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바닷가마저 삼킨다

도시 근교 마을 뒷동산에서 국립공원 자락에 이르기까지 산속으로 파고 들었던 골프장들이 바다로 내려 오고 있다.

바닷가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는 쪽은 골프장이 내륙지역에서와는 정반대로 훼손된 환경을 되살려주는 시설로 포장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포장이 가능한 것은 바닷가에서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는 지역 대부분이 폐염전·폐양식장 등 용도폐기된 곳이거나, 항포구에서 퍼올린 뻘을 쏟아부은 매립지와 간척지 등 이미 환경이 훼손된 곳이기 때문이다. 버려진 지역에 잔디를 입히고 조경까지 하는 것이니 환경을 살리는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백로와 오리 철따라 찾아들고 바로옆 소나무숲엔 왜가리 번식지
게·망둥어 쪼르르 갯벌로 되살아나던 곳‥

환경단체와 해안생태계 전문가들은 바닷가의 골프장 건설이 환경복원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골프장이 잔디 이외의 다른 생물들의 생존이 불가능하도록 관리되는 이른바 ‘녹색의 사막’이기는 산에서든 바닷가에서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잔디에 퍼부어지는 농약들은 자연정화될 틈도 없이 바다로 유입돼 연안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다.

골프장 만든다고 흙 쏟아붓고 해수통로 막아 다시 죽어간다

무엇보다 해안생태계 전문가들은 방치된 폐염전 등을 쓸모 없는 생태계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경원 환경운동연합 습지위원회 위원은 “폐염전과 폐양식장 등은 육지와 바다를 연결하는 생태계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며 “바닷물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터주고 2~3년만 그대로 두면 야생동식물의 보고가 된다”고 말했다.

인간에 의해 파괴됐다가 인간의 간섭이 사라지면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폐염전 지역 뿐만이 아니다. 경남 남해군이 골프장 조성을 목적으로 성토작업을 하고 있는 평산·덕월매립지 18만여평도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특히 평산매립지 10만여평은 남해군이 지난 3월 골프장 조성작업을 위한 성토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름만 매립지일뿐 여느 갯벌과 크게 다름없을 정도로 복원이 진행됐다. 매립지 외곽의 습지에는 갈대, 칠면초, 퉁퉁마디 등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뤘고, 매립지 가운데는 각종 게와 망둥어의 천국이 됐다. 백용해 한국갯벌생태연구소 소장은 “해수유통을 차단하더라도 복토만 하지 않으면 지하로 해수가 유통되는데, 해수유통 통로까지 유지돼 상당한 수준의 생물 다양성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쩍쩍 갈라져‥널부러진 게들

평산마을 어민들이 올 봄 매립지에서 바지락 400㎏을 캐내 종패로 판매한 것이나, 지난해 11월 국제적 보호종인 노랑부리저어새 한 쌍이 매립지를 찾은 것은 매립지의 생태계 회복을 증거하는 작은 사례들이다. 박춘식 남해환경련 사무국장은 “백로와 오리류가 철따라 찾아들고 왜가리 수백마리는 평산매립지가 바로 옆 소나무숲을 번식지로 삼고 있다”며 “매립지를 찾는 철새들이 다양화하고 있다는 것은 매립지에 먹잇감이 되는 저서생물들이 풍부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찾아본 덕월·평산매립지는 다시 죽어가고 있었다. 바다쪽 둑 앞쪽의 매립지 바닥은 둑 앞에 쏟아 부은 성토용 흙의 무게 때문에 위로 솟아나 있었다. 공사를 시작하면서 해수유통 통로를 차단해 바닷물은 매립지에 가운데쪽에만 남아 있었고 외곽은 물이 빠져버린 상태였다. 마치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채 말라가는 매립지 바닥에는 수많은 게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주변 곳곳에는 크고작은 게들이 죽어 널브러져 있었다. 물기가 남아 있는 곳으로 좀더 들어가자 생명이 있었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게구멍들에서 방게들이 얼굴을 내밀로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동행한 박 사무국장은 “지금이라도 막아놓은 해수 유통구를 열어서 바닷물만 들어오게 해준다면 다시 갯벌이 된다”며 “그렇게 해 생태공원이나 자연학습장 등 지역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을 검토해보지도 않고 군청이 골프장만을 고집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공사가 진행중이거나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바닷가 골프장은 모두 10여곳에 이른다. 덕월·평산 매립지 이외에도 전북에서는 군산시 옥구읍 어은리와 옥서면 옥봉리 일대의 100만여평에 이르는 옛 한국염전 터에 골프장 조성을 위한 기반시설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고창군 심원면 고전리와 만돌리 일대 폐염전에도 골프장이 추진되고 있다.

폐염전 등 살린다는 핑계로

충남에서는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와 원북면 황촌리 바닷가 간척지와 폐양식장터에 골프장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정죽리의 순비기골프장은 매립용 토석채취장 확보 과정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도 하지 않은 채 토석채취장 예정지의 숲을 벌목해버려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또 황촌리의 웨스트비치골프장은 천연기념물인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채 2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다. 이밖에 인천 남동구의 소래포구의 폐염전 터, 시화호 인근인 시흥시 군자·미산동 일대 폐염전, 화성시 마도면 고모리 일대 폐염전에도 골프장 건설이 추진중이다.

전국에 10여곳 추진중

이 가운데는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가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골프장도 있으나 대부분 지역경제 활성화와 세수확대를 염두에 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있어 건설을 근본적으로 막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경원 환경운동연합 습지위원회 위원은 “골프장 건설은 바닷가 땅값을 높이는 과정”이라며 “중국산 소금의 수입으로 채산성이 없어진 염전이 새우양식장으로 변했다가, 다시 골프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프장이 마치 개펄→염전→양식장으로 이어지는 남서해안의 바닷가의 천이과정의 종착지로 자리잡아 가는 형국이다.

황호섭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전국적으로 200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폐염전과, 폐양식장, 간척지 등은 한번 개발의 손길을 탔던 곳이라는 점때문에 환경부나 해양수산부 등의 보호대상에서 뒷순위로 밀린 채 골프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폐염전을 비롯한 바닷가의 방치된 지역을 일부 특정 계층만을 위한 곳으로 만들기보다 자연에 되돌려 주어 궁극적으로 온 국민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