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자신을 구속한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공감을 하구요. 그런 일이 있는 거 같아요. 운동하는 것이 같이 함께 협력해서 같은 방향을 보면 되는데, 사실 그렇게 되는 것이 굉장히 힘들더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게 다수 대 한두 사람으로써 한두 사람의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강요가 되고 강제가 되고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제 마음을 잘 다스려서 소수의 그 사람과 나에게 있어서, 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대답 : 예. 공감합니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뀔지 안 바뀔지는 그의 뜻이다. 그러나 바뀌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의 할 일이고 바뀔지 안 바뀔지는 내의도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걸 기대하게 되면 그것이 동지도 마찬가지이고 그것이 소위말해서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적으로 나타난 대상이 내 뜻대로 안될 때는 힘이 납니다. 어디 두고 보자! 힘이 납니다. 그런 노래 있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특히, 가사 끝부분에 '우리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안락에도 굴하지 않고'에서 저는 눈물이 나는데, 총칼에 굴하지 않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그런데 안락에는 굴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적이 어떻든 바뀌어야 할 대상이 안 바뀔 때는 힘이 되는데, 될지 안될지는 그들의 뜻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정책결정은 어쨌든 그들이 결정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치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환경을 빨리 바꾸는 게 나한테 이익이다라고 생각되도록 이 사회를 바꿔나가야죠. 그런데 바꾸는 건 자기네가 이익 되는 쪽으로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 때는 힘이 들 빠집니다. 그런데 같이 있는 동기들이 그럴 때 힘이 더 빠집니다.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함께 하고자 최상의 노력을 하는 것은 내일이지요. 바꾸는 것은 자기가 할 일이다.

많이 활동하신 분들이 그만두신 주된 이유가 다는 아니지만 함께 일하던 사람과의 감정 대립이 많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다 욕해도 우리 식구들만 있으면 난 살수 있어 이러는데 우리 식구가 욕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힘이 다 빠지지 않습니까. 또 남들은 둘째인데, 내 마음이, 내 생각과 마음이 다르죠. 구분됩니까. 마음이 지 멋대로 움직일 때가 많아요. 전에 한창 열심일 때는 옆에 연애하는 친구가 안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고 부러워 이런 생각도 들고. 전에는 자동차 타고 다니는 친구가 별로 신경 안 쓰였는데 아이고 다리 아파 죽겠네 저거 안되나 이렇게 마음이 생긴단 말이에요. 이 마음이 내 뜻하고는 다르게 움직인단 말이에요. 그때 우린 갈등을 하지요. 일을 할까 말까 왜, 내가 한쪽에 그것을 원하니까. 그러나 마음이 바뀌고 안 바뀌고는 자기가 할 일이다. 너는 부러워해라. 나는 일할게. 예를 들어서, 이뿐 사람이 있으면 음욕의 마음이 생기지만 이래서는 안돼. 절에서 일하는 내가 이럴 수 있어? 이렇게 누를 수 있다. 그런데 누르면 사라집니까? 어때요 사라져요? 더 오래가죠? 그런데 누르지 않고 인정해버리면 가벼워집니다. 내가 어떤 욕구가 생기면 우리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합니다. 하나는 욕구를 따라가던가 아니면 욕구를 억눌러요. 욕구를 따라가는 것은 우리가 행동을 옮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릅니다.

