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하늘 그리고 땅] 폐컴퓨터 돈이다… 모으면 자원,버리면 독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확대되면서 늘어나는 폐컴퓨터 처리 문제가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1999년과 2000년 컴퓨터 보급이 정점에 달해 교체주기를 4년정도로 볼 때 2005년까지 폐컴퓨터 발생량이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용컴퓨터의 보급이 이미 2000년 1000만대 시대를 돌파하면서 효율적인 폐컴퓨터 처리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현재의 시스템은 여러가지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폐컴퓨터는 ‘폐기물’이 아닌 ‘고가의 자원’=경기도 화성시의 전자폐기물 처리업체 리컴.지난 13일 찾은 회사 작업장에는 수거된 폐컴퓨터의 분해작업이 한창이었다. 플라스틱류와 고철류는 따로 분리돼 다른 처리업체로 넘겨지고 인쇄회로기판(PCB)은 파쇄작업을 거쳐 일부는 자체시설로 일부는 제련소로 보내져 금과 팔라듐(백금류) 등의 귀금속을 추출한다. 리컴에서는 컴퓨터외에도 컴퓨터 주변기기와 휴대전화,각종 전자 스크랩을 수거해 재활용하고 있다. 리컴의 PCB 처리용량은 하루 8t 규모로 연간 300일을 가동해 2400t을 처리할 수 있다. 보통 컴퓨터 한대당 PCB의 무게가 1㎏으로 추정돼 현재의 설비로 폐컴퓨터만을 반입한다고 할 때 1년에 240만대 분의 PBC를 처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현재 우리나라의 폐컴퓨터 발생량이 170만대 가량으로 추정돼 전량을 리컴에서 수거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리컴에서 실제 처리되고 있는 폐컴퓨터는 연간 5만대에 불과하다. 장한규 영업이사는 “수거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고가의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폐컴퓨터 대부분이 중간수집상을 거쳐 인도,파키스탄 등에 헐값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폐컴퓨터의 처리 실태와 문제점=냉장고나 TV 등 다른 백색가전 제품들과 달리 폐컴퓨터는 발생량이나 처리량을 파악하기 어렵다. 정부에서조차도 공식적인 통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다만 이런 저런 추정치만 난무할 뿐이다. 지난해 폐기물로 배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170만대의 폐컴퓨터중 20%가량은 간단한 수리와 업그레이드를 통해 국내에서 재사용되고 있으며 75∼80%가량은 분해 처리돼 대부분이 수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박스기사 참조) 시행으로 각 제조업체들을 대신해 수거 및 재활용을 하고 있는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 내부자료에 따르면 2000년 폐컴퓨터 본체 기준으로 4만4000대가 회수돼 이중 1만5000대가 재이용됐으며 유가금속 회수 등 재활용은 1만3000대,소각 또는 매립은 1만6000대다. 2003년에는 약 9만대 가량이 공식 회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통계가 집계되지 못하는 것은 유통경로가 불투명하기때문이다. 현재 재활용센터와 지자체,전자업계를 통해 회수되는 양은 전체 발생량의 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민간수집상에의해 처리되고 있다. 비제도권시장에서 폐컴퓨터를 재활용하거나 유통시키는 업체는 250∼300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이 영세업체들이다.

폐컴퓨터 처리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재활용 목적으로 수출되는 경우다. 폐컴퓨터의 수출국은 상대적으로 환경규제의 정도가 약한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집중돼 있다. 이 곳에서는 적절한 오염방지시설을 갖추지 않은 채 유가금속 회수작업이 이뤄지면서 환경분쟁이 발생한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국내 폐컴퓨터의 주요 수출국이던 중국은 지난해 환경오염을 고려해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국내 영세업체들도 금 등을 추출하는 재활용 과정에서 대부분 제련이 아니라 값싼 왕수(산성용액)를 사용하는 곳이 많아 폐수배출 등 환경오염을 일으킬 우려가 크다.

◇유통과정 투명화가 관건=폐컴퓨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거 체계의 대대적인 개편이 과제다. 유통과정이 투명해야 제대로 된 통계가 나오고 적절한 정책 집행이 이뤄질 수 있기때문이다. 쓰레기문제해결을위한시민운동협의회(쓰시협) 홍수열 팀장은 “컴퓨터 수거운반업체에 대한 자격 기준을 강화해 관리능력을 갖춘 업체만 폐컴퓨터를 취급할 수 있도록 하고 지도점검기관에 폐컴퓨터 처리물량을 신고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자원재생재활용협회의 유의선 박사는 “컴퓨터 수거가 부진한 것보다 정작 수거된 중고 컴퓨터도 제대로 재활용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영세한 재활용 처리업자들의 낙후된 기술로는 복잡한 부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생산자가 재활용 과정에 직접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PR제도 시행에 따른 생산자들의 재활용 의무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생산자가 책임지고 재활용해야할 컴퓨터 본체의 의무량은 지난해 10만대에서 올해는 40%정도 늘어 14만3000대로 확정됐다. 홍수열 팀장은 “이 정도는 전체 폐컴퓨터 배출량의 10%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라면서 “장기적으로 배출량의 50%수준까지 의무량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재활용과 이영석 사무관은 “향후 2∼3년내에 의무량을 30만대 수준까지 높여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맹경환기자 khmaeng@kmib.co.kr 국민일보 04/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