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기독학생회(SCA)(서울 정혁)
주소: 서울 서대믄구 신촌동 134
전화: 02-361-4224
주요활동: 반핵환경활동

자체소개
1. 활동 명칭 : '연세 SCA 반핵환경농촌활동'
2. 활동 기간 및 장소 : 1996년 7월 ∼ 1998년 7월(매년 9박 10일간, 총 3차), 경남 경주군 감포읍 대본 2리
3. 활동 주체 : 96 ∼ 97년에는 연세대 SCA 회원 중 약 17명 정도가, 98년에는 6명의 이화여대 SCA 회원들을 포함하여 약 20명 정도가 반핵농활을 수행하였다.
4. 활동 목적
이원론적 세계관을 넘어 자연과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동등한 존재임을 인식하며 그 속에서 회복과 보존을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 속에서 기독학생회는 환경 활동을 반핵 문제에 중심을 두어 3년간 월성 원자력 발전소에서 현장 활동을 해왔다. 핵 문제에 대한 인식은 낮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정부의 에너지 이용의 효율성 논리에 찬핵론자들이 되어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독 학생으로서 가져야 하는 자연질서에 대한 신학적 자기 책임성에 대한 물음과 결단 속에서 범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핵 문제에 대한 정확한 문제 인식과 대안을 만들고 단편적 이해를 넘어서 자발적 참여와 문제 공유를 지역 주민과 함께 하고자 활동을 시작했다. 자연에 대한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인식하여 창조질서속의 한 구성원으로 생명 가치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5. 활동 내용
반핵환경농활의 구체적 활동은 크게 네가지로, 농촌봉사(노동) 활동과 분반활동(청소년반, 아동반), 그리고 반핵활동과 공동체 내부 프로그램으로 나눠진다.

1) 농촌봉사 활동(노동) - 경제활동 인구의 노령화 추세 속에 있는 농촌의 일손을 도와주는 대민 봉사 차원의 의미가 우선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봉사적' 개념의 농활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후의 반핵활동을 위한 지역민들과의 자연스런 교류의 장으로서 노동 현장을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동시에 핵발전소로 인한 여러 가지 피해 상황들을 농민들에게 물어보거나 듣는 자리가 되기도 하였다. 노동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였으며, 주일과 특별행사(발전소 견학, 강의, 체육대회 등)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일을 하였다.

2) 아동반 활동 - 농촌의 가족은 1960대 이후 이농이 가속화된 이후 인구층의 감소에 따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대본리 역시 젊은 층의 대다수가 도시로 떠나 전통적인 가족형태(3대가 같이 사는 것)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아동반의 분반활동은 단순히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터전을 긍정하고 농촌아이로서의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농활 중의 여러 활동 중에서도 특히 많은 준비가 필요한 아동반은 교회 주일학교 경험이 있는 학우가 주체가 되어, 노래 및 율동 배우기에서부터 그리기와 만들기 만화영화 보기와 공동체 놀이 등의 프로그램 등을 꾸렸으며, 마을 주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얻는 활동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3) 청소년반 활동 -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반 활동은 주로 저녁 시간대를 이용해 아이들의 진로 상담과 과외학습 위주의 활동을 하였다. 특히 사춘기 전후의 시기를 맞은 여자아이들이 많아 그동안 부모나 또래친구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한 개인적인 고민들을 언니들과 함께 풀어보려는 사례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쉽게 자기 이야기하지 못하던 아이들도 언니, 오빠들부터 마음을 열고 다가서자, 곧 자신의 속을 드러내고 함께 나누려는 자세를 보이는 등, 농촌 아이들의 순수함을 엿볼 수 있었다.