그런데 욕구를 누른다고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욕구가 눌리면, 저는 만화를 보면 사탄과 천사 그림이 나오는 게 참 공감이 가요. 천사는 이뿐 모습이잖아요. 사탄은 창을 들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 마음속에 어떤 마음이 일어나면 천사표 마음도 있고 사탄표 마음도 있잖아요. 그럼 누구를 이뻐 합니까. 당연히 천사표를 이뻐하죠. 그렇게 살아야해. 남한테도 얘기하죠. 가끔씩 친구한테도 있었던 욕구에 대해 얘기도 하지요. 그 외에는 갈등이 없어. 그런데 내가 미워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꽉 누릅니다. 그러면, 억울해 합니다. 왜 억울해요. 자기가 내놓고 자기가 누르니까. 마치 무엇과 똑같습니까. 은행을 다 털고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자수를 해버려서 동료도 같이 잡혀버리면 동료는 자수한 이를 죽여버린다 하지 않겠어요? 이건 남과 서로 담합해서 했던 일도 이런데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마음은 누가 냈습니까? 내가 냈잖아요. 내 마음을 내가 미워하니까 누구한테 인정을 못 받고 억울하고 분해요 복수심이 생긴단 말이에요. 이런 마음이 언제 나오나요. 이성이 약간 갔을 때 즉, 술 취했을 때. 보통 아내에게 구타가 심한 남편들 보면은 속에서는 착해요 80-90%가. 그런 왜 그래요 꾹~ 참는 것이에요. 자기도 몰라 참는 마음을 그런데 술 먹으면 이성적으로 누르는 판단이 사라진단 말이에요. 힘을 잃어 버려서 밑에 있던 게 올라와서 일을 저지르죠. 깨면 어때요 내가 언제 그랬어. 그럴 때 이 사탄도 우리는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네가 그 동안 이성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졌고 니가 이뿐 여자를 보면은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다독거리지 못해요. 악심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를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요. 제 생각은, 그 때는 큰 일을 찾는 게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제가 알기에는 불교에서는 원력이라고 그러고 기독교에서는 주님의 쓰임새라고 저는 알고 있어요. 내가 손톱 밑에 가시가 들어가 있을 때 얼마나 아파요.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이 팔이 툭 짤라지면 그 모습보고 내 손톱은 관심이 없어집니다. 통증이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어머니가 병들어서 죽게 생겼는데 종합병원 찾아가는데 평소에 좋아하던 사람이 데이트하자고 해도 관심이 갈까요? 망설일까요? 그렇다고 미련이 끊어진 걸까요? 그렇지 않은 겁니다. 돈으로 유혹하던 성적으로 유혹하던 권력이나 명예로 유혹을 하던 관심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권력이나 성적이나 그런 것이 도사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큰 삶에 대한 원이, 내 문제의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질문 : '조화롭게 산다고 하는 것이 느끼기에 어려운데요. 명상이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목표를 그리 잡아야 하겠는데. 그렇게 되기 위한 명상 훈련이 가능한 건지. 어떤 훈련 과정을 가져야 하는 건지요.

답변 :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저는 명상이라는 것은 훈련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자꾸 외부적인 욕구에 시달릴 때 그 것을 잊기 위해서 떠날 있을 수도 있지만 다시 돌아오면 원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은 단지 워낙 머리가 복잡하고 답답할 때 조용한 곳이나 좋은 소리를 듣거나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는 데 그것을 다시 돌아오면 거의 같아진다. 그건 훈련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것은 자기 삶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바뀔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밖에서 어떠한 유혹이 있거나 할 때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자체가 또 하나의 복잡한 생각이 되어 버리거든요. 그것이 내 삶의 별로 큰 관심으로 멀어질 때 근본적인 명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죽어 가는 상황에서 아무리 외부에서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것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훈련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문제는 그런 맛을 많이 복잡한 것 속에서도 내가 휘말리지 않고 가볍고 평화로운 맛을 볼 수 있으려면 어떤 명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는 해요. 그 맛을 보기 위해서. 그 맛을 보기 위한 프로그램이 저는 각 종교에 다 있다고 봅니다. 제 생각은 그래서 불교나 다른 모든 종교에서 하는 이런 것은 그것이 어떤 사람의 명상력을 증가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명상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맛을 바탕으로 자기 삶의 전환이 될 때만이 주변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보지요.

질문 : ………

답변 : 보통 명상에서는 제가 알기로는 괴롭거든요 지금 상태가 예를 들면 내 돈 천만원을 가지고 가서 욕하고 싸워서 괴로울 때에 생각할수록 더욱 열이 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집중이 되면, 나에게 평화가 옵니다. 그 때에 그 평화가 앉아 있어서 그렇구나 할 수가 있고. 아! 이 뿌리가 내 욕심과 내 생각 때문에 오는구나하고 보고 자유로워지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은 돈을 받고 안 받고 하고는 관계없습니다. 돈을 받을 때 받더라도 쫓아다니면서 괴롭지 않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자기마음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방법중의 하나다. 그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호흡을 권하기도 하고, 또 행동하면서 권하기도 하고 자기 단전을 권하기도 하고 이것을 관법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명상이 관법이 전부는 아닌데 모든 명상의 원리가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종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화로운 삶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봐요. 양반이 볼 때와 상놈이 볼 때의 조화로움이 다르다고 봅니다. 조화로움이 조화로웁게 보이려면 그 때 저는 솔직히 말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을 잘 모릅니다. 아까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고요. 그 영성과 깨달음의 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조화로움이 더욱 명확해 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더러움과 깨끗함의 지렁이와 구더기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조화롭지 못한 생각이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활 속에서 편함을 중심으로 한 내 생활을 중심으로 한 것이 될 때 다른 사람의 생활과 다른 존재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인간 중심의 생각을 할 때에는 다른 것들은 인간을 위한 존재일 수밖에 없듯이 그러나 인간중심이 아니라 모든 생명 중심으로 생각할 때에 그 조화로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한 조화로움은 인간 중심적이지 않고 생명 중심적이지 않고 지구 중심적인 삶속에서 조화로움이 조화로움이고 거짓은 거짓인 삶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이 어디서 나왔는가 생각해보면은 적개심. 마땅히 되어야 하는 책임감. 같이 나눌 수 있는 동지애. 외부로부터 힘을 찾을 때에 생활의 변화에 따라서 흔들리고 떠날 수 있는데, 자신을 성찰하자니 진보적으로 살아가자니 지치고 힘들고, 포기하자니 삶의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어서 괴로워하고 있는 마음이 있다. 내부로부터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내부로부터 찾아가는 것이 종교다. 좋아서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 힘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언제까지 이러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가. 구체적이고 조언한마디 부탁합니다.

