고에서도 5일간 섭씨34~40도의 폭염으로 평소보다 700명이 더 사망했다.

◇지구온난화가 주범=폭염과 사망자 증가의 배경으론 지구온난화가 지목된다.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하는 데 약 1만년이 걸렸던 과거와 달리 산업혁명 이후 100년 동안 약 0.6도나 상승했다. 한반도의 기온은 지난 100년간 1.5도가 상승, 세계적인 상승폭의 2.5배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세계기상기구와 유엔환경계획이 설립한 IPCC(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부 간 패널)에서는 향후 100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이 1.4~5.8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세한 온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엄청난 온도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 한때 유럽.한국.미국 등에서 나타난 폭염이 언제든지 다시 닥칠 수 있다는 뜻이다.

◇기후변화로 전염병 기승=기온 상승과 생태계 변화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이미 사라졌던 전염병이나 전에는 없었던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휴전선 인접지역에서 10여년 전부터 크게 늘어난 말라리아가 대표적이다. 또 북한의 기아와 홍수 등 열악한 사정이 말라리아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기온 상승도 한몫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곤충인 모기는 기온에 민감하다. 모기가 알에서 번데기를 거치는 기간이 섭씨 15도에서는 15.5일이 걸리지만 섭씨 20도 이상에서는 9.5일로 줄어든다. 기온이 올라가면 모기가 성충이 되는 비율이 증가하고 발육기간이 단축돼 개체수가 증가한다.

인제대 백인제기념임상의학연구소 말라리아연구부 고원규 교수는 "국내에서도 기온상승으로 말라리아가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말라리아는 군인들을 상대로 한 예방 노력이 효과를 거둬 줄어드는 추세에 있긴 하다. 하지만 근본 원인이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질병감시 체계화해야=보건 당국은 국내에서도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이 외국에서처럼 늘어날 조짐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문제가 됐던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은 물론이고 뎅기열처럼 외국에서 감염된 환자가 들어올 수 있다. 또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가 국내에도 서식하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립보건원 질병관리본부 박만석 질병감시과장은 "해외여행 등을 통해 유입될 가능성도 커져 관심을 갖고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질병확산에 대처하고 있다. 질병이 발생하면 발생지역의 기후.생태.매개체 서식 등을 조사하고 자료를 축적, 향후 질병 발생 예측에 활용하기도 한다.

◇시민환경연구소 기후변화연구팀(http://ecohealth.or.kr)=장재연 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 김소연 아주대 예방의학과 연구원,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

◇취재팀=강찬수.권근영 기자<envirepo@joongang.co.kr>
2004.05.20 17:33 입력 / 2004.05.21 09:00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