4) 호별방문 - 마을의 각 가정을 방문하는 '호별방문'은 주로 저녁시간대를 통해 이루어졌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9시 반을 전후로 해서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은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7시)부터 약 두어 시간 정도였다. 호별방문은 마을주민과의 교류와 연대감 증진을 위해 직접 대면의 기회를 갖고자 했던 것이 기본 취지였으며, '반핵'이라는 부분도 결코 놓치지 않도록 긴장하며 마을 분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대체로 편안한 이야기-주로 자식들에 관한, 농사일에 관한 것들-로 시작하여, 개인적으로 핵발전소로 인한 피해 사례 및 그에 관한 의견과 마을의 전체적 정서 파악에 나섰다. 주민들이 미리 짜여진 인터뷰로 인식하지 않도록 메모나 필기는 삼갔으며, 자연스런 대화의 맥을 끊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모든 수집된 정보들은 밤 시간의 토론과 평가를 통해서 자료로 남기도록 하였다.
핵 관련 피해 사례들은 대개가 어획량의 감소, 기형물고기 출현 등의 발전소 냉각수로 인한 피해가 많았다. 실제로 해변가에 항상 자욱한 안개가 껴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높은 온도의 상태로 배출되는 냉각수로 인한 수온 상승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기형가축을 보았다는 증언도 있었고, 암 환자 수의 갑작스런 증가를 원전과 연결시켜 추측하는 분들도 계셨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피해보다 더욱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핵 피해와 그 보상에 관한 마을 공동체의 불일치와 불협화음 등이었다. 한국전력의 의도적인 마을간 차등 보상과 무원칙적인 피해 접수로 인하여 마을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마을 내에서도 서로간의 반목과 불신이 상존해 있었다. 또한 정확한 정보 전달의 통로가 부재한 농촌 사회에서 '소문'이 '소문'을 낳는 등, 단결된 대응을 저해하는 요소들도 주민들의 상호불신과 패배감을 더욱 자극하였다.

5) 반핵활동 - 핵발전소 부근 마을에서 '반핵'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다. 평균 나이가 60에 가까운 주민들의 그저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려는 성향과 정부 정책에 상당히 순응적인 지역 정서가 맞물려 '핵의 위험성'을 곧바로 '반핵'으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들의 반핵활동의 주안점은 핵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최대한 고양시키고, 주민들 스스로 일치된 의견과 조직을 통하여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 두었다. 이는 호별방문을 할 때나, 그리고 노동을 할때나 항상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부분이며, 특별한 행사를 통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하기도 하였다.
특별 행사로는 <환경 영화제>, <반핵 강연회>, <읍내 피켓팅> 등을 수행하였다. 환경영화제는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반핵 영상자료를 상영하였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환경 만화도 상영하였다. 반핵 강연회는 별도의 시간을 내기보다는 마을잔치 초반에 간단한 강연을 집어넣는 식으로 개최하였다. 98년에는 <기독교 환경운동연대>의 김영락 사무총장의 강연이 있었다. 피켓팅은 읍내 장터에서 약 30여 분간 <녹색연합>의 후원으로 핵 피해의 실태를 담은 각종 사진과 표어들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시위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6) 공동체 내부 프로그램 - 매일 아침 Q.T를 통하여 성서에 나타난 창조 세계에 대한 하
나님의 명령과 인간의 의무에 대하여 묵상하고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공동체의 일체감과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하여 레크레이션이나 체육대회, 대화의 시간 등을 가졌다. 한편 반핵 및 환경과 관련한 교육을 위하여, 농활 전 교육은 물론 농활 수행 중에도 환경운동가들을 모시고 강연회를 열었다. 또한 생태신학, 환경 일반, 농업 문제, 핵 문제 등에 관한 교육자료집을 제작하여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6. 평가
3년간 지속되어 온 반핵현장 환경활동의 가장 큰 목표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학생으로서 '핵'이라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고 주민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일회적인 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핵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 의식 공유와 지역 자체 활동을 이루어 내는 것이었다.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서 주민들의 문제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장기간의 정보와 주변 생태 조사 등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원전 시설과 주위의 자연 생태를 돌아보며 현장 속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구체적인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느끼며, 주민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해결 방안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기독교 환경 운동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져야하는 창조 질서 보존을 위한 생명 사상과 생태적 가치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얼마만큼의 공동의 목소리를 내었으며 그 속에서 실질적인 주민 참여와 의식의 변화를 만들어 내었는가라는 물음을 가져야 했다. 많은 정보의 공유와 토론이 있었지만 농촌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지 주민들에게 이러한 것들이 삶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핵이 가지는 위험성에 동의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에 대해 무감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박 10일간의 짧은 일정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지는 지역의 정서와 핵에 대한 의식 등은 지역 운동가들도 높이 평가하는 '반핵농활'의 값진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98년 농활 수행 직후, "원전 추가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민들의 대규모 집회가 발전소 앞에서 열렸던 사례가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새로운 현장을 개척하고, 문제를 발굴하여 자료 수집, 협조 요청, 활동 기획 등의 실제적 운동 경험을 통한 기독학생회원들의 지도력과 운동 감각의 성장이 더욱 큰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더욱이 반핵이라는 주제는 회원들로 하여금 환경문제와 핵문제 등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높여주었으며, 실제로 환경운동에 대한 꿈과 비젼을 보게 된 회원도 생겨나게 되었다.
(글쓴이 : 정혁)