답변 : 세상에 많은 기쁨이 있겠지만은 다른 사람들이 나로 인해 기뻐하는 것도 큰 기쁨이고요. 나를 바꿔 나가는 것도 또한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괴로움을 내려놓고 내가 평화로워지는 기쁨, 그 기쁨이 꼭 종교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종교에서 많이 얘기되어지고 있다고 알고 있고요. 본래 종교는 예전부터 그렇게 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내 욕심을 내려놓을 때에 기쁨, 내 이기심을 내려놓을 때의 기쁨, 그 기쁨들이 일상속에서 얻어질 때 그것이 외부의 어떠한 조건이 바뀌는 것만큼 또는 그보다는 더 큰 기쁨이 되지 않나,

그런데 그게 대부분의 경우에는 종교에서 자신의 기독교인은 주님, 불교인은 부처님같이 귀의하는 마음 복종하는 마음 이런 마음에서 그런 마음이 많이 생기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보면. 그런데 저는 꼭 그렇지 많은 안다고 보고요. 그것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종교의 할 일인데 오히려 운동에 대한 정말 목숨 바쳐 할만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정말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가. 저는 아까 우리 목사님 말씀하셨던 명상의 훈련이라고 얘기했던 것 중에서 이런 것이 기쁘다. 이렇게 내려놓는, 욕심이 있거나 원망심이 있거나 증오심이 있다가 예를 들면, 예배하다가 울다가 기쁨 속에서 좋아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모든 종교가 다 있다고 보는데 그런 기쁨들이 그 동안 개인적인 문제만, 은혜 받은 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하나님 또 부처님을 만나는 것으로써 되는 것으로 저는 생각을 하는데 이것이 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는 그분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위에서 아까 맛보기라는 것이 그런 의미가 있거든요. 그런 큰 기쁨을 맛보는 것 자기 변화를 시킬 수 있는 예를 들면, 저에게 같은 경우는 불교적인 경우밖에는 모르겠는데요. 부인과 남편에 대한 증오심이 죽이고 싶은 증오심이 있다가 기도를 하면서 그분들이 부처님으로 보이는, 생각이 바뀌는 게 아니라 맘이 바뀌어 나가는 거예요. 저는 기독교에도 당연히 많다고 간증할 때 보면 나오는데 그것이 어떤 은혜가 아니라 내 속에서 내 편견과 내 아집과 나에게 해주기만을 바랐던 마음에서 그 마음이 내려놓아 지면, 부모에 대한 불만은 키워준 것만으로 큰 기쁨으로 다가온단 말이에요. 있는 그대로 보게되면. 내 요구 내 바람 내 욕망으로 볼 때와 있는 그대로 볼 때는 정말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기쁨들이 있으면 정말 힘이 가능하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속에서 기쁨을 느껴나가면 가능하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활동하는 사람들간에, 저희가 서울에서 북한 돕기 모금을 명동에서 매주토요일 2시에 하는데요. 1년쯤 해나가니까 놀라는 겁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는지. 2년 되었는데 다른 단체가 어떻게 하는지 참가해요. 참가하면 다 끝나고 나누기란 프로그램이 있어요. 자기 생각을 다 얘기합니다. 예를 들면, 북한 돕기를 한다니까 빨갱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때 내 마음에 불같은 화가 나서 죽이고 싶었다든지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함께 하는 다른 단체에서 사기 꺾이지 않느냐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다 얘기를 하고 그렇게 섭섭하고 미운 마음이 나만 가지고 있던 게 아니었구나. 나한테 일어난 이 마음도 당연해. 그런데 그 마음을 나는 북한 아이를 생각하자마자 사라졌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탄이 지배할 때의 자기 모습과 천사가 지배할 때의 자기 모습을 다 얘기합니다. 부담 없이 나쁜 것과 좋은 것을 떠나서, 그렇게 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이 ,편견이죠 일종의, 저 사람은 내가 옳다는 것은 옳다고 생각해야 돼. 어떻게 북한 애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빨갱이라고 말할 수 있어 이런 것도 자기 생각이라고 봐요.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럴 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가벼워지거든요. 이래서 우리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냥 어떤 행사가 끝나고 나면 뒤풀이도 좋고 그렇습니다만 그 때 일어났던 자기 마음을 다 돌아보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 그 때 어떤 문제를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되면, 힘이 오래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질문 : ………

답변 : 일속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짜증도 내고 성질도 내면서 잃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떤 것이 옳다고 하기 전에 저희 단체에서 하는 것은 각 개인에게 그 사람이 가장 마음속에 걸려있는 문제를 풀어 주시는 어른들이 계세요. 그 얘를 들면 그것이 자기 옳다는 자기 고집이나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나 모든 사람은 나를 위한 사람들이다라는 마음을 갖던가. 나는 잘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자기 기도문이 있어요. 일상생활에 잘 안되다가도 일년에 한번이라도 성질이 끌어 오를 때에 한번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끓는 물에 찬물 붓듯이 가라앉을 때가 있거든요. 그때 그 맛을 봐요. 내가 내 고집을 내놓았더니 이렇게 가볍구나. 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건데요. 이렇게 얻는 분도 있고요. 한 집단이 있으면 이일을 마칠 때까지 중요하게 삼는 목표가 있습니다. 모임이 있을 때에 목표가 있잖아요. 그 목표는 목표고, 각 일마다 추진하는 사람들의 공통목표가 또 하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은 항상 옳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던가. 부엌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것. 끝나고 나서는 불만과 좋았던 점을 나누고 불만이 있다가도 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변했다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자기 아집을 내려놓고 함께 해나가는 것 중심으로 해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많이 까먹습니다. 그런데, 중요할 때 한 번 생각하면 큰 기쁨을 주지요. 함께 일하면서 소수가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하느냐고 하셨던가요?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옳다고 한다면,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다수가 옳으니까 한다고 하면 무엇이냐면 40명중에 30명이 찬성이라면 10명은 그래 하자 하면서도 내가 옳다고 하는 마음이 있는데. 나중에 잘못되면 그거 봐라 하면서 안되기 바라는 마음도 나도 모르게 있다는 것입니다. 물건 떨어지면 뛰어서 받아야 되는데 바라보며 떨어지네 하면서 방관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명상의 중요한 과제라 생각합니다. 경험을 얘기해드리면 부산에 대불련이라고 있는데. 대학생 20단체 불교학생반 모이는데 거기서 간부를 하려고 옵니다. 결정해놓고 저한테 오면 저는 지도 법사로서 저에게 오는데 면접을 하러 오지만 거의 저하고 상관없이 이루어져요. 저는 몇 개 물어보죠. 3개를 물어보는데. 너 누구 때문에 하려고 하는데 물어봅니다. 솔직히 선배가요. 그래서 지금 누구 때문에 하려고 하니. 지금도 선배가 말인데요, 그러면 관둬라! 합니다. 그러면 선배가 어떻게 했지만 내가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러면 하라고 해요. 그래서, 그만두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두 번째는 무엇을 위해서 하려고 그러니 라고 묻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한다면 하게 합니다. 목적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함께 얘기를 할 때에 시킵니다. 얼마동안 하겠냐고 묻고 중간에 하기 싫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습니다. 하고 안하고의 결정권을 누가 결정하느냐의 질문에 내가 100%로 옳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결정에 맞기겠습니다라고 할 때에 시킵니다. 임원을 하는 중에 그만둔다고 할 때에 나하고 처음에 했던 약속을 기억하느냐고 묻습니다. 질문에 대답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다시 일을 한다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결정을 내가 틀릴 수 있다며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기쁜 것입니다. 감옥에 있다가 세상에 나온 것보다 더한 기쁨이 있습니다.

질문 : 운동하면서 외로움에 대해서 ..…

답변 :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여쭤보세요. 어머니 외로울 때 없습니까? 동침을 하면서도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문제는 운동 때문이라고 보지 않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어도 외로운 사람이 계실 거예요. 또, 혼자 있어도 가슴 뿌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외로움은 이해 받고자 하는 마음속에서 온다고 생각을 해요. 최근에 누구에겐가 이해 받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외로움은 커지고 오히려 내가 누군가를 이해해줄 수 없을까 생각을 하면 외로움은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부자라면 내가 쓸 용도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고 가난한 사람은 쓸 용도보다 못 가진 사람이 가난한 것입니다. 1000만원을 가지고 있어도 3000만원을 쓰고 싶으면 2000만원만큼 가능하고 1000만원을 가지고 있어도 100만원만 쓰려고 한다면 900만원만큼 부자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그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들도 외롭다고 하는 사람 있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누가 날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질수록 나는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고 외로워지지 않나 싶어요. 누가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냐고 둘러 볼 때에 외로움이 없어지는 거 같아요.

저도 어디 가서 한자리한다 하는데 다 관심 받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있으면 저도 외롭지요. 누가 나 정토회에서 불교대표로 온 사람을 인사시켜 주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그렇더라구요. 그 외로움은 어떤 운동을 해서 온다거나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요. 여자들이 결혼하고 나서 언제 외로움을 많이 타는지 아세요. 애 낳고 애들이 굳이 엄마가 없어도 될 때. 그 때 외로움이 옵니다. 30대 중후반 40대 초반. 당신생각하고 김밥을 싸주는데 돈 달라고 할 때에 우리 애가 독립적으로 산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에 찬바람이 붑니다. 남편 출장한다고 준비해주는데 호텔에 다 있는데 하며 핀잔 줄 때 나의 존재가 필요치 않다고 느낄 때 느낍니다. 치맛바람이 있는데 엄마가 자식에게 중요한 존재를 알리는 것입니다. 교회나 절에 열심히 다니는 연배가 주로 그 연배가 많습니다.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과 남편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외로워서 무언가 자기 쓰임새를 찾아서 봉사하고자 하는 연배입니다.

질문 : 저는 제안을 들여다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아침마다 명상을 하고 자기 전에 생각을 하며 항상 생각을 하고 명상을 하는데. 하고 나서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 녹아버리면 다시 힘들어 지는데, 명상이 잘 안 되는데 제 방법이 잘못 되었는지 알고 싶은데요. 삶의 가치관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알고 싶습니다.

답변 : 저는 방법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무지 많습니다. 마음에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얻는 사람은 많거든요. 나한테 물으면 내 방식대로 할 것입니다. 종교마다 다르고 같은 종교에서도 또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같을 수도 있지만, 방법은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이것은 금방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를 받는 것은 좋다고 보고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기본적인 문제는 힘든 일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있다고 봐야죠. 운동을 하고 일을 해나가면서 갈등이 생기는 건 참는 거와 당위성의 갈등이 참 많습니다. 정말 참을 만한 일인지 즐길 일인지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어떻겠어요. 갈등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 그것이 갈등 있을까. 만화책을 좋아해서 밤새보는 아이에게 수고했다고 하면 민망스러워 합니다. 영어 공부하는 애한테 수고했다 하면, 힘들었다며 으쓱된다. 사회에서 훌륭한 공로상을 타면서도 겸손한 사람을 보면은 존경스럽기도 하고, 괜히 좋으면서 그래 하기도 합니다. 청룡열차를 즐기려고 타는 사람은 돈을 내고 타야하고, 홍보차 타는 사람은 돈을 받고 타는 것입니다. 노동이기 때문에. 운동하는 사람들도 돈 내고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이 놀이가 되어야합니다. 안 그러면 노동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면 문제가 사라집니다. 정말 나에게 행복한 일이 무엇인가 생각을 합니다. 내 욕구가 충족되어지면 행복하지만 사라지잖아요. 그런데, 무엇인가 다른 이의 기쁨을 위해서 일하면 순간은 힘들어도 기쁨이 오잖아요. 그걸 기쁜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운동이 나에게 즐거운 일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아니면 아무리 막아도 아무리 돈을 좀 더 줘도 요구가 더 나옵니다. 그래야 운동이 주인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운동을 개인적으로 내 인생의 주인 되는 일이 운동이라고 생각돼요. 내 인생을 살면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는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 운동이다. 저는 절에 살지만 불교 활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운동한다고 생각을 하지. 대답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명상하면서 마치겠습니다.
-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함께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을 보니까 힘이 납니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